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
49화 – 막간, 즐거운 청문회 시간
49화 – 막간, 즐거운 청문회 시간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2]
허억.. 허억…
아찔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주’를 만났다. 호텔의 알림이 뒤틀렸다. 마치 동물농장 때처럼? 아니. 다르다.
동물농장 때의 변화는 돌이켜보면 우리가 ‘다음 단계’, 말하자면 페이즈 2로 넘어가니까 호텔 스스로 명칭을 바꾼 느낌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흡사 ‘해킹’이라도 당한 듯한 뒤틀림. 이런 일은 명백히 처음이다.
대체….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천상의 옥좌. 세상의 주인.
그리고 – 황금의 빛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빛. 빛. 빛.
머리 안쪽에서 빛의 폭풍이 몰아침을 느낀다. 양손으로 머리를 붙들고 덜덜 떨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 생각하지 마.”
“아리…. 너 탈출했구나.”
“얼마나 고생했는지 상상도 못 할 껄? 나오자마자 이번에도 한대 패주려 했는데. 너 상태 보니까 화가 풀리네.”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았다. 어딘가 청량한 감각. 마치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갔다가 빼낸 듯한 감각과 함께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어머, 이건 또 어떻게 한 거야? 팔찌의 기능?”
“아리 네가 알아서 뭐 하게?”
“…”
“송이야 고마워. 나도 궁금한데 나한테 뭘 한 거야?”
“뭘 했다기보다는, 오빠의 감각? 이런 부분이 조금 뒤틀어져 있어서 바로잡았어요. 그게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건 의학보다 훨씬 대단한 힘이라고 장담해.”
조금씩 혼란이 잦아들어서 일어서서 주변을 돌아봤다. 송이와 아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 전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를 의식해서인지 다들 조용히 105호로 향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나는 주기적으로 발작적인 두통과 혼란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송이는 내 정신을 계속 안정시켰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는 걸까.
105호에 도착할 때쯤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건가? 새삼스럽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여러분은 괜찮으세요? 승엽이는 넋이 나갔다 쳐도, 진철 형이나 송이는 꽤 힘겹게 싸우다가 죽었을 것 같은데?”
“글쎄다. 나는 오히려 지금 가인이 네 상태가 의아하네.”
“네?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가 지금껏 겪은 일을 생각해봐.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웬만한 사람들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끔찍한 고통과 죽음의 연속이었지. 그런 것 치고는 다들 평소엔 멀쩡한 상태고. 그래서 난 그냥 트라우마나 PTSD 같은 것까지 호텔에서 자동으로 고쳐주는 게 아닌가 했거든.”
“사실 나도 진철이처럼 생각해.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느끼지 않았나? 토 나올 정도로 끔찍하게 죽었어도, 일단 호텔 방에서 나오기만 하면 내가 겪은 일이 아닌 느낌? 그냥 책에 적힌 글을 보는 느낌만 남았거든.
물론 절대 즐거운 기억은 아니고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긴 하지만, 지금 너처럼 극심한 증세가 나타난 적은 없어.”
“내가 약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는데.”
아리.
놀랍지 않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대답할만한 사람은 아리가 아니면 묵성 할아버지뿐이겠지.
“관리국에선 그간 몇 차례 호텔의 생존자에게 정보를 얻었는데, 다들 진철 오빠나 은솔 언니와 똑같이 말했어. ‘아무리 끔찍한 경험을 했어도, 일단 나오기만 하면 그 경험은 단순한 문자의 나열처럼 떠오를 뿐, PTSD나 정신적 후유증이 크게 남진 않았다.’
애초에 팔다리가 떨어지고 내장이 으깨져도 의사를 보내서 전부 치료해주는 데다가, 저주의 방에서 죽어도 부활시켜주는 호텔의 특성상 정신적 부상도 다 고쳐줄 수 있다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지금 가인 오빠는 호텔 내에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그러면 뭐가 원인이지?”
“스스로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할게. 아까부터 너에게 소름 끼칠 정도의 힘이 들끓는 걸 느껴. 대체 뭘 얻었지?”
뭔가를 얻었다. 그것이 이 발작의 원인.
‘너에게 빛을 내렸노라.’ 그 말과 함께 나에게 빛이 스며들었다.
“자. 자. 일단 이쯤 하자. 대충 보니까 가인이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지금 물어봐야 그럴듯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네. 마침 시간 보니까 딱 저녁 식사 직전이야.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언니 말이 맞아요. 그리고, 순서는 바로잡아야죠. 가인 오빠보다 먼저 대답할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긴장감이 감돈다. 목장에서 나온 이래로 송이는 항상 아리를 견제하는 티를 냈지. 이젠 나도 똑같은 생각이다. 시련이 반복되는 호텔에서 웬만하면 서로의 분쟁이 생길만한 요소는 피하고 싶었지만, 이젠 한계다. 더 덮는 게 오히려 신뢰를 깨트릴 정도까지 왔다.
