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
50화 – 천상에서 내려온 자
50화 – 천상에서 내려온 자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2]
“전 호텔——”
“어머니는—–”
“내 목을 잡았던 걸—-”
어렴풋이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뭔가 대화 중이구나.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다.
머나먼 곳에서…. 찬송가가 들려온다.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상태창 필터로 나 자신을 덮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찬송가의 소리가 조금은 작아졌다.
멍멍하다. 내 몸은 여기 있는데, 내 영혼은 머나먼 곳으로 붙들려 가는 느낌이다.
무언가 – 목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의사를 전달하려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백색 소음이 끼어든 것처럼 지지직거리는 느낌과 함께 목소리와 소음이 뒤섞여서 구분할 수 없다.
많은 정보가 흐릿하게 스며든다. 누구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알았다.
천상의 탁자에서 어떤 ‘협상’이 진행되었음을.
협상이 끝났다.
ㅁㅁ : ㅁ
강ㅁ : ㅁ
강림 : ㅁ
강림 :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2
강림 : 3]
빛이 있으라
그리고 빛이 있었다.
*
폭풍처럼 쏟아지는 빛의 소용돌이.
엘레나가 생각하기에, 지금 보는 장면은 살면서 본 어떤 순간보다도 비현실적이다.
‘지금, 사람이 천사가 되는 걸 보는 건가?’
가인의 온몸에서 어떤 설명이 불가능한 파장이 뻗어 나왔다.
도저히 그의 얼굴을 맨눈으로 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천상에서 내려온 후광. 아름답다, 잘생겼다를 넘어서 ‘신성하다’. 감히 사람의 미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자가 눈앞에 섰다.
눈물이 나온다.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이 엘레나의 머리를 채운다. 풍족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러나 조국에 차르가 서자 도망갈 수밖에 없던 가족. 어딜 가나 가난과 위협이 함께 했고, 누군가와 친해질 만하면 다시 메뚜기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던 삶.
아하. 그 모든 고통이 이 분을 뵙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호텔에서 겪은 모든 고통은 구원을 향하는 길의 가시들에 불과했던 것.
마음속의 오랜 슬픔과 절망이 흐릿해지는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그녀는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
*
의식이 돌아오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동료들.
모두가 자세가 무너졌다. 누군가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누군가는 무릎 꿇고 ‘나에게’ 기도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나는 – 사람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어떻게 해야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동료들에게 벗어나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정신없이 일어서서 105호의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이 터져나갔다.
놀랄 틈도 없이 정신없이 뛰었다.
한걸음 한걸음에 복도가 터져나가고, 엄청난 도약력에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자 내 머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천장이 박살이 났다. 당황해서 팔을 휘두르는 동작에 벽이 뜯겨 나갔다.
그제야 최대한 힘을 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계속 이런 상태인 건가?
볼수 없던 색이 보인다. 들을 수 없던 소리가 들린다. 공기중을 떠다니는 먼지를 느꼈다. 부서지는 벽에서 튀어나오는 돌조각의 유동을 느꼈다.
멀리서 떨어지는 샹들리에. 그 샹들리에가 만들어내는 대기의 움직임, 대기의 움직임이 자아내는 세상의 변주곡을 들었다.
아아. 인간은 대체 얼마나 작은 세상에 갇혀있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 많은 변화를 인지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오늘에서야, 모든 인간은 장님이고 귀머거리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빌었다.
그때, ‘평소보다 친절해진 조언’이 알림을 띄웠다.
[가만히 있으세요. 힘이 전부 스며들고 나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옵니다.]다르다. ‘현자의 조언’이 평소와 명백히 다르다. 예전에는 말이 ‘현자의 조언’이지 단순히 죽기 직전의 위기에서만 한마디씩 던져줬는데, 지금은 진짜 ‘조언’ 같다.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애초에 뭘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기 때문에 나로서도 움직이기가 두려웠다.
