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89)
EP.489 489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7)
489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7)
– 김상현
이집트 신화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위대한 투쟁.
한편에는 황금의 군세를 부리는 위대한 메네스, 다른 한 편에는 태고의 사신(邪神) 말카브.
처음에는 메네스가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둘 줄 알았다.
말카브가 부리는 대부분의 힘이 메네스의 로봇 군단 앞에선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태고의 사신쯤 되면 말 한마디로 하늘을 가르고 강을 말리는 일도 어렵지 않을 텐데도!
의자에 앉은 파라오 석상이 손을 뻗자 손가락이 미사일이 되어 날아간다.
대지를 달리는 표범은 난데없이 입을 벌리더니 암석조차 녹일 위력의 열선을 뿜었다.
하늘을 나는 검은 쏜살같이 날아들어 말카브의 거체를 이리저리 잡아찢었다.
물론 말카브는 파괴당한 자신의 뼈다귀 육체를 여러 차례 재생하고 또 재생했지만, 이 과정에서 모종의 힘을 소모하지 않았겠는가?
숫제 메네스가 혼자서 말카브를 제압할 기세였다.
바로 그 순간, 사신(邪神)이 저주받을 문장을 토해내며 진짜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결코 피할 수 없는 화살이 있으니, 이는 곧 죽음이라.
난데없이 하늘에 생겨난 타르처럼 검은 화살이 로봇 군단을 무시하고 메네스에게 날아들었다!
“헛! 흐어엇!”
“실례!”
신체적으로는 그냥 노인에 불과한 메네스는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내가 메네스를 밀쳐야 했다.
“고, 고맙 -”
“인사할 때가 아닙니다!”
SF적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음이 틀림없는 메네스의 황금 로봇 군단은 분명, 이 시대의 힘으론 상대할 방법이 없다.
태고의 악신조차 그 로봇을 파괴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로봇 대부분이 전방에서 말카브를 상대하는 지금, 후방의 메네스는 무적이 아니다!
무적의 존재였다면 왜 불멸의 석관에 드러누웠겠는가?
“이런!”
하나, 둘, 셋 – 대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화살이 죄다 메네스를 노리고 날아온다.
이 날벼락 같은 상황 속에서 –
메네스는 침착한 눈으로 우릴 보았다.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지만, 모두가 위대한 파라오의 의사를 이해했다.
‘너네끼리 저 해골 신을 상대하기 싫으면, 재주껏 날 살려라.’
— 철컥!
회중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며 흑발 적안의 절세가인(絶世佳人)이 나타났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
— 우르릉!
허공이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하늘을 뒤덮었던 죽음의 화살이 허공에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화살의 궤도를 틀어막은 것처럼!
“호오…! 이 아가씨도 대단한 신이신가? 아니면, 호루스의 딸이나 아내?”
딸 혹은 아내냐는 말에 아리와 미로가 동시에 움찔했다.
두 사람과 가인 군의 정서적 교류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 여유 있게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 쿵!
하늘에서 해골 병사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흐압! 탓!”
모든 이의 결사적인 항전이 시작됐다.
유미는 손끝으로 녹색 거품을 뿜어내며 해골 병사들을 녹였고, 송이 양은 팔찌를 빛내며 시체 병사 중 미약한 자아가 있어 보이는 자들을 무릎 꿇렸다.
쉼 없이 냉병기를 휘두르는 나는 물론이고 승엽 군이나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공주였던 에이디아까지 한 손 거드는 상황.
유일하게 격렬한 전투에서 한 발 떨어진 존재는 메네스다.
차라리 나 또는 송이 양이 쓰러지는 게 낫지, 메네스가 죽으면 말카브를 당해낼 도리가 없었으니까!
전장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아리였다.
“이얍!”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빛나는 불그스레한 부등변다면체의 위광(威光).
삽시간에 불투명한 벽이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주변의 시체 군단을 갈아버린다.
이 순간, 아리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정말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그 자체였다.
“… 흐읏!”
옆에서 관찰하다 보니 한계도 느껴졌다.
