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2)
EP.512 512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4)
512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4)
– 김묵성
대학에 도착했을 때, 소피아의 낭랑한 외침을 들었다.
“영원한 겨울이 임하니, 얼어붙어라!”
곧, 온 힘을 쥐어짜 낸 소피아의 마력이 하늘을 밟고 서 있던 포르투나를 꽁꽁 얼려 추락시켰다.
인간이라면 동사든 추락사든 둘 중 하나는 했을 상황이지만, 저 괴물에겐 고작해야 몇 초의 시간 벌이에 불과하겠지!
아리는 그새 한대 거하게 얻어맞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오래된 피의 힘으로 회복 중인 모양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곧, 창백한 표정의 아리가 양손을 모은 채 정신을 집중하자 사방에서 솟아난 반투명한 격벽이 추락한 포르투나의 주변을 감쌌다.
“된 거냐?”
“아니. 그냥, 잠깐의 시간 벌이야. 길어봐야 몇 분.”
“크으…!”
“그보다 묵성아, 이상해.”
“뭐?”
“승엽이의 현 상태 말이야.”
“…”
당황했다.
포르투나의 정체가 승엽이 녀석이라고?
유미 기억까지 뒤져본 아리 네겐 당연한지 몰라도, 내겐 너무 충격적인 소리란 말이다!
물론, 오래된 피로 신체를 회복하는 동시에 부등변다면체로 포르투나를 격리 중인 아리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여력은 없었다.
“이상하네. 승엽이는 첫 번째 파티니까 축복을 쓸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행운을 쓰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부활하는 힘. 더 생각해보니 그것도 이상해. 영혼의 함이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돼.”
아리가 어떤 부분을 지적하는지 알았다.
“기억난다. 영혼의 함에 혼을 담은 채 죽으면 일종의 망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 뿐, 육신을 재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영혼의 함 자체에 육체 재생능력은 없다.
있었다면, 환마가 이혼마공을 만들어 수많은 육신을 옮겨 다닐 필요도 없었고 과거의 유미가 몸을 만들겠다고 고생할 일도 없었겠지.
“네 말대로면, 승엽이는 더럽게 오래 산 모양인데 유미에게 마법을 배운 게 아니냐?”
“아닐 거야. 내가 본 기억 속 승엽이는 마법을 익힐 생각이 없었어.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다.
“지금도 쓰지 않고 있군.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진작 공격 용도로 썼을 텐데, 무공만 쓰고 있어. 마법은 오직 부활 순간에만 쓴다?”
아리의 말을 듣다 보니 이상한 점을 하나 더 발견했다.
“그러고 보면, 행운의 사용 방식도 과거와 다른데?”
“그러게. 예전엔 본인을 운 좋게 했을 뿐, 초장거리에서 적에게 불운을 유발하는 그런 힘은 없던 것 같은데.”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의 말에 공감이 갔다.
포르투나의 힘은 어딘가 괴상하다.
그러니까, 승엽의 힘이 A, B, C라고 치자.
포르투나는 언뜻 보면 ABC를 쓰는 것 같지만, 정확히 아는 동료의 눈으로 보면 ABC가 아니라 abc 혹은 ㄱㄴㄷ를 쓰는 느낌?
“어렴풋이 알듯 말듯 한데. 그러니까 -”
“아리야.”
창백한 표정의 아리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강조했다.
“복잡한 생각에 빠진 모양인데, 때로는 상황을 단순하게 봐야 답이 나온다.”
“말해봐.”
“세 번째 시련의 해결! 조건은 너도 알고 나도 알아. 보스를 죽이면 된다.”
“그렇지.”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보스인가’다.
“처음엔 저놈, 포르투나가 보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포르투나가 세상을 위협한 적 있냐?”
“어 -”
“포르투나가 우릴 노린 적은 있고?”
“…”
“소피아의 말 들었지? 포르투나가 은솔을 죽였다. 아마 엘레나도 죽였겠지. 그 말인즉슨 -”
“포르투나는 두 번째 시련의 보스였구나.”
등장 이후로 포르투나는 혼돈체 사냥에 열을 올릴 뿐, ‘세상의 적’같은 행동을 한 적 없다.
또한, ‘김묵성, 김아리’를 노리고 온 것도 아니다.
목표는 미스카토닉 대학이었는데 대학 내부에 우리가 있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두 번째 시련의 보스다.
두 번째 시련과 세 번째 시련의 보스가 똑같을 리가 있겠는가?
똑같다면, 두 번째 시련에서 포르투나를 처치했다면 세 번째 시련에는 보스가 없다는 말인데!
“… 포르투나는 두 번째 파티가 처치하지 못한 보스였어.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 난동 부리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세 번째 시련의 보스는 누구인가?
