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3)
EP.503 503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5)
503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5)
– 김묵성
요즈음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잔여 수명의 차이, 보유 재산의 차이 같은 것을 강조하겠지만, 최근의 난 가장 중요한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젊음이란 배 터지게 고기를 집어 먹으면서도 이걸 내가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 삶.
또한, 맥주와 와인으로 목젖을 촉촉이 적시면서도 저번 달에 의사가 해준 권고를 떠올릴 필요가 없는 삶을 뜻한다!
뭐? 젊어서 고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면 나이 들어 고생이라고?
뭔 상관이냐?
내 건강은 호텔이 신경 쓸 일이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을!
“여기, 맥주 한잔 추가.”
부드러운 거품을 즐기며 주변을 살피자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젊은 학생들이 가득했다.
어려서 본인 주량을 잘 모르는지, 벌써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1897년, 학생이든 교수든 성별이 여성인 경우가 드문 시대다.
하나,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이고 미스카토닉 대학 신비학부가 대표적인 예시다.
신비학부 혹은 그 전신 세력에 미래인이나 다름없는 호텔 파티가 개입했기 때문일까?
꽃이 있는 곳엔 벌이 모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
신비학부 특성상 여학생이 많다 보니, 이걸 노리고 온 타 학부 학생이 엄청나게 많았다.
신비학부에서도 타 학부 학생을 딱히 막는 눈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자연스러운 남녀 간의 교류 자체가 세력 확장에 득이 된다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
분명 아리에겐 정보 수집을 위해 파티에 가겠다고 했는데, 그런 것 치곤 뚜렷한 성과는 없군.
알아낸 정보라면 미스카토닉 대학 학생들이 신대륙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도?
시선을 돌릴 때마다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남녀가 섞여 신대륙의 출산율 증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늑대인간과 예티가 교접하면 자손은 무슨 종족이냐?
미래에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은 명확히 해야지!
늑대 예티?
“이야~! 너 찾느라 힘들었는데 여기 있었네!”
“…”
“야, 이름이 어, 묵성이었나?”
친한 체하며 달라붙는 학생들.
어지간하면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도 이야기하겠는데, 이 녀석들은 목적이 너무 뻔해서 한숨이 나왔다.
“그, 그, 그러니까 -”
“아리가 어디 있냐고?”
“눈치가 빠른 친구네! 그, 고귀한 뱀파이어 귀족 분께서는 왜 파티에 나오시지 않은 거야? 우리 집안이 음, 전통적으로 유럽의 블러디 노블들과 교류해온 -”
“주변에 신비학부 소속이 아닌 학생도 많은데 그런 말 해도 되냐?”
“하하, 다들 술에 취한데다가 신비학부는 괴짜들의 모임이라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변신만 하지 않으면 돼.”
“…”
“그래서 말인데, 아리 양은 어디 있어?”
이 등신 호구 같은 놈아!
내가 오늘 아리 어딨냐는 질문만 100만 번은 받았다!
그리고 집안은 무슨 놈의 집안?
느그 애비가 네 한심한 꼴을 봤으면 당장 용돈 끊고 돌아오라고 편지 썼을 게다.
“… 이름이 칼이라고 했었나?”
“맞아!”
“오늘 파티 말인데,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건 없나? 그냥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 말고 말이다.”
“어? 특별한 이벤트라니…. 개강 파티니까 먹고 마시고 춤추면 다 한 것 아닌가?”
“…”
맞는 말이긴 하네.
애새끼들 파티가 먹고 마시고 춤추면 됐지.
그때, 뒤에서 불평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뭐야!”
“야! 조심하라고!”
“바이올린? 학생회에서 가수도 불렀나?”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사람들이 파티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움직임이 제법 거칠어서 부딪힌 학생들이 불만을 표했지만, 연주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어라? 뭐지?”
조금 전까지 아리를 찾던 멍청이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왜 그러냐?”
“어, 어….”
“뭔데?”
“내가, 음 학생회 소속이거든? 연주자를 부른 적이 없는데.”
학생회에서도 연주자를 부른 적이 없어?
그러면 누가 –
“이런!”
“어? 어? 갑자기 왜 – 어디가?”
판단은 신속하게, 행동은 은밀하게!
일말의 고민 없이 조명의 사각지대로 숨어들었다.
다행히 신대륙의 출산율 증진을 위한 미스카토닉 대학의 배려 덕에 내가 숨을만한 어둡고 음침한 공간은 많았다.
“어멋! 꺄악!”
“이 새끼 뭐야?”
물론, 여기에도 종족을 넘어선 사랑을 꿈꾸는 선객이 있긴 했지만!
