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2)
EP.502 502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4)
502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4)
– 김아리
묵성이 찾아낸 장소는 일종의 유물 보관소였다.
학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미스카토닉 대학을 설립하기 전부터 모아온 신비한 물건이 가득한 장소라고 한다.
듣기만 해도 ‘와! 반드시 가봐야 해!’ 소리가 나오는 장소였지만,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잠깐만 내부를 볼 수 없을까요?”
“안 돼요.”
“잠깐만, 아주 잠깐이면 충분한데 -”
“안된다니까요?”
“… 눈으로 구경만 할게요.”
“아이, 참! 요즘 학생들은 왜 이리 버릇이 없을까? 김아리 학생. 안된다는 말 못 들었어요? 이곳은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이랍니다!”
유물 보관소는 교수진만 출입할 수 있다.
나와 묵성의 귀에 ‘학생 출입 금지’라는 문구는 ‘알아서 몰래 들어가시오’ 정도로 들리긴 했지만, 잠입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몰래 잠입하려 했던 묵성이 유물 보관소 관리인에게 잡혔기 때문이다.
“저기, 그러면 묵성 씨를 데려가도 될까요?”
“어머, 설마 아까 그 버르장머리 없는 남학생과 아는 관계?”
“네.”
“미안하지만, 그 학생은 한번 호되게 혼나야 해! 그러니 너도 기숙사로 돌아가렴!”
“… 네.”
*
저녁 무렵, 묵성이 흠뻑 젖은 채 나타났다.
“관리인 그 개 같은 년이 -”
“너 지금 인생 막살다 온 노인 아니거든? 점잖게 좀 말해!”
“… 그 말은 뭐냐? 누가 들으면 원래는 인생 막산 줄 알겠다.”
“뭐 하다 이렇게 젖었어?”
“관리인 고것이 요상한 요술을 부려서 물벼락을 뿌려대는데 어떡하냐? 한 번만 더 몰래 들어오려고 하면 퇴학을 각오하라던데?”
“…”
“아오! 밤에 한 번 더 -”
“너랑 나는 관리국 요원이지.”
“…”
“이 시대는 전자 보안 설비 따위도 없어. 그런데, 10초 만에 들켜서 잡혔네?”
묵성은 베테랑 관리국 요원이다.
그런 사람이 잠입 시도를 시작하고 10초 만에 잡혔다?
초자연적인 힘이 그 장소를 보호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관리인 그 늙은 여자가 유물 보관소 전체에 무슨 탐지 마법이라도 썼다?”
“글쎄, 내 생각엔 관리인 정도가 아닐 것 같네.”
“관리인이 아니라니?”
“학장이 수를 썼을지도.”
“… 그러면 뚫기 힘들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혼자서 수백 년간 교황청과 싸워왔다는 반신적 존재의 보안 마법을 쉽게 깨트릴 수 있겠어?
괜히 이상한 짓 하다가 퇴학당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져.
“한번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원 모어 찬스 쓰는 건 어떻냐?”
물벼락을 맞은 게 분했는지, 묵성은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역천의 대가 잊었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텔이 경고할 정도면 보통 대가가 아니겠지. 원 모어 찬스는 최후의 수단이야. 보스랑 붙어서 우리 둘 다 죽겠다 싶을 때 써야 해.”
“휴우…. 네 말이 다 맞다. 이것 참, 몸이 젊어지니 다소 감정적이었군.”
“아냐. 넌 젊을 때나 늙을 때나 항상 감정적이었어.”
“넌 항상 늙어있으니 감정이 없고?”
“지금 시비 걸어? 분노의 감정을 보여줘?”
“야, 아리 네가 매번 먼저 놀리면서 -”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알아,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안다고.
하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젊은 묵성’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참기가 힘들어.
“아~ 옛날 생각난다. 예전엔 네가 유령만 봐도 덜덜 떨면서 ‘서, 선배님!’ 하던 때가 있었는데.”
“…”
“선배님! 만약 제가 죽으면, 고향의 부모님께 -”
“제발 그만 해….”
“요원 김묵성,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 -”
“아오! 선배,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는 겁니까?”
“네 유언인데 어떻게 잊어?”
“안 죽었잖아!”
“그러게. 그때 죽었으면 되게 멋있었을 텐데.”
묵성은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푹 숙였다.
진짜 이쯤 해야겠네.