벽 여러 개를 만들어 복수의 ‘방’을 만든다거나, 만들어낸 벽을 장기간 유지하진 못하는 것 같다.
그게 가능했다면, 단순하게 격리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침입을 막아냈을 테니까.
그 대신, 소수의 벽을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거대한 칼처럼 사용하고 있다.
동료들에게 전해 들은 수석연구원의 유산 활용과 비교하면, ‘지구력’은 한참 못 미치지만 ‘순발력’은 다소 앞서는 느낌.
희대의 천재라고는 해도 본질적으로 책상물림이었던 수석연구원과 어릴 때부터 호텔 현장에서 구르며 영재교육을 받은 소녀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아리의 입에서 핏물이 튀었다.
“아앗! 아리야!”
부등변다면체의 활용이 한계에 도달했나?
쉴새 없이 시체 군단을 베며 모든 이를 보호하던 부등변다면체의 위광이 흐려진다.
유산에 대해 모르는 메네스조차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혈전의 승패는 메네스의 황금 군단이 말카브를 쓰러트리는 것과 말카브가 메네스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빠르냐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
기억하라.
모든 이의 끝은 죽음이니라.
말카브의 저주받은 힘이 아리의 공백을 뚫고 메네스를 직격했다.
“크아아악!”
노인의 입에서 벌레떼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귀에선 구더기가 기었다.
해골 병사를 막아내던 유미가 황급히 메네스에게 붙었다.
“치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몰라! 애초에 입에서 파리가 왜 나오는데!”
삽시간에 갈라지는 피부, 떨어지는 이빨, 녹아내리는 머리카락.
이래서야 살릴 수가 –
뭐지?
메네스의 몸은 대체…. 잘못 봤나?
“뭐야? ‘이런 기관’이 인간 몸에 왜 붙어있어?”
찰나, 나와 유미가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 같은 것을 보았음을 확인했다.
“의, 의사! 이건 아무리 봐도 -”
— 탁!
아리의 차가운 손이 유미의 입을 막았다.
“지금 따질 때가 아니야. 전장을 보라고!”
“으아앗!”
시키는 대로 전방을 본 유미가 어린아이처럼 비명 질렀다.
나도 옆에서 같이 비명 지르고 싶었다.
메네스가 혼절하자 로봇들 전부가 굳어가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씨발!”
“상현아, 욕할 때가 아니야. 이 인간 살릴 방법 없어?”
찰나, 복잡한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그냥 메네스를 죽게 내버려 두고 최후의 섬광으로 말카브를 저격해볼까?
양쪽 모두가 죽으면 일종의 어부지리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종류의 생각’은 귀신같이 읽는 아리가 다시 물었다.
“메네스가 죽은 후에 섬광 써보려고?”
“…”
섬광으로 말카브를 죽일 수 있는가의 문제다.
황금 로봇들이 쏘는 미사일이나 레이저가 통하는 것을 보면, 분명 육체의 파괴는 가능하다.
문제는 말카브가 파괴와 재생을 반복 중이라는 것.
최후의 섬광은 단 일격에 승부를 봐야 하는 유산인데, 쏘고 나서 말카브가 재생하면 우리의 패배다.
아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았다.
섬광의 사용은 주인인 나 알아서 하라는 뜻인지.
“후우….”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한 줄기 섬광이 지표를 갈랐다.
그 끝에는 산처럼 거대한 해골 신이 있었다.
*
불길한 예측대로 최후의 섬광은 말카브를 소멸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말카브의 육신 대부분이 소멸하자 메네스를 짓누르던 저주 또한 사그라들었다.
“그대, 실로 대단하시구려.”
“…”
“사과하지. 내가 그동안 그대를 가볍게 대했구려. 설마하니 호루스의 분노를 발현할 수 있을 줄이야!”
최후의 섬광은 ‘호루스의 분노’따위와는 무관한 힘이지만, 새삼스레 따질 일은 아니겠지.
“메네스, 그래서 말카브는 끝장난 겁니까?”
“아니오.”
