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6)
EP.496 496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4)
496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4)
– 이은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마자 말문이 막히는 상황에 직면했다.
날 마녀로 몰아붙이던 브루노는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현장에는 빙글빙글 웃는 말하는 고양이가 자리를 뜨라고 충고하는 기괴한 사태.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텔에서 겪어온 경험 덕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빨리 도망가라니까?”
“… 누가 브루노를 죽였지?”
“야~옹!”
“갑자기 고양이 소리 내지 말고.”
“미야아옹~!”
“…”
붉고 탁한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난다.
마치,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왜 하냐는 듯한 모습.
곧, 암석이라도 조각낼듯한 섬뜩한 발톱이 길쭉하게 자라났다.
“너야? 네가 죽였어? 왜?”
“싫잖아.”
“뭐?”
“이놈이 싫어. 싫은 놈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해?”
“…”
유아적인 말투에서 드러나는 잔혹함.
이 녀석, 이 괴물이 브루노를 죽였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마녀의 패밀리어가 브루노를 죽였다.
사람들은 누구의 소행이라 의심할까?
당연히 나다.
그러므로 마녀는 날 함정에 빠트렸다.
그런데, 왜 마녀의 패밀리어는 내게 외부인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면서 도망가라고 하는 걸까?
“소리.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자.
*
집으로 돌아오고 1시간쯤 흐르자 바깥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졌고, 밤하늘은 어둡기 그지없어 가로등 따위가 없는 이 시대 사람들이 왕성히 활동할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사방에서 번들거리는 횃불이 타올랐다.
또한, 불꽃보다도 뜨거운 감정적 격류 – 즉, 증오심이 집 인근을 포위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뭐야?”
발렌티나가 당황하며 바깥에 나가 상황을 살핀 후 돌아왔다.
내가 나갔으면 흥분한 군중들이 바로 화형대에 세웠을 것 같은데, 발렌티나는 다르긴 하네.
“이은솔! 브, 브루노가…. 브루노가 죽었어! 심지어 산채로 온몸이 해체당했어.”
“…”
“너, 네가 그러니까….”
잠시,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보았다.
정말 내가 그 남자를 죽인 게 아닌지 의심하는 걸까?
“…”
“…”
눈빛만 봐도 발렌티나의 생각이 느껴진다.
바깥의 흥분한 군중과 달리 발렌티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 그런 설정이다.
10년 가까이 나와 교류해온 그 경험이 발렌티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이은솔은 오빠를 일찍 죽게 한 재수 없는 여자임이 분명하지만, 저주를 걸어 사람을 죽이는 마녀는 아니라고.
“내가 브루노를 죽인 것 같아?”
“… 바보 같은 소리. 너처럼 겁 많은 여자가 어딨어? 닭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는 주제에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그냥 여기 있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올 테니까.”
곧 밖에서 발렌티나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녀라 한들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킬 대단한 재주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음 마녀재판이 열린다는 사실.
그때 이단심문관과 엘레나가 마녀를 처단하리라는 사실.
그러므로 불만이 있다면 내일 법정에서 증언하라는 설득.
“으음….”
별 의미 없는 노력이다.
당장 오늘의 위험은 넘어가겠지만, 그래봐야 다음 마녀재판까지 반나절도 채 남지 않았으니까.
— 탈칵!
옆방 문이 열리며 인형 같은 소녀가 내게 달려왔다.
“엄마…! 엄마…!”
“…”
“왜…. 왜….”
“소피아, 들어가서 자야지.”
“왜 사람들이 엄마를 괴롭혀요? 엄마는! 엄마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소피아, 내일 재판에서 이단 심문관님에게 잘 설명해 드리면 될 거야.”
“정말요?”
“그럼! 첫 재판에서도 토마스 재판관님이 엄마는 마녀가 아니라고 했잖니.”
“휴우…. 다행이다아….”
안심한 소녀가 내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
보나 마나 다음 재판에선 나에 대한 고발이 쏟아지겠지.
이단심문관이 다시 한번 내 편을 들어줄까?
그럴 리 없다.
“흐음.”
어차피 마녀로 몰릴 운명임이 확정되었기 때문일까?
되려 마음이 탁 놓였다.
어차피 에른하임의 양민들 ‘따위’가 날 진정으로 위기에 몰아넣을 수는 없으므로.
마녀?
그래, 설령 내가 진짜 마녀라 한들 어쩔 건데?
