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1)
EP.511 511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3)
511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3)
‘아들! 식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은 접시에 담아뒀어! 방문 앞에 두고 갈게.’
‘제발 방에서 좀 나오렴.’
가끔, 나는 꿈을 꾼다.
가장 오래된 최초의 기억에 관한 꿈이다.
성모에게 물어본 바에 따르면, 아마도 내 부모님에 대한 꿈인 듯하다.
나에게도 날 아끼고 사랑하는 평범한 부모님이 계셨다는 의미기에 소중한 기억이다.
…
조금씩, 행복한 기억이 가루처럼 흩어져간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꽃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처럼….
어느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진 자리를 기괴한 세상의 악몽이 채워나간다.
인간을 흉내 내는 괴물로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
성모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도 본래는 인간의 세상이었다고 한다.
공허 너머의 머나먼 땅에서 넘어온 괴물들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기 전 까지는 말이다.
‘사, 살려주세요!’
‘으아악! 제발, 제발 -’
‘이, 이 괴물! 이곳은 그냥 대학이다. 대학이라고!’
혐오스럽다.
모든 것이 혐오스럽지만, 가장 혐오스러운 건 이들의 태도다.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인간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중, 공허를 넘어온 괴물들이 모든 인간을 죽이고 그 거죽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기 위해 스스로 ‘난 인간이다’라고 믿기 시작한 것.
혐오, 증오, 분노, 악의 – 기타 내가 품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끓어오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일어나세요.」
?
「일어나세요, 용사님.」
아아….
아까부터 어딘가 붕 뜬 것처럼 상념에 빠져 있었는데, 뒤늦게 현 상황을 깨달았다.
나는 죽었구나.
한번 죽고 부활 중인 상황이었구나.
도둑맞은 세상을 되찾기 위해 싸워나가던 중,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의 기습에 당한 모양이다.
어지간한 마법은 날 해칠 수 없으나, ‘거울’을 사용한 힘이라 나로서도 한번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큰일은 아니다.
내게는 무한한 기회가 있으므로.
…
서서히 시야가 밝아진다.
눈이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부르르 떠는 늙은 괴물이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귀가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늙은 괴물의 저주가 들려왔다.
“네 이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왔느냐!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미스카토닉 대학은 내 영지(靈地)다! 이 땅에서 내 적수는 없으며 -”
— 스르릉!
기나긴 삶이 내게 준 교훈이 있다면, 많은 문제에서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것.
굳이 대화를 해야 한다면, 강철의 대화로 충분하리라.
나는 포르투나다.
*
– 김아리
— 끼익! 철컹!
무슨 소리야? 설마 기습?
유미 조각의 기억을 읽어내는 동안은 무방비해지니까 묵성과 소피아에게 주변 방비를 맡겼는데!
“후우….”
긴장 속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려는 순간.
— 벌컥!
“아리야 깨어났느냐?”
“묵성? 어딜 다녀온 거야? 옆에 있을 줄 알았는데.”
“크으…! 일단 나와라! 바깥 상태가 말이 아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묵성은 그 말만 하고 도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따라서 나가기 직전, 뒤쪽을 살폈다.
“유미야.”
내게 귀중한 정보를 전달한 유미, 혹은 유미 조각은 어딘가 얌전해진 채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처럼….
“유미, 수고했어. 정말이야.”
“…”
“밖에 나가면, 앞으로는 진실한 동료로 대해줄게.”
이것 말고 더 해줄 말이 없었다.
*
소피아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유미의 동면 둥지는 본래 구대륙에 있었다고 한다.
거점을 신대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면 둥지도 미스카토닉 대학 인근의 숲으로 옮겼다는데, 둥지의 규모를 볼 때 꽤 고생스러운 과정이었으리라.
둥지 바깥의 숲으로 나오자 묵성이 한 말을 이해했다.
“저 오로라는 대체….”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창백한 빛이 하늘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놀라는 것도 잠시, 묵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루카스가 사고를 친 것 같다! 소피아는 이미 출발했어.”
“사고?”
“무슨, 금단의 비술을 사용했다면서 -”
금단의 비술.