기다렸다는 듯, 온 세상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흐아아! 결국 답은 하나다. 이 비통한 세상에는 단 하나의 구원이 있을 뿐이다!”
“루카스! 제발 -”
경악한 채 학장을 돌아보는 소피아, 그리고 이미 한번 들어본 불길한 주문.
동기는 이해한다.
교황청의 논리란 희생당하는 소수에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였고, 그는 교황청에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이니까.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한 번도 모자라서 두 번이나 외계 신의 소환을 꾀하는 광기 어린 대마도사다!
“진실로 위대한 이에게 시작과 끝의 구분은 -”
이런 씨부럴! 또냐?
한숨 쉬며 원 모어 찬스를 불러내는 순간, 새하얀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쓰지 말고, 루카스에게 가서 말해. 내게 한 수가 남았으니 자폭은 뒤로 미루라고.”
“설득될 리가 -”
“설득 실패하면 그때 돌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해보고 싶은 것?”
“승엽이가 어떤 상황인지 봐야겠어. 루카스에게 자폭할 힘으로 포르투나를 잠깐이라도 좋으니 약하게 만들어보라고 해!”
“… 알겠다.”
의외로 루카스는 제안을 받아들이더니, 주문의 내용을 바꿨다.
노인은 기묘하게 발광하는 무언가를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말했다.
“호루스의 사제! 마지막까지 호루스를 찾던 스승님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은 네 말을 들어주마. 하지만, 포르투나는 불멸의 존재다. 잠깐 억누른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
…
…
— 타다닥! 다다닥!
“으아! 호응 좀 하라고!”
진짜 존나 짜증 나네.
아니, 내가 앞 점멸 궁 박았으면 바로바로 호응해야 할 것 아니냐고!
죄다 병신들 뿐이니까 내가 맨날 플래티넘에서 –
“승엽아, 그렇게 재밌어?”
“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허리춤에서 찰랑이는 흑발과 핏방울이 모여서 굳은 듯한 선홍색 눈동자.
정말이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아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누, 누, 누, 누구세요?”
“너무한다. 누나도 못 알아보는 거야?”
“누, 누나라니, 전 외동아들인데 -”
“진짜? 확실해? 정확히 기억하는 것 맞아?”
“…”
혼란스러웠다.
나는 외동아들이지만, 사실 아닐 수도 있다.
가족과 관련한 기억은 대부분 흐릿했기 때문이다.
“진짜 누나인가요? 어, 어, 그러니까 이름이 -”
“박아리라고 해.”
누나를 자처하는 굉장한 미소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게 그렇게 재밌니?”
“네?”
“근데, 방금은 승엽이 네가 실수한 것 아니야?”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나는 음, 이 게임은 잘 모르는데, 너랑 팀원들 위치가 너무 멀잖아. 네가 생각하기엔 싸움을 시작할만한 상황이더라도, 팀원들의 위치가 멀 때는 -”
“니가….”
“어?”
“니가 뭘 알아! 롤에 대해 뭘 아냐고!”
“어, 어, 승엽아. 나는 분명 네 누나라고 -”
“누나고 자시고 롤 아무것도 모르면서 훈수 두지 말라고!”
“???”
흥분을 가라앉히며 아리 누나를 붙잡고 천천히 설명했다.
적절한 싸움 시작 각이란 본래 시간의 단면, 찰나의 순간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무언가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강물과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포착한 단 한 번의 기회.
그 순간에 인생 전체를 담아내는 것이 곧 무(武)의 극의이며 –
“바, 방금 게임 이야기 아니었니? 갑자기 무공의 극의는 왜 나오는 거야?”
“누나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극한의 영역에서 만물의 이치가 통하는 것 몰라?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말 못 들어봤냐고!”
“천하제일고수도 무공과 롤의 극의가 똑같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천하제일고수야! 내가! 그니까 내 말이 맞아!”
“우와…. 헛소리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맞는 말 같은 이 느낌 뭐야?”
어쩔 수 없이 누나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하나하나 가르쳐야 했다.
20분쯤 지났을 때, 아리 누나는 어딘가 황망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가족이 몇 명인지도 잊었으면서 이런 것만 무의식 속에서 기억하다니….”
“뭐라고?”
“아니야. 승엽아, 누나랑 영화 보지 않을래?”
“영화? 무슨 영화?”
“검색해볼게~!”
누나는 가볍게 내 손을 잡더니, 다른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영화를 검색했다.
…
불현듯, 냉혹하기 그지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침입자가 우리의 정신을 공략하고 있다.’
이것은 분심공(分心功)의 극성에 도달하며 얻은 힘, 정신을 농락하는 사특한 힘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명정한 이성이다.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동작에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침입자가 진정으로 검색 중인 장소는 우리의 기억이다.’
