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6)
EP.486 486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4)
486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4)
– 박승엽
영화에서나 봤던 고대 이집트에 떨어진 지 약 5일 차.
“…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어.”
“나도.”
오랜만에 미로와 생각이 일치했다.
장소가 장소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낮에는 끔찍할 정도로 더운데 냉장고도 없고 에어컨도 없다.
애초에 이 시절에 ‘시원한 물’이라는 건 겨울에나 먹을 수 있겠지.
참자.
지금 우리가 하인들과 낙타가 끄는 마차 비슷한 것에 탑승 중임을 고려하면, 시원한 물 따위는 배부른 소리야.
“이거, 에이디아가 가면서 먹으라고 줬어.”
“…”
미로는 에이디아가 본인에게 준 빵을 내게 건넸다.
내가 배고파 보여서 친절을 베푼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저 빵을 더럽게 먹기 싫어서겠지.
고대 이집트의 빵은 씹다 보면 입안에서 단단한 알갱이가 무지하게 씹힌다.
건강을 위해 집어넣은 알곡 따위는 당연히 아니고, 모래다.
사막에서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섞이는 게 아닐까?
“너 먹어.”
“아니야, 너 먹어.”
“…”
파라오의 딸이 먹는 빵도 이 모양 이 꼴이면 일반인이 먹는 음식 수준은 볼 것도 없어.
요즘, 내 소원은 하나뿐이다.
제발 내 차례가 끝나고 열차로 돌아가는 것!
“어? 어? 뭐야? 저거 뭐야?”
미로 얘는 부활하기 전에는 되게 두려운 관리국 요원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너무 애라 여러 번 실망했다.
보나 마나 전갈이나 거미 같은 걸 보고 호들갑 떠는 –
“이 멍청아! 빨리 바깥을 보라고!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잖아!”
진짜 어두워졌는데?
당황해서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모든 사람이 넋 나간 채 하늘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시선을 위로 올렸을 때 –
나도 넋이 나갔다.
*
– 김상현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전조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리고, 207호의 멈춰있던 시계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기에 일식이라도 시작한 줄 알았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귀곡성(鬼哭聲)이 아니었다면 그리 여겼으리라.
어두워진 하늘, 광포한 웃음을 터트리는 해골 문양.
길가를 걷던 사람들이 죄다 공포에 질려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누군가는 무릎 꿇고 말카브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일이 터지고 나자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병든 파라오, 말카브의 사도가 되라고 제안한 고위 사제.
결국 파라오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게 확실했으니, 파라오를 미리 죽이기라도 해야 했나?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보스인지, 시나리오가 어떻게 진행 중인지 혼란스러운데 다짜고짜 누굴 죽이라고?
206호에서 적인 줄 알았던 시장이 알고 보니 인신 공양을 통해 마왕을 억제하지 않았는가!
“후우…!”
이럴 때가 아니다.
*
송이 양과 합류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신전으로 움직이던 중, 의외의 사람들을 만났다.
“선생님!”
낙타와 하인들이 끄는 으리으리한 마차와 그럴듯한 복식을 차려입은 사람들.
평소였다면, 도시 시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할만한 행차다.
물론, 지금은 다들 정신없이 울부짖으며 기도하느라 바쁘다.
“승엽 군? 앞쪽은 유미 양이군요. 아하, 미로 양도 왔 -”
“뭐야? 너희가 아버님의 주치의를 어떻게 알아?”
‘아버님의 주치의’
딱 두 단어로 자신이 파라오의 딸임을 드러낸 에이디아가 의아해하자 우리끼리 잠시 눈치를 봤다.
— 하하하하!
“으아악! 또, 또 말카브의 외침이 -”
“에잇, 지금 그런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다들 이쪽으로!”
이제부턴 에이디아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주저 없이 동료들 쪽에 합류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 그러니까 파라오가 이상한 신의 사도가 됐다고?”
창백해진 미로 양과 심각하게 생각 중인 유미 양.
“이런! 유미를 데려가서 파라오를 낫게 할 계획이었는데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는 승엽 군의 말을 듣자 나도 숨이 턱 막혔다.
그 말대로 유미 양이 하루 이틀만 더 빨리 합류했다면 –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
그 순간, 눈치를 보던 여인이 끼어들었다.
“지금은 궁으로 가 아버님을 살필 때죠.”
“… 에이디아.”
“수상하네. 미로 네가 갑자기 유미? 이 사람을 알아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이상해.”
미로 양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지만, 더 따지지 않겠어요. 당장 황궁으로 가서 아버님을 만나 뵈어야 해요!”
승엽 군과 미로 양이 당황하며 날 보았고, 유미 양도 마찬가지다.
