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7)
EP.487 487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5)
487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5)
– 김상현
왕가의 무덤으로 이동하며 현재까지의 상황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배경은 초인 파라오 메네스와 악신 말카브의 휴전을 통해 만들어진 고대 통일 이집트.
오랫동안 파라오 일족과 악신 세력은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현 파라오, 오마르가 말카브에게 굴복하며 균형이 무너졌다.
현재, 말카브는 실시간으로 이집트를 말아먹는 혹은 ‘수확하는’ 상황.
에이디아는 말카브를 막기 위해 위대한 메네스를 깨우자는 의견을 냈다.
늑대가 두려워 호랑이를 부르는 격이 아닌지 의심스러워 가인 군이 준 봉투를 열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우리가 아는 역사적 흐름을 존중해주세요.」
이 문장을 본 아리 양은 바로 메네스를 깨우자는 결정을 내렸다.
어째서?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대여기의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아리 양도 설명 없이 사라졌다.
에이디아와 함께 왕가의 무덤으로 이동하던 중, 어렴풋이 그 답을 알았다.
한여름 밤의 꿈 이벤트를 겪으며 바깥세상의 상황을 이해한 후, 종종 각자 기억하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지.
최근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각자의 기억이 제법 달랐다.
작게는 정치인 이름부터, 크게는 도시의 명칭이나 역사적 사건의 전개까지.
반대로 말하면, 과거로 갈수록 비슷했다.
특정 시점을 딱 지정하긴 어렵지만, 1900년대 이전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다들 비슷하다?
고대 이집트도 당연히 여기 해당한다.
메네스 혹은 나르메르 혹은 스콜피온 킹.
그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이집트를 통일한 최초의 군주다.
사실상 최초의 파라오이자 고대 이집트의 건국 시조다.
반면, 말카브는 어떠한가?
207호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이집트 신화 하면 호루스, 아누비스, 이시스, 오시리스 등 무슨 ~스 하는 존재들이지 말카브 따위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를 정답으로 두고, 207호 내부의 고대 이집트는 ‘뒤틀린 역사’라고 가정한다면?
말카브 교단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야 할 존재다.
반면, 메네스는 수천 년 후의 미래까지도 이름이 남았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메네스를 도와 말카브 교단을 토벌하는 방향성이 옳지 않을까?
*
“이쪽! 이쪽으로 오세요, 경비병들은 제가 -”
“에이디아, 경비병은 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 다들 혓바닥을 내민 채 침만 흘리고 있네. 들어가죠!”
하늘에 뜬 말카브의 해골 문양의 압박감은 평범한 인간이 감내할 수 없었으며, 왕가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관점을 바꿔보면, 호텔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와 비슷하게 발맞추고 있는 에이디아야말로 특이한 존재다.
“에이디아, 넌 괜찮아? 저 문양을 보고 토할 것 같진 않아?”
“괜찮아.”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다거나?”
“말카브를 신처럼 숭배하는 건 백성들이지, 우리 일족은 아니야.”
“으응, 그런 게 아니고오…. 됐어. 들어가자.”
미로 양의 질문은 예전에 숭배했고 자시고를 떠나서 ‘지금’ 저 문양이 가하는 마력을 느끼지 못하느냐는 것.
에이디아는 아예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는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
확실히 에이디아는 특별한 존재다.
단순 설명 역의 엑스트라로 여기기엔 지나치게 뛰어나다.
초인 파라오의 후손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다?
아닐 것 같다.
분명, 그럴듯한 역할이 있는 모양인데….
“도착했어요!”
왕가의 무덤 내부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말카브의 문양을 보지 못했는지, 멀쩡한 상태였다.
“누, 누구냐! 이곳은 위대한 왕들의 전당이요 -”
“나야!”
“에이디아 님? 무슨 일입니까?”
“미안한데, 비켜줘. 내려가야 해.”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안 될 말입니다. 바깥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 – 크윽!”
시간 끌 생각이 없던 내가 즉시 기습해서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에이디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
“… 내려가요.”
송이가 에이디아에게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메네스의 위치는 알지? 이 거대한 장소 전체를 뒤지는 일은 피하고 싶은데.”
“알아요. 그분은 우리에겐 반은 선조고 반은 신 같은 분이라 -”
“다행이네. 설명은 됐어.”
