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499)
EP.499 499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
499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일 차
현재 위치 : 207호, 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열차는 선로를 따라 끝없이 달려간다.
진철 형과 은솔 누나, 엘레나가 내린 두 번째 역을 떠난 지도 꽤 오래되었다.
— 덜컹! 덜컹!
할아버지는 시련을 앞두고 오랜만에 긴장했는지, 잠시 혼자 있겠다며 열차 뒤 칸으로 이동했다.
덕분에 지금 내 앞에는 얼굴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하는 소녀가 앉아있다.
“관문의 방의 구조에 대해 고민해봤어.”
“…”
“고심 끝에 두 가지를 떠올렸어. 첫째, 파티가 쪼개졌어. 다른 방을 생각해봐. 대부분 시작 위치가 다른 정도고, 요령이 생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할 수 있었지.”
“그렇네. 이번처럼 아예 다른 시련에 떨어지는 건 처음인가.”
“둘째, 열차에서 시작한 이유가 뭘까? 그럴 필요가 없었잖아?”
“그렇지.”
모두가 서로 다른 시련을 겪어야 하며, 각자 어떤 시련에 떨어질지는 정해져 있다.
평소의 호텔 같으면 시작하자마자 각자의 위치에 던져버렸을 것.
굳이 열차에서 각자의 ‘정거장’에 내리는 시스템을 만든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애초에 상인이 시작하자마자 강조하기도 했고.
“어느 순간 깨달았어. 어쩌면 우리는 큰 틀에서 하나의 시련을 해결 중인 게 아닐까.”
“…”
“첫 시련은 아주 오랜 과거, 이후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련이 시간상으로 연결되는 거야. 각각의 정거장이 서로 다른 장소 같지만, 사실 레일을 통해 연결된 하나의 세상인 것과 같아.”
“…”
“이렇게 생각하면, 파티는 쪼개진 게 아니야. 그동안은 공간적으로 분리된 채 시작했다면, 이번엔 시간상으로 분리되었을 뿐이지.”
조금 감탄했다.
이 사실 자체는 나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나는 통찰로 본 다양한 장면을 모아 내린 결론이잖아?
아리는 열차라는 배경을 보고 혼자 생각해서 알아냈다.
“역시, 넌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툭 찌르는 느낌이라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하지 않았어. 내가 얻은 정보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말은 진심이다.
통찰로 얻는 정보는 모두 가능성 혹은 확률의 영역에 불과하고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통찰은 ‘시나리오 이해’의 궁극적 강화다.
시나리오 이해가 가장 뚜렷한, 혹은 호텔이 의도한 하나의 시나리오를 글로 보여줬다면, 통찰은 가능한 무수한 시나리오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느낌.
아리는 내 변명을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미리 봤으면 이 정도는 그냥 모두에게 말해주는 게 낫지 않았어?”
통찰을 통해 본 정보를 동료들과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유하는 순간 동료들의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내가 본 가능성이 삽시간에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게 되면 통찰은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공유한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새로운 가능성이 무너지고, 통찰은 ‘또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다는 것.
무의미한 순환을 끊기 위해선 정보 공유를 멈추는 수밖에 없다.
통찰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 아리는 물론 다른 동료들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래서 동료들 또한 내게 이것저것 알려달라고 채근하지 않았다.
“알잖아.”
“알지. 왜 말해주지 않는지. 그래도, 옆에 있다 보니 은근히 짜증 나서.”
정보의 독점.
소통의 단절.
어쩔 수 없는 비밀들.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인데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 넌 진짜 관리국 요원 같아. 정확히는 ‘침묵하는 자’ 같다고 해야 하나?”
처음 듣는 단어다.
“그게 뭔데?”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관리국 수뇌부.”
관리국 수뇌부, 침묵하는 자(The Silent).
“… 내게 말해줘도 돼? 뭔가 개념 자체가 극비사항 같은데.”
그녀는 대답 대신 조용히 창가에 기댔다.
마치, 새삼스레 이런 것 하나하나를 따지냐는 것처럼.
“나한테는 편지 안 줘?”
“음?”
“상현이에게 줬지? 엘레나에게도 준 것 같던데.”
“…”
“나는 뭐 줄 거 없어? 아자 아자 화이팅이라도 좋은데.”
“푸읍!”
놀라서 마시던 물을 뱉었다!
