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3)
EP.493 493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1)
493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1)
– 엘레나
에른하임은 카스티야 연합 왕국 남부의 교역 도시다.
쉽게 말해 미래에 스페인이라 불리는 지역 남부의 항구도시이자 두 번째 시련의 배경이다.
시대적 배경은 1382년, 스페인에서 레콘키스타가 한창인 시대.
나는 엘레나 그레이.
에른하임 내에선 사실상 왕처럼 군림하는 그레이 가문의 금지옥엽이다.
일단 여기서부터 당황했어.
스페인에 ‘에른하임’이라는 도시가 있었나?
‘그레이 가문’은 또 뭐야?
하긴, 도시나 가문 이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긴 해.
왜냐하면, 나는 교회가 공인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자 은총 받은 딸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교회에서 인정한 성녀 비슷한 존재라는 것.
이곳은 기적을 부리는 성자와 성녀가 실존하는 중세 스페인이다.
*
시련의 설정상 내가 받은 은총은 ‘심판’이라고 한다.
죄악의 진상을 밝혀 죄인을 찾아내고, 심판하는 힘이다.
정의의 축복이 ‘하나님의 은총’이라 불리고 있는 셈이다.
불길한 상상에 대해선 별도 설정이 없었는데, 시련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 봉인’ 알림이 떴기 때문인 것 같아.
“유산은 봉인하고 축복만 쓸 수 있다….”
내심 짐작했어.
207호에 들어오기 바로 전에 축복 강화를 얻었는데, 다음 시련에서 축복을 봉인 당하면 뭔가 좀 그렇잖아.
하지만, 은솔 언니가 걱정이야.
부귀는 특성상 시련 내부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언니는 사실상 무능력자가 된 상황 아니야?
“예? 축복이요?”
“발렌티나,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내 상황에 집중하자.
‘엘레나 그레이’는 도시 내에선 대단히 강력한 권위를 보유한 성녀 혹은 판사 비슷한 위치다.
소소한 일까지 나서진 않지만, 도시를 위협하는 큰 범죄가 생기면 직접 나서서 죄인을 찾고 응징해야 하는 위치.
호텔이 내게 이런 위치를 부여한 이유가 있겠지.
분명 도시를 위협할만한 일이 발생할 것이며, 그 배후에 ‘보스’가 있으리라.
*
전근대 중세 유럽의 사회상 하면 어떤 느낌일까?
보통은 굉장히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떠올릴 것 같아.
나처럼 20대 초반의 여성이 아버지, 즉 그레이 공작의 뜻을 거스른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때 되면 아버지가 정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대부분 귀족 아가씨들의 삶 아닐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런 시대에도 잔 다르크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음을 잊지 말자.
아버지인 그레이 공작은 물론, 왕국의 지배자인 후안 1세의 권위조차 능가하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인 시대다.
그리고 나는 교회가 인정한 은총 받은 딸이다.
“엘레나, 어제 으음, 불안한 편지를 받았단다.”
“불안한 편지요?”
언제나 당당한 태도로 에른하임 위에 군림해온 그레이 공작은 지금, 흡사 10대 소년처럼 겁에 질려있었다.
“토마스 데 토르퀘마다(Tomás de Torquemada), 들어보았느냐?”
당연히 처음 듣지.
그렇지만, 이 상황은 놀란 체하는 게 맞아 보여.
“앗! 그, 그 남자는!”
“후우…. 네 귀에도 그자의 악명이 들려온 모양이구나.”
“그럼요!”
그래서 누군데?
“이단심문관 토마스. 가장 순수한 자, 교황청의 신실한 검, 흔들림 없는 의지 -”
토마스 데 토르퀘마다(Tomás de Torquemada).
‘이단심문관’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벌써 불안해졌어.
“-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도 부르지.”
“…”
“화형대의 주인. 마녀의 적.”
“어머나.”
이쯤 듣자 이단심문관 토마스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벌써 느낌이 왔다.
“그가, 널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구나.”
“…”
“… 조심하려무나.”
*
다음 날.
아침부터 쏟아진 맹렬한 장대비를 뚫고 그 남자가 나타났다.
토마스 데 토르퀘마다는 하늘을 가린 먹구름만큼이나 음울하고 불길한 사람이었다.
“토마스 경, 그레이 가문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하오.”
“감사합니다만, 그리 좋은 소식을 드리진 못할 것 같군요.”
“…”
토마스는 첫 문장부터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공작, 이미 편지를 받아보셨을 테니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 드, 듣겠소.”
“에른하임에서 마녀가 존재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
“에른하임 전역에 대한 완전한 수사권 및 형벌권을 양도해주시길.”
완전한 수사권 및 형벌권을 양도해달라는 소리는 사실상 사법권 자체를 넘겨달란 이야기다.
아무리 교황청에서 보낸 이단 심문관이라 해도 그렇지, 이 상황에서 바로 ‘네’ 하기가 더 어렵지 않겠어?
“토, 토마스 재판관. 진정하고 조금 더 이야기해봅시다. 갑자기 마녀라니? 내가 다스린 이래 지난 24년간 에른하임에선 그 어떤 혼란도 없었소이다.”
