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0)
EP.510 510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2)
510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2)
에이디아가 700년 전 건설했다는 도시 지하의 유적.
전체적인 구조는 마치 지하를 향해 뻗은 탑과 같았고, 에이디아의 말대로 별다른 위협은 없었다.
그저 어둡고 탁한 공기를 느끼며 회색 길을 따라 지하로 끝없이 내려갈 뿐.
처음엔 모두가 말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30분쯤 지나자 승엽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에이디아, 벌써 30분은 걸었어.”
“그러게요.”
“그러게요가 아니라 30분을 걸었다니까?”
“힘드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다. 됐어.”
말문이 막힌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이해했다.
현시점은 기원전 1500년에서 2000년 사이의 어딘가다.
이런 고대에 무슨 수로 30분을 내려가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지하 유적을 만들어냈냐는 것.
합당한 의문이지만, 새삼 이런 걸 따지기엔 우린 미래인이고 눈앞의 소녀는 외계인이잖아?
심지어 이 유적은 그 외계인의 이해 범주조차 넘어선 무언가야.
— 또각! 또각!
5분쯤 더 내려갔을 때, 이번엔 에이디아 쪽에서 입을 열었다.
“오래전, 정확히는 724년 전에 원시 부족을 모았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도시를 세우던 시절의 이야기?
“솔직히 말할게요. 처음엔 적당히 세력을 모으면 바로 이집트를 칠 생각이었어요.”
“…”
“불가능했죠. 알고 계세요? 이집트를 벗어나면 그냥 야만의 세계뿐이라는 것?”
“…”
“세력을 모으긴커녕, 사람보다 원숭이에 가까운 족속에게 농사짓는 법과 옷 만드는 법부터 가르쳐야 했답니다. 뭐, 하다 보니까 다 됐어요.”
하다 보니까 다 됐다.
이 단순한 단어에는 에이디아가 견뎌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깨달았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이상하구나.”
“뭐?”
세상이 참 이상하다?
그러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그 무엇보다 신비로운 건 이 세상 자체랍니다.’ 였나?
“500년쯤 전이었나? 식인 멧돼지가 30명이 넘는 부족민들을 잡아먹었어요.”
“멧돼지? 표범이나 사자도 아니고 멧돼지가?”
“그럼요. 저도 신기해서 솜씨 좋은 전사들을 데리고 멧돼지를 추적했죠. 추적 끝에 멧돼지 무리를 찾아냈을 때, 제가 뭘 봤을까요?”
“…”
“사람 고기를 먹고 사람으로 변해가는 멧돼지 무리를 만났어요. 가장 많이 변한 존재는 머리 아래로는 전부 사람이 되어 있었죠.”
듣고 있던 승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 돼?”
“1,000년째 젊음을 유지하는 소년과 마법을 쓰는 마녀, 외계인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데 인간으로 변신하는 멧돼지 정도가 그리 이상한가요?”
승엽이 말문을 잃었다.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320년쯤 전에는 집채만 한 새가 도시 하늘에 나타나더니, 굉음 한 번으로 20명의 머리를 터트리고 어린아이들을 잡아가서 새끼 새의 밥으로 줬어요.”
“…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더 들어보셔요.”
나나 승엽이나 이 정도 이야기에 겁먹을 사람은 아니다.
단지, 에이디아가 처음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했을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이상하다.
“최근의 일이에요. 160년쯤 됐나? 도시 동쪽 구릉에서 밤마다 빛나는 버섯이 자라났죠. 밤마다 도시 사람들이 그놈의 버섯을 따러 가다가 늑대에게 잡아먹혔어요.”
“버섯?”
“처음엔 환상을 보여주는 버섯의 일종인가 했죠.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버섯 중 일부는 사람을 현혹하는 힘이 있답니다.”
“마약 비슷한 버섯이 있다는 건 나도 알아.”
“마약? 처음 듣는 단어인데, 어감이 괜찮네요.”
승엽에게 함부로 ‘미래 지식’을 털어놓지 말라고 눈짓했다.
