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0)
EP.490 490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8)
490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8)
– 유송이
혼란스러워.
첫 번째 시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내가, 우리가 본 괴물들은 대체 무엇일까.
말카브의 포효가 멤피스 전체에 울려 퍼진 그 순간, 상상도 못한 진실이 밝혀졌다.
…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렙틸리언(Reptilian). 이게 아마 파라오 일족의 정체일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입을 다물었다.
그야, 렙틸리언이라는 건 애초에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고대 이집트의 역사 같은 건 도서관에서 공부할만한 신빙성 있는 자료가 많지만, 렙틸리언은 아니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선생님도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라면 있어.
외견은 이족 보행 파충류다.
강력한 변신 능력이 있어서 인간을 흉내 낼 수 있고, 그 힘으로 사회 고위층에 잠입했다고 한다.
이게 전부네.
“…”
첫 번째 시련에서 경험한 일들을 반추하니 몇 가지 더 떠올랐다.
정체가 드러난 후, 에이디아는 큰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었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파라오 일족이 렙틸리언임을 몰랐던 것 같아.
메네스가 후손들에게 진실을 숨긴 걸까?
어쩌면, 그가 불멸의 석관에 들어간 일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메네스와 관련한 가장 큰 의문은 저절로 해결됐어.
설령 시간여행을 통해 미래인이 고대에 떨어졌다 치자.
그 미래인이 수석연구원급 세기의 천재라 해도 혼자서 이런 로봇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다들 혼란스러워했는데, 답은 간단했다.
메네스는 미래에서 온 인간이 아니라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다.
당연히 우주선도 있을 테고, 로봇은 우주선 내부 설비를 써서 만들든지 했겠지.
아니면, 우주선 자체가 ‘식민지’에 도착하면 로봇으로 변신하는 구조일지도 몰라.
203호의 미래 인류가 만든 성간 항해 우주선도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
렙틸리언의 실체가 드러난 후, 우리는 황급히 멤피스를 벗어났다.
구성원 특성상 도주 속도는 느려터졌는데도 메네스는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다.
“인간 병사라도 몇 명 보내는 시늉은 할 줄 알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군요.”
“그러게요.”
메네스가 생각하기에 우린 정체불명의 신, 호루스의 사제다.
우릴 죽였다가 호루스가 복수할까 봐 염려한 게 아닐까?
가인 오빠는 첫 번째 시련의 공략 멤버가 아닌데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앞으로도 보내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지금은 태고의 시대입니다. 지구 대부분은 제대로 된 문명이 없지요. 즉, 비어있다는 소리입니다.”
“…”
“추격대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그냥 다른 데 가서 호루스를 섬기는 너희만의 문명을 세워라. 사람 살만한 곳은 더 있을 것 아니냐?”
이해했다.
내가 메네스라 해도 굳이 우리와 싸우기보다는 그냥 갈 길 가자고 하고 싶겠지.
피차 부담스러운데 지구 전체에 비하면 한없이 조그마한 이집트에서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있을까.
물론, 이것은 메네스의 생각일 뿐이다.
“…”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호텔은 언뜻 보면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곳에 힌트를 두곤 하지.
뜬금없이 열차에서 시작한 것이 좋은 예시다.
각 시련에 누가 가야 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련에 우릴 던져버리면 그만인데 왜 굳이 열차에서 시작했을까?
“…”
열차는 첫 번째 역에서 두 번째 역, 두 번째 역에서 세 번째 역으로 차근차근 나아간다.
순서가 있으며, 모든 역은 단 하나의 경로에 놓인 중간 거점에 불과하다.
네 개의 시련 모두가 단 하나의 세계다.
우리가 가장 오래전 시점이고, 이후 동료들은 중세와 근대, 현대로 이어진다.
지금은 아마도 기원전 3000년대.
바로 다음 시점인 중세와 비교해도 약 3500년에서 40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시련의 시간적 틈새가 가장 넓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정황상, 현시점 렙틸리언은 메네스와 에이디아를 비롯한 파라오 일족 극소수뿐이야.
우리가 이들을 처치하지 못하고 4000년이 흐르면 무슨 일이 생길까?
“돌아가야 해요.”
“…”
“돌아가서 메네스, 아니지, 파라오 일족 전부를 죽여야 해요!”