“24년간 공작께서 눈을 감으신 탓이겠지요.”
“…!”
순간, 그레이 공작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당연히 주변 가신들도 놀랐다.
“재판관! 공작께 예를 지키시오!”
“이놈이 여기가 어느 안전인 줄 알고 -”
“이봐!”
내 아버지는 어디 동네 촌장이 아니라 에른하임 전체를 지배하는 높으신 분인데, 이렇게 막 나간다고?
“공작, 무례를 사죄하겠습니다. 허나, 나는 에른하임의 타락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있소.”
“… 말하라.”
타락에 대한 명확한 증거.
곧, 이단 심문관이 수행원에게 손짓해 ‘상자’를 가져오라 일렀다.
— 쿵!
“이게 무엇인가?”
“이단의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엇이냐는 -”
“직접 눈으로 보시지요.”
“…”
“상자를 여는 정도로 위험한 일이 생기진 않습니다.”
내부에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들었는지, 쉼 없이 덜컹거리는 상자.
공작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겁했다.
“으아아악! 이, 이게 대체 뭐냐!”
“꺄아악!”
“이 무슨 끔찍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가련한 우리를 보듬으시고 -”
“토마스! 이게 무엇인지 설명하시오!”
상자 내부엔 쉼 없이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있었다.
언뜻 보기엔 사후경직을 일으킨 고깃덩이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심장 비슷하게 생겼다.
심장 외부엔 빼곡한 바늘 같은 돌기가 솟아있었고, 혈관은 이리저리 뒤틀린 상태.
정체불명의 사악한 힘이 인간의 육체를 마구 뒤섞은 듯한 –
“… 괜찮으십니까?”
“음?”
문득, 주변이 조용해졌음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가신들은 물론 아버지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다.
“…”
괴악한 힘에 뒤틀린 기형 살덩이.
본체가 되는 누군가는 이미 죽었을 텐데도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
어지간히 담력이 강한 사람도 놀라 자빠질 광경이다.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가 침착하게 있을 상황은 아니었고, 심장의 형상을 관찰하는 건 더더욱 이상했다.
무어라 변명하려는 순간, 이단 심문관이 싱긋 웃었다.
“과연, 은총 받은 분께선 평범한 아가씨들과 다르시군요.”
“…”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글쎄요. 토마스 재판관께 더 설명을 듣고 싶은데. 이게 왜 에른하임의 타락에 대한 증거죠?”
“기꺼이. 본디 내가 출발하기 전, 에른하임엔 교회에서 파견한 신전 기사가 있었소이다.”
나처럼 은총을 받은 딸이 있다면, 아들도 있기 마련이다.
교회가 인정한 기적을 부리는 남성 중 상당수는 ‘신전 기사’가 되어 교회의 힘을 담당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요?”
“이틀 전, 주님의 은총을 받은 신실한 아들, 차진철이 -”
“으앗!”
갑자기 차진철?
“왜 그러십니까?”
“… 아니에요.”
“…”
“…”
“차진철 신전 기사가 끔찍하게 살해당했소. 이 심장은 그의 몸에서 우리가 찾아낸 ‘가장 멀쩡한’ 살점이오.”
아, 아, 아!
며칠 전부터 날 혼란스럽게 했던 일련의 의문들이 단숨에 풀렸다.
이틀 전이면 두 번째 시련이 시작한 시점!
진철 씨가 시련이 시작하자마자 죽었다는 사실.
이해할 수 없는 힘이 그의 육신을 마구 뒤틀었다는 사실.
뭔가, 뭔가 느낌이 왔어.
내가 축복을 쓸 수 있다면, 나 이전의 ‘이집트 파티’는 유산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진철 씨를 소환했다?
그리고 진철 씨는 축복이 없는 상태로 별 조각을 쓰다가 몸 전체가 뒤틀려 죽었고?
“흐으….”
마지막.
이 모든 전개를 예측한 가인 군이 내게 편지를 남겼다.
「죄송합니다. 두 번째 시련은 엘레나랑 은솔 누나 둘이서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아자 아자 화이팅!」
너무해.
진철 씨도 너무하고 미로도 너무해!
세 명 중 한 명이 시작하자마자 이탈하면, 나랑 은솔 언니는 어떻게 하라고!
가인 씨도 그렇지, 예측했으면 대비할 수 있도록 –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니 주변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
“엘레나, 흉한 것을 보아 마음이 편치 않은 듯한데, 와인이라도 한잔하려무나.”
“괜찮아요.”
다행히 상황 자체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진정하자.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잖아?
분명 첫 시련에서 엄청난 위기가 닥치니 진철 씨도 최선을 다하다 생긴 사고겠지.
이미 끝난 일이다.
원망한다고 죽은 동료가 돌아오진 않으니, 받아들여야 한다.
…
이유야 어찌 됐든, 조금 전 토마스가 보인 끔찍한 살덩이는 모두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공작님, 이제 제 말을 이해하셨겠지요?”
“… 이해했소.”
