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4)
EP.504 504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6)
504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6)
– 김아리
「세 번째 시련 – 미스카토닉 대학」
“…”
창가에서 내리쬐는 빛을 느끼며 깨어났다.
— 삐걱!
다소 허름한 방,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보아하니 그다지 풍요로운 환경은 아니다.
디너파티에선 제법 그럴듯한 드레스를 입은 채 깨어났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다르네.
침대 옆 탁자 위의 자그마한 책자를 살펴 기초적인 정보를 알아낸 후, 건물 밖으로 나왔다.
*
“그러니까, 여기가 미스카토닉 대학이란 말이지?”
음울하고 섬뜩한 분위기의 대학 캠퍼스를 살피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던 중,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제법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
머리가 조금 이르게 반백으로 물들긴 했지만,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
“어? 하하! 축하해!”
“…”
“회춘 축하해! 이야, 20년은 젊어진 것 같은데?”
“…”
“이런 모습 대체 얼마 만이야? 저주의 방에서도 본 적 없는데? 현실 기준 거의 20년 전에나 봤던 -”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어?”
묵성이 날 데리고 근처의 한적한 장소로 옮겨갔다.
그는 그답지 않게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육체적인 피로보다도 정신적인 탈력감이 상당해 보였다.
탈력감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미 원 모어 찬스를 한번 썼다고?”
“그래.”
“… 1회차에선 스무 살이었다?”
“맞다.”
원 모어 찬스에 대해 호텔이 경고한 ‘역천의 대가’는 설마 약 30년의 노화였나?
상당히 위협적인 페널티다.
인간의 수명 한계를 고려하면 한 번만 더 써도 80대가 될 테니 위험하고, 두 번째부터는 쓰자마자 죽을 수도 있다.
게다가, 50대의 묵성이야 요원답게 신체 능력이 탁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80대부터는 무리다.
무슨 반로환동한 강호의 기인이 아니고서야!
반로환동?
“… 만약에.”
“음?”
“불멸자 혹은 지극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이 원 모어 찬스를 얻었다면 어땠을까?”
“글쎄다….”
사실상 노 리스크로 원 모어 찬스를 끝없이 쓸 수 있다?
…
아닐 것 같다.
애초에 ‘유산’은 각 저주의 방에 있던 원본과 다른 물건임을 잊지 말자.
원본은 일종의 모티브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 호텔이 밸런스 패치 후 지급한 강력 도구가 유산의 정체다.
사용자가 불멸자 혹은 장수종이었다면, 그때는 또 다른 유형의 페널티가 붙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한 가지는 명확해.
“사실상 기회는 한 번 남았다고 봐야겠네.”
“… 그렇지.”
“그래, 1회차 이야기 더 해봐. 난 다 잊은 것 같으니까.”
206호의 원본 또한 회귀 후 기억을 보존하는 건 시장 본인뿐이었지.
그래서 짐작은 했지만, 원 모어 찬스가 시간을 돌리면 동료라 해도 기억을 잃는 모양이다.
불변을 가진 미로나 상태창을 가진 가인 등은 모르겠지만 내겐 기억을 지킬 방법이 없어.
“시간이 없어서 빨리 말할 테니 집중해라.”
…
잠시 후,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아리야, 학장이 소환한 ‘얄다바오트’가 보스일 것 같냐?”
아닐 것 같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서 아득해졌다며? 묘사가 거의 죄수급인데?”
“으음….”
“죄수급이면 싸우라고 만든 적은 아닐 거야. 판이 터졌을 때 등장하는 배드 엔딩이지.”
“그럴 것 같군. 루카스는?”
학장 쪽은 아무래도 필멸자니까 정체 모를 외계 신보다야 싸울 만하겠지.
애초에 무적의 존재라면 교황청을 피해 도주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죽일 수 있다고 꼭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네. 학장처럼 긴 세월 교황청과 싸워온 강력한 마법사라면, 본인이 언젠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수백 년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긴장감이 무뎌진 채 세상일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1년 365일 교황청에 위협당하며 살아온 학장이 그런 여유로운 태도일 리는 없어.
“어쩌면, 죽은 후의 상황까지 안배했을지도 모르지.”
“마법적인 데드맨 스위치를 준비했다?”