아니, 아자 아자 화이팅을 얘가 어떻게 알아?
설마 엘레나가 편지를 몰래 열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 –
“엘레나는 몰라.”
“…”
“나만 알아.”
“아니, 엘레나에게 준 편지를 엘레나는 모르는데 왜 너만 아는 거야?”
“엘레나가 졸고 있을 때 슬쩍 열어서 확인했어.”
말문이 막혔다.
“… 미로도 아니고 그런 짓을 왜 하는데?”
“미로 딸이잖아.”
빙글빙글 웃는 아리를 보고 있으니 나도 같이 웃음이 나와서 더 화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편지나 해줄 말 없어?”
“없어.”
“왜? 설마 지금 삐져서는 아니지?”
삐져서라니….
얘는 내가 진짜 미로나 승엽이인 줄 아나?
솔직히 말해주자.
“확실하게 본 게 없어. 아리 네게 정신을 집중할 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이 슬라이드 쇼처럼 휙휙 넘어가는데, 그 장면들의 공통점이 없어.”
아리가 반쯤 입을 벌린 채 되물었다.
“뭘 봤는데? 어차피 무의미한 정보를 봤으면 말해줘도 되겠네.”
가치 있는 무언가를 봤다면, 그 정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말해줄 수 없다.
이 말을 뒤집어 보자.
무의미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을 봤다면 말해줘도 된다는 의미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어떤 때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푸른 하늘 아래를 걷는데, 또 어떤 순간엔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폐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 조금 후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은 채 허름한 강의실에 앉아있어. 여기서 또 -”
“그만, 그만. 이해했어. 여러 가지 이미지가 마구 뒤섞여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 말이지?”
“정확해.”
아리가 작게 한숨 쉬었다.
“왜 나만 그 모양 그 꼴이야?”
“… 어쩌면.”
“어쩌면?”
“이런 생각도 해봤어. 나는 의미 없는 정보를 보는 게 아니다. 실제로 아리 네겐 저 모든 장면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푸른 하늘 아래를 걷는 순간.
모든 것이 파멸한 폐허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순간.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채 허름한 강의실에 앉아있는 순간.
이 모든 일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면 –
“아, 여전히 잘 모르겠네.”
통찰을 쓴 나부터가 혼란스러운데, 한 다리 건너서 듣고 있는 아리는 더 심하겠지.
곧, 아리는 포기한 표정으로 주제를 바꾸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자. 모든 시련은 시간상으로 연결되어있어.”
“그래.”
“한데, 그 시간적 간격이 꽤 넓어. 첫 시련은 대충 생각해도 최소 몇천 년 떨어져 있잖아. 이후로도 수백 년은 기본이고.”
“그렇지.”
“이 간격을 넘어서 합류할 방법이 있을까? 전원이 아니라 몇 명이라도.”
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있는 건 확실하다.
‘미로가 나와 함께 시련을 진행하는 가능성’을 보았으니까!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시련마다 있을지도 모르지.”
“…”
“찾아봐야겠네.”
이 정도로 내게 할 말은 끝났는지, 아리가 일어섰다.
같이 시련을 진행할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긴장을 풀고 의자에 기대려는 순간.
— 타앗!
“으읏! 왜 이래?”
아리가 갑자기 확 다가왔다!
지나치게 가깝다.
가뜩이나 현실감 없는 눈동자가 붉게 빛나기까지 하니 아찔했다.
본능의 영역에서 상태창을 확대해 시야를 가리려는 순간,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아리가 다시 멀어졌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어 바라보자 아리가 싱긋 웃었다.
“방금 어땠어?”
“… 놀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냥 사람 같네.”
이렇게 보니까 사람 같다.
다르게 보면 사람 같지 않다는 의미일까?
“새삼스레 인간성을 지키라는 식의 유치한 말은 하지 않을게. 그냥, 이 정도만 말해주고 싶었어.”
“듣고 있어.”
“206호 후반부에 신성한 태양과 관련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지?”
깨달음?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거창한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한 신성한 태양을 다시 수단으로 되돌렸을 뿐이다.
“명심해. 넌 비슷한 함정에 또 빠졌을지도 몰라.”
“…”
“그럼, 나 이만 가볼게. 묵성이랑도 이야기 좀 해봐야지.”
같은 함정에 또 빠졌다라….
이번에 날 함정에 빠트린 힘은 통찰이라는 말을 하는 건가?