이후 에이디아와 함께 거의 15분을 걸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사방이 어둡고 좁은 데다가 여기저기 화살 함정 따위가 설치되어 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왕가의 무덤이라는 장소 자체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이게…. 음, 말이 되나? 어떻게 고대에 건설된 건물이….”
송이 양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미로나 승엽 군도 신기하다는 듯 벽을 건드렸다.
“고대? 그게 무슨 말이야? 너희도 이렇게 어리숙하게 굴기도 하는구나? ‘왕가의 무덤’의 장엄함에 놀란 모양이지?”
“…”
“이해해. 이 장소에 처음 온 사람은 누구나 너희 같이 행동하니까. 더 신기한 것 보여줄까?”
— 탈칵!
에이디아가 벽에 설치된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왕가의 무덤 전체가 밝아졌다.
“짜잔~! 놀랐지? 살면서 한 번도 이런 것 본 적 없지?”
“…”
“빛을 내는 저 동그란 물체, 우리는 이걸 ‘차가운 불’이라고 불러. 아, 실제 만져보면 차갑진 않아. 다만, 진짜 불꽃보다 차가우니까 -”
“… 전구네. 필라멘트까지 있어.”
“뭐? 피라메드?”
“아니야.”
모두가 놀라긴 했으나 그 원인은 에이디아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전구’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신기해서 놀란 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 전구가 있어서 놀랐다.
“아니, 아니…. 전구가 문제가 아니네. 설마 여기, 전기가 흐르는 거야? 발전 시설도 있어? 이게 무슨 -”
놀라서 ‘시대를 벗어난 지식’을 마구잡이로 토해내는 송이 양의 팔뚝을 강하게 잡았다.
“진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음, 죄송합니다. 에이디아! 두리번거리지 말고 움직이자.”
“다들 이쪽으로 와!”
다행히 에이디아는 송이 양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알았다 해도, 겨우 이 정도 반응을 보고 우리가 사실 미래인임을 깨달을 수는 없겠지만.
*
마침내 왕가의 무덤 가장 깊숙한 장소, 메네스가 잠든 석실에 도착했다.
“여기야! 저기, 저분이 메네스 님이셔.”
“그러면 저 관이 ‘불멸의 석관’?”
“아마도. 그동안은 관 자체가 특별한 줄은 몰랐는데. 아버님은 알고 계셨을까….”
에이디아는 잠시 석관 근처를 살피며 함정 따위가 있는지 살핀 후, 석관을 열었다.
“…”
불을 비춰 불멸의 석관 내부를 살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흡사 석유 같은 질감의 걸쭉하고 탁한 액체와 그 속에 담긴 어슴푸레한 형체다.
분명 수백 년 이상 관에 갇혀있었을 텐데, 메네스는 미라나 해골이 아닌 인간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긴, 석관에 이 정도 힘은 있으니 불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었겠지.
“메네스 님! 저는 당신의 먼 후예, 에이디아라고 하며 -”
그때, 처음으로 대 – 파라오가 입을 열었다.
“머리가 아프니 조용히 하라.”
“… 네.”
석관에 누워있던 남자는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키더니, 두통이라도 느꼈는지 잠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키는 약 170cm 후반, 고대인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큰 키다.
오랫동안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몸은 말라 있었다.
연령대는 약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며 얼굴은 다소 강퍅한 인상.
길에서 만나면 신경질적인 노인이라 느낄 –
“고맙네. 참 객관적인 평가로고. 내가 좀 신경질적이긴 했지.”
“…”
다양한 초능력이 있다더니, 그 재주 중 독심술도 있는 건가?
“놀라지 않는군?”
“… 실례했습니다.”
그동안 호텔에서 겪은 고난이 헛되지 않았는지, 모두가 기민하게 대응했다.
축복 ‘불변’등이 없기에 독심술에 대응하기 어려운 미로나 승엽이는 즉시 뒤로 물러섰고, 송이 양이 팔찌를 빛내며 다가온다.
나는 세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마음 상태를 가다듬었다.
어제 점심은 맛없는 콩으로 만든 스튜였는데 진상 환자가 무릎이 아프니 한번 봐 달라며 부탁하던 중 하늘에서 비가 내리니 강아지들이 멍멍거리면서 똥을 싸지르다가 돼지고기 가격이 많이 올랐고 닭이 알을 품는 기간과 옆집 처녀는 또 남자를 바꾸는데 –
“그만, 그만. 적당히 하게. 자네들은 무슨 기적 대응법이라도 익혔는가? 내가 잠들어있던 사이 세상이 많이 바뀐 모양이야.”
