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09)
EP.509 509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1)
509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1)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물경 1,000년은 흐른 것 같은데, 지금까지 에이디아가 생존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지? 인간이 아니니까? 아니, 아니잖아. 메네스도 불로불사는 아니었는데!”
1,00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소녀가 답했다.
“호루스의 따님. 당신은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신비한 분이죠. 저도 뭐, 제법 신비한 축에 속하고.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신비로운 건 이 세상 자체랍니다.”
“무슨 의미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해두죠. 애초에, 당신부터가 예전 모습 그대로면서 왜 이리 놀라요?”
“…”
문득, 에이디아의 몸 일부가 ‘수정’처럼 변했음을 알았다.
저게 수명을 늘린 비결일까?
*
지금, ‘에이디아’라고 했지? 성모 에이디아?
1897년 시점보다 수천 년 전인데 성모 에이디아가 이미 존재하고, 심지어 유미/승엽 파티와 잘 아는 사이야.
요컨대, 에이디아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한 존재다.
*
“에이디아, 호위 하나 없이 혼자 왔구나?”
“우리 사이에 그런 게 필요한가요?”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인데?
어처구니없음을 느끼며 둥지 전체에 제압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곧, 사방에서 조여든 촉수가 에이디아를 단박에 옭아매었다.
“…”
너무 쉽잖아?
정체불명의 수단으로 1,000년을 버틴 만큼 터무니없는 전투력을 예상했는데, 너무 쉽게 붙잡히네.
애초에 저항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기에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어.
“우와~! 신기해라. 동굴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 위장 같네요. 말로만 들은 마녀의 레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
“수행원들은 두고 오길 잘했네. 데려왔으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죽었겠어요. 사람의 목숨은 귀하잖아요?”
여유로운 정도를 넘어서 긴장감이 거세된듯한 에이디아의 태도가 날 당황케 했다.
얘 말만 듣고 있으면 정말 무슨 친구인 줄 착각하겠는데?
어이가 없어서 목을 살짝 조였다.
“켁! 켁! 숨 막혀요! 풀어주세요.”
“뭐지? 에이디아. 정말 죽을 생각으로 왔어?”
“그러면 한번 죽여보시죠. 참고로 전 늙지 않을 뿐, 불사신이 아니랍니다. 머리를 자르면 그냥 죽어요.”
“…”
침묵 속의 대치가 이어졌다.
에이디아는 한번 죽여보라는 듯 저항 없이 몸을 축 늘어뜨렸고,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곧, 에이디아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화했다.
장난기 가득한 소녀의 가면이 벗겨지며 울분과 허무함을 품은 누군가가 나타난 것.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네.”
“…”
“너는 날 죽일 수 없어. 그렇지?”
“…”
“왜냐하면, 1,000년 전에 호루스가 날 살렸으니까. 날 살린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나는 아직도 호루스가 도마뱀 공주를 살려 보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에이디아를 죽일 수 없었다.
호루스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짐작은 했는데, 진짜였구나. 호루스가 날 살렸어. 어째서야? 왜지?”
“…”
“모르는구나? 너도 몰라. 모르면서 그냥 따르는 거야? 그가 무서워? 명령을 어기면 지옥에 떨어트릴 것 같아?”
그때, 뒤에서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형 – 호루스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면 어떤 존재죠?”
잠시, 나와 승엽이 동시에 말문을 잃었다.
그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왜 그를 두려워하며, 그의 지시를 거스르지 못하는 걸까.
“…”
지시를 어기면 날 죽일까 봐?
지옥에 떨어트려서 영원히 고문할까 봐?
아니다.
승엽처럼 가인을 친근하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날 죽이거나 고문할 사람이 아님은 잘 안다.
그냥 가볍게 웃으면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정도로 넘어가겠지.
대신, 마음속으로 나 – 유미의 가치를 하향 조정하리라.
관문 열차의 체스 기사가 날 비숍이나 나이트가 아닌 폰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내려주시겠어요?”
