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4)
EP.494 494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2)
494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2)
– 엘레나
이른 아침, 체감상 새벽 5시나 되었을 것 같은 시각.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깨었다.
“아가씨, 엘레나 아가씨!”
“으음, 무슨 -”
“토마스 재판관이 이미 출발했답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출발해?
이 시간에?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아니! 공작님이 나와 같이 가라고 했 – 이럴 때가 아니지, 발렌티나! 당장 외출 준비해! 그리고 페로 데려와!”
나처럼 지체 높은 가문의 아가씨가 외출 한번 하려면 준비시간이 기본 1시간이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고함까지 질러가며 15분 만에 마차 타고 출발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차오른다.
매캐한 연기,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
비명 지르는 사람들, 사방에 솟은 장대.
그 위에서 타오르는 은솔 언니!
“더 빨리! 빨리!”
“아가씨, 길이 험해서 -”
“야! 시내에 가기 전에 20명쯤 타죽었으면 어쩌려고!”
“… 이랴~!”
— 삐이익!
“도착했습니다!”
*
모든 이에게 다행스럽게도 내 불길한 상상은 ‘아직’ 현실이 아니었다.
“음? 레이디.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군요. 조금 더 주무시다 오시지 그랬습니까?”
“…”
“하하, 어깨 위의 앵무새에 대해 종종 들어보았습니다. 신비한 새라 하던데….”
날 비웃듯이 능청스럽게 말하는 이단심문관 토마스 토르퀘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상황이 아니었기에 따지기도 애매했다.
그보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이건 뭐죠?”
“보시다시피 공문입니다. 날이 밝는 대로 ‘마녀 법정’을 열어야 하니, 먼저 도시 여기저기에 공문을 보내야지요.”
“…”
전날 늦은 시각까지 모은 정보에 따르면, 이단심문관은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비밀스러운 부류다.
의심스러운 지역에 하수인을 보내거나 본인이 직접 숨어든 후, 타락의 증거를 찾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공개적인 부류다.
도시 중앙에서 ‘마녀 법정’을 연 후, 사람들 스스로 서로를 고발하게 해서 조사하는 방식을 뜻한다.
당연히 후자가 무고한 사람의 희생이 훨씬 크다.
그리고, 토마스는 두 번째 유형이었다.
“…”
207호에 들어오기 전, 호텔에서 암기했던 지식을 되새긴다.
인류의 흑역사 중 대표 격인 마녀사냥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보통은 종교적 광기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틀린 말은 아니다.
마녀사냥의 명분을 제공한 것은 분명 당대 교황청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벌어진 ‘동기’의 많은 부분은 돈이었다.
상대를 마녀로 지목해서 태워죽이는 데 성공하면, 고발자는 그 포상으로 마녀의 재산을 얻을 수 있다.
그랬기에 주요 타겟 중 하나가 부유한 과부였는데, 재판에서 자신을 지킬 힘이 없으면서도 돈이 많아서 얻을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류사 문제의 9할은 언제나 돈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태어나지도 않은 이런 중세에도 돈은 모든 인류가 숭배하는 존재다.
이런 지식을 알고 있었기에 토마스가 붙인 공문을 보자마자 문제를 발견했다.
“12번, 지우세요.”
“그 항목은 마녀 고발에 대한 포상을 정하는 것인데 -”
미묘한 신경전, 기세 싸움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지워야죠….”
“… 노력하는 자에게 보답을. 이는 아주 오래된 격언입니다.”
말은 그럴듯하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를 탐하는 자는 믿음을 저버린다. 들어보셨지요?”
“디모데전서 6장 10절, 잘 알지만은, 재판은 현실입니다. 보상이 없으면 누가 고발에 나서겠습니까?”
“반대로 보상 때문에 거짓 고발하는 자가 나오리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지?”
“그게 무엇이 문제요? 거짓 고발도 일부 있겠지마는, 그 과정에서 참된 고발이 나올 터인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미친놈은 돈을 바라고 거짓 고발이 나올 수 있음을 알아.
알면서 그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자다!
찰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냥 마녀사냥 하게 내버려 둘까?
이놈이 사람을 화형대에 세우기 시작하면 나 또한 정의를 쓸 수 있다.
“…”
그냥 정의 써서 재판관 죽이고 끝?
이런 방식은 아닐 것 같아.
호텔이 이렇게 쉬운 시련을 줄 리 없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정황상 이 자는 정신 나간 광인일지언정 평범한 인간이다.
즉 ‘보스’가 아닐 것 같다.
보스는 분명 나와 은솔 언니가 전력을 다해도 감당하기 힘든 초월적인 힘을 가진 무언가야.
거짓 신의 사제 뭐 이런 존재 아닐까?
이 자를 죽이면 무슨 일이 생길지 고민했다.
차진철의 흉측한 죽음으로 ‘타락의 존재’ 자체는 현지인들이 보기엔 이미 입증이 끝난 상황.