결정을 내리기보다 내려진 결정을 따라왔던 동료들이 많으니, 방향은 내가 정해야 한다.
이 분위기를 읽은 에이디아도 내 쪽을 보았다.
— 까아악! 까아악!
“파라오의 따님, 하나만 확인합시다. 하늘의 저것은 말카브의 상징이 맞습니까?”
“맞아요.”
“말카브는 이집트의 신 아닙니까? 말하자면, 여러분이 숭배하던 신 아니냔 말입니다. 그런 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말카브와 우리의 관계는 당신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백성들은 잘 모르겠지만….”
“단순하지 않다?”
“…”
“시간 없습니다.”
“위대한 메네스가 나일강 유역 전체를 통일할 때, 말카브 교단은 마지막까지 저항했죠. 결국 교단이 메네스를 섬기고, 메네스는 말카브를 국교로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했답니다.”
쥐가 날 기세로 뇌를 혹사하자 곧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인 황제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한 악신 세력.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 없었기에 서로 손잡고 일종의 제정일치 공동 지배층을 이룬 상황.
교단이 메네스에게 ‘불멸을 바쳤다’라는 건 둘 사이에 이루어진 타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메네스가 건재하던 시기엔 파라오 일족이 우세였겠지.
세월이 흐르며 초인 파라오는 석관에 잠들고 그보다 못한 후손들이 뒤를 이었다.
균형이 다시금 교단 쪽으로 기울던 중, 병마로 인해 쇠약해진 오마르가 마침내 말카브의 유혹에 굴복했다?
“제발…. 주치의!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궁으로 가 아버지를 뵙자고요!”
쉼 없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음.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끔찍한 사태가 터졌음은 명확하다.
원인은 말카브의 사도가 된 오마르에게 있을 테니 놈을 죽이든 되돌리든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일단 오마르를 만나봐야겠지.
“갑시다.”
*
궁에 도착하자 엉뚱하게도 송이 양이 있었다.
그녀를 찾는답시고 도시 외곽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던 것.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동료들을 만났으니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헤스퍼시아가 시켜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했는데 -”
“주술적인 의식을 진행했다?”
“어느 순간, 오마르가 하늘을 보며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괴물이 됐어요! 그 미친놈이 -”
“야! 아무리 신관이라고 해도 아버님께 예의를 지켜!”
“얜 누구야?”
“파라오 딸이다!”
“어머.”
궁 내부로 진입하자 본격적으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끄어억…! 헉!”
“제발…. 제발 죽여주시오!”
“그르르륵!”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병사들은 산채로 썩어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훨씬 더 많은 병사는 이미 의식을 잃고 망자의 군세로 변해가는 상황!
파라오를 만나기도 전에 반쯤 시체가 된 병사들이 우리 주변을 포위했다.
“허어억! 이, 이게 다 뭐야?”
— 챙!
“… 죽은 자의 세계를 영원히 지킨다는 말카브의 -”
“야! 딸! 저거 어떻게 없애는지나 말해!”
“나도 몰라! 애초에 네가 말카브의 사제잖아? 근데 나한테 묻는다고?”
“어머. 얘네는 내가 손 쓰기 힘들겠는데. 몸에 멀쩡한 살점이 없는 수준이라.”
가뜩이나 심각한 와중에 유미 양이 태연한 표정으로 ‘이제부턴 나는 힘 못 쓴다’라고 하자 동료들의 표정이 당장 어두워졌다.
유미 양은 살점이 없는 적 상대로는 힘쓰기 어렵다.
송이 양의 팔찌 또한 저런 다수의 시체 군대를 파괴하기에 적절치 못하다.
내 최후의 섬광은 재사용 대기시간이 매우 긴 만큼, 이런 잡병을 처리하는 데 쓸 수 없다.
남은 것은 하나.
곧, 미로 양이 굳은 표정으로 내 팔목을 잡았다.
“선생님!”
척하면 척이다.
“시간대여기? 적절한 사람을 바로 부르십시오!”
“시강대기? 그게 뭐야?”
이미 에이디아의 눈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 철컥!
곧, 대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미로 양과 너무나 닮은 소녀가 나타났다.
“…”
언제나 그렇듯, 아리는 시간 낭비하지 않고 즉각 행동에 나섰다.
애초에 사방에 시체 병사가 가득했으니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겠지만!
“모두 엎드려.”
주저 없이 모두가 바닥으로 엎어져서 –
“뭐야? 다들 왜 이래?”
“아오! 딸! 너도 그냥 엎드려!”
송이 양과 미로 양이 에이디아도 강제로 넘어뜨리자 아리가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하앗!”
어느새 허공을 부유하는 불길한 다면체가 뿜어내는 기묘한 위광(威光).
장내의 시선이 홀린 듯이 다면체에 못 박힌 그 순간.
