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7)
EP.507 507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9)
507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9)
– 김아리
모호한 어둠 속, 낯선 지하 동굴에서 풍기는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습기 가득한 환경이 자아낸 기기묘묘한 생태계와 다 썩어가는 살점들이 만들어낸 냄새였다.
“조금, 조금만 더 가면 돼.”
소피아는 특이하게 생긴 손전등으로 – 과학의 산물은 아닌 것 같다 – 전방을 비추며 천천히 나아갔는데, 점차 더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불빛 아래서 거대하고 진득한 살점 덩어리들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살점 덩어리들은 동굴 외벽 전체를 가득 메운 채 쉴새 없이 꿈틀거렸는데, 마치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았다.
“… 어이구야.”
묵성이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나만 보이는 각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203’이라는 숫자를 보였다.
확실히 203호, 새로운 시작에서 봤던 ‘부화장 풍경’과 미묘하게 비슷하긴 하네.
— 꿈틀!
“으어~!”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묵성의 다리를 타고 올랐다.
윙 부츠로 허공에 뜬 채 이동하는 나와 지형을 잘 알고 피해 다니는 소피아와 달리, 묵성은 초행인데 하늘을 나는 재주도 없으니 촉수에 붙잡히고 만 것.
곧, 소피아가 손끝으로 이상한 빛을 뿜어내며 촉수를 몰아냈다.
“조심해. 스승님의 레어는 걸음걸음마다 위험이 가득하거든.”
“소피아 양, 스승께 연락해서 이런 것을 치워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까?”
“그분이 멀쩡하실 때는 당연히 가능했지.”
“…”
돌아갈 때도 이 부화장 같은 장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 뇌리에 박혔다.
당장 돌아가고픈 충동이 솟았지만, 유미에게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으니 후퇴는 선택지에 없었다.
갈수록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곳곳에서 점막이 꿈틀거리는 역한 소음이 들려왔다.
“대체 유미 – 스승님은 왜 이런 괴상한 장소에 사는 거요? 그냥 거, 오래 살면서 모은 재산으로 저택이나 만들든지!”
묵성의 불평에 소피아는 의외로 진지하게 답했다.
“나와 루카스도 그게 궁금했어. 지금처럼 ‘둥지 방어 시스템’이 제멋대로 굴진 않았지만, 그때도 이 장소는 꽤 끔찍했거든.”
“이유가 있답니까?”
“있었어. 스승님은 설명하시지 않았지만, 저절로 알았지.”
유미가 ‘둥지’를 이렇게 끔찍하게 만든 이유? 궁금하긴 하네.
“스승님은 정말, 많은 시간을 주무셨거든.”
아?
“이 동굴은 말하자면 거대한 동면 시스템이야.”
“동면?”
“스승님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잠들기 위한 장소. 이 불쾌한 살점들은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한 용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한 것들이지.”
“…”
“정말 놀라운 점이 뭔지 알아? 동굴에 잠들어있는 동안은 노화조차 멈춘다고 해. 신기하지?”
“대단하네.”
이곳은 인간이 외부로 나가지 않고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동면할 수 있는 장소다.
유미가 이런 장소를 왜 만들었는지는 너무나 이해가 됐다.
인간은 설령 불로불사를 얻었다 해도 맨정신으로 수천 년을 버틸 재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유미 본인이, 혹은 승엽이와 함께 동면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정황상 예전부터 여러 번 쓰였겠지.
아무리 유미가 특별한 존재라 해도 맨정신으로 3000년, 4000년을 버텼을 리는 없으니까.
어쩌면, 승엽이도 이 시설을 여러 번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 고생 많았네.”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묵성 쪽을 살폈다.
재미있게도 묵성도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는지 날 보고 있었다.
호텔 피셜, ‘원 모어 찬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물건이다.
가인이가 디너 파티에서 확인한 네 번째 시련의 내용은 현실의 위험과 유사하다.
마치, 너희가 나가서 해결해야 하는 위험을 미리 예습해보라는 것처럼!
묵성이 눈으로 말했다.
‘설마, 마지막엔 내가 여기 들어가야 하냐?’
나 또한 눈으로 답했다.
‘글쎄?’
…
이렇게 대화한 것 맞지?
가끔 눈빛으로 이렇게 총 총! 하고 나중에 실제 확인하면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린 경우도 많던데.
