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0)
EP.500 500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2)
500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2)
– 김아리
곧, 로버트 교수의 강의가 시작됐다.
제목부터 거창한 「악마학개론」의 강의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일종의 ‘악마 퇴치법’ 같은 걸 가르칠 줄 알았는데….
“교황청은 세상에 가득한 신비를 모조리 악마(惡魔)라고 주장합니다. 늑대인간은 식인을 즐기는 괴물이다, 흡혈귀는 사람의 피를 포도주처럼 마셔댄다, 마녀는 태어나길 잔혹하게 태어났다.”
솔직히 대부분 맞는 말 아니야?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교황청이 전부 악마라고 뭉뚱그린 존재들은 사실, 무슨 같은 종족이 아닙니다.”
늑대인간은 흡혈귀와 동족이 아니다.
흡혈귀와 마녀는 유래와 기원이 전혀 다르다.
마녀는 예티, 천둥새, 그림자 인간 같은 이형의 괴물들 보다는 차라리 인간과 훨씬 가까운 존재다.
“그러니 ‘악마’라는 단어는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고양이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고양잇과 동물, 그렇지요, 사자나 치타, 호랑이나 표범까지 죄다 ‘비고양이’라는 틀에 넣어두고 ‘악마’라고 부르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정황상 ‘교황청’은 이 세계의 유사 관리국 같은데, 그래서인지 교황청에 대한 비판이 관리국에 대한 비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와중에 손들어서 반박할 만큼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교황청의 모순을 깨달은 현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우리의 기원은 무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
첫 번째 파티가 시작했던 시점이다.
뭔가 알듯 말듯 한데….
“물론, 개인적으로 여기까지 믿진 않습니다. 이 부분은 학생 여러분도 이해하시길. 왜, 신대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이 유럽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고 우기지 않습니까? 비슷한 겁니다.”
“하하하!”
“푸훗!”
로버트 교수의 말이 제법 우스웠는지, 강의실에 잠시 웃음꽃이 피었다.
미스카토닉 대학, 그중에서도 ‘신비학부’의 역사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로버트 교수가 생각하기에도 다소 황당한 모양이네.
실제로는 어떨까?
“오랜 세월, 구대륙에서 뜻있는 자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신비로운 운명을 타고난 이들은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했고, 신비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이들은 자유롭게 연구하길 원했습니다.”
신비로운 운명을 타고난 이는 마녀처럼 타고난 혼돈체를 말하는 것 같다.
신비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이는 혼돈체를 연구하는 학자를 말하는 건가?
“그러나, 구대륙에선 희망이 없었습니다. 교황청의 세력이 대륙 전체에 거미줄처럼 뻗어있었으니까요! 위대한 학장님께서도 교황청의 폭압으로부터 모든 이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위대한 학장?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위대한 탐험가가 신대륙을 발견한 겁니다!”
엄밀히 말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도 아니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야.
“누군가는 신대륙에서 황금을 찾았고, 누군가는 농장을 차렸지요. 위대한 학장님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자유입니다! 권리입니다! 인간이 아닌 이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땅, 모든 이가 타고난 운명을 향유 할 수 있는 땅!”
조금씩 강의실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로버트의 목소리가 열의에 찬 까닭도 있었지만, 그걸 떠나서 강의실의 학생들에게도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
슬슬, 교수는 물론이고 주변 학생들이 ‘어떤 존재’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학생 여러분, 미스카토닉 대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면, 모두 한번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 볼까요?”
— 부우욱!
연단에 선 로버트의 옷이 앞뒤로 부풀어 오른다.
단단하고 뻣뻣한 검은 털이 옷 틈새로 마구 삐져나왔고, 터질듯한 근육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얼굴의 변화였다.
주둥이가 무슨 맹수의 입처럼 툭 튀어나오더니, 톱날 같은 이빨이 시퍼렇게 돋아났기 때문이다.
로버트 교수는 늑대인간이다!
곧, 교실 전체가 이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뒤쪽의 여학생은 날카로운 뿔을 드러냈고, 건너편의 남학생은 피부가 벽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양서류와 사람을 뒤섞은 듯한 흉한 외형으로 변했고, 누군가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냈다.
모든 학생이 혼돈체는 아니었다.
오히려 숫자만 따지면 그냥 인간 학생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러나 인간 학생들조차 이형의 괴물들을 보며 놀라긴커녕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신비학을 연구하는 학자 집안 출신인 건가?
표정 관리하며 의자에 기대있던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네가 아리 맞지?”
시선을 돌리자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를 발견했다.
여기에 어깨 위에서 찰랑이는 금빛 물결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다.
“소문 들었어!”
소문?
나에 대한 소문이 있었어?
설정상 내가 꽤 유명한 존재인 건가?
“흡혈귀라면서! 나, 흡혈귀는 처음 봐서 너무 궁금해. 무언가 보여줄 수 없어?”
이게 설정상의 내 정체였구나.