“…”
“렙틸리언을 우리가 전부 죽이지 못하면, 그 상태로 3000년, 4000년이 흐르면…!”
“인류 지배층 전부가 렙틸리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혹은, 인간 자체가 목장에서 길러지는 가축이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
“지금이군.”
“예?”
“두 번째 종이를 확인할 타이밍 말이지.”
그 말과 함께 선생님이 품속에서 ‘2’라고 적힌 종이를 꺼냈다.
「2. 가능하면, 미로를 이후까지 남겨주세요.」
“음?”
“미로를 남겨달라고요?”
“어? 어? 내 이야기야? 가인이가 내 이야기 적었엉?”
“어떻게 – 아니, 설마 불멸의 석관?”
순간 숨이 탁 막혔다.
가인 오빠가 이 편지를 적은 시점은 207호에 들어오기도 전인데!
시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불멸의 석관이 존재함을 예지했다고?
이게 인간의 능력 맞아?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고서야!
“아닐 겁니다. 통찰은 조그마한 근거에서 구체적인 가능성을 읽는 힘. 석관의 존재를 예측할만한 근거는 들어오기 전엔 아예 없었습니다.”
“그, 그러면?”
“애초에 이 문장에도 ‘석관’같은 단어는 없지 않습니까. 석관의 존재를 예측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한 거죠.”
“무언가?”
“동료 중 누군가를 뒤쪽에 합류시킬 수단 말입니다.”
“…”
“무엇이 근거였을까요? 여기까진 모르겠는데.”
기묘하다.
지금의 선생님은 왠지 모르게 평소와 달랐다.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늘어놓는 신의 뜻을 해석하는 고대의 제사장 같아.
“아하, 자정의 미로인가?”
자정의 미로.
“그녀는, 본인 주장이긴 합니다만, 207호에서 활약하리라 예견된 존재. 호텔은 미로 양을 첫 번째 시련에 배치했습니다만…. 가인 군이 생각하기엔 이 시점이 아닌 겁니다.”
가인 오빠가 보기에 자정의 미로가 활약할 타이밍은 지금이 아니라 수천 년 후의 미래다.
“이 편지가 없었다면, 메네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정의 미로가 소모되었겠군요.”
정해진 운명, 자정의 미로가 첫 번째 시련에서 소모되는 것.
“미로 양, 이해하셨지요?”
“…”
“당신은 이제 죽으면 안 됩니다. 자정의 미로를 쓰셔도 안 됩니다. 우리가 전멸하는 한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버틴 후, 석관에 들어가서 잠드셔야 합니다.”
“… 알았어.”
통찰이 그 운명을 바꿨다.
자정의 미로는 첫 번째 시련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3일 후, 최후의 섬광이 재충전 됩니다.”
“…”
“그때 멤피스를 공략합시다.”
*
– 에이디아
인간이다.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다.
인간이 아니다.
나는….
괴물이다.
창백한 피가 흐르는 도마뱀이다.
부드러운 피부 아래 비늘을 숨긴 파충류다.
숨이 막혔다.
고통스러워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서….
정말이지 살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위대한 선조, 혹은 가장 끔찍한 괴물이 내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카브의 수작이었겠지만, 과거의 난 정체불명의 괴질에 걸렸다. 살기 위해 황급히 석관에 들어가야 했지. 그래서 이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을 줄은 몰랐구나.”
파라오의 혈족,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의태 한 괴물에 불과했다.
…
너무나 완벽한 의태다.
여성으로 변신하면 출산하는 아이까지도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날 정도니까!
터무니없을 정도의 변신 능력 덕에 우리 자신조차 인간이 아니었음을 잊고 말았다.
“분명 내 자식들에겐 일러두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너희가 ‘우리’의 문화를 잃었는지 모르겠구나. 말카브가 개입했나?”
“아…. 아….”
“내가 깨어났으니 문제없다. 이제부터라도 네 운명을 받아들이거라. 이 별에 가득한 원시적인 포유류들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태어났느니라.”
넋이 나간 채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명하는 위대한 선조를 바라본다.
인간을 그저 ‘우리를 섬기기 위해 태어난 원시적인 포유류’라 칭하는 존재.
날 때부터 인간이 아니었던 자, 차가운 피가 흐르는 도마뱀의 왕.
그렇기에 나와 전혀 다른 이.
…
거처에 돌아와 죽은 듯이 지냈다.