동굴 심처, 유미가 머무르는 혹은 ‘갇혀있는’ 장소 앞에서 소피아가 멈췄다.
“180년 전, 스승님이 쓰러졌다는 이야기 했었지?”
“그래.”
180년 전, 깨어날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포르투나가 마침내 유미를 쓰러트리고 치명상을 입혔다고 한다.
“그러면, 누가 스승님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음? 당연히 포르투나 아니야?”
“이 부분은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구나. 아니야.”
유미를 쓰러트린 존재는 포르투나지만, 지금 상태로 만든 건 포르투나가 아니다?
“스승님이 지긴 했지만, 당시 포르투나도 치명타를 입고 물러섰거든.”
“그러면 누가 너희 스승을 무너트렸지?”
유미의 거처를 묵묵히 바라보는 소피아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 성모.”
“뭐라고?”
“성모 에이디아. 들어본 적 있어?”
“전혀.”
현실 교황청에서 성모라고 하면 당연히 마리아지, 에이디아 같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
“모를 만해. 이면 속에 가려진 인물이고, 교황청 내부에서도 소수만 아는 존재니까.”
“그래, 소피아 양. 성모 에이디아라는게 어떤 존재요?”
“교황청의 실질적인 수장. 독재자.”
성모 에이디아는 실질적인 교황청의 수장이며, 대외적인 신분이 없는 은밀한 존재라고 한다.
멀쩡하던 시절, 루카스를 배후에서 조종했던 유미의 대척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겠네.
묵성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교황은?”
“그냥 얼굴마담이야. 불로불사의 괴물이 영원불멸의 교황 역할을 하고 있으면 일반인들이 보기에 너무 이상하잖아? 주기적으로 하수인을 내세울 뿐이지.”
“… 기가 막히는군.”
어처구니없어하는 묵성과 달리, 난 그리 놀라진 않았다.
애초에 207호의 교황청은 현실로 치면 관리국이잖아?
관리국 수뇌부인 침묵하는 자(The Silent)와 비슷한 존재들이 교황청에도 있을 터.
“포르투나가 돌아간 후, 스승님은 한동안 은거하며 힘을 회복하시는 데 집중하셨어. 그러던 어느 날, 성모 에이디아가 직접 찾아왔지….”
낮게 깔린 소피아의 목소리에서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평생 존경했던 스승, 유미조차 당해내지 못한 존재.
성모 에이디아.
“그다음은?”
“몰라. 스승님이 우리보고 그냥 가라고 했거든. 에이디아도 말리지 않았어.”
묵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할만한 상황이군. 유미는 소피아 양과 루카스까지 죽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테고, 에이디아는 당신과 루카스의 협공을 피하고 싶었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건 그렇고, 너희는 ‘유미’라고 잘도 부르네. 스승님은 남이 그 이름을 부르는 걸 싫어했는데.”
“…”
남이 유미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라….
친한 사람에게만 통성명을 허락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유미’에겐 그런 성향이 없었다.
소소한 차이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유미가 많이 달라졌다는 의미겠지.
“이후, 스승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수백 수천 조각으로 쪼개지셨어.”
어제 들은 이야기다.
“스승님의 기억을 담은 살덩이가 그야말로 별 전체에 흩뿌려졌지.”
“…”
“살덩이들은 곧 주변 사람들에게 파고들었고, 그 결과 세상 전체에 스승님의 파편을 얻은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광인이 나타났지.”
“…”
“100년 넘게 루카스와 세상을 떠돌아다녔어. 스승님의 조각을 모으고 또 모았지. 그렇게 10여 개를 찾아서 ‘저것’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성공했지만?”
“이제는 뭐, 나머진 전부 사라졌다고 봐야겠네. 100년 넘게 돌아다녔다고 했지? 나머지 조각들은 늙어 죽으면서 사라졌을 거야.”
“… 고생했어.”
“고마워.”
담담하게 말하는 소피아의 말투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담겨있었다.
평생 모셔 온 스승의 참혹한 파멸과 회복을 위한 제자들의 노력과 좌절.
그 슬픔의 일부를 어렴풋이 느꼈다.
“대체 그런 괴상한 일이 어떻게 가능해?”
성모 에이디아는 무슨 수로 유미를 무너트렸을까?