‘오래된 피’는 과거, 심해의 호텔에서 미로가 흡혈귀를 죽이고 얻은 유산이라고 했었지.
“음, 나중에 기회가 되면 -”
“그러지 말고! 보여주면 안 돼? 난 에밀리라고 해! 반가워!”
천연덕스럽게 웃는 에밀리를 보던 중, 주변 시선이 내게 모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 혹은 괴물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뭔가 한번 보여달라는 분위기.
“…”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핏방울을 탁자 위에 올린 후, 핏방울이 스스로 S자를 그리게 했다.
무슨 서커스를 하는 기분이네.
“우와! 신기해!”
“혈마법의 일종인가? 말로만 들었는데!”
“학장님이 태양을 살짝 가리긴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멀쩡한데?”
“이봐, 고위 흡혈귀는 태양 빛도 버틸 수 있다는 말 못 들어봤어?”
“그래?”
대놓고 날 품평하는 분위기다.
그나저나 우중충한 날씨의 원인이 학장이었구나.
흡혈귀 말고도 꽤 많은 괴물은 빛보다 어둠에 친숙한 존재라 학생 배려 차원에서 낮에도 어두컴컴한 날씨를 유지 중인 건가?
“…”
비록 ‘미스카토닉 대학’이라는 국지 영역이긴 하지만, 날씨를 조종할 정도의 힘은 정말이지 보통이 아니다.
학장 또한 인간이 아닌 괴물인 걸까?
혹은 궁극의 지혜를 깨달은 대마법사?
어느 쪽이든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드는 순간 – 굉장히 익숙한 얼굴의 ‘청년’이 쓴웃음 짓는 모습을 보았다.
“아.”
조금 놀랐다.
내 기억으로 저런 모습은 거의 50년 전에나 봤기 때문이다.
*
「악마학개론」 이 끝난 후, 익숙한 얼굴의 청년과 둘이서 대화하기 위해 한적한 장소로 옮겼다.
“축하해!”
“… 무슨 말이냐?”
“회춘 축하해! 이야, 지금 완전 20대 청년 같은데?”
“…”
“우와~! 이런 모습 대체 얼마 만이야? 저주의 방에서도 본 적 없는데. 현실 기준 거의 50년 전에나 봤던 -”
“선배, 늙은이 티 좀 그만 내십쇼.”
— 빠각!
“으앗, 앗! 갑자기 로우킥을 – 아니, 아리 네가 먼저 요상한 소리를 했잖아!”
“… 이쯤 하자.”
분위기를 다잡은 후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미스카토닉 대학 신비학부가 뭐 하는 장소인지 대충 알았지?”
“뭐, 그렇지. 구대륙에서 교황청 등쌀에 못 이긴 놈들이 신대륙에서 기회를 잡아보려는 느낌인데?”
오랜 세월 교황청은 혼돈체를 악마라 외치며 토벌했고, 신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한 타락한 자라 말하며 태워 죽였다.
물론, 당하는 쪽에서도 최선을 다해 저항했겠지.
늑대인간이나 마녀처럼 혼돈체로 타고난 자, 혹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신비를 탐구하고 싶었던 학자들이 힘을 모았다는 이야기다.
종족은 다르다고 해도 ‘교황청의 탄압을 피하고 싶다’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테니까.
하지만 구대륙 전체를 장악한 교황청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 건너 신대륙으로의 항로가 개척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천하의 교황청도 신대륙까지 세력을 투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그래서 이놈들이 대놓고 대학까지 장악해서 세력을 키우는 모양인데…. 으음.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
“관리국 요원으로서 말해볼까? 괴물 놈들이 바다 건너에서 세력을 키우는 상황이니, 우리 둘이 일종의 테러리스트가 되어서 대학을 조져놔야 할 것 같은데.”
“관리국 요원 말고 호텔 참가자로서 말해봐.”
“그러면 모르겠다. 아리 너도 알다시피, 호텔이 항상 인간중심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
“이런 생각이 들어. 설정상 우린 인간이 아닌 것 같거든?”
“그렇지. 너는 고위 흡혈귀인 모양이고, 나도 뭐, ‘아브라스 전사의 팔’을 오랜만에 꺼내서 자랑 좀 했으니.”
“그러니까 대학 편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
관리국 요원으로서 이 타락한 괴물 소굴을 사보타주 해야 할까?
아니면, ‘고위 흡혈귀’라는 역할에 맞게 미스카토닉 대학 편에서 교황청의 음모를 부숴야 할까?
“어렵네.”
“어렵구먼.”
“~먼 같은 말투 쓰지 마. 할아버지 같잖아.”
“어렵구먼요.”
“… 원 모어 찬스, 회귀 시점 정했어?”
“시작하자마자 바로 지정했다.”
묵성의 유산, 원 모어 찬스는 한달 범위 내에서 회귀 시점을 지정해야 사용할 수 있다.
“학장.”
“…”
“심상치 않은 존재 같아. 강의 내용 들었지?”
로버트 교수의 말에 따르면, 미스카토닉 대학의 신비학부 학장은 정말이지 엄청난 존재였다.