“너! 대체 어떻게 -”
“다시 생각해도 아까는 승엽이가 실수한 것 아닐까? 팀원들이 멀었으니까 -”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이 누나 왤케 개빡치게함?
“아 진짜! 내가 다 설명했잖아!”
“그다음 백도어는 진짜 최악. 사실상 그것 때문에 진 것 같은데?”
“… 내가 분명히, 백도어가 아니라 운영이라고 -”
화가 난다.
너무 화가 나서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덕분에 명정한 이성이고 지랄이고는 이제 뭔지도 모르겠다!
“분심공 별것 아니네. 찾았다.”
“누나, 내가 진짜 몇 번을 설명해야 – 찾았다니?”
아리 누나가 빙그레 웃으며 영화 제목을 가리켰다.
‘흑기사와 성모의 첫 만남 – 니토크리스의 거울’
…
*
– 김묵성
— 꿈틀!
쥐죽은 듯 잠들어 있던 아리가 서서히 깨어난다.
당장이라도 포르투나가 날뛸 것 같았기에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리야, 어떻게 됐냐? 포르투나의 해법을 찾은 거지?”
흑발 홍안의 소녀는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냐니까?”
“… 거울.”
“뭐라고?”
“거울이 어떤 물건인지 알 것 같아. 승엽이가 어떤 상태인지도 알 것 같아.”
“너만 알지 말고 내게도 좀 말해다오!”
아리는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대한 관리국의 이론 기억하니?”
“뭐? 갑자기 그게 왜 -”
“세상에 평행세계 따위는 없어. 우리는 끝없이 진동하는 단 하나의 우주를 살아가지.”
당황했다.
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주변에 없고 실제로 소피아는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지만.
이건 관리국의 최대 기밀 중 하나라고!
“아리야, 갑자기 이런 소리를 왜 -”
“호텔 시네마가 끝났을 때, 호텔은 가인이에게 약속했다고 해. 네가 만족할 수 있는 결말을 주겠다. 무슨 의미였을까?”
지리멸렬한 사고, 여기저기 널뛰기하는 대화 주제.
A에 대해 논하다가 갑자기 B를 논하고, 알아듣기도 전에 갑자기 C를 말한다.
“너 진짜 왜 이러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하늘은 무슨 색일까?”
나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리는 미쳐버린 승엽이의 기억에 파고들었다가 본인도 돌아버린 게 아닐까?
“… 푸른색이지.”
“푸른색은 무슨 색이야?”
“아리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고 -”
혼란스러웠다.
지금 아리는 정상인이라기엔 괴이했고, 미쳐있다고 하기엔 뭔가 그럴듯한 논리가 있었다.
멀찍이서 노인, 학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냐! 포르투나는 아직 멀쩡하다. 곧 깨어난다고! 설령 죽인다 해도 부활하는 존재다. 어찌하란 말이냐? 분명 네가 저놈을 막을 수 있다고 -”
절망과 공포에 질린 학장에게 아리가 간단히 답했다.
“할 수 있어.”
“… 뭐?”
곧, 아리가 몸을 일으켜 학장에게 다가갔다.
“오늘 ‘딱 한 사람’만 죽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르투나를 죽일 방법을 찾아냈단 말이냐? 호오…! 과연 호루스의 -”
— 서걱!
그것이 학장 루카스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검에 참수당하는 순간까지도 아리의 기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 자리의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으악!”
“꺄아악!”
어린애처럼 비명 지르는 소피아.
그 옆에서 소피아만큼이나 놀란 나!
아니, 학장을 죽이더라도 내게 말은 해줄 수 있었잖아?
아무리 봐도 지금 아리는 미쳤다.
그냥 원 모어 찬스를 써서 –
“괜찮아.”
“…”
“묵성아 진정해. 정말 괜찮아. 세 번째 시련은 이제 거의 다 깼어.”
시련을 거의 다 깼다고?
아리가 손을 뻗어 굳게 쥔 학장의 손을 펴자 섬뜩한 빛을 뿜어내는 유리 조각이 나타났다.
곧, 유리 조각이 빙그레 웃는 아리의 손에 들어갔다.
혼란에 빠진 장내, 그리고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칠흑의 기사.
분명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금단의 비술로 포르투나를 잠재웠던 루카스조차 죽었으니 시간을 돌리지 않으면 꼼짝없이 다 죽을 상황인데!
아리는 뒤쪽의 포르투나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나를 보며 아까의 문답을 이어갔다.
“이런 생각이 들어.”
“아리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지능력이 만들어낸 상자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 네가 보는 푸른색이 내가 보는 푸른색과 정말 똑같을까?”
진동하는 단일우주.
가인에게 호텔이 해준 약속.
각자의 인지가 만들어낸 상자.
니토크리스의 거울.
아리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찌르르!
그 순간, 유리조각이 불길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