“으흠,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방금 경험 때문에 오히려 확신이 생겼어. 유물 창고는 반드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묵성 네 생각도 그렇지?”
“… 그래. 철저히 숨기는 것이야말로 내부에 심상치 않은 게 있다는 확고한 증거지.”
“들어갈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자. 참, 아침에 공고 붙은 건 봤지?”
“개강 파티?”
“응.”
많은 대학이 그렇듯, 미스카토닉 대학 또한 신학기가 시작하면 개강 파티를 연다.
“내일 저녁이더라. 아리야, 갈 거냐?”
“새삼 파티는 무슨 파티. 그냥 학교를 더 탐색할 생각인데. 다른 사람들 방해 없이 돌아다닐 좋은 기회라고 봐.”
“으음, 그 말도 일리는 있군. 그러면 역할을 나누자. 아리 넌 학교를 탐색하고, 난 파티에 가서 다른 사람들 안면 좀 익혀야겠다.”
괜찮은 생각이다.
정보는 도서관에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사람은 파티에 가서 친분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유물 창고 진입에 실패한 어제저녁 이후, 우리는 하루가 다 가도록 유의미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오늘은 에밀리와 약속한 대로 강의에 출석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노을이 질 무렵, 묵성이 자신은 파티에 가겠다고 눈짓했다.
어제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이 개강 파티를 위해 자리를 비우니 신비학부 일대가 한산해졌다.
덕분에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사방에 널린 고생물 박제를 살피기도 하고, 도서관도 들를 수 있었다.
…
30분 전까지의 이야기야.
지금은 껄끄러운 감시인이 옆에 붙었으니까.
“아리야앙~! 이런 책이 그렇게 재밌어?”
“…”
어제부터 미묘하게 내 주위를 배회하는 소녀, 에밀리다.
“에밀리, 지금 개강 파티 도중 아니야?”
“맞아!”
“그럼 파티에 돌아가는 게 어때? 댄스 신청도 받았다며.”
“어머,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아리야말로 파티에 갔으면 모든 남학생의 관심을 끌며 여왕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호텔에서 여왕 해서 뭐 하려고?
“난 파티 같은 것 안 좋아해.”
“난 파티 좋아하는데.”
“그러면 가.”
“아리가 여기 있는걸?”
“그게 무슨 상관인데?”
“우린 친구잖아!”
“…”
미묘하게 미로랑 말하는 기분이네.
물론, 기나긴 요원 경력 덕에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미로의 유치한 언동은 그 어떤 장난질 없이 정말 정신세계가 유치해서 나오는 말이야.
반면, 이 여자애의 유치한 ‘듯’한 행동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이질감을 느껴야 정상이고 나는 당연히 바보가 아니야.
이 애는 뭐지?
정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에밀리, 할 말 있으면 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에밀리를 계속 살피자 에밀리의 태도 또한 천천히 변화했다.
장난스럽고 유치한, 혹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
대신,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인형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
“…”
고요한 침묵.
나는 에밀리를 관찰하고, 에밀리는 나를 관찰한다.
에밀리가 갑자기 품속에 손을 넣더니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뭐야?”
“한번 봐.”
소녀와 노인이 그려진 흑백 그림이다.
연필로 그린 건가?
솔직히 그림 솜씨가 별로여서 알아보기 쉽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구석에 글이 적혀있었다.
「실제로는 엄청 예쁨!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처음 보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외모!」
이거 설마 내 이야기야?
「외견상 50대 노인? 관리를 잘해서 체격이 엄청 좋고 젊었을 때는 잘생겼을 것 같은 인상.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코가 되게 오똑해.」
묵성을 묘사한 그림과 글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에 대한 묘사야 지금 여기 있는 날 관찰하고 그릴 수 있겠지.
하지만 나이 든 묵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야.
세 번째 시련의 묵성은 20대 청년이다!
시련 속 등장인물이 나이 든 묵성을 어떻게 알고 묘사하겠어?
그러니까 이 그림은 과거 시대의 동료가 남긴 흔적이다!
“에밀리, 이 그림을 어디서 얻었어?”
미래에 나타날 묵성이 20대의 모습일 줄은 몰랐기에 노인의 모습을 그려서 남겼겠지.
“…”
아름다운 소녀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날 관찰했다.
“에밀리, 어디서 얻었냐니까?”
“진짜….”
“뭐?”
“진짜였어.”
“무슨 말을 -”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울어?”