물론, 언제나 철없는 소년 같은 면이 남아있는 승엽에게 내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버섯을 태워버리면 되겠거니 해서 역시나 숙련된 전사들과 횃불을 들고 버섯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이번에도 무슨 괴물이 나왔어?”
“차라리 괴물이라면 좋았을 텐데!”
“… 뭔데?”
“버섯의 정체는 사람이었답니다. 인체 버섯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무, 무슨 -”
“들어보세요. 인체 버섯을 한 입 먹으면, 포자가 사람의 몸속에 파고들어 번식하기 시작하죠.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은 굉장한 행복을 느껴요.”
“으윽!”
“시간이 흐르면 숙주의 피부가 갈라지며 버섯이 자라나요. 이쯤 되면 사람들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지만…. 소용없어요.”
“소용없다고?”
“그 단계까지 가면 이미 버섯이 주는 쾌락의 노예가 된 상태니까요. 계속 버섯을 먹고, 먹고, 먹다가 결국 기운을 잃고 버섯 군락 근처에 쓰러지죠. 그렇게 새로운 버섯이 탄생한답니다.”
“끔찍하네.”
“제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버섯 군락을 태웠겠지.”
“그건 기본이죠. 하지만, 버섯 군락을 태워도 버섯을 먹어본 사람들이 남아있잖아요?”
“어…. 모아두고 치료한다?”
“푸훗!”
에이디아는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나는 그녀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버섯은 포자로 번식하는 생물이다.
또한, 사람의 눈에 손가락만 한 균사체(=흔히 버섯의 몸체라고 부르는 것)가 보일 때쯤엔 균사체의 수백 배 범위에 보이지 않는 포자가 뿌려진 상태다.
그러므로 버섯만 태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쉴 새 없이 포자를 뿌리는 ‘숙주’를 전부 제거해야 한다.
…
침묵이 흐른 후, 진상을 깨달은 승엽이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다시 물을게. 그런 우울한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에이디아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도시를 다스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여실히 깨달았죠. 지배자의 책임이랄까?”
“지배자의 책임이라니.”
“역병에 걸린 사람 열댓 명을 가련히 여겨서 살리려고 하면, 그 사람들 때문에 200명이 죽어요.”
“…”
“그러니까 감염된 사람은 전부 죽여야죠. 열 명의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200명의 목숨이 더 무거우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승엽 또한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
다른 사람 입에서 관리국 철학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
저 여자, 성모 에이디아는 필시 교황청의 설립자야.
고대에 도시를 경영하며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교황청을 만든 건가?
직접 만나게 되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대 선배님’이라고 불러드리죠.
*
1시간 가까이 내려갔을 때, 비로소 이변을 느꼈다.
지상에서 가져온 횃불 말고는 조명이 없는 장소였는데 전조 없이 주변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승엽과 내가 경계심을 느끼며 서로를 마주 보았을 때, 에이디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왔네요.”
“거울이 있는 장소?”
“네.”
“… 이해할 수 없는 광기가 가득하다고 했지. 싸울 준비 해야 하나?”
“그 전에, 다시 한번 제 말을 들어주시겠어요?”
“할 말이 있으면 해. 아까도 그랬잖아.”
“하하, 그렇네요.”
정체불명의 수단으로 수명을 연장한 반동인지, 신체 30% 가까이가 수정으로 변한 에이디아가 흡사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전 왕이 되고 싶었어요.”
“왕?”
“날 버린 이집트보다 더 위대한 왕국을 새로운 땅에 세우고 싶었죠.”
“…”
에이디아는 이집트와 ‘우리’에 대한 복수심을 800년쯤 전에 내려놨다고 했었지.
복수심은 반쯤 잊었지만, 일종의 경쟁심은 남았던 모양이다.
‘날 버린 왕국보다 더 위대한 왕국을 내 손으로 빚어내리라.’
어떤 감정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좋은 왕이 되고 싶었어요. 만백성에게 우러름을 받는 왕. 모두가 굶주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의 여왕 니토크리스가 되고 싶었어요.”