“야, 야! 너 인마! 후배지? 동양인 놈이 주제를 모르고 -”
“아가씨, 이놈은 고향에 아내가 둘입니다.”
“뭐, 뭐라고요?”
“이 미친 새끼가 -”
“애도 셋이지. 이건 아가씨를 위한 내 정의의 주먹이요.”
입을 쩍 벌린 머저리에게 훅을 한대 먹이자 바로 쓰러졌고, 여학생은 놀라서 도망갔다.
“…”
어둠 속에서 파티장을 살폈다.
곧, 학생들 사이에 스며든 악단을 가장한 괴한들이 서로 눈짓하기 시작하더니 –
— 철컥!
— 타다당!
순식간에 자동화기를 꺼내서 사방에 갈기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들!”
이거 씨벌, 교황청 놈들 맞지?
아무리 그래도 대학교 한복판에서 자동 놓고 갈긴다고?
관리국 요원의 눈으로 봐도 이건 좀 너무하잖냐!
우리도 이 정도 미친 짓은 – 가끔 하긴 했네.
— 타다당! 탕!
“꺄아악!”
“으, 으아 -”
“그르륵!”
삽시간에 수많은 학생의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날아간다.
꽤 많은 학생은 입만 쩍 벌린 채 덜덜 떨다가 양처럼 도살당했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도 이 모든 상황이 술에 취해서 본 환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으득!”
이를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동그랗고 단단한 물체가 손안에 나타난다.
작금의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힘 – ‘원 모어 찬스’다!
“…”
당장이라도 동전을 튕기고픈 충동을 꾹 참았다.
아직, 아직 때가 아니야.
원 모어 찬스는 송이의 팔찌나 은솔의 피리처럼 리스크 없이 편히 쓸 수 있는 유산이 아니란 말이다!
호텔이 직접 ‘역천의 대가’를 말할 정도니, 사실상 횟수 제한이 있을 공산이 크지.
최후의 순간, 내 배때지에 납탄이 박혀서 숨 꼴깍 넘어간다 싶은 순간까지 기다린다!
— 다다닥!
나무를 방패 삼아 숨고, 연못에 잠수해보기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육에 미친 교황청의 광신도들이 나 하나만 노리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체감상 100년, 실제로는 4, 5분쯤 버티자 마침내 이변이 일어났다.
— 우르릉!
하늘에서 – 사람의 형상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그는 천둥과 함께 나타났으며, 사람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존재였다.
그는 노인이다.
며칠 전 나와 아리에게 박제를 건드리지 말라 경고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바로 학장이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니 버러지들이 기어들어 왔구나!”
분기탱천한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사방에 번개 줄기가 뻗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학생들을 무슨 멧돼지 사냥하듯 학살하던 군인들이 학장의 손짓 한 번에 서너 명씩 재로 변했다.
“조준! 알파 팀, 머리를 쏴라!”
“감마, 감마! 총이 통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벽이 – 으악!”
교황청의 군인들은 나름대로 훈련받은 정예 티를 내며 두려움 없이 맞섰지만, 호랑이 앞에 선 여우에 불과했다.
애초에 불투명한 방벽으로 총알은 막아내며 벼락을 날리는 특급 혼돈체를 인간 보병이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곧, 교황청 특수부대를 이끌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학장의 손에 붙잡혔다.
“네 이놈…! 내, 너에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끝을 보여주리라!”
“하, 하하! 병신같은 마법사 놈, 네가 그래봐야 바뀔 건 없다!”
“…”
“주변을 봐, 보라고! 이 흉물스러운 대학의 어린 마귀들이 죄다 내장을 바닥에 뿌렸구나! 참 아름답지?”
이 순간, 학장의 표정은 사람이 만든 어설픈 단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었다.
“너희는…. 대체….”
“왜, 할 말이라도 있냐?”
“미스카토닉 대학 학생들 대부분은 우리 싸움과 아무 상관 없는 인간임을 알고는 있는 거냐?”
“흐…. 그걸 믿고 대학을 세웠냐? 신대륙의 민간인 사이에 숨어들면, 어, 우리가 섣불리 손쓰지 못할까 봐?”
“…”
교황청 군인과 학장의 문답은 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었다.
학장을 위시한 세력은 왜 대학을 설립했는가?
단순히 나이 어린 혼돈체 및 신비학자 양성을 위해서?
그렇다기엔, 학장 말마따나 ‘신비학부’는 미스카토닉 대학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경제, 정치, 행정, 법 등을 전공 중인 일반 학생들은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따위는 전혀 모르는 순수 민간인이라는 것.
