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6)
EP.506 506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8)
506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8)
– 김아리
“읏!”
발목이 꺾이며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려는 신체 균형을 힘으로 유지했다.
— 푸쉬이이!
이번엔 몸 전체가 뒤로 넘어가려고 했고, 옆에 있던 묵성이 바로 잡아줬다.
“괜찮냐? 실수가 좀 잦은데?”
“오랜만에 써서 그래. 두어 시간 더 연습하면 익숙해질 거야.”
“이것 참, 매번 느끼지만 윙 부츠는 너무 까다로운 도구란 말이지. 말이 좋아 공용 도구지, 사실상 너 말고는 몸을 띄우는 것조차 힘들어하잖냐.”
“글쎄, 내 생각에 각 잡고 한 달 정도 연습하면 다른 사람도 쓸 수 있을걸?”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다시금 윙 부츠의 통제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 광경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신기하네.”
“…”
“신발 자체는 창고에 들어갈 때마다 봤는데, 그렇게 신기한 신발인 줄은 몰랐어.”
“…”
“스승님도 쓰지 못했는데, 왜 너희만 쓸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윙 부츠나 방호복 같은 공용 도구는 호텔 파티만 쓸 수 있다?
네 스승은 ‘참가자의 자격’이 없는 0.5 동료 같은 존재니 쓸 수 없다?
무리지.
그래서 나는 침묵으로 답했고, 소피아도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화 주제를 돌릴 겸, 정보를 확인할 겸 묵성이 몇 가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니까 소피아 양, 아가씨의 모친 성함이 ‘이은솔’이라는 말이지?”
“응.”
“흑기사에게 어머니를 잃고 고모, 음 발렌티나?”
“맞아. 그분은 평범한 인간이라 오래전에 돌아가셨어.”
“발렌티나 양과 함께 도주하다가 ‘스승’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그대의 스승은 루카스 또한 제자로 거두었다.”
“정확해.”
소피아는 스승과의 만남을 신비한 우연이라 여기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우연이 아니다.
두 번째 시련의 배경이 ‘중세 유럽’이고 ‘마녀사냥’과 연관이 있다는 건 207호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소피아의 ‘스승’은 진작부터 유럽 일대를 배회하며 언젠가 나타날 은솔과 엘레나를 찾고 있었으리라.
다만, 교통수단도 부실하고 인터넷 같은 것이 없는 시대라 은솔과 엘레나를 제때 찾는 데 실패했을 뿐이다.
“스승님은 정말이지 신비한 분이셨어! 물론, 그렇게 따지면 미래를 보고 페로를 부렸던 어머니도 대단했지만….”
“…”
“스승님은 육신을 갈아탈 수 있고, 다양한 마법에 능통한 분이셨지. ”
“외부에는 학장, 그러니까 루카스만 알려져 있던데 이유가 뭐야?”
“대외활동은 항상 루카스가 했어. 나는 아무래도 외견상 좀 그렇지?”
대외적으로 학장이 유명해진 건 ‘성인 남성’인 루카스가 대외활동을 전담했기 때문이다.
외견상 어린 여자애인 소피아나 육신을 갈아타는 유미가 나서긴 쉽지 않았을 테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법 이야기로 돌아가면, ‘생명’을 다루는 것이 스승님의 전문 분야였어. 나와 루카스도 생명 마법은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
‘생명 마법’은 우리도 잘 아는 힘이다.
다양한 마법에 능통하다?
이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버틴 끝에 습득한 능력이겠지.
‘육신을 갈아타는 힘’.
이런 짓이 가능한 존재는 호텔 파티 중 유미와 가인이 뿐인데, 후자는 아직 시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소피아와 루카스의 스승은 유미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러 의문이 풀렸지만, 새로이 떠오른 의문도 있었다.
“너희 스승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진 않았다고?”
“다른 사람이라…. 아까부터 ‘소년’에 대한 질문을 자꾸 하는데, 없었어.”
유미가 소피아와 루카스를 거둔 시점에서 이미 승엽이는 없었다.
물론, 시련 사이의 시간적 틈을 생각하면 늙어 죽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종의 ‘정신 기생체’인 유미의 본질을 고려하면, 승엽이가 죽었다 해도 정신을 끝없이 복사 붙여넣기 하는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기도 하고.
애초에 유미가 동료로 편입되는 과정도 이런 식이었으니까.
“그, 그런데!”