유치하게 말하자면, 나 자신이 무서웠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몸 주변의 빛이 가라앉았고 활화산처럼 솟아오르던 무한한 힘이 서서히 말라가는 물줄기처럼 흐려졌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주변을 돌아보자, 그야말로 전쟁터 한복판 같은 풍경이 보인다.
복도는 내 발걸음 하나 하나로 지뢰라도 터진 것처럼 구덩이가 팼고, 천장은 박치기 한 번에 20M 밖에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벽의 장식물들은 전부 쓰레기가 됐고, 프런트 주변에 있던 우물이나 나무들은 전부 미사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형체도 남지 않았다.
순수하게 내가 놀라서 뛰어오다가 여기저기 부딪친 그것만으로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됐다.
그리고 – 오늘의 마지막 ‘친절한 조언’이 나타났다.
[이제 당신은 단 3회, 강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길.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
이제는 문이 사라져버린 105호로 돌아갔을 때, 동료들은 다행히 다들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리고 다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
“…”
“그…. 가인아. 뭔지 설명해주지 않겠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가. 역시,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구교사에서 겪은 일부터 시작해야겠지.
천천히 모두에게 설명했다. 혼자 구교사에 잠입했던 일. 기회를 보아 아우렐리아를 급습했고, 주에게 끌려갔던 일. 주로부터 무언가를 받고, 상태창이 뒤틀렸던 일.
그리고 – 방금 일어난 현상. 상태창에 나타난 ‘강림’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이런 종류의 일에 가장 익숙한 요원, 김묵성 할아버지였다.
“아무래도, 저주의 방에 갇혀 있던 ‘주’라는 존재가 자네에게 어떤 투자를 한 모양이군.”
“그 안에 갇혀 있는 존재가, 밖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겁니까?”
“나도 모르지. 다만, 저주의 방에 갇혀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어느 정도 호텔의 이치를 꿰뚫고 있음은 이미 ‘삼키는 자’에 의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삼키는 자’ 역시 호텔의 이치를 이해하고, 무대 내부에 자신이 직접 자아를 통제하는 하수인을 만들어냈지.”
“왜 저에게 투자했을까요?”
“꼭 자네에게만 투자를 한 건 아닐 수도 있지.”
“저 이전에도 누군가에게 투자를 해왔다?”
“그냥 짐작일세.”
“‘주’에 대한 이야기는 그쯤 하자. 어차피 호텔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안에 갇혀 있는 초월적인 존재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보다, 대충 보기로도 터무니없는 괴력에 엄청나게 초현실적인 카리스마를 얻은 느낌인데…. 무슨 ‘조건’ 같은 건 없어?”
“상태창에 3회라고 적혀있어. 딱 3번만 쓸 수 있는 듯한데.”
그리고 처음으로 받아본 ‘현자다운 조언’
‘공짜 점심은 없다.’
장내가 다시 조용해진 와중에 은솔 누나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일에는 묵성씨, 아리 양 두 분이 경험이 우리보단 있을 텐데, 가인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관리국 요원으로서 말하자면, 당연히 이런 정체 모를 힘은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 살아야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내가 ‘투자’라고 표현한걸세. ‘주’는 언젠가 자네에게 반드시 대가를 요구할 거야.”
“‘관리국 요원으로서’? 다른 입장도 있으신지?”
“호텔에 떨어진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사실 호텔에서 주어진 힘의 대가가 무서워서 봉인한다는 건 지극히 어리석긴 하지. 어차피 있는 힘의 대가가 무서워서 못쓰다가, 결국 최종적으로 전원 실패하기라도 하면 다 함께 호텔의 자원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럴 바에야 그냥 주어진 건 필요할 때 재깍재깍 쓰고, 대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게.”
“아니…. 어르신. 완전히 다른 내용의 두 조언인데요.”
“자네가 선택할 문제라는 거지.”
“그러면 이렇게 해.”