“…”
“비록 난폭한 짐승 같은 존재이긴 하나, 말카브는 분명 불멸의 운명을 얻은 자…. 육신을 남김없이 불사른다 해도 죽지 않지.”
“그러면, 당신의 종복들은 지금 뭘 하는 겁니까? 무슨, 굴착 공사라도 하는 분위기인데.”
“사신을 심연 속에 가두고 있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봉인한다고 표현해도 되겠지.”
“…”
“그는 언젠가 깨어날걸세.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메네스를 ‘살린’ 내 판단은 옳았다.
만약 그가 죽은 후에 말카브에게 섬광을 쏘았다면, 사신은 결국 재생했겠지.
나와 내 동료들에겐 말카브를 심연 속에 봉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
사신이 쓰러진 땅, 황량했던 평야는 무슨 핵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변해 있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변 풍경을 살피던 메네스가 곧 담담히 말했다.
“궁으로 가세.”
“…”
“피차 할 말이 많을 터. 가면서 하지. 그리고….”
“그리고?”
“내 못난 후손이 아직도 궁에 살아있는 모양이군.”
“아.”
메네스의 못난 후손.
말카브에 굴복해 이집트를 멸망시킬 뻔한 존재.
오마르가 아직도 살아있는 모양이다.
*
궁으로 돌아가는 동안 끝없이 고민했다.
아까 전, 유미와 내가 찾아낸 메네스의 비밀.
“…”
그게 사실이라면 메네스의 모든 의문이 풀린다.
또한, 그와 우리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싸워야 한다면 때는 언제인가?
메네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지금?
지금 싸우면 이길 수는 있나?
그냥 메네스에게 머리 숙이며 최후의 섬광이 재충전되기까지 기다리는 게 어떨까?
고민, 고민,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이 이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복잡하군. 자네도 그렇지?”
“…”
메네스라 해서 마음이 편할까?
공간을 주무르는 아리의 힘, 손짓 한 번에 말카브를 쓰러트리는 나를 보았으면서도?
“호루스, 호루스라…. 참 대단한 분이시오.”
이 말 덕분에 메네스의 생각을 더 정확히 읽을 수 있었다.
위대한 파라오는 우리보다도 우리를 종복으로 부리는, 물론 메네스의 착각이지만, 호루스를 염려하고 있다.
그 걱정을 조금 보태주기로 했다.
“호루스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필멸자 주제에 기어오르지 말고?”
“…”
“일개 사막 왕 따위가 장난감 믿고 건방지게 굴면 호루스께서 날 죽이신다고 하셨는가?”
가인 군에 대한 상당한 적대감이 느껴진다.
메네스는 필멸자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강한 자.
그랬기에 자신을 잠깐이나마 무릎 꿇린 신을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조금 달래야 할 것 같았다.
최후의 섬광을 충전할 시간은 벌어야 할 것 아닌가!
섬광만 충전하면 파라오고 지랄이고 한방이다.
“진정하시지요. 호루스께서는 이집트에 군림하실 생각이 없습니다. 의심스러우면, 제 진심을 읽어보시길.”
이건 진짜다.
가인 군이 고대 이집트 따위를 지배하고 싶어 할 리는 없으니까.
“… 어렵구려.”
극도의 긴장감.
언제든지 칼을 빼어들 듯하면서도 자세를 낮추는 두 집단.
불편한 동거가 궁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
마침내 재앙이 시작한 장소 – 고대 이집트의 황도, 멤피스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라기보다 살아있는 고깃덩어리와 같은 존재, 영생을 탐한 파라오의 끔찍한 말로가 우릴 맞이했다.
“그르르륵!”
“허어…. 오마르! 어찌 이리 비참한 꼴이 -”
그다음 일은 이 자리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메네스, 네 승리를 축하한다.
“음? 이 목소리는 -”
그리고 호루스의 종복을 자처하는 머저리들아.
너희가 누구에게 승리를 바쳤는지, 비루한 눈으로 똑똑히 보라!
사신의 마지막 발악이 멤피스 전체에 울려 퍼지는 그 순간.
— 쩌어억!
두 사람 – 아니지, 두 ‘괴물’의 피부가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