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1)
EP.491 491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9)
491화 – 207호, 관문의 방 – 첫 번째 시련 ‘영생과 부활’ (9)
– 차진철
몸이 무겁다.
팔다리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 이것 참, 누가 내 속마음을 들으면 무지하게 다치기라도 한 줄 알겠네!
다른 동료들이 그러하듯, 축복을 잃었을 뿐이지.
그냥 그것뿐인데….
이상하게도 몸이 무거웠다.
*
“궁궐로! 메네스가 도망가면 일이 복잡해진다!”
상현 형님의 말끝에 버릇처럼 붙어있던 존댓말이 사라졌다.
그만큼 마음이 급해졌다는 의미겠지.
그럴만했다.
도마뱀 파라오 놈이 사막으로 도망가기라도 하면, 쫓을 방법이 있긴 한가?
워낙 오래전이라 이집트 인근이 사막보단 정글 혹은 초원에 가깝다는데, 이게 우리에게 유리한지 아닌지 모르겠다!
메네스가 거하는 멤피스의 궁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파라오를 위하여!”
“위대한 메네스에게 영광이 있으라!”
단단한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파라오의 친위대.
기세가 자못 삼엄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그냥 인간이다.
지금 우리에겐 새삼 싸울 가치도 없는 적이다.
“미로! 잠시 가인 군을 소환하십시오!”
잠깐 날 돌려보내고 가인을 소환하라는 형님의 의견.
시간대여기에 남은 가인의 잔여 시간이 불과 3분 내외라 하니 빡빡하긴 하다.
하지만, 이런 인간 군대 정도야 신성한 태양을 소환하기만 해도 자지러지니 5초면 제압할 수 있지!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알았 – 꺄아악!”
“으악, 이 미친 새끼들!”
미로가 경악하고 형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우리와 싸울 것 같던 파라오의 친위대가 갑자기 자살하기 시작했으니까!
“위대한 메네스에게 영광이 있으라!”
“영원불멸한 메네스여….”
“내 영육의 전부를 바치나이다.”
워낙 갑작스럽기도 했고, 상상도 못 한 일이라 제지하지 못했다.
그냥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신 차려보니 300명이 넘는 친위대가 죄 시체로 변하고, 핏물이 강처럼 흐르며 궁궐 내부로 –
내부로?
“이런 fuck! 도마뱀 이 새끼들! 돌격합시다!”
정신없이 달리며 물었다.
“형님, 이게 뭡니까?”
“렙틸리언의 공주에겐 인간 아이 여럿을 죽이고 그 대가로 운명을 보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을 메네스에게 받았다고 했었는데!”
바로 이해했다.
렙틸리언의 공주에겐 인간의 생명력으로 운명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하니, 메네스에게도 유사하거나 더 강력한 힘이 있을 터!
지금, 메네스는 친위대의 목숨을 사용해 ‘무언가’를 했다.
“흐…. 우리에겐 인간 친위대가 통하지 않는다 생각했군요.”
“호루스의 힘으로 군중을 조종할 수 있음을 알았을 테니!”
“호루스? 그게 뭡니까?”
“… 들어가자!”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할수록 저절로 이빨이 갈렸다.
왕의 친위대쯤 되면 당연히 충성심이 대단하긴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파라오가 자살하라고 하니까 수백 명의 친위대가 바로 자살한다고?
이 빌어먹을 도마뱀들이 인간을 얼마나 열심히, 오랫동안 세뇌했단 소리인가!
게다가 이 지랄을 할 거면 우리가 오기 전에 황궁 내에서 자살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우리 눈앞에서 자살시켰다.
도마뱀 왕의 사특함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비루한 눈으로 보았는가?
이게 너희 원시적인 털 없는 포유류의 운명이니라.
너희는 내 가축이요, 마력 배터리에 불과하다.
— 쾅!
“나와라! 메네스 이 개새끼, 아니 도마뱀 새끼야!”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파라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노라.”