“제 요청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이단 심문관의 요청.
그레이 공작이 지배하는 도시, 에른하임에 대한 모든 사법권을 양도해달라는 것.
아까 전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지만, 이젠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가 ‘사악한 힘의 증거’를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실제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벌어진 일의 후폭풍인 것 같지만, 이거야 모든 것을 아는 내 생각이지.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뭘 어떻게 봐도 악마의 개입이야.
“토마스 재판관. 그대에게 에른하임 전역에 대한 수사권 및 형벌권을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지.”
“감사합니다. 공작님의 적극적인 협조에 -”
“다만!”
“…”
“이런 사악한 일에 그레이 가문이 뒷짐질 수 있겠소?”
“…”
“엘레나!”
“네.”
“부탁하마. 이단 심문관과 함께 타락한 마녀를 응징하고 도시의 평온을 되찾아다오.”
“기꺼이.”
그레이 공작의 뜻은 간단하다.
타락의 증거를 찾았으니 당신의 요청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을 받은 내 딸과 함께 행동하라.
이단심문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은총 받은 따님과 함께 도시를 지킬 수 있게 된 것. 영광으로 알겠나이다.”
시작이다.
참,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발렌티나, 부탁이 있어.”
“말씀하세요.”
“… 항구 인근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민족 여인’이 있다고 들었어.”
“아, ‘이은솔’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분에게 이 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렵지 않죠. 그런데, 아가씨가 그런 이상한 여자를 어떻게 -”
“묻지 말고, 그냥 편지 전해줘.”
은솔 언니에게 내가 아는 정보를 공유해야겠지.
*
– 이은솔
“…”
편지에 적힌 사실 덕분에 머리가 아파.
대략적인 배경 설정은 그렇다 치자.
‘신전 기사’ 포지션이었던 진철이가 시작하자마자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침착하게 생각하자.
우리에겐 디너파티에서 얻은 힌트가 있으니까.
이 무대는 내가 아는 평범한 스페인이 아니다.
신의 은총을 받은 엘레나와 차진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신의 은총이 실존한다면, 악마의 저주도 실존할 수 있겠지.
현실의 마녀사냥은 죄 없는 무고한 자를 학살한 인류의 흑역사에 불과하지만, 이 세계의 마녀사냥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마녀가 실존한다면, 정말로 에른하임 어딘가에서 사악한 흉계를 꾸미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레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차진철의 죽음과 별개로 이단심문관 토마스는 무조건 왔을 것 같다.
교황청에서 별도의 루트를 통해 마녀의 증거를 찾아냈겠지.
그렇다면, 신전 기사 차진철의 죽음은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가?
이단 심문관의 태도를 훨씬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엄마, 엄마!”
“…”
“나 배고파….”
“그래, 소피아. 조금만 기다리렴.”
“응!”
‘딸’이라는 설정의 소녀,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두 번째 시련에서 내 상황은 어떠한가?
11년 전에 죽었다는 설정이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편은 생전에 부유한 상인이었다.
나는 남편이 거래 중에 만난 명나라 상인의 딸이고, 그래서 동양인이라는 설정.
쉽게 요약하면, 재산 많은 과부이면서 거기에 이민족.
“아.”
“엄마?”
마녀로 몰리기 딱 좋네.
조건이 헛웃음 나올 정도로 완벽하잖아?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손을 품에 넣어 아름다운 푸른 브로치를 만졌다.
무려 4회 분량의 탐욕의 손이 모여 만들어낸 내 귀중한 보물, 어떤 의미에선 유산 – 안식의 피리보다도 신뢰하는 도구.
호접몽(胡蝶夢).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악몽 나비를 부려 인간을 위압하고, 환각을 보이며 투명화 능력까지 있는 내 소중한 도구.
누가 봐도 마녀의 물건이 아닌가!
심지어 거울에 비치는 내 눈을 보라.
“… 내가 봐도 마녀네.”
“엄마?”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런데, 두 번째 시련의 보스는 누구야?
***
어두운 별실.
신실한 태도로 무릎 꿇은 채 기도하던 토마스가 몸을 일으켰다.
수행원 중 한 명, 산티아고가 조심스레 물었다.
“토마스 님,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어라.”
“이 도시에는 마녀가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렇다.”
“한데, 타락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토마스는 한심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수행원을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놈!”
“죄, 죄송합니다.”
“산티아고, 잘 들어라.”
“예!”
“타락한 도시에 무고한 자는 없다.”
“… 예?”
“마녀는 마녀이기에 죄인이며, 마녀가 아닌 자는 마녀를 감춰주었기에 죄인이다.”
“마,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
“주님께서 말씀하셨나니, 무지는 결코 변명이 될 수 없음이라.”
“…”
“명심하라! 하찮은 인간이 어찌 심판을 논한단 말이냐? 심판은 오로지 주님의 몫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심판대로 보내는 것이지.”
“그 말씀은….”
“의심 가는 자는 모두 화형대에 세워라. 무고한 자는 주님께서 가려내실 터, 불꽃이 피해 가리라.”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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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49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