필시 이에 대한 보고도 교황청에 올라갔겠지.
여기서 재판관을 죽이면 상황이 끝난다?
판사가 죽으면 재판이 끝난다는 수준의 멍청한 이야기다.
그냥, 그다음 재판관이 올 뿐이다.
더 미친놈이 올 수도 있고, 강력한 신전 기사와 함께 올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신전 기사가 보스일 수도 있고.
“…”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죽이는 게 맞나?
결국 보스를 처리해야 시련이 끝날 테고, 보스의 등장 조건이 토마스의 죽음이라면….
머리 아파.
본래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는데.
토마스를 죽이려면 언제든 죽일 수 있다.
그러니까 우선,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해보자.
백성들을 가련히 여겨라,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줄여라.
토마스는 이런 당연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를 떠올려야 한다.
“15세가 되던 해였죠.”
“… 음? 갑자기 무슨 말씀을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던 날, 위대하신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
시선은 살짝 위로,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 – 실시간으로 지어내긴 했지만 –을 회상하는 장면이니 눈은 감는 게 좋겠어.
목소리는 살짝 내리깔자. 그래야 감성적으로 느껴져.
“엘레나, 사랑스러운 내 딸아. 내 너에게 달란트를 내리나니, 이 땅에 올바른 정의를 세워라.”
“…”
“그날, 제 삶은 오롯이 주님의 품에 안겼답니다.”
놀랐지?
감동받았지?
나는 너랑 차원이 다르다니깐?
하나님이 직접 기적을 내린 나와 성경 좀 열심히 읽은 미친놈인 넌 근본이 다르다니까?
— 툭!
툭 툭 치면서 눈치를 주자 이단심문관이 한숨 쉬며 답했다.
“후우…. 감동적인 이야기요. 주님께서 엘레나 양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지 잘 알았소이다.”
“그러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지요?”
“…”
“포상금 항목 지우세요. 애초에 범죄자에게 환수한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까는 그레이 가문의 권한이니깐!”
“공작께선 그 권한까지 내게 위임하셨소.”
“아버지는 허락하셨지만, 내가 허락하진 않았죠.”
“당신의 권한도 공작에게 받은 것일 뿐인데 -”
“착각! 나를 반석 위에 세우신 분은 주님이시지 공작이 아닙니다.”
그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그러면 니가 증거도 없이 수백 수천 명을 태워죽이는 건 말이 되고?
“… 억지를 쓰시는군. 좋소, 받아들이지.”
결국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우는 내 말에 이단심문관이 굴복했다.
물론, 이건 갈등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직감했다.
*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도시 중앙에 설치된 마녀 법정에 많은 수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부자, 빈자, 남성, 여성, 늙은이, 어린이 –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 중, 은솔 언니의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
“…”
교차하는 시선.
보는 눈이 많으니 아는 체할 상황은 아니라서 고개만 살짝 까딱했다.
“어험! 에른하임의 시민 여러분, 나는 교황청의 이단심문관, 토마스 토르퀘마다라 하오.”
웅성거리는 사람들.
‘화형대의 주인’이라는 불길한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토마스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증거다.
“지금부터 마녀 법정을 시작 -”
“잠깐.”
일부러 이 타이밍을 노려서 토마스를 제지했다.
지금, ‘내가 토마스를 제지하는 장면’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었으니까.
“…”
두 걸음 앞으로 나서 군중을 내려본다.
은총 받은 딸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경이.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혹은 색욕이 느껴지는 끈적한 시선.
뭐,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좌중의 시선이 내게 쏠려있다는 사실 그 자체.
“이 법정에서 거짓을 고하는 자.”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
“팔다리 중 하나는 내어놓고 가야 함을 명심하라. 토마스, 시작하세요.”
“… 마녀 법정을 시작한다!”
— 퉁!
개정(開廷).
*
고발에 대한 포상을 없앤 것은 다시 생각해도 탁월한 결정이었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서 저놈이 마녀요, 이놈이 마녀요 했을 사람들 상당수가 다소곳한 자세로 있었으니까.
물론,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두, 두 달 전의 일입니다. 야밤에 소가 괴이한 울음을 내어 밖으로 나갔는데 -”
늦은 밤, 소의 울음을 듣고 확인하니 짐승 같은 행색의 남자가 달아났다.
필시 옆집 아무개인데, 사특한 술수를 시도했음이 분명하다.
“… 그건 그냥 소도둑 아닌가?”
“아가씨, 아가씨가 그 짐승 같은 꼬락서니를 보셨다면 -”
“소를 훔치려고 축사에서 뒹굴었으니 그렇게 됐겠지. 얼굴 기억해?”
용의자를 데려와서 심문하니, 예상대로 그냥 소도둑이었다.
— 탕!
“판결. 소지와 약지를 잘라라.”