*
어둡고 탁한 파라오의 궁전.
“꽁지 빠지게 도망갈까 봐 걱정했는데,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까?”
“나는 나일강의 주인이요, 가장 위대한 문명의 창조자다. 주인이 자기 땅에서 도망가겠느냐?”
청산유수로 나오는 말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상현 형님이 다소 분노한 목소리를 내었다.
“메네스, 당신에게 이리 잔혹한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
“… 잔혹하다라.”
“말카브와 싸울 때는 이 힘을 일부러 숨겼나? 우리가 분노할까 봐?”
“호루스의 사제, 네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지는군. 무엇이 널 그리 화나게 했나?”
이 새끼 지금 누구 놀리냐?
“이 도마뱀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
“그대, 덩치 큰 남자. 처음 보는 자로다. 뒤쪽의 눈송이 같은 아가씨에게 천사를 소환하는 힘이라도 있는가?”
천사를 소환하는 힘.
시간대여기를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까부터 생각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그대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싸울 필요가 없다.
메네스는 그리 여겼다고 한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인가? 그게 그리 큰 문제라면, 너희는 왜 호루스를 섬기는가. 인간이 아니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렙틸리언이 인간이 아니라 문제라면, 호루스도 인간이 아니지 않느냐는 메네스의 지적.
… 호루스가 대체 누구길래 아까부터 다들 난리여?
“아니면 조금 전에 친위대를 희생했기 때문인가? 그게 그리 분노할 일이라면,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 물경 2,000명이 넘는 군중이 폭도가 되어 수도를 불태우고 있구나. 설마 이 과정에서 희생이 없으리라 생각 중인 건 아니겠지?”
목적을 위해 일반인을 죽이는 짓은 너희도 하고 있다는 메네스의 지적.
오~!
어두운 궁궐에 틀어박혀서 열심히 논리를 만들었나?
뭔가 그럴듯한데?
“무슨 궤변을 -”
“궤변이라 여긴다면, 한번 반박해보라.”
당황하는 형님과 차갑게 외치는 파라오.
…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저 형님은 빈틈없는 것 같다가도 희한한 데서 허술한 모습을 보이네.
주둥이로 승부가 갈리는 게 아닌데 말싸움을 왜 한단 말인가!
주저없이 허리춤의 창 한 자루를 목소리가 들려오는 장소로 던졌다.
— 슈우웅! 팅!
벼락같이 날아간 투창이 파라오의 갑옷을 긁는 순간, 명백히 분노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지혜로운 호루스의 천사를 자처하는 자가 어찌 이렇게 -”
— 쾅!
“야! 난 호루스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화르르!
사방에서 빛이 들어오며 어둠이 사그라들었다.
마침내 메네스가 옥좌에서 일어선 것이다.
*
— 파즈즈즈!
삽시간에 달아오른 대기,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채찍!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분명 도마뱀 이 새끼, 순수 신체 능력은 나약한 노인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친위대의 생명력을 집어삼킨 메네스는 수백 년 전 나일강 유역을 통일했던 반신 그 자체로 돌아왔다.
초인적인 괴력 및 초가속능력.
반사신경과 동체시력 강화.
여기에 약간의 염력과 발화 능력까지!
두 눈으로 확인한 초능력만 이 정도인데, 분명 이게 다가 아니다.
— 퉁!
“흐으…! 사제, 싸움박질도 제법 하는구나?”
203호의 원시시대에서 긴 세월 구른 상현 형님의 창술 실력은 분명 대단했다.
음속을 돌파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메네스의 채찍질을 연거푸 막아낼 정도니까!
“그래봐야 인간이니라. 지금이라도 네 신을 부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
“크헉!”
그러나, 창을 휘감은 채찍 끄트머리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살점을 탐욕스럽게 뜯어내자 상현 형님도 비명을 참지 못했다.
하나, 둘, 셋.