…
학장은 학생들을 평범한 인간 다수와 섞어 놓으면 교황청이 최소한의 선은 지킬 줄 알았구나!
설령 암살자를 보내더라도 신비학부 교수나 소속 학생을 핀포인트로 저격할 줄 알았던 거냐?
애초에 ‘개인용 자동화기’가 익숙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크흐흐…. 나이만 헛으로 먹은 괴물 놈! 들어봐라.”
“…”
“너, 곰팡이가 핀 빵을 본 적 있지?”
“…”
“어떻게 했냐? 빵에서 곰팡이 부분만 도려내고 나머진 먹어? 하하! 그럴 리가! Fuck! 빵이 한 개냐? 빵이 몇 갠데 그 지랄을 어떻게 하지?”
“…”
“그리고, 어, 곰팡이 핀 빵에서 멀쩡해 보이는 부분이라고 정말 멀쩡하겠냐? 당연히, 씨발, 다 태워야지 -!”
숨이 턱 막혔다.
왜냐면, 교황청 군인의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라고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광대 무량한 세계,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불어나는 80억 인구.
관리국의 저력은 끝을 모를 정도로 대단 하나 그 이상으로 지구는 거대하고 인구는 많다.
혼돈 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구역 인간 하나하나를 검사해서 타락했는지 아닌지 확인하라고?
손바닥만 한 대한민국 구 하나 인구가 30만, 40만인데?
게다가 악마 숭배자가 웅크린 도시의 민간인이 ‘정말로’ 결백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죽여야 한다.
우리가 잔인하고 악독해서가 아니다.
10만 생명의 무게를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 1,000만 서울 시민, 5,200만 한국인, 80억 인류에게 역병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
다음 순간, 내 눈은 핏물이 강처럼 흐르는 대학을 보았다.
전신에 구멍이 뚫린 채 바닥을 나뒹구는 학생들.
저들 중 대다수는 학장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지.
또한,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 차라리 허무함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는 학장을 보았다.
한 가지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교황청의 논리, 관리국의 논리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당하는 쪽에선 영원히 받아들일 수 없음을!
“그래, 정녕 너희가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선을 넘겠다면, 나 또한 선을 넘을 수밖에!”
— 파지직!
학장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유무형의 압력이 느껴진다.
비장의 수 따위를 쓰려는 건가?
대체 뭘 하려고 –
그때, 허공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하늘에서 내려온 소녀는 어둠 속에서도 숨겨지지 않는 화려한 금발의 소유자였다.
그 눈에 띄는 외모 덕택에 누구인지 바로 알아봤다.
어제부터 아리에게 들러붙던 에밀리 아닌가?
“루카스, 제발 진정해!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을 셈이야? 얄다바오트(Yaldabaoth)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
“소피아.”
소피아? 에밀리가 아니고?
“소피아, 나는 이미 충분히 고민했다. 또, 얄다바오트가 어떤 존재인지도 잘 안다.”
“루카스! 스승님이 -”
“스승! 그놈의 스승! 소피아, 죽는 순간까지 호루스만 찾던 그 머저리가 아직도 그리 존경스럽나?”
“… 루카스. 스승님은 아직 죽지 않았 -”
“나는 믿지 않는다. 스승도, 호루스도, 그 무엇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 단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에밀리의 진짜 이름은 소피아다.
학장의 이름은 루카스이며, 그는 소피아와 사형제 관계이다.
저들의 스승은 죽는 순간까지 호루스를 찾았다.
호루스는 가인이였지?
그렇다면, 스승이란 존재는 필시 호텔 파티일 가능성이 높 –
— 우르릉!
다시 한번, 벼락이 내리쳤다.
“꺄아악!”
설마 학장이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소피아는 비명 지르며 추락했다.
“보아라! 이게 내가 찾아낸 단 하나의 답일지니! 아아….”
불가해한 마력이 온 사방을 뒤틀었고, 학장의 입에선 괴이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실로 위대한 이에게 시작과 끝의 구분은 없나니, 이윽고 진실한 조물주가 일어서 거짓 세계를 개변하리라…. 부디, 우리의 구원이 되어주소서. 불가하다면, 차라리 모든 고통의 끝이 되어주소서.”
마침내 황혼처럼 빛나는 외계의 문이 불길한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을 때.
그 너머로 감히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운 아득한 존재가 느껴졌을 때….
나는, 지금이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 팅!
황금빛 동전이 한 바퀴 돌았다.
…
마지막 순간,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아리는 원 모어 찬스의 회귀 속에서 기억을 지킬 수 있을까?
둘째, 호텔이 경고한 역천의 대가는 무엇일까?
— 쿠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