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7)
EP.497 497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5)
497화 – 207호, 관문의 방 – 두 번째 시련 ‘마녀’ (5)
– 이은솔
이단심문관이 피를 쏟아내며 죽는 순간, 법정 전체가 멈췄다.
에른하임의 양민들은 물론 나와 엘레나마저도 순간 말문을 잃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충격이 모든 소음을 집어삼킨 찰나의 고요.
곧,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꺄악!”
“으, 으허어억!”
“재판관님!”
“마녀다! 마녀다!”
경악하며 비명 지르는 사람들.
— 찰박!
기다렸다는 듯, 뺨을 적시는 붉은 액체.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날 밧줄로 묶던 수행원들이 죄다 쓰러진 상태였다.
“… 어머.”
내게 사형선고한 재판관이 칠공으로 피를 토하며 죽었다.
날 밧줄로 묶으려던 수행원들은 전신이 쥐어짜인 채 죽었다.
이쯤 되자 이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비, 비켜! 으아악!”
— 우당탕!
무슨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도망가는 사람.
“제발…. 제발…! 은솔 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딸이…. 어린 딸이!”
난데없이 어린 딸이 있다고 호소하며 목숨만 살려달라는 사람.
쓴웃음이 나오네.
뭐라고 해야 할까?
흐름 자체는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과격해.
마녀의 성정이 잔혹하고 충동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엘레나가 있는 앞에서 다짜고짜 다 죽여버릴 줄은 몰랐다.
그때, 뒤늦게 정신 차린 엘레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잡아!”
잡으라고? 마녀를 찾았어?
— 푸드득!
마녀가 아니라 패밀리어를 찾았구나!
페로가 벼락같이 날아들어 창가에 있던 고양이를 잡아챘다.
다음 순간, 위기감을 느낀 마녀의 패밀리어가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로 변했다.
삽시간에 덩치는 표범만큼이나 거대해졌고, 발톱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저 고양이가 표범이 아니라 호랑이만큼 커졌어도 의미는 없었지만!
페로가 허공에서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돌더니, 곧 부리 사이즈가 사람 머리통만 한 초대형 괴물 새가 나타났다.
“야옹?”
기겁해서 야옹거리는 괴물 고양이를 보자 순간 웃음이 나왔다.
본인도 괴물로 변신한 주제에 앵무새가 변신할 줄은 몰랐어?
다음은 말 그대로 우당탕! 이었다.
삽시간에 간이 법정이 초토화되고, 나무 탁자나 의자 따위가 으스러지는 혼란스러운 싸움.
“끄아악!”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진작 도망간 지 오래였지만, 행동이 느린 사람 몇몇이 괴물들의 난투에 얽혔다.
불행하게도, 괴물 고양이와 페로 모두 민간인의 안전 같은 ‘사소한 문제’는 개의치 않는 대범한 존재였다.
…
난투극의 결판이 날 때쯤, 나와 엘레나가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패밀리어가 평범한 고양이 크기로 돌아온 채 바닥에서 헐떡이고 있다.
“오랜만이네.”
“…”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웃거리는 고양이.
나와 엘레나가 평화로운 분위기로 함께 다가왔기 때문일까?
“괜찮니?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
“마녀가 누구인지 알려줄래?”
“알고 있으면서.”
“혹시 모르잖니?”
고양이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역시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언니, 짐작하셨어요?”
“조금은. 아!”
“왜 그래요?”
“발렌티나…. 걔, 네 저택에 있어?”
“아마도요? 잘 모르겠네요.”
“…”
발렌티나가 그동안 보인 행동이 일종의 힌트였구나.
오빠와 관련한 이유로 날 대놓고 싫어하면서도 ‘마녀’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었지.
설정상의 이은솔과 오래 교류하며 일종의 미운 정을 쌓아서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진짜 마녀’의 정체를 알았거나,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 끼이익! 찰박!
반쯤 부서진 나무 의자에 앉은 절세 미녀, 엘레나가 다소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토마스가 죽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그래.”
“이 사람은 일종의 ‘보스 소환 트리거’ 같았거든요.”
엘레나도 느꼈구나.
그냥,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토마스의 존재 자체가 괴이하다.
횃불 들고 날 태워죽이겠다고 난리인데, 정작 본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
101호에 처음 진입하던 시기라면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 내겐 호접몽이 있지.
이런 인간 10명이 와도 날 해칠 수 없다는 의미야.
호텔은 이런 NPC를 왜 배치했는가?
“언니, 어차피 다들 도망갔으니 편히 말해볼게요. 토마스는 결국 교황청의 하수인이고, 교황청은 이 시대의 유사 관리국이죠. 유럽만 관리 중인 것 같긴 하지만.”
“…”
“교황청이 세상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미래의 관리국처럼 세밀하게는 할 수 없어요.”
“능력이 그 정도는 아닐 테니까. 기술도 부족하고, 자원도 부족하고.”