“…”
가혹하긴 하지만, 무려 소도둑이니 이 정도로 벌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
양민들은 평범한 범죄 사건과 마녀의 소행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혹은, 뭐가 어찌 됐건 법정이 열린 김에 평소 마음속에 품은 송사를 전부 해결하려는지도 모르겠다.
거짓을 판별한다는 주님의 딸과 인간 바비큐 전문가가 한자리에 있으니 용의자 대부분은 쳐다보기만 해도 죄를 술술 토해냈다.
“들어주십쇼! 저는 마티아스라 합니다. 한점 거짓 없이 고합니다. 아내가 혼인한 지 13년이 되었는데 -”
소금 매매로 큰 부를 쌓고 어려서부터 미인으로 유명한 아내를 얻어 남부러운 것 없는 삶을 살아가던 상인, 마티아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속을 끓게 하는 고민이 생겼다.
10년 넘게 벌어진 아내, 이사벨라의 이상한 행동이 바로 고민의 원인이다.
매주, 혹은 남편이 출타할 때마다 집을 비우고 어딘가로 향하는 이유는?
여러 번 다그치고 이유를 물었지만, 들려오는 답은 사리에 맞지 않는 헛소리뿐.
분명, 사특한 악마가 아내를 홀린 것이다!
“…”
“…”
나와 토마스가 동시에 말문을 잃었다.
잠시 후, 토마스가 고발자의 아내를 불러왔다.
“나, 남편은 예전부터 이상한 의심이 많았어요! 저는 그저 밤바람을 쐬는 일을 즐길 뿐인데 -”
“거짓말.”
“히익!”
거짓말 탐지 발동!
눈에서 황금빛을 내며 경고하자 아내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죄다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진실을 말해.”
결국,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대 시절의 아련한 첫사랑, 몸에서 민트 향이 나는 순수한 소년과의 잊을 수 없는 만남.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예상치 못한 결혼.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받아들였다고 믿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건실한 은행원이 되어 돌아온 첫사랑의 아련한 –
“아오! 불륜이잖아!”
“…”
이 여자, 말을 너무 재미있게 잘하는데?
그냥 불륜 스토리인데 푹 빠져서 무죄라고 외칠뻔했네!
“후우….”
옆에 앉아있던 이단심문관이 10년은 늙은 듯, 한숨을 푹푹 쉬었다.
마녀나 타락과 아무 상관 없는 사건만 튀어나오니 피곤한 모양새.
결국 손을 내저으며 치우려던 차,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소금 상인이 고함쳤다.
“이사벨라! 이사벨라! 내, 내 말에 확실히 답해!”
“마티아스….”
“아이들은, 아이들은! 아이들의 아버지는 누구지!”
그 순간 법정 전체가 멈췄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도시 사람들은 물론, 몸속에 피 대신 불꽃이 흐르는 것 같은 이단심문관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사벨라의 입에 집중했다.
“다, 당신의 아이에요! 하나님께 맹세코, 세 아이 전부 -”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
모두가 무형의 눈빛으로 대답해달라 부탁했다.
심지어 이단심문관조차도.
“… 거짓말.”
“두, 둘째는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른 두 아이는 -”
아….
제발, 이사벨라.
날 힘들게 하지 말아줘.
“… 거짓말.”
“히익!”
“으악! 하나, 하나! 내 아이가 하나라도 있단 말이냐!”
“… 아, 아마도 첫째는 -”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거 마녀 법정 아니었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저기, 아가씨!”
“… 발렌티나?”
“요전에 아가씨가 편지를 보낸 그분이 쪽지를 보냈어요!”
은솔 언니가 쪽지를?
*
– 이은솔
이거 마녀 법정 아니었음?
재밌긴 한데, 이런 식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네.
“…”
이단심문관이 지친 표정으로 이사벨라와 불륜 상대를 전부 광장에 묶으라고 판결했다.
그 옆에서 같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레나.
아까부터 재판 진행 상황을 보니, 엘레나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이단심문관의 폭주를 경계하고 최대한 적은 피를 흘리려는 모양이네.
하긴, 차진철의 유해를 보고 ‘마녀가 있다!’라고 철석같이 믿게 된 현지인들과 달리, 나와 엘레나는 그 살덩이가 마녀와 상관없는 것임을 안다.
그러니까 엘레나는 마녀재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것 아닐까?
“…”
알겠어,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엘레나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를 착각하고 있다.
나처럼 도시에 섞여 있는 게 아니라 고색창연한 저택에만 있으니 이런 종류의 정보가 느린 모양이다.
*
– 엘레나
언니가 보낸 쪽지를 펼쳤다.
「엘레나, 마녀 혹은 악마 숭배자는 실제로 있어.」
“…”
다시금 머리가 아파졌다.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드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
“고발합니다!”
“본인의 이름, 고발 대상, 이유. 순서대로 말하라.”
“저, 브루노는 인근 필리타 수도원을 위한 소시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발 대상은!”
“고발 대상은?”
“이은솔입니다! 마녀입니다!”
마침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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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49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