최소 수백 년을 살아왔으며, 정확한 나이는 본인밖에 모른다.
종족이 인간인지 아닌지도 불확실하다.
심지어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신대륙으로 넘어오기 전엔 ‘적그리스도’라고 불렸다더군.”
“교황청이 붙인 멸칭이라 본인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 신대륙에 도착해서 대학을 세운 후로는 모두가 ‘학장’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학장은 최소 300년 이상 구대륙에서 교황청과 싸우며 세력을 모아왔다고 한다.
그 시절부터 모은 세력이 미스카토닉 대학 신비학부의 교수진 및 후원자들이다.
“교황청을 당해낼 정도는 아닌 것 같던데….”
“그야 그렇겠지. 이길 수 없으니까 신대륙으로 도망해 온 것 아니겠어?”
“물론, 교황청을 이 시대의 관리국이라 생각하면 혼자서 수백 년간 대치한 것만으로도 보통 괴물이 아니다.”
“하늘을 봐. 먹구름 보이지? 저것도 학장이 만든 것 같은데.”
“끄으응…. 선배, 학장 놈이 보스 같나?”
“글쎄, 아직은 모르지.”
학장이 세 번째 시련의 보스일까?
생각해보면, 호텔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할은 ‘혼돈체’니 학장은 아군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보스는 학장이 아니라 교황청 쪽에 있을지도….
“…”
“…”
나와 묵성이 동시에 고민에 빠지며 탁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곧, 여전히 본인의 젊은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으흠, 가만 있기보단 일단 움직이자. 아리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고.”
“어?”
“충격적인 걸 발견했다.”
*
묵성이 날 데리고 간 장소는 아침에 지나친 곳이었다.
“뭐야, 여기 이상한 해골들 전시된 장소 아니야?”
“정확히는 고생물 박제지. 공룡 뼈도 있다.”
“이런 걸 좋아했어? 공룡을 좋아하는 건 진철이 정도인 줄 알았는데.”
“…”
“농담이야.”
“나도 아침에 우연히 발견했으니, 넌 아마 놓쳤겠지. 한번 봐.”
곧, 청년이 손을 뻗어 제법 그럴듯하게 복원된 박제를 가리켰 –
“으악!”
놀랐다!
아까 강의실에서 교수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때도 놀라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이, 이, 이게 대체!”
“아리야, 나도 놀라서 널 데려온 거다. 이 ‘새’가 우리가 아는 그 ‘새’가 맞는 거지?”
페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페로다!
앵무새 상태였다면 비슷하게 생긴 다른 앵무새인 줄 착각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로테스크로 변이한 상태라 헷갈릴 여지가 없어.
그로테스크로 변신한 페로의 박제잖아!
“아, 아, 아….”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페로야, 네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쩌다가 이런 데서 박제로 변해서 –
— 탁!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조심하게.”
“…”
처음 보는 노인이다.
찰나, 나와 묵성의 눈이 마주치며 의견을 교환했다.
‘언제 나타났어?’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다니!’
“학생, 방금 박제를 만지려 했지? 침묵을 지킬 때가 아닌 것 같은데. ”
“…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주의해주게. 이건…. 아주 ‘귀한 존재’거든.”
귀한 존재.
“저기, 교수님이신가요?”
“비슷하지.”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말해보게.”
“이 박제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
나이를 쉬이 파악할 수 없는 노인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말해주기 싫다?
아니야,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다소 감성적인 태도다.
“출처라…. 왜 그런 걸 묻지?”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이렇게, 음, 예쁜 박제는 처음 봐서 놀랐거든요!”
“예쁘다? 예쁘진 않은데.”
“…”
그렇네.
앵무새 형태는 몰라도 그로테스크 형태는 예쁘진 않아.
“하지만, 이 친구가 살아있을 때는 예쁠 때도 있긴 했지.”
“…”
“내 오랜 친구라고 해두지.”
“교수님이 기르셨나요?”
“내가 길렀냐고? 하하! 아니지, 오히려 이 친구가 긴 세월 날 보호해줬지.”
페로가 긴 세월 이 노인을 보호해줬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래?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했을 때, 나와 묵성은 다시금 조용해지고 말았다.
“… 아따 다 늙어뵈는 양반이 행동 한번 잽싸네.”
“말조심해.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노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의 정체는 뭘까? 학장?
잘 모르겠다.
*
늦은 시각까지 미스카토닉 대학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뚜렷한 소득은 없었다.
슬슬 소등시간이었기에 별수 없이 시작 지점인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다.
“후우….”
작게 한숨 쉬며 침대에 앉았을 때, 단단한 촉감이 엉덩이를 쿡 찔렀다.
“응? 뭐야?”
침대 위에는 기묘한 그림이 음각된 단단한 종이가 있었다.
“… 호루스의 눈?”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신, 호루스의 눈을 표현한 상징물.
편지 뒤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있다.
‘아버지, 왜 우리를 버리셨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