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5)
EP.505 505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7)
505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7)
– 김아리
“아, 아리 양! 저는 샌더스 가문의 장남, 칼이라고 -”
“자아, 자! 칼 씨, 아리가 당황하는 것 보이지 않으시나요? 비켜주세요!”
“…”
얼굴을 붉히며 당장이라도 고백할 분위기였던 청년이 에밀리의 손짓에 가볍게 물러섰다.
이런 남자들의 특성상, 같은 남자 – 예컨대 묵성이 쫓아내려 하면 어울리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며 날뛸 때가 많지.
하지만, 같은 여자이면서도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에밀리 앞에선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쫓겨났다.
“어때?”
“…”
“고맙지? 귀찮게 하는 애들 쫓아줘서?”
“… 고마워.”
에밀리는 두 번째 시도의 첫날 첫 강의부터 내게 달라붙어서 친한 친구인 양 행세했다.
묵성의 말에 의하면, 첫 번째 시도 때도 비슷했다고 한다.
당시엔 그냥 예쁜 여자애 1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은 아니다.
시간을 돌리기 전 묵성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 ‘소녀’는 사실 소녀가 아닐 테니까.
실제 이름은 에밀리가 아닌 소피아이며 학장 루카스와는 사형제 관계다.
또한, 어쩌면 ‘호텔 파티’의 제자일지도 모르는 존재!
“…”
묵성의 추측을 들은 후, 밤새도록 고민했다.
만약 내가 앞선 파티의 생존자였다고 치자.
이후에 나타날 동료를 위한 제자 등을 남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뭘까?
우선, 제자가 ‘우리’를 알아보는 게 제일 먼저 아닐까?
그래야 우리를 도와줄 테니까!
우리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단순하게는 이름을 알려주면 그만이고, 외견을 자세히 묘사해줘도 된다.
나와 묵성이 언제쯤 등장할지 대략적인 시대를 알려줄 수도 있지.
정확히 1897년이라는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1차대전 이전의 미국이라는 점 정도는 디너파티 덕에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아리야. 왜 이렇게 조용히 내 얼굴만 보고 있어?”
“그냥.”
정황상 소피아는 이미 날 알아보고 있다.
그러니까 첫날부터 내 주변을 맴돌았겠지.
에밀리, 혹은 소피아와 한번 제대로 대화해보고 싶은데 –
— 끼익!
갑자기 연회장 문이 열리더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묵성이 말한 교황청의 군인들이다.
“… 흐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습당했다면 모를까, 다 아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와 묵성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 짝!
그저, 연회장 한구석에서 말없이 와인을 홀짝이던 노인의 박수 한 번으로 충분했다.
“어억! 모, 몸이 -”
“으읍! 끄으윽!”
“크아악!”
보이지 않는 무형의 압력에 전신이 돌처럼 굳은 교황청 군인들이 신음을 토해낸다.
정신없이 코가 비뚤어지라고 술잔을 기울이던 학생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신비학부 교수진이 튀어나왔다.
“자~! 자! 학생 여러분, 간단한 마법 시연이니 신경 쓰지 말고 바깥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바깥에도 즐길 거리를 마련해뒀습니다!”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교수진의 지시대로 연회장 밖 야외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나가려던 중, 에밀리가 내 손을 잡았다.
“넌 그냥 있어. 나갈 필요 없으니까.”
“…”
에밀리의 말에 반응한 건 엉뚱하게도 다른 교수였다.
“어? 어? 학장님이 학생들은 모두 나가라고 하셨 -”
“내 생각은 달라.”
“… 아, 알겠습니다.”
잠깐의 문답으로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
첫째, 교수진은 에밀리가 통상의 학생과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둘째, 대외적으로 학장이 일인자인 것과 달리, 에밀리는 학장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위치다.
하기야 학장의 사형제라면 거의 대등한 위치라고 봐야겠지.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을 전부 내보냈기 때문일까?
에밀리는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휴우~! 다행이다. 아리 생각도 그렇지?”
“…”
“교수들끼리 의견이 꽤 갈렸어. 개강 파티를 중단하고 암살자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사람도 많았거든.”
“…”
“학장의 생각은 달랐지. 개강 파티를 중단한다거나, 군인들을 색출하는 등 우리가 뭔가 알아챘다는 듯이 행동하면….”
“군인들이 숨는다?”
“맞아. 그래서 파티 장소를 학장이 손쓰기 쉬운 장소로 바꾸는 선에서 그쳤는데, 성공했네.”
다행히 개강 파티의 테러와 학장의 폭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배드엔딩은 막아낸 것 같네.
“아리야, 고마워. 네 ‘예언’이 큰 도움이 됐어.”
“…”
나와 에밀리가 팔자 좋게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군인들에 대한 심문이 진행 중이었다.
곧, 학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피아, 이리 와라.”
에밀리, 아니 소피아가 내 손을 잡았다.
“가자.”
소피아와 함께 심문 현장에 도착하자 교수들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학생을 왜 데려왔냐는 분위기인데, 소피아는 물론 학장도 개의치 않자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피아, 놈들 입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나왔다.”
“뭐라고 했는데?”
“본인들은 선발대에 불과하다는군.”
“아? 그러면 본대는 어디 있는데?”
“놈들도 모른다. 정신을 쥐어짰는데도 나오는 게 없는 걸 보아하니, 하급자에겐 애초에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지.”
“…”
“한데, 불길한 이야기가 있었다.”
“불길한 이야기?”
“스페인의 어둠 속에서 포르투나(Fortuna)가 깨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포르투나’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일신했다.