“좋은 질문이야. 나도 그 부분을 이후 180년 동안 궁금해했거든. 아리 네겐 미안하지만, 아직도 답을 몰라.”
소피아도 답을 모른다.
즉, 우리가 답을 찾아내야 한다.
“들어가자. 스승님! 제 말 들리시나요?”
*
오랜만에 찾아낸 옛 동료의 모습은 나와 묵성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본래 유미의 외견은 104호의 아우렐리아가 어려진 듯한 10대 소녀의 모습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여기까진 놀랄 일은 아니다.
소피아의 말에 따르면, 유미는 여러 차례 몸을 갈아탔다고 하니까.
문제는 혼자 동굴에서 몸을 마구 뒤틀었는지, 뭘 어떻게 봐도 인간이라기보단 끔찍한 거미 인간 같은 형상이었다는 것.
“전보다 더 이상해지셨네. 놀라지 마! 스승님이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본래는 굉장히 기품있고 현명하신 -”
“괜찮아,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시켜.”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난동 부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얌전해져서 어린애처럼 촉수가 제공하는 양분을 흡수한다.
나와 묵성을 보고 머리를 360도로 꺾으며 흥분하는가 싶더니, 옆의 소피아를 보고 어린애처럼 칭얼거리기도 한다.
뭘 어떻게 봐도 정신 나간 혼돈체 그 자체였고, 더 좋게 포장할 방법이 없었다.
나와 묵성은 잠시 참혹한 표정을 짓다가 소피아를 보았는데, 소피아의 허무한 표정을 보니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래.
유미는 이미 우리와 보낸 시간보다 207호에서 보낸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잖아?
우리가 유미에게 품은 감정보다 소피아, 루카스가 유미에게 품은 감정이 훨씬 더 깊다는 이야기야.
생각이 여기에 닿자 더 우울해졌다.
스승님은 살아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유미의 조각을 ‘저것’이라고 말하는 소피아.
유미의 회복을 위해 100년 넘게 고생했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호루스만 찾던 그 머저리가 아직도 그리 존경스럽나?’라고 외친 루카스.
“후우…. 비극이다. 비극이로다….”
묵성의 말에 소피아는 태연히 답했다.
“난 괜찮으니까, 들어가 봐. 뭔가 하려고 온 것 아니었어?”
“… 소피아, 미안한데 밖으로 나가줄 수 있을까?”
“왜? 너희끼리 대화해야 해?”
“…”
“좋아. 나가줄게.”
소피아가 나간 후, 묵성과 대화했다.
“아리야, 저거 딱 봐도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내 눈에도 그래.”
“유미 정신에 네가 파고들어서 뭔가 얻어내야 할 것 같은데?”
“…”
저것은 유미 원본이 수백 이상으로 쪼개진 후 소피아와 루카스가 조각모음 해서 억지로 만들어낸 존재다.
전체 조각이 몇 개였는지는 몰라도, 원본의 10% 미만일 텐데 이 정도로 무너진 존재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다.
다만, 기억을 긁어내는 건 다른 문제다.
오래된 피의 힘을 사용하면 상대의 정신에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힘으로 가인의 정신에 파고든 적도 있고, 미로의 정신에 파고든 적도 있다.
“어떻냐?”
“일단, 저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건 상당히 위험해.”
“으음, 너까지 휘말릴 수 있다?”
“그렇지. 오래전에, 201호에서 탈출한 후의 일 기억해? 0차원의 눈을 목도하고 미쳐버린 엘레나의 정신에 가인이가 파고들었던 일.”
“… 기억한다. 가인이도 돌아버릴 뻔했지.”
“다른 문제도 있어.”
“뭔데?”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내는 데까지 아주 오래 걸릴 거야. 저 정도로 돌아있으면, 보나 마나 정보가 마구잡이로 흩어져있을 테니까.”
“…”
한숨 쉬는 묵성에게 덧붙였다.
“그래도 하긴 해야지. 소피아에게 부탁해서 저것, 음, 유미의 잔해를 힘으로 억눌러달라고 해야겠네. 그리고….”
“그리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깨워.”
“알겠다.”
유미 조각에 남은 광기 어린 혼돈 속으로 서서히 침강한다.
곧, 부스러진 기억의 조각 중 일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
처음으로 본 것은 ‘거울’이다.
유미의 모든 기억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언가다.
그녀는 거울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