곧, 아리가 떠나며 혼자 남았다.
관문 열차에 처음 탔을 때처럼 바깥 풍경은 어둠으로 뒤덮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열차 창문은 사실상 탁한 거울이나 다름없는 상황.
거울을 본다.
거울이 비추는 나를 본다.
“…”
통찰로 관측한 동료들의 가능성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었다.
아리처럼 극도로 복잡한 경우는 드물었지만, 다른 동료들 또한 쉽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니까.
여기에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한가인’이다.
모든 이가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운명을 품고 있건만, 내 운명은 단 하나다.
“…”
거울에서 – 찢어지고, 흩어지고, 조각난 나를 본다.
자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잘게 흩어져 별 전체에 흩어진 나를 본다.
“후우….”
다시금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바둑판 앞에 앉았다.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하나.
내 미래를 바꾸는 것!
「세 번째 시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
「세 번째 시련 – 미스카토닉 대학」
– 김아리
“…”
창가에서 내리쬐는 빛을 느끼며 깨어났다.
곧, 흐릿한 알림이 3초간 깜빡였다.
「지금부터 참가자의 축복을 봉인합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상대로 축복 봉인이네.
하긴, 묵성이는 ‘원 모어 찬스’를 얻었고 나도 ‘부등변다면체’를 얻었잖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유산을 봉인하는 건 상도덕이 없어도 너무 없지.
— 삐걱!
다소 허름한 방,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보아하니 그다지 풍요로운 환경은 아니다.
디너파티에선 제법 그럴듯한 드레스를 입은 채 깨어났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다르네.
침대 옆에 있던 탁자 위를 살피니 자그마한 책자가 있었다.
마치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라는 느낌.
…
공간적 배경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대도시, 아캄(Arkham) 시에 있는 ‘미스카토닉 대학’이다.
시간적 배경은 1897년이며, 내 신분은 설정상 대학생이다.
“1897년 시점에서 여대생이라니.”
지금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다.
여성이 대학을 가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시대.
그러므로 내 신분 자체에 뭔가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이 정도 생각하며 기숙사를 나섰다.
*
미스카토닉 대학의 분위기는 간단히 말해 음울하고 섬뜩했다.
하늘부터가 우중충한 먹구름으로 가득했는데,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 몇몇을 붙잡아 물어보니 요즘은 계속 저 날씨라고 한다.
여기에 사방에 전시된 기괴한 생물의 뼈와 – 하나같이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 피로 그린 것처럼 끔찍한 그림들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멀쩡한 사람도 이런 대학을 반년만 다니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생들 자체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 같았다.
날 볼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남학생들을 보니 확실하다.
“저기요. 음, 죄송한데 시간 있으신가요?”
“으엇! 무, 물론입니다, 레이디!”
레이디는 무슨 레이디!
무슨 파티 왔어?
옷깃만 잡았는데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청년을 붙잡고 대학에 관한 정보를 조금 수집했다.
“하, 학교요? 아리 양! 미스카토닉 대학은 1797년에 설립된 뿌리 깊은 종합 대학으로 -”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저…. 토마스 씨, 전 어느 학부로 가야 할까요?”
물어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내가 어느 학부 소속인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겠 –
“하하! 농담이시죠? 아, 혹시 저보고 맞춰보라는 이야기입니까? 쉽죠! 아리 양은 분명 ‘신비학부’ 소속입니다. 맞죠?”
“…”
신비학부?
듣기만 해도 이게 뭔가 싶네.
“신비학부는 세상에서 가장 괴이하고 신비한 학생들이 모여들지요. 아리 양은, 음, 누가 봐도 신비학부 소속이십니다.”
“… 그런가요? 그러면, 학부 위치를 알려주세요.”
“저쪽 플래태너스 나무 보이십니까? 오른편으로 꺾어서 -”
대화가 끝날 때쯤, 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기, 아리 양. 나중에 연락할 수 있다면 -”
“안녕히 계세요.”
*
친절한 토마스가 알려준 ‘신비학부’의 건물로 다가가며 깨달았다.
미스카토닉 대학의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 대부분은 바로 요 일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교수랍시고 살아있는 해골이나 뱀파이어가 나와도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
동기로 추정되는 주변 학생들을 따라 정체불명의 강의실 앞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잠시 멈춰야 했다.
강의실 문에 이런 명패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악마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