교수들의 얼굴은 삽시간에 창백해졌고, 몇몇 사람은 손을 모은 채 ‘호루스’를 찾기 시작했다.
위엄 넘치는 분위기의 학장 역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소피아의 반응이었다.
“…”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섬뜩한 증오, 동시에 손이 파르르 떨릴 정도의 두려움.
용솟음치는 증오와 그 증오조차 얼려버릴 정도의 두려움이 소용돌이친다.
그 순간, 나는 조금은 ‘계산적으로’ 행동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그러하듯이.
손을 뻗어 소피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녀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내 손을 떼어내거나 하진 않았다.
“루카스, 확실한 이야기야?”
“모르지. 이놈들도 그냥 스페인의 소문을 전해왔을 뿐이니.”
“으음…. 대비해야겠네.”
“대비라…. 그 괴물은 깨어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더 끔찍해져 간다.”
“루카스.”
“놈이 180년 전에 들이닥쳤을 때는 스승님도 더 이상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110년 전엔 구대륙의 거점을 아주 포기해야 했지. 이번엔 어떨 것 같으냐?”
“루카스, 인내심을 가지고 -”
“소피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교황청을 협박할만한 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말이지.”
“… 그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지금 할 이야기는 따로 있잖아.”
순식간에 쏟아지는 정보를 정신없이 해석했다.
포르투나, 정황상 이건 교황청이 부리는 초강력 괴물 같은데?
50년에서 100년을 주기로 한 번씩 깨어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진다.
180년 전 – 약 1710년에는 호텔 파티 중 누군가로 추정되는 ‘스승’조차 포르투나를 막지 못하고 쓰러졌다.
110년 전 – 약 1780년에는 이들이 구대륙의 거점을 포기하고 신대륙으로 도망쳐야 했다.
요컨대, 180년 전에도 이미 감당할 수 없었고 더 강해진 110년 전엔 그냥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금 110년이 흐른 지금, 또 포르투나가 깨어났다고 한다.
이 자리의 모든 이가 ‘이제 우린 다 죽었다!’ 같은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학장은 소피아의 ‘지금 할 이야기는 따로 있잖아’라는 말에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렇지, 그렇지. 깜빡했군. 너, 아리라고 했었지?”
“네.”
“내겐 한 가지 철칙이 있으니,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
이건 혹시 보상에 관한 이야기?
“네 ‘예언’ 덕에 많은 학생을 살렸으니, 적절한 보답이 있어야겠지.”
엊그제부터 나와 묵성을 골치 아프게 했던 문제가 바로 떠올랐다.
“유물 보관소!”
“음? 유물 보관소?”
학장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교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 오래된 물건을 모아둔 창고 말입니다. 요즘은 유물 보관소라고 부릅니다.”
“그래?”
“마거릿이 관리 중입니다.”
“흐음. 그러면, 창고에서 쓸만한 마도구를 한두 개 얻고 싶다 그 말이냐?”
“네.”
학장은 다소 미묘한 표정으로 턱을 긁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마. 거긴 그냥 용도가 애매한 물건을 보관해두는 곳이지, 무슨 보물창고가 아니다. 네가 원하는 거창한 물건은 없을 게다.”
학장의 말은 쉽게 이해했다.
애초에 정말 ‘보물 창고’같은 장소면, 학생은 물론이고 교수진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몰래 만들지 않을까?
학교 내에 대놓고 보관하는 시점에서 나름대로 가치는 있지만, 학장이 생각할 때 ‘진짜 보물’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나는 이 설명을 들으니 더더욱 확신이 섰다.
우리가 찾는 ‘그 도구’들은 호텔 파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특이하게 생긴 물건에 불과하니까!
“괜찮아요.”
“네 선택이니, 말리지 않겠다. 브라이언, 이 아이에게 -”
“내가 같이 갈게.”
“… 좋아. 소피아, 적당히 하나 주도록 해.”
“그래.”
이렇게 개강 파티의 일은 일단락되었다.
*
늦은 밤.
소피아와 함께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묵성이 즉시 달려왔다.
“아리야, 일은 잘 해결 -”
“…”
“…”
잠시, 묵성과 나 그리고 소피아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소피아는 나와 이 ‘아저씨’가 대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하다는 듯, 묵성을 살폈다.
곧, 소피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입도 반쯤 벌어졌다.
“어? 어? 뭐야? 설마 너, 너도?”
“…”
갑자기 소피아가 묵성에게 휙 다가가더니, 이번엔 양손으로 ‘아저씨’의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기까지 했다.
“으억! 에, 에밀리 양, 이건 굉장히 실례 -”
“묵성아, 그냥 가만히 있어. 얘 나름대로 확인 중일 테니까.”
“확인?”
슬슬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소피아를 ‘안배’한 동료는 소피아가 우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초상화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남기지 않은 걸까?
아니면 시간이 흐르며 잊혔다?
어찌 됐든, 소피아는 초상화와 비슷하게 생긴 날 바로 알아봤지만, 묵성은 알아보지 못했어.
그야, 초상화를 남긴 쪽에선 묵성이 갑자기 20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하고 다 늙은 모습을 남겼을 테니까!
묵성이 20대였던 1회차에선 아예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50살에 가까워진 2회차가 되니까 비로소 ‘설마?’ 하기 시작한 것.
입을 반쯤 벌린 채 ‘두 사람’을 모두 찾은 소피아에게 다가갔다.
“에밀리 – 아니지, 소피아.”
에밀리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우린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그렇지?”
“… 그렇네.”
그날, 소피아와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했다.
오래된 이야기였다.
아주, 아주 오래된 수백 년 전의 이야기.
마녀로 태어난 소녀가 흑기사에게 어머니를 잃고 스승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