“그런데?”
다음 순간, 소피아는 정말이지 ‘소녀처럼’ 살짝 얼굴을 붉혔다.
“스승님이 가끔 오래전의 ‘연인’에 대해 말하곤 했어.”
‘연인’이라니….
승엽아, 그렇게 유미에게 안달복달하더니 결국 소원성취는 했구나?
심지어 유미 쪽에서 수백 수천 년이 흐르고도 기억할 정도면, 어떻게든 관문의 방을 탈출하면 제법 닭살 돋는 모습을 보일 것 같네.
“풋!”
“그 연인이 너희가 찾는 소년이야? 궁금하네. 누구야?”
“신경 쓰지 마.”
나간 후에나 생각할 일이지.
몇 시간 째 소피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중, 이번엔 소피아가 내게 물었다.
“나도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
“너흰 누구야? 누구길래 어머니는 수 백 년 후에 너희가 나타나리라 예지했고, 스승님도 너희를 기다린 걸까?”
나와 묵성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호텔’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그 호텔에 대해 도저히 말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 고민하던 중, 소피아는 기묘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사실 알아. 대충 짐작해.”
짐작한다고?
아니, 대체 뭘 어떻게 짐작한다는 거야?
“긴 세월 스승님이 흘린 정보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조합하니 답이 나오더라고. 이 주제로 루카스와 오래 대화했는데, 같은 결론을 얻었어.”
“결론이라니.”
“너희는 호루스의 진짜 사제야. 맞지?”
“…?”
순간, 당황해서 윙 부츠에서 떨어질 뻔했다.
커피를 마시던 묵성도 입을 반쯤 벌린 채 소피아를 보았다.
우리가 누구 사제라고?
호루스? 호루스는 가인이 아니었어?
나 오늘부터 가인이 사제임?
“…”
곰곰이 생각하니 소피아가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해했다.
미래를 볼 수 있었다는 호루스.
미래를 보는 것 ‘같았던’ 은솔과 유미.
이들이 운명적으로 예견한 나와 묵성의 등장.
일련의 과정은 마법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지고한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한 현재의 소피아와 루카스조차 미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은솔과 유미는 미래를 본 적 없고, 가인 역시 마법으로 미래를 본 게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마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으니 가능한 설명은 단 하나, 신이다.
“…”
아까 묵성이 그러했듯 나도 대화 주제를 슬며시 비틀었다.
“너희 스승도 호루스의 음, 사제나 신도였지?”
“비슷하면서도 달랐지.”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래?”
소피아는 잠시 오랜 기억을 되새긴 후 답했다.
“지속해서 호루스 신앙을 퍼트렸다는 점에선 사제나 신도라고 봐야겠네. 평신도들 앞에선 무슨, 요즘으로 치면 크리스트교 신부나 개신교 목사처럼 설교하기도 했고.”
“…”
“다만, 나와 루카스 앞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평신도 앞에선 사제처럼 행동했다.
더 믿을만한 소피아와 루카스 앞에선?
“…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호루스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
이 점만큼은 나와 묵성도 지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통찰을 얻은 후의 가인은 정말이지 사람 같지 않았으니까.
유산의 힘으로 수천 명을 세뇌하고 손짓 한 번으로 열선을 쏘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해.
“신처럼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어. 마치, 실제로 만나본 적 있는 사람을 대하듯 말했지.”
실제로 만나본 적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원망하곤 했어.”
어라?
“원망했다고?”
“호루스가 모든 것을 망쳤다고 했어.”
“… 더 자세히 말해줘.”
“호루스가 뿌린 씨앗이 ‘관문’을 끔찍하게 뒤틀었다고 중얼거리셨어.”
혼란스러웠다.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시점에서 가인이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유미는 이후 수천 년 동안 원망한 걸까?
“루카스는 스승님으로부터 ‘호루스에 대한 분노’를 배웠지.”
“…”
“그러니까 루카스 앞에선 너희가 호루스의 사제라는 둥 하지 마. 루카스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굳이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야. 그는 나처럼 너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야.”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찻잔을 비운 묵성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소피아 양, 호루스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신 듯하니 더 말하진 않으리다. 다만, 우리가 여러분의 ‘스승님’과 동료라는 건 짐작하시겠지?”
“그렇겠지.”
“그분을 뵐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은….”
“아직 살아있다고 들었는데.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
“… 아까 스승 이야기할 때 넌지시 암시하셨소이다.”