“아리, 네 생각은 어떤데?”
“평소엔 절대 쓰지 말고 아끼고 또 아껴. 그러다가 정말 최후의 순간. 너 말고 다 죽었거나, 여기서 밀리면 전원 몰살이다 싶은 그 순간에만 쓰는 게 맞겠지.”
최후의 순간을 위한 필살기.
그 정도로 오늘 얻은 힘의 용도를 정리하며 고심에 잠겼다.
고민하면서 주변을 걸어 다니자,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엘레나나 송이가 당황하면서 물러서거나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내 앞에서 기도를 올렸었지….
어색하다.
결국 동료들만 남겨두고 혼자 생각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방 밖을 나와서 외진 곳으로 향했다. 오늘은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모양이다.
*
“…”
“… 가인이가 떠나서 하는 말인데…. 너희 아까 가인이 보고 무슨 생각 했니?”
“신성하다? 천사 같다?”
“믿을 수 없이 잘생겼다? 온 세상을 구원할 것 같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했어요.”
“송이랑 엘레나도 나랑 비슷하게 느꼈네.”
“내일부터 가인 오빠 보기가 되게 어색할 것 같아요.”
“저도 그렇네요.”
“나도 그래. 한순간이지만, ‘우리’와 너무나 다른 존재 같았어.”
“일단, 뭐 더 식사할 분위기도 아니고…. 식사 시간도 10분도 안 남았군요. 각자 쉽시다. 어차피 10분 후엔 각자의 공간으로 사라지겠지만.”
“오늘도 그럴까요?”
“무슨 말이니 아리야?”
턱짓으로 문 쪽을 가리킨 후 아리는 말을 이었다.
“105호 문이 박살이 난 상황에서도 105호의 시스템이 정상 작동할까 싶네요.”
아리의 의문은 현실이 됐다.
그날, 105호의 모든 기능은 멈췄고, 식사 시간이 끝나고도 모두는 전쟁 후의 폐허 같은 공간에 멍하니 남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다들 주섬주섬 몇 안 되는 짐을 챙겨서 그나마 잠을 청할만한 어딘가로 향했다.
*
“아리야.”
“언니? 다과 테이블 쪽에서 주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럴 건데,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아까는 하지 않으시고.”
“둘이 하고 싶었거든.”
“…”
“솔직히 말할게. 네 과거가 어떻고 어디서 태어났고 목적이 뭐고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난 어릴 때부터 회사 일 하면서 컸거든. 원래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별의 별사람이 다 끼어들어 와. 머릿속에 딴생각하는 사람도 부지기수고, 그런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이 악물고 끌고 가서 결과를 내는 게 리더의 역할이지.
그런데, 그걸 위한 한 가지 전제가 있어.
최소한 ‘프로젝트’의 진행에는 다 같이 협조해야 한다는 것. 머릿속에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각자 딴짓하더라도, 어찌 됐든 ‘프로젝트’만 다 같이 협조하면 일은 굴러가.”
“‘호텔 탈출’이라는 거대한 목표에는 협조하자는 거죠? 어차피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나도 그럴 것 같아서 널 추궁하기보다 그냥 덮으려고 하는 거야. 어찌 됐든,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이상한 호텔에 천년만년 갇혀서 살 생각은 아닐 테니까. 이 정도면 이해했으리라 믿어.”
*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호텔의 디스플레이가 요란 법석을 떨었다.
/대 공 사!
호텔 파이오니어의 임직원 일동은 오늘은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전날 밤, 폭력적인 블랙 고객의 난동으로 호텔의 시설이 초토화되어 고객분들이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책임이냐를 떠나서, 호텔의 임직원으로서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 하루, 호텔은 휴점합니다. 호텔의 모든 시설은 정지하며, 고객 여러분은 지하의 캠프장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1시간 이내에 호텔이 폐쇄됩니다. 전원, 캠프장으로 이동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