시간을 돌리기 전 얄다바오트를 소환했던 것과 유사한 무언가를 한 모양이다.
과거라면, 아무리 봐도 유미 본인도 쓸 수 없었을 것 같은 강대한 비술을 어떻게 제자인 루카스가 쓸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겠지.
지금은 비술의 근원이 무엇인지 짐작한다.
고대 이베리아반도 지하에서 발견한 거울 중 일부를 유미도 얻었고, 그 거울 조각을 연구한 결과 튀어나온 터무니없는 마법의 일종 아니겠어?
“… 루카스가 이유 없이 폭주할 리 없지. 나름대로 대학을 아끼는 놈인데.”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묵성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포르투나, 그놈이 대학을 초토화 중인 게 분명하다. 아리 너 먼저 출발해라! 나도 뒤따라갈 테니!”
“좋아.”
즉시 윙 부츠의 힘을 사용해 몸을 띄웠다.
*
미스카토닉 대학으로 날아가던 중, 나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 중이던 소피아를 발견했다.
“소피아!”
“아리, 깨어났구나!”
재빨리 질문했다.
“짐작하겠지만, 대학에 포르투나가 나타났을 거야.”
“그, 그것도 예지능력이야? 미래를 보고 -”
“… 그래.”
설명하기 귀찮으니 예언이라 치자.
“이동하면서 말해. 포르투나의 능력, 최대한 구체적으로!”
“아, 알겠어. 포르투나는 이름 그대로 행운을 다루는 존재인데, 싸워보면 기이할 정도로 -”
“행운?”
“어?”
“… 더 말해봐.”
행운이라니? 듣자마자 승엽이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인가?
“기이할 정도로 본인만 운이 좋아. 게다가, 본인의 적에겐 황당할 정도의 불운을 더하는 -”
— 꽤에엑!
대화 도중, 난데없이 날아온 까마귀 무리가 나와 소피아를 덮쳤다.
다행히 소피아가 즉각 손을 휘저어 몰아냈다.
“이게 바로 불운의 예시지! 긴장해. 가다 보면 더 이상한 일이 생길 테니까!”
“… 계속 설명해줘.”
“다음으로, 그는 일종의 기사야.”
“기사? 갑옷 입고 칼을 휘두르는 그 기사?”
“그 기사 맞아. 일반적인 기사와 차이가 있다면, 100M를 3초에 달리고 칼 한번 휘저어서 건물을 쪼개.”
그 정도면 차진철에 비견할만한 물리력이다.
“그 외에도 하늘을 밟고 점프하는 등 별의별 이상한 짓을 할 수 있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힘은 불멸이야!”
불멸이라.
유미가 수백 조각으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영혼의 함’은 그 어떤 보호도 제공하지 않았다.
유미를 복원하려 애썼던 두 제자는 ‘영혼의 함’이라는걸 본 적도 없지.
영혼의 함을 현재 사용하는 사람이 승엽이라면 간단히 설명된다.
행운에 이어서 무공과 불멸!
여기까지 들으니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특정한 요소 하나만 겹치면 모를까, 셋이 겹치는데 다른 존재일 수 있을까?
“박승엽….”
“어?”
승엽이가 왜 상대편에 있는 거지?
아까 확인한 유미의 기억과 연관이 있는 거야?
유미를 보호하려다가 거울의 힘에 노출되어 뒤틀렸다?
여러 가지 물음표가 동시에 떠오르던 차,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아리야, 뭔가 깨달았어?”
“어떻게 축복을 쓰고 있지?”
“뭐?”
이해할 수 없었다.
뒤틀리고 말고를 떠나서 유미 기억 속 진짜 승엽이도 축복을 쓸 수 없었는데!
첫 번째 시련의 동료들은 축복을 봉인 당했으며, 유산만 쓸 수 있었다.
유미의 존재 자체가 증거다.
그러므로 영혼의 함을 쓸 수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축복은?
이건 설명할 수 없어.
“거의 다 왔어!”
마지막으로 소피아에게 하나만 물어보자.