“내가? 이건 정말 극비인데…. 실수했나?”
소피아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 폭주하던 루카스는 소피아와 대화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지.
「“스승, 그놈의 스승! 소피아, 죽는 순간까지 호루스만 찾던 그 머저리가 아직도 그리 존경스럽나?”
“루카스, 스승님은 아직 죽지 않았 -”」
해석해보면, 유미는 살아있지만, 정상이 아닌 모양이야.
다만 이 정보는 시간을 돌리기 전에 얻은 정보니까 소피아로선 당황할 만하지.
말해준 적 없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묵성이 살짝 실수한 셈인데, 다행히 소피아가 더 따지진 않았다.
“맞아. 스승님은 굉장히 ‘이상한’ 상태야.”
“이상한 상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소피아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본인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설명하려니 힘겨워하는 느낌.
“잔해. 조각. 부스러기.”
“뭐?”
잔해, 조각, 부스러기.
사람에게 쓸 수 있나 싶은 이상한 단어들이 나왔다.
곧, 소피아는 되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리야, 사람을 접시라고 칠게.”
“비유하는 거야?”
“접시가 깨졌어.”
“…”
“접시가 깨지며 수백 수천 조각으로 나뉜 채 온 세상에 흩어졌어.”
“…”
“그 조각 일부를 나와 루카스가 어떻게든 구해와서 합쳤다면, 그걸 원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유미가 수백 조각으로 찢어져 세상에 흩어졌다?
대체 무슨 힘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당황하는 나와 달리 묵성은 비교적 침착하게 답했다.
“소피아 양. 스승님의 잔해든 조각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한번 만나 뵐 수 있겠소?”
“… 좋아. 안내해주지. 스승님도 너희를 기다렸을 테니.”
**
신대륙의 대서양 항로의 종착점, 뉴욕항.
— 부우우우!
요란한 경적과 함께 거대한 증기선, 패스파인더호가 항구에 입항하기 시작했다.
여객선의 선장, 에드거 후버는 선원들을 시켜 승객들에게 마침내 기나긴 항해가 끝났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물론, 세상의 이치가 으레 그렇듯 승객이라고 다 같은 승객이 아니었다.
주섬주섬 모은 쌈짓돈으로 삼등석 한쪽을 겨우 얻은 사람들과 고급스러운 시가 향을 풍기며 일등석에 앉은 신사들이 어찌 ‘같은 승객’일 수 있겠는가.
또한, 특별한 승객 중에서도 ‘더욱 특별한 승객’이 있기 마련이다.
교황청에서 직접 보낸 사제단이라면 어떨까?
두툼한 뱃살 때문에라도 쉬이 몸을 일으키지 않던 선장조차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하하, 신부님들! 신대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선장, 그동안의 친절한 배려 감사하오. 곧 내릴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약간의 서류 절차만 끝나면 말이지요.”
에드거는 슬며시 웃으며 일등석 창가의 커튼을 걷어 올렸다.
곧, 허드슨강 너머로 장엄하기 그지없는 뉴욕의 마천루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콧대 높은 유럽 신사들도 저 마천루들 앞에선 자존심을 굽히기 마련!
선장에게 이런 일은 위대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며 자신이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였다.
“…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사제단은 에드거가 바라던 반응을 보여주는 대신, 항해 기간 내내 보였던 무감정한 모습만 드러냈다.
“선장, 수고하셨소. 자~! 다들 짐 챙겨서 -”
“잠깐.”
낮고 조용한 목소리.
하지만, 좌중의 모든 이를 휘어잡는 목소리.
‘잠깐’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사제를 주저앉힌 청년은 다소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급스러운 원목 의자에 기대었다.
곧, 나이 든 사제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혹시, ‘계시’를 받으셨다거나 -”
“아니야. 그냥, 그냥 잠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 딱 30분만.”
“알겠습니다. 선장! 30분 후에 하선해도 되겠지?”
“무, 물론입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눈앞의 광경은 상식적인 미국인 에드거 후버에겐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작해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청년에게 교황청 고위 사제들이 굽실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제단이 하선하기 직전, 선장은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저기, 사제님!”
“음? 하실 말 있으신가?”
“저기 – 저분의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아, 아닙니다. 제가 주제를 모르고 -”
“포르투나.”
“예?”
“잘 있으시게. 긴 항해 동안 친절한 배려 고마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