“이단심문관은 말하자면 광산 안의 카나리아 같은 사람들이죠.”
광산 안의 카나리아.
과거, 광부들은 카나리아나 문조 같은 작은 새를 광산 내부에서 키우면서 일종의 ‘공기 측정기’로 이용했다.
공기의 질에 인간보다 훨씬 민감한 카나리아가 죽으면 위험 상황이라는 것.
이단심문관의 역할이 이와 유사하다.
훈련받은 일반인을 유럽 전역에 뿌려두고 주기적으로 보고받으며 소소한 ‘타락’은 그들이 직접 심판하게 한다.
만일 그들이 죽어서 정기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험 상황이라는 의미다.
“설정상, 에른하임에는 이미 신전기사가 파견되어 있었어요.”
차진철을 말한다.
“무슨 의미일까요?”
“교황청이 이미 에른하임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네.”
“그렇죠. 그 상황에서 차진철이 죽었고, 후속 파견한 이단심문관도 죽었네요.”
“…”
교황청이 파견한 카나리아가 전부 죽었다.
그러므로 곧 ‘진짜’가 온다.
“보스겠죠?”
“아마도.”
“그러면 마녀는 뭘까요? 걔도 보스 소환 트리거의 일종?”
“글쎄….”
자리에서 일어서며 엘레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니까 음, 뭔가 미안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 같아.
엘레나가 어떤 동료야?
충전을 끝낸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는 가인이, 자정의 미로 정도를 제외하면 파티 최고의 무력이지.
그런 엘레나가 배치된 시련의 보스는 어느 정도 괴물일까?
“… 그, 엘레나.”
곧 교황청이 보낼 ‘심판자’의 정체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사실은 짐작했다.
그것과 엘레나의 싸움에서 난 방해물에 불과하겠지.
“가세요.”
“… 미안.”
“왜 미안해요?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인데. 언니는 마녀를 담당하셔야죠.”
“…”
“언니, 들어봐요.”
“응?”
무슨 할 말이 있나?
“첫날, 가인 씨 편지 받은 이야기 했었죠?”
“응. 우리 둘이서 진행하라고 했다며.”
“그 편지 덕에 진철 씨가 탈락한 이유를 알았죠.”
필시 이집트 파티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이겠지.
시간대여기의 특성을 고려하면 답이 나온다.
“그걸 겪고 든 생각인데….”
“무슨 생각?”
“열차, 열차는 하나의 레일을 쭉 따라가죠.”
“…”
“고대 이집트, 중세 유럽, 근대 미국, 현대 한국. 모두 하나의 레일이에요. 이전의 일이 이후에 영향을 주는 그런 구조.”
“짐작하고 있어. 약간 나비효과 같은 느낌이네.”
“나비효과? 표현 좋네요. 그 부분을 서로 생각해봐요. 그럼, 화이팅!”
“화이팅!”
— 탈칵!
혼란에 빠진 에른하임을 거닐며 ‘나비효과’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집트에서 벌어진 부정적인 나비효과가 시작하자마자 차진철을 죽였다.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어.
우리가 보스를 처치하는 데 실패하는 등의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만든다?
그 후폭풍이 아리와 묵성 할아버님을 힘들게 만들겠지.
“…”
반대로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유도할 수는 없을까?
수백 년 후에 도래할 동료들을 위한 씨앗을 뿌릴 수 있다면, 이후의 일이 편해질 텐데!
“… 아.”
생각이 여기에 닿는 순간,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다.
*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사방에 가득한 보따리였다.
“발렌티나.”
“왔구나!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왔어! 축하해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그럴 시간이 없어. 빨리 짐을 싸자.”
얼마 없는 가재도구와 설정상 사별한 남편이 남겼다는 금붙이, 약간의 식량.
“피난 준비라도 하는 거야?”
“당연하지! 마녀가, 음, 심문관님을 죽였잖아? 이대로는 우리도 위험해. 당장 에른하임을 벗어나서 -”
“글쎄, 마녀가 다른 사람을 다 죽이는 한이 있어도 너와 날 죽이진 않을 것 같은데.”
발렌티나가 돌처럼 굳었다.
“마녀에게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녀를 ‘데리고’ 도망가자는 이야기지?”
“이은솔.”
“언제부터 알았어?”
“… 2년 전에.”
“그래, 그래. 우선 소피아와 이야기를 해야겠네.”
요 며칠간 마녀가 보인 행적을 돌이켜봤다.
난데없이 패밀리어를 보내 브루노를 잔혹하게 죽인 행동.
이것만 보면 날 함정에 빠트리려는 것 같았어.
그런데, 정작 고양이를 실제 만나자 다른 사람이 오고 있으니 도망가라고 경고했었지.
여기에 더해 오늘 보인 극단적인 모습을 더하니 답은 명확했다.
패밀리어의 말마따나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엄마!”
방실방실 웃으며 방에서 나오는 귀여운 소녀.