“… 좋아.”
어차피 에이디아를 해칠 수 없음이 드러난 이상, 계속 묶어두는 건 무의미하다.
잠시 후, 에이디아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와! 승엽 군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 이 분위기는 설마?”
“앗! 앗! 이, 이상한 오해 하지 마!”
“아~ 착각이구나? 유미 양과 승엽 군은 아무 사이도 아닌 거죠? 그냥 별 이유 없이 동굴에서 1,000년째 같이 사는 정도의 관계?”
“으악! 으악!”
새빨갛게 달아오른 승엽과 다시금 장난기 어린 소녀의 가면을 뒤집어쓴 에이디아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불멸의 석관은 어디 있나요? 여러분이 보관 중이신 것 맞죠?”
“…”
석관의 위치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어.
*
유미가 가인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네.
자신을 비숍이나 나이트가 아닌 폰이라 평가할까 봐 두렵다라….
그래, 체스 챔피언께서는 날 뭐라고 생각 중일까?
…
에잇! 뭐긴 뭐야 당연히 퀸이지!
*
가면 속의 본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에이디아의 태도는 그리 감정적이지 않았다.
과거의 일은 아예 없던 것처럼 묻어둔다?
오히려 이랬으면 더 믿기 힘들었을 텐데, 그런 건 또 아니었다.
“우리, 솔직히 말하기로 해요. 가슴에 손 얹고.”
“…”
“손 올려요. 전 올렸잖아요?”
“어? 손 정말 가슴에 얹어?”
“네.”
곧, 승엽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손을 가슴에 얹었다.
“유미도요.”
“… 이게 대체 무슨 쇼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서로 편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렇죠?”
“…”
“여러분은 제 선조를 비롯한 동족을 학살했고, 난 모두의 저주를 받으며 쫓겨나야 했죠.”
나와 승엽은 어색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긴 세월 원한에 들끓었답니다. 복수하라. 이집트를 불태워라. 악신 호루스와 그 수족을 모조리 죽여라. 이 생각이 내 영혼을 집어삼켰죠.”
참기 힘들었는지, 승엽이 슬며시 손을 검 손잡이 위에 올렸다.
언제든 검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일촉즉발의 분위기!
“풋!”
다음 순간, 에이디아의 가벼운 웃음이 긴장을 깨트렸다.
“이런 것도 다 800년쯤 전에 지나갔답니다. 두 분은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길어서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세상에 영원한 감정은 없어요.”
솔직히 말하건대, 듣는 순간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나 역시 거쳐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이집트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이 ‘고작’ 100년 만에 거의 식었었지.
심지어 에이디아는 동면한 것 같지도 않으니, 생으로 천년을 보낸 상태다.
*
동면도 없이 맨정신으로 천년이라….
확실히, 이 정도면 부모를 죽인 원한조차 가물가물해질 시간이네.
원한을 완전히 잊었다는 소린 아닐 거야.
다만,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진 않는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망각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라 하지 않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그 자체가 초자연적인 무언가지.
내 사랑처럼.
*
“한번 도와주세요. 날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통받는 인간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해주세요.”
“갑자기 도와달라니.”
“대가라고 말하긴 뭐한데, 이번에 도와주시면 과거의 원한은 딱! 잊죠. 다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와 승엽이 당황하는 순간, 에이디아가 약간의 협박을 섞었다.
“저랑 계속 적대하는 것, 여러분에게도 피곤한 일 아니에요? 여러분은 절 죽일 수 없잖아요.”
“협박하는 거야?”
“네. 이번에 도와주시지 않으면 이 악물고 1,000년 동안 괴롭힐게요. 이 이상한 동굴에 하루에 세 번씩 멧돼지 똥을 밀어 넣고, 불타는 장작도 던지고, 금덩이가 가득하다는 소문도 외부에 퍼트리고 -”
미묘하게 현실적인 협박을 듣던 승엽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진정해. 이, 일단 우리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좀 줘.”