연이어 이어지는 공방, 매번 벌어지는 같은 현상.
메네스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고, 우리의 피는 궁궐을 적셨다.
“기세는 좋더니, 결국 인간이로고.”
인간의 한계를 비웃는 메네스의 조롱을 들으며 상황을 살핀다.
얼굴이 해쓱해질 정도로 피 흘린 데다가 왼쪽 발목이 뒤로 꺾인 전직 의사 겸 특수부대.
메네스의 공격을 딱 한 번 맞았는데도 팔이 반쯤 떨어져 나간 채 기절하기 직전인 여고생.
그리고, 등짝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나.
여러모로 한계에 가깝다.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건, 우습게도 메네스가 힘을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호루스를 부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이제는 알았다.
아까부터 저놈이 말하는 ‘호루스’란 가인이를 말하는 것.
그 녀석의 잔여 시간이 거의 없어서 소환하지 않는 것이지만, 메네스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면, 이젠 부를 수 없나? 하하! 그렇다면 너무 쉬운데?”
왜 이렇게까지 싸움이 어려울까?
우리도 생각 없이 궁내에 들어온 건 아니다.
로봇은 최후의 섬광으로 거의 부쉈고, 유미의 마법과 송이의 팔찌가 있으니까.
이 정도면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쉬잉! 투쾅!
“크으읏!”
또 한 번의 공방, 이번에도 우리가 손해.
다른 능력보다도 ‘속도’가 문제다.
메네스가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까 송이의 팔찌와 유미의 마법을 맞추는 게 너무 어렵다.
어쩌다 스치듯 맞춰도, 지금의 메네스는 기이한 힘으로 버텨낸다.
…
뒤쪽을 살피자 어찌할 바 모르는 두 아이와 그들을 지키느라 바쁜 마녀가 보였다.
덜덜 떨며 시계를 붙잡는 소녀, 미로.
날 돌려보내고 얼마 남지 않은 아리 혹은 가인의 시간을 쓸 셈인가?
유미가 침착하게 미로의 손을 잡는다.
마치, 여긴 네 전장이 아니니 나서지 말라는 것처럼.
애초에 그 둘을 불러낸다 해도 뭐가 다를까 싶다.
아리라 해서 저 빠른 메네스에게 공격을 맞출 수 있을까?
신성한 태양이 텅 비어있는 가인이도 마찬가지.
속도가 필요하다.
메네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어야 이길 수 있다.
그때, 유미의 시선이 내 쪽을 보았다.
찰나, 우리는 서로 ‘같은 힘’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았다.
“유미!”
사실은 나도 미로랑 비슷하지.
호텔이 날 위해 준비한 전장은 여기가 아니라 두 번째 시련이었으니까.
이제는 모르겠다.
“흐읏!”
순식간에 다가온 소녀의 날카로운 손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척추를 움켜쥐는 순간, 산채로 전신을 불태우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1초가 한 달 같고, 10초가 1년 같다.
그 잠깐 사이에 내 몸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해간다.
유미가 내 머릿속에 숨어있던 시절, 한 차례 사용해서 천둥을 부르는 늑대를 쓰러트렸던 힘!
좋게 말하면 인간 육신의 가능성을 남김없이 끌어내는 것.
나쁘게 말하면….
“하…! 이런 괴물 새끼들이 우리보고 괴물이 어쩌고저쩌고했단 말이냐!”
황당해하는 메네스의 말이 우습다.
또한, 변신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그마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빨리 끝내.”
야수 변신.
유미가 신체 데이터를 속속들이 파악한 사람에게만 쓸 수 있고, 반동이 엄청나기에 오래 버틸 수도 없다.
대가가 크면 보상도 큰 것이 호텔의 이치.
다시금 투사의 힘이 내게 깃든다.
이 순간만큼은 용기의 축복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으랴아앗!”