“니토크리스?”
“제가 요즘 쓰는 이름이랍니다.
“… 좋은 이름이네.”
“정신 차려보니 옥좌에 앉아있는 건 왕이 아니라 괴물이었죠.”
“…”
“100명을 살리기 위해 다섯을 태웠고, 스물을 물에 빠트렸고, 서른을 장대에 매달았죠.”
“에이디아….”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인체 버섯을 쫓아냈다 싶으니 이번엔 피리 부는 남자가 나타나고, 피리 부는 남자를 쫓아냈더니 시체 신앙이 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에이디아에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에 다소 둔감한 나조차 당황할 정도였으니, 승엽은 이미 숨이 턱 막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나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존재가 없더군요. 사람들은 날 자비로운 왕이 아니라 죽음의 여신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머나먼 미래의 ‘관리국’이 짊어진 고통을 수천 년 앞서 겪고 있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나와 승엽은 이집트조차도 ‘너네 알아서 살아라.’하고 내다 버린 지 오래인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어떻게 해야 할까.
성모가 품은 고민의 답은 물경 3000년 후의 관리국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찾아낸 것, 차마 답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것은 간단하다.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말 것.’
나 역시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이렇게 믿어왔다.
그랬기에 나는, 에이디아의 다음 말에 정말이지 큰 충격을 받았다!
*
“어, 음, 대답해줘야 해? 그러니까, 음,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하면서 겪는 음, 내적 모순?”
“그놈의 ‘음, 음’ 좀 그만해.”
“하하! 유미, 승엽 군을 다그치지 마요. 질문이 어려우니까 답을 찾다 보면 음 음 할 수도 있죠.”
“이제부턴 읍 읍 할게.”
“…”
“…”
잠시 얘 대체 뭔 소리 함?
하는 표정을 짓던 에이디아가 다시 표정 관리하며 말했다.
“다른 비유를 들어볼까요? 세 방향의 갈림길에 도착했어요. 어디가 답인지 고민 중인데, 알고 보니 세 방향 모두 지옥행이죠. 지옥의 종류만 다를 뿐이에요. 어떤 길을 골라야 할까요?”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지옥을 골라야 -”
“그게 제가 빠진 함정이었던 거죠.”
“응?”
처음으로 에이디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답은 어딜 가도 지옥인 갈림길 자체에서 벗어날 것. 아예 새로운 판을 짤 것.”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이제 도착했다.”
다음 순간, 에이디아의 얼굴에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진심 어린 미소가 깃들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소녀의 등 너머로 – 거울이 나타났다.
…
거울이다.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무한한 가능성의 응집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위대한 자가 남긴 흔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신비다.
그러므로 이것은 –
“보아라! 이것이야말로 -”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세상 모든 문제의 답이다!”
— 파지직!
“유미 양, 승엽 군. 우리, 다시 시작해요. 처음부터, 이번에는 올바른 세상에서.”
*
– 김아리
— 파지직!
“으앗! 따가워!”
갑작스럽게, 반강제로 깨어났다.
유미 조각의 기억은 여기까지였기 때문이다.
…
분명 똑같은 물체, 같은 거울을 보았을 텐데!
누군가는 궁극의 답을 얻었고, 누군가는 만악의 원인을 찾았다.
에이디아와 유미 중 누구의 답이 맞았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유미의 기억이 끊기기 직전,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극도로 긴장한 승엽이가 무어라 외치며 유미 앞을 가로막았고, 거울은 불가해한 오색의 광휘를 내뿜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싶었는데! 묵성아, 나 다시 한번 다이빙해볼 테니까 – 어라?”
뒤늦게 주변을 살폈을 때, 신음하며 꿈틀거리는 유미 조각과 나 외에는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묵성아? 소피아! 둘 다 어디 있어?”
나만 두고 둘 다 어디로 간 거야?
급한 일이 있다면 쪽지라도 두고 갈 것이지 –
— 끼이익! 철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