나는 생의 의지를 잃은 사람, 아니 도마뱀이니까.
뜨겁기 그지없는 이집트의 공기조차 매 순간 얼어붙는 내 마음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천천히 썩어갔다.
사람이 아니라 – 애초부터 아니긴 했지만 – 식물이 된 것처럼 굳어간다.
이대로 모든 게 멈추길 바랐다.
지금 내가 악몽을 꾸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깨고 싶었다.
— 덜컥!
“에이디아 님!”
“…”
“에이디아 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타이오, 내 오랜 충복이자 친구.
날 위해 이집트의 아이들을 데려오는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
그는 알고 있을까?
내가, 인간이 아닌 괴물에 불과하다는 –
“에이디아 님! 제발 좀 정신 차리십시오! 바깥을 보시란 말입니다!”
타이오의 간절한 호소를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불타오르는 멤피스, 사방에 꽂힌 장대.
그 위에는 너무나 익숙한 내 형제들과 친척들이 매달려있었다!
위대한 파라오의 혈통이 몰살당하고 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자 우울함으로 가득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수백 수천 명의 군중이 오마르의 혈통을 마구 죽이고 있습니다.”
반란이 일어났다고? 갑자기?
“그, 그게!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누군가 수천 명의 군중을 조종하기라도 한 것처럼 -”
수천 명의 인간을 카리스마로 지배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보다 신을 닮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다들 미쳤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
타이오가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곧 내 귀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도마뱀들을 모조리 죽여라!”
“타락한 파라오 혈통을 전부 죽여라!”
다시금 숨이 멎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 고개를 들었을 때 –
세상을 쪼갤듯한 한 줄기 섬광을 보았다.
— 쿠르릉!
*
– 차진철
“저게 그 로봇들입니까? 방금 섬광 한방에 80%는 날아간 것 같은데! 하하!”
죄다 쇳덩이 잔해로 변하긴 했는데, 상현 형님 말에 따르면 생각보다 대단한 로봇들이었다고 한다.
말카브인지 뭔지 하는 해골 뼈다귀는 손도 쓰지 못했다지 않은가!
물론, 최후의 섬광 앞에서 그런 건 없었다.
애초에 그 해골 뼈다귀도 섬광을 버티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행운이 따르는군. 예전처럼 로봇들이 이집트 전역에 흩어져있었다면, 하나하나 처치할 길이 없었을 텐데.”
송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마 민심 수습용으로 로봇을 황궁 근처에 뒀나 보네요. 이젠 무리겠지만.”
승엽이가 희망찬 목소리를 냈다.
“혹시, 방금 일격으로 메네스도 죽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니었다.
“인마, 넌 어떻게 여기 계속 있었다면서 아직도 그런 소릴 하냐? 파라오 놈이 뒤지면 로봇들이 멈춘다면서? 저길 봐라.”
최후의 섬광 범위 외곽에 있어 직격을 피했는지, 파라오 석상이 꿈틀거리며 괴이한 소리를 냈다.
마지막 일격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할 모양이다.
“메네스가 살아있긴 한 모양인데.”
불타오르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 멤피스.
최후의 섬광이 황궁 인근의 로봇들을 박살을 내는 광경은 흡사 분노한 신이 외계인의 종복을 으깨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더욱더 광기 어린 외침이 멤피스 전체를 가득 채웠다.
“도마뱀 파라오를 전부 태워죽여라!”
분노한 인간 무리 따위가 초인 아니, 초 – 도마뱀 메네스를 위협할 수는 없다.
자신이 인간인 줄 착각하고 살아왔던 어리석은 렙틸리언 후예들이라면 몰라도!
“들어갑시다. 메네스 그 도마뱀 대가리를 따야 끝날 모양이니!”
“… 진철 군, 조심하십시오.”
상현 형님은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축복을 잃으면 유산도 정상적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겠지.
재생력 없이 이계의 별 조각을 소환하면,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비틀린다.
그래서 미로가 나보단 가인이나 아리를 소환했던 모양인데….
그 둘의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기에 별수 없이 날 소환했다고 한다.
“형님, 우리가 언제는 뭐, 여유로운 상황에서 싸웠습니까?”
“허, 진철 군이 나보다 낫군요. 맞는 말입니다. 도마뱀 왕을 죽이러 갑시다.”
이제 첫 번째 시련을 끝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