폭풍처럼 뻗은 창이 메네스의 채찍과 충돌하는 순간, 채찍과 얽힌 창을 메네스 쪽으로 던져버렸다.
경악한 메네스의 표정이 보인다.
창을 피하느라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 파라오가 보인다.
황급히 내 쪽을 보는 도마뱀 왕이 보인다!
마침내 놈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간격이 좁아졌다 싶으니, 채찍을 던지고 맨주먹을 들어 올리는 메네스가 명확히 보였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새끼야, 이쪽 승부는 나한테 너무 유리하지 않겠냐?”
이 병신이 알고 있긴 할까?
내가 씨발, 잘나가는 격투기 선수였다고!
101호에서 부산 한번 들었다 놨다 했어.
정신 나간 부산 시장 총에 맞아 죽긴 했지만.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파라오의 펀치, 가볍게 팔목을 쳐서 밀쳐내고 복부에 한방.
즉시 파라오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다음으로 레프트 훅, 이번엔 파라오의 우스운 가면이 터지며 이빨이 여럿 떨어졌다.
“크으읏!”
뭐야, 이번엔 무릎 차기냐?
이렇게 무너진 자세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가 –
— 쿵!
“씨발!”
나오네!
초가속 능력 및 괴력이 있으면 자세가 개판이어도 콘크리트를 부술 위력의 발차기가 가능하다, 잊지 말자.
튕겨 나간 몸을 바로잡는 순간, 약간의 여유를 얻은 메네스가 외쳤다.
“무식하고 천박한 원숭이 같은 놈!”
“이 씨부럴 놈아, 나 4년제 대학 나왔다!”
“뭐라는 거냐, 이 진흙탕의 돼지 같은 놈!”
“야, 파라오쯤 되면 씨발, 교양있게 좀 말해라!”
“호루스의 신관은 너 같이 막살아도 되고?”
“뭘 막살았다는 거야? 존나 열심히 살았는데!”
그때, 메네스가 양손으로 눈을 가리며 허우적거렸다!
“으아악!”
다양한 관점이다!
아까부터 메네스를 조준하지 못해 고생했던 송이가, 내게 얻어맞고 둔해진 메네스를 조준하는 데 성공했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
“으랴아앗!”
비겁은 지랄!
벽력같이 뻗은 야수의 주먹이 대 – 파라오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
최후의 순간, 메네스는 더없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세상의 이치란 참 알 수 없는 법이로고.”
“이제 와서 폼 잡지 마라!”
“그 누구도 살아가지 못 하리라….”
?
호텔에서 길러진 강렬한 직감이 뇌리를 스친다.
이건 최후의 한 수, 동귀어진의 수가 있는 분위기인데!
— 우르릉!
기다렸다는 듯, 바깥에서 격렬한 진동과 소음, 그리고 강렬한 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당황하는 동료들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내가 이 방에 들어왔음을.
나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
– 에이디아
빛을 보았다.
단숨에 멤피스를 날려버릴 기세였던 맹렬한 빛을 보았다.
예전이라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을 텐데.
…
이상하게도 알 것 같았다.
조금 전, 황궁 근처에 있던 반쯤 부서진 메네스의 황금 군단, 아니지.
‘M-1842 자율형 개척 유닛 13호’가 자폭해서 멤피스 대부분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뒤트는 괴이한 힘이 그 자폭을 막았다.
“…”
이 지식은 대체 뭘까?
나는 정말 밤하늘 너머에서 온 괴물인 걸까?
“…”
개척 유닛 통제 권한은 메네스에게 있다.
이젠 더 이상 만들 수도 없는 귀중한 개척 유닛을 자폭시켰다는 것.
메네스가 패배했음을 뜻한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냥, 이대로 광포한 군중들에게 내 운명을 맡기고 싶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눈송이를 닮은 성녀와 함께 – ‘그’가 나타났다.
“도마뱀의 공주님, 지금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울증의 가장 좋은 치료제는 복수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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