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낫이나 쇠스랑 들고 날뛰는 중세인 따위가 날 위협할 수 있을까?
호접몽으로 대여섯 명만 기절시켜도 겁먹고 도망갈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시련 내적인 관점, ‘누명을 쓴 과부’라는 컨셉에 매몰될 필요 없어.
날 마녀로 몰아붙이는 도시 사람들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날 위협할 힘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누가 내 진짜 적일까?
진짜 마녀를 찾아내서 죽여야 하나?
…
만약 보스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면, ‘보스의 등장 조건’은 무엇인가.
“…”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두 번째 시련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짜여있는지, ‘토마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 끼이익!
“뭐야? 잠이나 잘 것이지 내 방엔 왜 -”
“발렌티나, 부탁이 있어. 지금 당장 들어줘야 할 부탁이.”
“… 이 시간에?”
“엘레나에게 편지를 전해줘.”
“…”
“열어보진 말고.”
“너,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발렌티나가 이은솔은 마녀가 아니라고 믿듯이, 나 역시 그녀가 편지를 훔쳐보리라 의심하진 않았다.
애초에 고위 귀족의 전속 시녀라면 그 정도 교육은 받았을 테니까.
설령, 훔쳐본다 해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어.
출발 직전, 발렌티나가 내 쪽을 보았다.
“… 은솔.”
“응?”
“소피아를 사랑하지?”
“…”
“바보 같은 질문이었네. 딸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다고…. 갈게.”
*
– 엘레나
두 번째 마녀재판의 분위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당시만 해도 인명피해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축이 아프다, 사람이 병들었다, 고양이가 말을 했다.
기괴한 현상이긴 하나, 앞의 둘은 마녀가 아니라도 흔한 일이고 뒤의 하나는 들은 사람이 술 마시고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저 여자, 저 여자입니다!”
“존경하는 토마스 재판관님, 저 마녀가 신실한 브루노를 -”
“흐윽! 제발, 저 마녀를 죽여주세요!”
“매일 밤이 두려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극도로 흥분한 채 이은솔을 태워죽이라 외치는 사람들.
— 퉁!
토마스가 나무망치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외쳤다.
“다들 조용! 들을 만큼 들었소!”
곧, 그는 내 쪽을 보며 물었다.
“엘레나 양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 마녀 관련 문제는 나보다 토마스 공이 전문가이실 듯하군요.”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말로 들렸는지 토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음? 사실이긴 하지만 엘레나 양이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데.”
“…”
“그레이 가문에서 오셨으니 어떻게든 일을 조용히 만들고 덮으려 들 줄 알았습니다.”
“…”
“으흠, 세 가지 생각이 드는군.”
세 가지나?
“엘레나 양, 요전에 빌려 간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을 다 읽으셨소?”
“다 읽었습니다.”
“마녀들이 어떤 성격인지 이해하셨는지?”
“어린 시절이 대체로 불우하죠. 덕분에 성장을 끝낸 후에도 유아적인 경우가 많고, 굉장히 잔혹하고.”
“그 정도면 잘 이해하셨구려. 그러면, 저 아가씨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 본인이 타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굉장히 침착해 보이네요.”
“일반적인 마녀와 너무 다른 성격이지. 그게 첫 번째 생각이오.”
통상적으로 마녀는 유아적이면서도 잔혹한 성품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증오를 받으며 자라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힘만 강하기 때문이다.
은솔 언니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드는군. 보통 사람이라 보기에도 너무 침착하다.”
“…”
“엘레나 양 말대로 지금은 본인이 화형당할 수 있는 상황이오. 이런 상황이면 설령 무고한 자라 해도 흥분해서 고함치거나 겁먹은 채 울부짖어야 정상이지.”
“…”
“어쩌면, 저 침착한 태도는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지. 내 마법의 힘이라면 이 정도 난관은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 설령 엘레나 양이 심판하려 해도 벗어날 자신이 있다?”
유아적인 마녀라 보기엔 대단히 침착하고 성숙하다가 첫 번째 생각.
보통 사람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가 두 번째 생각이네.
“세 번째는 뭐죠?”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래서야, 저 여자 한 명 태우고 끝날 분위기가 아닌가.”
“뭐?”
은솔 언니 한 명 태우고 끝날 분위기라 싫다고?
이게 뭔 소리야?
“서로서로 고발하는 상황이라면 의심 가는 이를 전부 ‘정화’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모두가 한 명만 고발하고 있으니 -”
이 미친놈이 뭔 소리 하는지 알았다!