설정상의 내 딸이며 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마녀, 소피아.
“…”
고발을 통해 날 위협하니까 브루노를 죽였다.
날 화형대에 세우려 하니까 이단심문관과 그 수행원들을 죽였다.
죽인 후의 후폭풍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어리니까, 이후의 일까지 생각할 판단력이 없으니까.
“엄마아~! 엄마! 오늘 괜찮았지?”
“… 소피아.”
사람을 여럿 죽였으면서도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습.
분명,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
왜 교황청이 이 악물고 마녀를 죽이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오늘, 한 가지 사과해야겠네.”
“응?”
아예 인간의 마음이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엄마인 날 사랑하고, 고모인 발렌티나도 사랑한다.
사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유대감 정도는 느낄 수 있다는 의미.
다만, 그런 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해선 일말의 자비가 없을 뿐.
“소피아의 고양이 말이야. 어쩌다 보니까 죽였네.”
“티미? 괜찮아! 말하는 고양이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
“…”
“… 아.”
어린애 아니랄까 봐 5초 만에 본인이 마녀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처음부터 이 애를 의심했다면, 시련 시작 당일 눈치챌 수도 있었을 텐데.
미리 알았다면 전개가 좀 달라졌을까?
“엄마, 으응, 그게 있잖아….”
당황, 놀람,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소피아, 엄마가 널 혼낼까 봐 무서워?”
“… 난 엄마를 지킨 것뿐이야.”
변명하듯 말하는 소녀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나에게 혼날까 봐 걱정하는 행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 양심의 많은 부분이 결여된 소녀지만, 본인의 행동이 ‘남이 볼 때 사악한 행동’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소피아는 결코 선량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선량한 사람을 흉내 낼 수는 있다.
“소피아, 이리 오렴.”
“응!”
“…”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한 소녀, 소피아를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우리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동료.
혼자서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바둑을 두는 사람.
“…”
가인이를 조금 흉내 내보기로 했다.
207호의 반만년 역사를 설계해보려는 위대한 – 혹은, 오만한 바둑 기사(棋士)의 솜씨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200년, 300년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
“… 에른하임에서 최소 2급 이상의 혼돈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신전기사 차진철은 물론, 이단심문관 토마스 토르퀘마다가 당했습니다.”
“포르투나(Fortuna)를 풀어라.”
“포르투나? 그렇다면 그레이 가문은 -”
“두 번 말하지 않겠다.”
*
– 엘레나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벽에 걸린 조각상은 마치 날 암살하려는 듯 정교하게 미끄러졌다.
맛있게 구워진 버터 발린 빵은 기묘하게 미끄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여태 한 번도 스친 적 없던 탁자의 모서리가 오늘따라 예리하게 내 옷을 찢었고, 쉬려고 앉은 의자는 갑자기 다리 한쪽이 썩어있었다.
이런 예시 하나하나를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불운이 끝없이 닥쳤다.
어느 시점부터는 가문 사람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는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기에 아침부터 쏟아지는 빗방울 덕에 저택 주변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빗방울을 뚫고 십자가의 형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교황청에서 사람을 보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에른하임의 주인, 그레이 공작은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며칠간 불안했는데, 이제야 교황청에서 토벌대를 보냈구나!”
“…”
“재판정에서 마녀가 도망갔다기에 매일 밤자리가 불안했는데, 얼마나 다행이냐?”
“…”
“엘레나, 가서 같이 인사라도 드리자꾸나.”
“그렇게 해요.”
공작의 태연함에는 분명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사악한 마녀가 도시를 혼란케 했을 뿐이지, 그레이 가문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가문에는 주님의 은총을 받은 딸까지 있다!
도시 관리 소홀과 관련한 약간의 문책 정도는 있겠지만, 그 정도야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
어둠 속에서 ‘그’가 나타났다.
칠흑 같은 갑옷을 두른 기사가 석궁을 드는 순간까지도 공작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 슈우웅!
번갯불처럼 날아든 화살이 공작의 머리를 꿰뚫는 순간, 깨달았다.
교황청이 그레이 가문 또한 ‘타락했다’라고 판정했음을!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설정상 나보고 뭐, 은총 받은 딸이라며?
주님의 딸을 이렇게 공격한다고?
아니면 혹시 –
— 슈웅!
다음 화살이 내 쪽으로 날아옴을 깨달았을 때 –
「‘정당방위’가 발동합니다.」
별처럼 빛나는 황금 저울이 단박에 화살을 으스러트리며 기사에게 날아들었다.
“어?”
기사가 저울을 막아냈다? 피해냈다?
아니다.
그는 그냥 일직선으로 걸어올 뿐인데….
저울이 그를 비껴갔다.
오전 내내 그랬듯이, 나는 이번에도 운이 없었다.
혹은, 상대가 지독하게 운이 좋았다.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TXT viewer control
괴담 호텔 탈출기-4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