— 서걱!
시체 병사들이 둘로 쪼개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이 세상을 수평으로 가른 것처럼!
부등변다면체를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나?
그냥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서 접근을 막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찰나, 저주받을 호기심이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벽을 거대한 검처럼 활용해 휘둘렀다?
위쪽 공간과 아래쪽 공간을 살짝 비틀었다?
아니면 –
“이제 어떻게 해?”
헛!
쓸데없는 상념에 빠질 때가 아니다.
아리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랑 같이 파라오를 음, 처리하면 됩니다.”
“처, 처리가 아니에요! 아버님은 분명 내가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
“너, 한 번만 더 내 지시 무시하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될 거야.”
“…”
손짓 한 번으로 수십의 시체 병사를 쓸어버린 반신(半神)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덕분에 아까부터 시끄러웠던 에이디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가자. 파라오인지 추장인지 그놈 머리를 뽑아버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히끅!”
*
이후의 일은 여태 벌어진 일의 반복에 불과했다.
최소 100구 이상의 시체 병사를 쓰러트리자 화려한 의복을 걸친 현 파라오 – 오마르가 나타났고, 아리는 에이디아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오마르를 쪼개버렸다.
다른 시체와 오마르의 차이가 있다면, 오마르는 그 상태로도 죽지 않고 재생하기 시작했다 정도.
사방에 흩어진 고깃덩이가 된 상태에서도 죽지 못하고 재생하는 오마르의 모습은 승엽이와 미로가 구역질할 만큼 역겨웠다.
역설적으로 그 역겨움이 ‘부친에 대한 사랑’이라는 에이디아의 감정을 날려버렸다.
“… 이건 아버님이 아닙니다. 그냥 괴물이죠.”
“그 사실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그래, 파라오의 딸이라며? 이건 어떻게 없애?”
“…”
아리의 질문에 에이디아는 깊은 고민에 빠졌고, 미로 양이 의견을 냈다.
“지금! 시계에 진철이가 담겨 있어!”
“아침은 나, 정오는 가인이, 저녁은 진철이?”
“맞아! 그, 별 조각의 힘이면 이걸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일리는 있는데, 별 의미 없을 것 같네. 괜히 진철이 시간 낭비하지 마.”
“뭐?”
아리는 미로에게 답하는 대신 내게 다가왔다.
“오마르라고 했나? 저건 보스가 아닌 것 같아.”
“너무 약해서?”
“공간 가르기 한방에 무력화됐고 지금은 그냥 불사의 살덩이에 불과하지. 이런 건 보스가 아니야.”
“그렇다면 -”
“말카브? 들어보니까 그놈이 사태의 원흉 같은데. 어디 있어?”
“…”
나도 모른다.
다행히 그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분은 대체…. 또 다른 신의 일족인가요? 아무래도 좋아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어요.”
“어디인데?”
“왕가의 무덤! 거기에 위대한 메네스가 잠들어있어요!”
“메네스? 그놈이 이 현상을 해결할 수 있어?”
“… 아마도.”
“아마도?”
에이디아 본인도 확신이 없는 모양새다.
잠시 생각하자 에이디아가 어떤 사고의 흐름을 통해 ‘메네스를 깨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았다.
오래전, 위대한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할 때 말카브 교단은 결국 메네스에게 석관을 바치며 굴복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겠는가?
하늘에 해골 문양을 띄우고 삽시간에 왕궁 일대를 저주로 뒤덮을 수 있는 말카브조차도 억제할 힘이 메네스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
역으로 말하면, 폭주하는 말카브를 억제하기 위해 메네스를 깨우는 건 늑대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 호텔에서 단련된 직감이 말했다.
현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선택의 기로다.
다시 말해, 지금이 바로 가인 군이 말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 펄럭!
“뭐야? 봉투? 가인이 글씨체네?”
“…”
종이가 두 장 들어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다행히 각각의 종이에는 친절하게 1, 2가 적혀 있었다.
1에 해당하는 종이를 펼치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타났다.
「1. 우리가 아는 역사적 흐름을 존중해주세요.」
“… 역사적 흐름을 존중하라? 가인 군,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상현아, 그거 이리 줘봐.”
쪽지를 주의 깊게 살핀 아리는 곧, 모두에게 지시했다.
“왕가의 무덤으로 가자. 메네스를 깨워야겠어. 미로, 이쯤에서 내 시간 그만 쓰고 역 소환해.”
순간 당황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메네스를 깨우자’라는 결론이 나오지?
그때, 에이디아가 반응했다.
“이건…. 예언을 담은 문서인가요? 여러분이 모시는 신께서 내린 계시인가요?”
“…”
그 말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 에이디아가 굉장히 예리한 지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