그니까 서로서로 마녀라고 고발하는 분위기면 그걸 명분 삼아 한 300명 불태울 생각이었는데, 모두가 은솔 언니만 고발하고 있으니 한 명만 태울 상황이라 아쉽다는 소리잖아!
순간 혈압이 치솟았다.
첫날부터 열 번은 했던 생각이다.
그냥, 사람 태울 생각으로 가득한 토마스를 때려죽이고 이게 곧 하느님의 뜻이다! 하고 외치면 안 되는 거야?
애초에 난 설정상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거룩한 존재잖아.
이단심문관 토마스도 보는 앞에서 내 권위를 부정하지 못하던데, 그걸 이용하면 안 돼?
…
참았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
호텔이 내린 시련인데 이렇게 간단히 끝내는 게 답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황 자체가 기묘하기도 했다.
‘토마스는 어떤 존재인가?’
잔혹한 광신자.
관리국 요원들처럼 나름의 논리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극히 폭력적인 사람.
무엇보다 은솔 언니를 죽이려는 사람.
여기까진 저주의 방에서 수없이 봐왔던 흔한 빌런인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섞여 있다.
“내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존재….”
“음? 엘레나 양, 무어라 하셨소?”
“아닙니다.”
내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토마스를 죽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명분이란 내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광기에 불과하며, 그가 언니를 화형대에 태우는 순간 정의를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
어젯밤에 언니가 보낸 편지는 그 혼란을 가중했다.
「이단심문관은 존재 자체가 함정 같아. 확인할 게 있으니 재판에 끼어들지 마.」
“…”
첫 문장은 이해했다.
토마스의 존재 자체가 모종의 함정 같다는 건 나도 첫날부터 느꼈으니까.
하지만, 재판에 끼어들지 말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은솔 언니를 구할 방법은 많을 텐데도!
예컨대, 거짓말 탐지 능력을 쓴 채 은솔 언니가 내 앞에서 ‘난 마녀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게 한다? 그 증언을 내가 ‘진실’이라 말한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수다.
설정상 내 힘은 하나님의 은총이니, 이단심문관도 내 능력이 잘못 발현되었다고 우길 수 없으니까.
여기에 더해서 이은솔을 내 저택에 들여 옆에 두고 감시하겠다고 하면?
도시 사람들의 불안감과 적대감도 상당 부분 가라앉겠지.
…
은솔 언니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니 그런 도움을 주지 말라고 한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 퉁!
“증인들의 고발을 잘 들었다! 이제, 2차 마녀 법정의 판결을 내린다!”
“…”
마지막으로 이단심문관이 내 쪽을 살폈다.
반대할 생각이 있다면 말하라는 분위기.
고개만 까딱해서 당신 뜻대로 하라고 전하니 토마스가 슬쩍 웃었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는 ‘역시 은총 받은 따님이 뭘 좀 아시는구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 퉁!
“판결! 죄인 이은솔은 마녀다. 마녀의 죄는 다음과 같다. 사특한 요술을 부려 32마리의 양, 6마리의 당나귀, 9마리의 말, 14마리의 소를 병들게 한 죄. 신실한 청년을 저주해 병들게 한 죄, 밤마다 요사한 안개를 뿌린 죄, 말하는 고양이로 모두를 두렵게 한 죄!”
듣다 보니 웃기네.
그냥 에른하임에서 죽거나 병든 가축은 전부 언니가 해친 셈 치는 거야?
“마지막으로 소시지 장인 브루노를 흉악한 저주로 해친 죄! 판결은 화형이다. 묶어라!”
곧, 이단심문관의 수행원들이 두꺼운 밧줄을 가져와 은솔 언니를 묶기 시작했다.
“…”
슬슬 숨이 가빠온다.
언니, 무슨 생각이야?
설마 진짜 화형대에서 타죽을 생각은 아니지?
내가 그 꼴을 보느니 함정이고 지랄이고 그냥 이단심문관 놈부터 죽여서 –
— 야옹~!
“응?”
고양이 울음소리?
법정에 고양이가 들어왔 –
— 툭!
축축한 액체가 뺨을 스쳤다.
호텔에서 수없이 봐온 진득한 붉은 액체의 촉감을 느끼며 옆을 보았을 때.
눈, 코, 입, 귀 –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이단심문관을 보았다.
토마스의 최후는 이렇게나 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