자연스럽게 6명의 시선이 아리와 묵성 할아버지로 향했다.
마치, 2:6의 구도. 미묘한 긴장감.
“푸흣. 이 분위기 뭐야? 그렇지 않아도, 오늘쯤엔 털어놓을 건 다 털어놓을 생각이었으니까 무섭게 바라보지 마요. 들어가서 일단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그래. 일단 우리 뭐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우리 지금 싸우려는 게 아니잖아? 그냥 서로 알아야 할 건 알자 이런 취지야. 들어가자”
다행히 은솔 누나가 호응하며 긴장이 수그러들었다.
*
은솔이 생각하기에 이 호텔은 참가자들의 모든 불만을 식사로 무마하는 느낌이다.
호텔에 대한 욕을 하루에 30번 정도 하다가도 식사 시간마다 욕이 사라진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모든 음식이 다 맛있을까?
호텔의 식사는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다양하게 섞여 나올 때도 있고, 통일된 컨셉이 있을 때도 있는데 오늘 저녁은 바비큐 컨셉이다. 거대한 그릴에서 다양한 고기가 구워지는 상태였고, 그릴 자체가 돌아가며 고기를 알아서 구우니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몇 주간 호텔에 살면서 우린 꽤 요령이 늘었다.
예컨대, ‘부끄럼 많은 직원’의 활용.
처음에 잘 몰랐을 때는 먹던 음식이나 음료가 떨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 같이 방을 나갔다 오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알았다. 그렇게 불편하게 전원이 나갈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냥 모두의 ‘시선’에서만 벗어나면 되는 것. 음료나 음식을 리필 받고 싶으면 그냥 컵이나 접시를 살짝 탁자 밑에 내렸다가 올리면 그만이다.
한참 동안 내부는 부드럽게 분홍색 미디엄 레어를 유지하며, 바깥은 바싹하게 구워진 양갈비를 민트젤리와 섞어서 정신없이 먹다 보니 새삼 감탄이 나온다.
대양 그룹의 딸로 태어난 덕에 살면서 미식의 경험은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수준은 정말 대단히 높다.
덕분에 모두의 긴장이 가라앉았구나. 다행이다. 언젠가는 결국 혼돈재난관리국의 두 요원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가 절대 파국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호텔은 너무나 위험한 장소.
우리가 분열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고, 하필 두 요원은 정체불명의 저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어떻게든 대립을 막고 끌어 들어야만 하는 존재들.
딱, 지금이 좋을 것 같다. 좋은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 힘든 대화일수록 음식이라도 맛있을 때 해야 술술 풀리지 않겠는가.
“자~ 이제 다들 배는 슬슬 채웠으니, 서로 궁금한 이야기들 조금씩 해보는 게 어때?”
기다렸다는 듯이 아리가 수저를 내려놨다.
“으음. 이제 저와 할아버지의 청문회가 시작되는 건가요?”
“청문회? 우리 그런 표현은 하지 말자. 여기서 무슨 장관 뽑아? 그냥 서로 속을 좀 털어놓자는 거지.”
“좋아요.”
그렇게, 청문회가 시작됐다.
*
먼저 아리가 입을 열었다.
“일단, 스스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 그 후에 여러분이 질문하는 걸로. 여러분이 궁금한 점이 무엇일까? 크게 3가지 아니겠어요? 1. 저는 누구인가? 2. 제 목적은 무엇인가? 3. 제가 가진 힘은 무엇인가?
첫째, 전 호텔에서 태어났어요.”
…
시작부터 폭탄 발언에 전원 말문이 막혔다.
“제 어머니는 오래전에 호텔에 선택된 사람이고, 이 안에서 절 낳으셨죠. 혹시 이상한 생각 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머니 스스로 원했으니까. 그리고 전 여기서 자라면서 이런저런…. 힘들을 얻고, 탈출했다가 돌아왔어요.
대체 이 답 없는 장소로 왜 돌아왔냐? 그게 두 번째의 답이겠네요. 전 어머니를 호텔에서 해방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부활.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고통스러운 윤회에서 해방해서 안식을 드리는 것.
세 번째. 제 ‘축복’은 이미 짐작하시죠? 최면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런저런 마음과 관련된 효과가 있고, 강력한 효과를 발현시키려면 제 피를 써야 하죠. 이미 두 번이나 제 피를 마신분도 저쪽에 있고.
대충은 말한 것 같은데? 더 궁금하신 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해했어. 힘내길 바랄게. 꼭 어머니를 구할 수 있길 빌어. 그런데, 세 번째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난 분명히 네가 ‘날아와서’ 내 목을 잡았던 걸 기억하거든. 내가 ‘최면’의 뜻을 모르는게 아니라면, 거기에 ‘비행’이 포함되지 않았다는건 장담할 수 있어”
“저도 나름대로 비장의 수가 있다 정도로 정리하죠.”