“좋아요. 나가드리죠.”
에이디아가 나간 후, 나와 승엽은 한숨 쉬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게 뭔 일이냐고! 아오! 가인 형 진짜! 쟤를 그냥 그때 처치했으면!”
가인은 저 여자애를 왜 살린 걸까?
새삼 그를 탓해봐야 의미는 없다.
“의미 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자. 어떻게 할래? 도와?”
“… 그, 상황 자체는 심각하게 들리긴 했어.”
사실관계는 간단하다.
에이디아는 약 700년 전 이베리아반도 – 미래의 스페인 –에 도시를 건설한 후, 도시의 여신으로 군림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약 20년 전부터 매일 악몽 같은 현상이 발생하며 무고한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에이디아가 직접 나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원인은 놀랍게도 도시 지하에서 발견된 거대한 거울이었다.
“무슨 귀신 들린 거울이라도 되는 건가?”
“거울 저편에 기묘한 세상이 펼쳐진다고 하네. 설명만 들으면 이세계로 통하는 문 같은 느낌인데.”
“인간 병사들은 아무리 보내도 소용없고, 에이디아 혼자서는 자신 없다라…. 유미야, 어떻게 해?”
“네가 선택해.”
“나, 행운 없는 것 알잖아.”
“그동안 보면서 느꼈는데, 축복과 별개로 넌 미묘하게 감이 좋아. 그니까 그냥 찍어.”
“… 도와주자.”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내겐 그리 와닿지 않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매일 괴현상에 의해 학살당한다는 건 승엽에겐 의미 있어 보였으니까.
윤리적인 이유를 떠나서 에이디아의 협박이 제법 매섭기도 했다.
불로불사인 데다가 가인 때문에 죽일 수도 없는 에이디아가 영원히 우리 동면을 방해한다?
쉽지 않네.
*
유미의 기억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중간중간, 예컨대 어떻게 이베리아반도에 도착했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라 잊은 것 같았다.
혹은, 유미의 조각이라 해당 부분 기억은 없을 수도 있고.
곧, 도시 지하로 향하는 음울한 유적 입구 앞에 선 세 사람이 보였다.
이 시점의 승엽이에겐 ‘행운’이 없구나.
*
“들어가죠!”
“에이디아.”
“승엽 군? 말해보세요.”
“우리 셋이서만 들어가? 도시 근위병이라도 몇 명 데려갈 줄 알았는데.”
에이디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고, 오히려 방해입니다.”
“…”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평범한 인간은 거울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날뛴다고?”
“그렇긴 한데….”
에이디아의 말에 따르면, 거울까지 가는 것 자체는 쉽다.
길은 그냥 빙빙 돌면서 아래로 내려갈 뿐이고 갈림길 따위는 없다고 하니까.
중간에 끔찍한 괴물이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 하나, 온갖 괴현상을 일으킨다는 정체불명의 거울뿐이다.
“… 에이디아. 너는 거울을 한 번 봤다고 했지?”
“거울을 보고도 멀쩡히 돌아온 존재는 저뿐이랍니다.”
빙글빙글 웃는 에이디아를 보며 생각했다.
평범한 인간은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괴이한 거울.
그녀는 거울을 보고 멀쩡히 돌아온 유일한 존재라고 한다.
…
정말 멀쩡한 상태가 맞을까?
*
거울, 거울이라….
그러고 보면, 루카스가 ‘얄다바오트’라는 외계 신을 소환할 때 외계의 문을 소환했다고 한다.
그 형상은 마치 초대형 거울을 닮아있다고 했는데.
상관이 있는 건가?
아니지, 이 맥락에선 상관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야?
‘거울’을 찾아낸 에이디아와 유미가 각자의 영역에서 연구한 결과물?
더 봐야겠다.
찰나, 거울에 대한 유미의 판단이 뇌리를 스쳤다.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