“그래. 그러니까 주의하자.”
향후 진행에 관해 크게 두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첫째, 교황청의 학살과 학장의 폭주로 이어지는 배드 엔딩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둘째, 교수진만 접근할 수 있다는 유물 보관소. 분명 특별한 장소 같단 말이지. 내가 물벼락을 맞아서 하는 말이 아니야.”
“맞아. 내가 봐도 유물 보관소는 한번 가봐야 해. 느낌상….”
“느낌상?”
“‘공용 도구’중 일부가 있을지도 몰라.”
페로는 이미 죽어서 박제가 되었다고 하니, 남은 공용 도구는 방호복, 윙 부츠, 꿈의 왕국, 모래시계 등이 있다.
그것 중 일부가 유물 보관소에 있을 것 같지 않아?
“일리 있군. 유물 보관소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자.”
대화가 끝날 무렵, 묵성이 긴 한숨을 토했다.
“후우….”
“왜 그래?”
그는 우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도로 늙을 줄 알았으면, 젊을 때 고기라도 더 먹어둘 것을!”
“하하! 지금도 원래 나이보단 젊잖아? 그러니까 -”
“아리 너는 절대 날,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영원불멸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의 묵성에겐 괴로운 이야기일 테니까.
다행히, ‘영원불멸의 삶’ 속에서 얻은 경험 덕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때로는 침묵이 금인 법이다.
*
처음으로 들은 신비학부 강의, 「악마학 개론」은 다소 쓴웃음 나는 내용이었다.
복잡하긴 하지만 결국 혼돈체와 신비학자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인데, 나는 그에 대한 반박을 수십 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묵성의 태도였다.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더군.”
“…”
“전 회차에서, 교황청 군인들이 자동화기로 학생을 최소 100명 이상 갈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음….”
“이건 너무 심하다 싶었어?”
“그렇지.”
세상과 인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자를 무수히 학살함이 과연 옳은가?
관리국은 세뇌에 가깝게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도둑질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도둑질하니까 생긴다.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가르침은 사람을 해치니까 생긴다.
같은 맥락에서, ‘고민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관리국 구성원들 또한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고통스러워하기에 존재한다.
“옛날 생각나네.”
“옛날 생각?”
“관리국 신입은 누구나 지금 네가 말한 고민에 빠지곤 하지.”
“크흠…! 신입이나 할 만한 유치한 고민이다? 미안하다. 몸이 젊어지니, 마음까지 -”
“아니, 묵성아.”
“…”
“난 한 번도 그런 고민이 유치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냥,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할 뿐.”
“극복해야 한다?”
“오래전의 이야기야.”
다음 계획까지 시간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일까?
부끄러운 기억이라 여겼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뒀던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부산에 샛별제약이라는 회사가 있었어. 당시엔 아주 유망한 중견기업이었고. 여느 제약회사가 그렇듯, 샛별제약도 신약을 개발했지.”
“…”
“어느 날, 첩보가 들어왔어. 신약 성분 중 일부가 수상하다. 정상적인 약이 아닌 것 같다.”
“…”
“임상시험을 전부 통과하고 유통되기까지 기다리면 대형 참사가 날 테니 그 전에 요원 한 명과 공작원 17명 정도가 투입됐어.”
“요원은 선배였습니까?”
“응. 몇 달 후, 수상한 신약 성분이 외계 신의 살점 일부를 열화 복제한 것임이 밝혀졌어. 당연히 CEO를 비롯한 제약회사 수뇌부는 물론, 사원들까지 처분 대상이라는 결론이 나왔지.”
“사원들까지?”
“사원들 상당수가 ‘위대한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이유로 신약을 섭취한 상황이었거든.”
“위대한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니…. 이미 정신적으로 병들었군.”
“맞아. 그래서 사원까지는 이견 없이 처분하기로 했어. 문제는, 배우자와 자식들이었지.”
“… 사원들의 배우자와 자녀?”
묵성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묵성 또한 내가 무슨 사례를 이야기하는지 짐작할 거야.
“공작원들 사이에 의견이 많이 갈렸어. 결정권은 상급자이자 요원인 내게 왔지. 참고로 나는 직원으로 위장한 공작원의 자녀로 위장한 상태였어.”