“누구 마음대로 정리한다는 거야?”
“그러면, 너는 앞으로 팔찌의 숙련도를 높일 때마다 뭘 할 수 있게 됐는지 매번 다 이야기해줄 생각이야? 아까 가인이를 ‘치유’한 것만 해도, 그런 이적이 가능하다는 말은 예전에 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내 이야기로 틀어? 내가 의도적으로 숨기는 게 아니라, 나도 실시간으로 팔찌를 쓰면서 깨닫는 중이니까 말을 못 한 것뿐인데 무슨 -”
“애초에, 왜 내가 너한테 내 모든 힘을 다 말해야 하지? 내가 그간 의도적으로 널 위협하기라도 했나?”
——-쾅!
“잠까아아아안! 송이, 아리 둘 다 일단 조용! 우리는 싸우려고 대화 중인 게 아니야. 서로서로 더 믿을 수 있게 필요한 이야기는 털어놓자. 그런 취지인 거지!
다들 제발 잊지 말아줘. 이 호텔은 지옥이고 우린 같은 배에 탄 8명의 선원이야. 다 같이 뭉쳐도 지옥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싸워서 뭘 어쩌려는 거야?”
식탁에 침묵이 자리 앉았다.
“크흠. 이거 분위기가 써늘하구먼. 우선, 아리가 말이 거칠었으니 내 대신 송이 양에게 사과하겠소. 오해하지 말았으면 할 점은, 아리가 결코 여러분을 해치려고 뭔가를 숨기는 게 아니라네.
우리 ‘관리국’은 아무래도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조직이고, 당연히 요원들의 능력도 그 비밀에 속하거든.
우리를 믿기 힘들다면, ‘관리국’을 믿어주게. 적어도 우리는 ‘대재해’ 이후로 세상의 혼란을 가라앉히는데 크게 이바지해 왔으니까.”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큰 틀에서는 은솔 누님 말도 이해합니다. 우린 여기서 결코 싸우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서로 비밀이 많을수록 신뢰가 생기기도 어려운 법이죠. 묵성 어르신도 좀 털어놓으시죠.”
“좋지. 나도 그게 편해. 아리처럼 내가 누구고, 목적이 뭐고, 가진 힘이 뭐다 순서로 말해보지.
나는 아리처럼 호텔에서 태어났다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세상 잘 살다가 어쩌다 보니 관리국에 투신해서 일하게 된 사람일세.
목적은 그냥 툭 까놓고 숨김없이 말하지. 난 관리국의 명을 받고 온 사람이야. 아리처럼 개인적인 목적이 따로 있지 않네. 즉 내 목적은 곧 관리국의 목적이자, 입장이지
관리국은 이 호텔에서 ‘현실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우릴 파견했네. 그게 유산인지, 축복인지, 뭔지는 몰라. 그냥 그걸 어떻게든 구해오는 게 내 목적이야.”
“현실을 안정시키는 힘? 그게 대체 뭡니까”
“모른다고 말했잖나. 이건 숨기는 게 아니야. 관리국도 몰라. 다만 그 힘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유용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고 해두지.”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사실만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내 능력. 역시 숨김없이 말하지. 그런 거 없네. 자네들도 아는 대화창 말고는 없어.”
아리 때와 다르게, 다들 수긍하는 기색이다. 은솔 누나가 화답했다.
“솔직히 그럴 것 같긴 했네요. 요번 ‘학교’에서 제가 어르신하고 같이 일하면서…. 주기적으로 어르신을 관찰했거든요.”
“젊은 처자가 날 스토킹했다니 부끄럽구먼.”
“… 특히 탈출하던 날에 보니까, 상대가 총 들고 나타나서 쏴 죽이는 순간까지도 어르신이 그냥 픽 죽으시길래 아. 이 분은 딱히 초능력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네요.”
“그건 좀 슬프구먼. 의심이 가지 않는 이유가 무능해서라는 말 아닌가.”
“자꾸 제 말을 이상하게 꼬지 말아주시겠어요?”
“변명하자면, 아니 이거 이상한데? 내가 왜 무능한지 변명하는 느낌일세. 하여간 변명하자면, 관리국에 아리처럼 특수한 힘을 가진 경우가 오히려 소수라는 점을 말해두지. 대부분 사람은 그냥 많은 지식과 적절한 훈련을 받은 평범한 사람일세.”
“저기.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승엽이도 말해봐.”
“가인 형 상태가 이상해요.”
정보의 폭풍 속에서 아리와 묵성에게 쏠려 있던 시선이 그제야 가인을 향했다.
그곳에는 온몸으로 은은한 빛을 내뿜는 소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