“소피아, 혹시 ‘불멸의 석관’이라는 게 뭔지 알아?”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
“알면 됐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상념에 빠지기보다 싸워야 할 시간이다.
*
대학 하늘에 도착했을 때, 지상에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악마를 연상케 하는 이형의 괴물이 끔찍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에 맞서는 존재는 전신 갑옷을 입은 칠흑의 기사였는데, 이 순간에도 붉게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며 악마의 뿔을 베어내고 있었다.
이 장면만 보면 악마를 소환한 타락한 마술사를 정의로운 신전기사가 토벌하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교황청에선 실제로 그렇게 생각 중이겠는데?
“루카스!”
잠깐 사이에 20년은 늙은 것 같은 학장은 고개만 살짝 돌려서 소피아를 확인했다.
그 사이, 나는 부등변다면체의 최대 사거리를 가늠하며 포르투나에게 접근했다.
흐읍 -!
심호흡하며 손을 뻗자 곧 손바닥 위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검붉은 위광(威光)을 뿜어내는 내 유산, 부등변다면체다.
승엽아, 미안한데 칼침 한 번만 놓을게.
찰나, 초감각이 인간의 인지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자각했으니, 이는 곧 공간이다.
찰나, 내 영성(靈性)에서 돋아난 실체 없는 손이 보이지 않는 벽을 빚어냈다.
찰나, 그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없는 창이 단박에 허공을 갈랐다.
단박에 포르투나를 둘로 쪼개버리려던 순간.
— 후우웅!
갑자기 불어온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며 조준을 방해했다.
“…”
몸이 쪼개지는 대신, 오른쪽 어깨를 덮은 갑옷이 떨어져 나간 포르투나의 살기 어린 시선이 날 향한다.
나는 기묘할 정도로 운이 없었다.
“… 운이 없다더니, 이런 느낌이구나.”
— 콰직!
위협을 느낀 포르투나가 벼락처럼 내게 달려온다.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지상에서 싸워선 곤란하다는 것.
속도와 힘 모든 면에서 포르투나가 날 압도했기 때문이다.
두둥실 떠오르는 순간, 소피아의 경고대로 포르투나 또한 허공을 ‘밟으며’ 추격했다.
“허공답보(虛空踏步)!”
이거 205호 절대고수 기준으로도 전설 속의 경지 아니었어?
다시 한번, 내 멋대로 공간참(空間斬)이라 이름 붙인 일격을 포르투나에게 날렸다.
내 검은 곧 공간의 단절이니, 물리적인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완전무결한 암살 기술이라 생각했는데!
기우뚱!
허공에 떠오른 포르투나가 마치 폭포를 타고 오르는 잉어처럼 몸을 꼬더니, 기묘한 움직임으로 공간참을 피해냈다.
이것도 그냥 운이 좋아서?
아니면 절대고수는 공간의 비틀림도 인지할 수 있다 뭐 이런 웃기지도 않은 이론이야?
“으앗!”
중요한 건 ‘어떻게’가 아니라 어쨌든 피했다는 것!
황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포르투나의 추격은 윙 부츠로도 떨쳐낼 수 없었다.
재빨리 양손을 뻗어 이번엔 수평 벽을 만들어내 코앞까지 도착한 포르투나와 나 사이를 단절했다.
“아앗! 승엽아, 우리 사이에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좀 -”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칠흑 기사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뭐야? 설마 펀치로 공간 격리를 부순다?
아니, 아무리 무림 고수여도 주먹질로 부술 수 있는 게 아닌데 –
느릿하게 다가온 손이 단절된 공간을 툭 치는 순간.
— 쿵!
종이 울리는 듯한 폭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
내장이 뒤틀린 듯한 어마어마한 고통과 입을 가득 채운 비릿한 피.
이건 그러니까….
격산타우(隔山打牛)? 백보신권(百步神拳)?
“아리야!”
뒤늦게 도착한 – 사실, 조금 전의 충돌은 시간으로 치면 10초 미만이었으니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만 – 소피아가 날 붙잡았다.
아직 내게도 기회는 남은 모양이다.
…
포르투나는 ‘이런 식으로’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