“…”
“당시, 나는 배우자와 자녀들은 일단 살리고 관리국 지부에서 검사한 후 처분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어.”
“…”
“애들 몇 명과 꽤 친해진 상태였는데, 다들 너무 착하고 순수했거든. 심지어 내 유산의 힘을 빌려 간이 검사를 했는데도 별다른 오염을 발견하지 못했고.”
“… 처분하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까?”
“많았지. 사원들 본인부터가 위대한 자에게 다가가겠답시고 그 살점을 먹었는데, 본인도 먹은 살점을 가족에게도 먹이지 않았겠느냐.”
나는 아직도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날 설득하려 했던 공작원을 기억한다.
그는 민간인의 학살을 즐기는 악인이나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
단지, 요원이 아니기에 계급은 나보다 낮을지언정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었을 뿐.
“오래된 피의 검사는 믿을 수 없다. 아리 요원님의 초능력이 대단한 건 알겠지만, 살점의 정체는 한 호흡에 별을 주름잡는 위대한 자의 신체 일부가 아니냐. 간이 검사 따위로 다 밝혀낼 수 없다.”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알잖아. 내가 살린 아이들이 4일이 채 지나기 전에 개구리로 변해서 개굴개굴하더니, 빌딩만 한 개구리가 부산에 나타나더라고.”
“…”
“빌딩만 한 개구리가 꽥! 몇 번 하니까 부산에서 4만 5천 명이 죽었어.”
“…”
“옛날이야기는 이쯤 하면 다 했네. 이제 출발하자.”
후일담.
희생 끝에 초대형 개구리를 처단한 후, 관리국에선 나에 대한 징계 절차가 열렸다.
당시 난 살 생각이 없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4만이 넘는 인간이 죽었다는 자괴감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집어삼킨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만큼은, 언젠가 호텔로 돌아가 ‘엄마’를 되살려야 한다는 본능조차도 작동하지 않았었지.
이제는 얼굴도 흐릿한 사람 – 날 처음으로 가르쳤던 관리국 지부장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
‘제 책임을 전부 인정합니다. 그냥 죽여주세요.’
‘요원 김아리, 생긴 것은 어린 애 같으면서 자아만 크구나.’
‘네?’
‘너는 체스판 위의 말이요, 기계 속 톱니바퀴다. 일반 직원이 폰이라면 너는 나이트요, 조금 큰 톱니바퀴에 불과하지. 톱니바퀴가 책임진다는 말 들어봤냐?’
‘…’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나이트의 나약함을 간파하지 못한 체스기사에게 있다. 톱니바퀴가 생각보다 작았음을 몰랐던 기계 관리자에게 있다.’
‘□□□ 부장님….’
‘네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내 책임이란 이야기지. 보고서도 그리 올렸다.’
‘…’
‘다만, 이번 일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면 좋겠군.’
‘무엇인가요?’
‘요원, 명심하게. 자비심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감정이라네.’
*
묵성과 도착한 장소는 예의 페로 박제가 있는 곳이었다.
“으으…. 진짜네! 얘는 대체 뭐 하다가 박제가 된 거야?”
“그러게 말이다.”
페로가 박제되었다는 말을 듣고 왔음에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다소 역했다.
물론, 아껴왔던 반려동물을 박제하는 일은 현대에도 종종 벌어지니,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
“흐음….”
살짝, 손을 뻗어서 박제를 건드릴 듯 말 듯 했다.
“…”
이 정도로는 반응이 없네. 더 세게?
— 휙!
바로 묵직한 손이 내 팔을 붙들었다.
“요즘 애들은 정말이지 조심성이 없구나.”
“…”
학장이 나타났다!
좀 웃기긴 하지만, 페로 박제를 만지는 게 학장을 만나는 제일 쉬운 방법이다.
“학생, 방금 박제를 만지려 했지? 침묵을 지킬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학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노인은 ‘학장’이라는 표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있을 개강 파티와 관련한 이야기랍니다.”
“그런 이야기는 학생회와 하는 게 좋겠지.”
“곧 죽을 아이들과 이야기해서 뭐 하죠?”
처음으로 학장의 눈에 ‘놀람’이라는 감정이 스쳤다.
“곧 죽는다?”
“학장님, 제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노인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