“엄마…. 정말 미래를 볼 수 있었어요?”
“미래라니 -”
“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전혀 모르겠는데…. 어떻게…. 어떻게!”
인형처럼 고운 에밀리의 얼굴에서 격렬한 감정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엄마, 엄마, 엄마…. 나 무서워. 왜, 어떻게, 무슨 수로 -”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
한 인간이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채로운 감정이 순식간에 스쳐 간다.
덕분에 나 또한 답답해서 숨이 막혔다.
어떻게든 얘를 진정시켜서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엄마’라는 사람은 정황상 동료 같은데, 정체가 누구지?
에밀리는 대단히 예쁜 데다가 머리는 금발이니까 엘레나?
아니면 –
응?
갑자기 에밀리의 표정이 싹 바뀌더니 바깥을 보았다.
“어?”
“왜 그래? 에밀리?”
“어? 어? 아앗!”
“밖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 -”
말하던 중,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살려줘요!”
“뭐, 뭐야 이 미친 새끼들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비명과 차가운 금속음!
— 벌컥!
에밀리는 다시금 10대 소녀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즉시 몸을 일으켜 따라갔다.
이런!
바깥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건 알겠어, 알겠는데 타이밍 대체 뭐야?
에밀리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잖아!
— 타다닥!
정신없이 도서관 밖으로 뛰어가던 중, 한 가지 섬뜩한 사실이 떠올랐다.
에밀리는 나보다 훨씬 빨리 바깥의 이변을 알아챘다.
“…”
*
밖에 나오니 이미 대학 일대에 난리가 난 상태였다.
사방에 비명 지르며 뛰어가는 학생들이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탕! 탕! 하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렸다.
상황 파악 자체는 무척 쉬웠는데, 적들이 의도를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정화해라! 그리스도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아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검은 옷의 군인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학생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있다!
— 타다당! 타당!
쉼 없이 총탄을 쏟아내는 자동화기의 화력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관리국 요원씩이나 되면서 총 정도가 놀랍냐고?
놀랍지!
지금은 1897년인데!
최초의 개인용 자동화기가 무엇인지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등장 시점을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1차 세계대전이야.
1920년대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세상에 퍼졌다는 말이다.
심지어 저들이 쏘는 수준의 제대로 된 돌격소총은 1940년대, 2차대전까지 가야 한다고!
덕분에 적의 정체는 너무나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시대를 50년 앞선 무기를 쓸 만한 조직은 이 무대에 딱 하나, 교황청뿐이니까.
— 철컥!
날 인지하고 총구를 겨누는 군인들.
이후 상황을 생각해서 힘을 숨긴다든지 할 여유가 전혀 없다.
— 타앗!
오래된 피의 힘을 끌어올려 지면을 박찬다.
이 수준의 움직임은 따라가기 버거웠는지, 군인들이 당황하며 시선을 여기저기 흩뿌렸다.
물론, 교황청 군인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
“이얍!”
몸을 허공에 띄운 채 양손으로 ‘공간’을 움켜쥐었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한 뒤틀림이 삽시간에 일대를 점하는 순간 –
— 서걱!
여섯? 아니 일곱!
한 무리의 군인들이 죄다 토막 나며 사방에 내장을 흩뿌렸다.
“끄아아악!”
고작해야 약관이 갓 넘은 듯한 청년.
조금 전까지 ‘아멘’을 외치며 대학생들을 향해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그는 지금, 피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흐르는 내장을 움켜쥔다.
무시하고 달리며 상황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쪽에선 에밀리의 비밀스러운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이었지?
그 시점에 파티에 간 묵성에게도 뭔가 이벤트가 터진 건가?
그럼 묵성이는 설마 원 모어 찬스를 써보지도 못하고 총 맞아 죽은 거야?
무슨 이렇게 황당한 –
— 쿠궁!
아니구나.
내가 베테랑 요원 김묵성 군을 너무 무시했네.
하늘 저편에서 들려오는 우레 같은 소리에 모든 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곧 無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
이윽고 눈앞에서 조물주나 일으킬법한 기적이 일어났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죽인 자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나와 묵성에게 –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 번쩍!
마지막 순간, 내가 걱정한 것은 단 하나였다.
“… 역천의 대가.”
*
「세 번째 시련 – 미스카토닉 대학」
– 김아리
“…”
창가에서 내리쬐는 빛을 느끼며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