“…”
“거기, 이름이 에이디아라 했느냐?”
“예? 메, 메네스 님!”
“가까이 오거라. 그리고 손님들, 내 힘이 불쾌하면 그냥 멀리 떨어지시오.”
메네스는 에이디아와 우릴 명확히 구분해서 ‘손님’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메네스 님, 바깥의 상황은 -”
“아이야. 세상에 말처럼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있을꼬?”
“…”
“그냥 떠올리거라. 날 깨운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메네스가 상황을 이해하던 중, 시야에 흐릿한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송이 양이 메네스의 귀를 피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왕가의 무덤은 아무리 봐도 고대 이집트에 맞는 건물이 아니에요.」
당연하다.
송이 양은 천장의 전구에 놀랐었지만, 전구 이전에 벽면의 재질부터가 이미 고대의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메네스가 초능력으로 건물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 이전의 SF 소설에서 ‘스마트폰’과 유사한 개념이 아예 등장하지 않았음을 아는가?
1800년대의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하며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비둘기가 편지를 나르는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다.
그만큼 미래 예측은 어렵고, 인간의 상상력은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메네스가 아무리 대단한 초능력이 있다고 해도 전구, 전기, 발전 등의 개념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메네스가 예지력이라도 있었을까요?」
“… 예지라.”
다른 초능력과 달리 ‘예지력’이라면 좀 다르다.
미래 기술을 상상해낸 게 아니라 실제로 봤다?
아니지, 봤다고 해도 무리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주 잘 아는 이야기다.
긴 세월 고난을 겪으며 문명을 일으켜보았으니까!
203호의 나야말로 미래 지식을 가지고 고대에 떨어진 현대인 그 자체였다.
내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낸 문명의 수준은 안타깝지만 잘 쳐줘야 고대 로마 수준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전구의 개념을 안다고 전구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평생 건축공학을 연구한 대학 교수라 해도 고대에 떨어지면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은커녕 통나무집 하나 짓기 힘들다.
공학이고 자시고, 콘크리트랑 철근부터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철근을 논하려면 이번엔 용광로와 석탄을 찾아야 한다.
A를 만들기 위해선 B와 C가 필요하고, B를 만들려면 D, E, F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나, 아니 호텔 파티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왕가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기술력으로 지어진 장소가 아니고 메네스는 고대인이 아니다.
그는 기적을 휘두르는 초능력자인 동시에 미래 지식을 보유한 존재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저 불가해한 존재가 왕가의 무덤이라는 미래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한 정체불명의 저력이 더 있다.
“그쪽, 손님들 이리 오시게.”
팔찌를 빛내며 송이가 다가갔다.
“듣자 하니 호루스를 모시는 사제들이라고?”
“예?”
“피차 바쁜 데 숨기지 마시게.”
“어…. 음. 그렇다고 하죠.”
호루스의 사제?
순간 무슨 말인가 했는데, 곧 이해했다.
유미가 에이디아를 처음 만났을 때 반쯤 장난을 섞어서 ‘호루스의 딸’이라고 했다는데, 에이디아나 메네스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메네스는 이미 말카브와 충돌한 경험이 있다.
호루스 또한 그 비슷한 ‘토착 신’의 일종이라 생각 중일지도 모른다.
“내게 원하는 것은 호루스 신전 건설인가?”
“어…. 어…. 어….”
“물고기도 아니고, 뻐끔거리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하게. 그 팔찌의 힘 때문인지 그대 생각을 읽을 수 없군.”
너무, 정말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 송이 양이 말문을 잃었다.
과거 말카브 교단과 비슷한 협상을 해보았을 메네스로선 충분히 할만한 생각이긴 하다.
당황한 송이 양을 제치고 내가 나섰다.
“협상은 나중에 합시다. 중요한 건 말카브의 처단입니다.”
“좋아. 자네 쪽이 시원시원하군. 그래, 말카브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약 10분 후, 메네스는 ‘이집트의 수호자’를 깨워서 왕가의 무덤을 나섰다.
“…”
이집트의 수호자.
그것은 명백히 SF적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로봇을 뜻했다.
슬슬 탱크나 헬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쯤 되자 악신 말카브조차 메네스를 상대하기 버거워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