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3)
EP.513 513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5)
513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5)
– 김아리
때로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루카스에게 터무니없는 금단의 비술을 허락했던 초월적인 힘의 편린, 이제는 내 손에 들어온 거울 조각이 좋은 예시야.
“…”
내 행동에 대해 고찰해봤다.
루카스를 죽이고 거울 조각을 강탈한 이유?
간단하다.
포르투나는 두 번째 시련의 보스이며 루카스는 세 번째 시련의 보스임이 정황상 확실하니까.
따라서 둘 다 처치해야 시련이 성공적으로 종료되고, 가인이가 진행할 네 번째 시련의 위험이 줄어들겠지.
묵성이는 내 갑작스러운 행동을 당황스러워했지만, 나로선 수가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니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묵성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으니까.
그는 시간을 돌리기 전에 교황청의 학살을 직접 겪어서인지, 미묘하게 미스카토닉 대학 측에 동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거울 조각을 내가 얻고 싶었다.
당연하지만 루카스가 이것을 내게 순순히 내어줄 리는 없으니, 죽여서 빼앗을 수밖에!
…
포르투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거울이란 무엇인가’부터 답해야 한다.
거울은 곧 무언가를 비추는 것.
매일 아침 세면대에서 보는 흔한 도구라 놓치기 쉽지만, 거울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나는 좌우 반전된 나다.
즉, 거울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조금 바꿔서 비춘다.
포르투나는 우리 눈앞에 있지만, 어떤 맥락에선 전혀 다른 세상의 주민이다.
그는 우리를 인간이 아닌 무언가 – 괴물 혹은 혼돈체라 여긴다.
기억을 읽어보기 전에는 교황청의 명에 따라 인간을 지키고 혼돈체를 사냥하는 존재인 줄 알았지만, 전혀 달랐다.
포르투나의 인지 영역에선 세상 전체가 혼돈체나 다름없다.
단지, 에이디아가 아무나 죽이지 말라 부탁했기에 일반인은 해치지 않고 혼돈체만 해칠 뿐이다.
결과를 설명하는 건 쉽지만, 중요한 건 과정이다.
승엽이는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포르투나’라는 괴물로 변했을까?
나는 지금부터 그 답을 얻고자 한다.
— 찌르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자그마한 거울 조각이 신비로운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돼!”
“소피아.”
“아까부터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스승님이 말씀하셨어. 지금 네가 쥐고 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이라고 -”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난 소피아와 긴 세월 함께해온 동문 – 루카스를 죽였잖아?
그런데도 소피아는 날 원망하기보다 걱정하고 있었다.
어째서?
‘미래를 볼 수 있던 엄마’가 나와 묵성을 믿으라고 당부했으니까.
나와 묵성이 그녀의 가장 중요한 동료라고 예언했으니까.
은솔아, 고마워.
“소피아,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네.”
“아리야….”
소피아의 지적대로 거울 조각은 정말이지 너무나 위험한 물건이다.
207호에서 이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다면, 성모가 가지고 있을 ‘더 큰 거울 조각’ 뿐이리라.
그러므로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일은 굉장한 도박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도박이다.
어째서?
세 번째 시련이 시작하기 전, 호텔에서부터 했던 생각.
나와 묵성은 왜 호텔에 들어왔는가?
물론, 미로의 부활도 있지만 이건 굳이 따지면 내 개인적인 목적이지 관리국의 목적이 아니다.
파멸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오며 모든 것이 끝난다.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가인의 말에 따르면, 네 번째 시련의 배경은 21세기 한국이며 시련의 내용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종말과 유사하다.
103호의 죄수, 삼키는 자의 견해에 따르면 저주의 방은 우주 어딘가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각색한 것이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하나의 세계관인 207호는 어떤 세계의 일을 각색한 걸까?
현실이다.
207호는 현실을 각색한 무대다!
우리는 현실 세계가 파멸하는 원인과 해결 방법을 207호에서 예습 중이다.
그러므로 나는,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거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결정의 배경에 추가 기회를 제공해주는 ‘원 모어 찬스’가 있음은 인정할게.
아무리 그래도 남은 코인이 없으면 도박 못하지~!
— 파지직!
거울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거울 너머의 아득한 존재가 내게 손을 뻗었다.
*
위로, 더 위로.
더 이상 ‘위’라는 개념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끝없이 드높은 초상 공간.
그 영역에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무한한 초상 공간의 중심에서 끝없이 참오하는 자.
그는 너무나도 부처를 닮은 존재였다.
다른 죄수들은 보는 순간 망막이 녹아내리고 정신이 무너졌는데, ‘저것’은 전혀 달랐다.
도리어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고, 마음에는 평온이 깃들었다.
정체가 무엇일까?
루카스가 소환하려 했던 얄다바오트의 진실한 모습?
미묘하게 부처랑 닮은 것 같은데 –
‘그것’이 내게 손을 뻗었다.
“…!”
삽시간에 나 – 김아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영혼과 육체를 구분할 수 없는 아득한 영역에서 나 홀로 소리 없이 비명 질렀다.
나는 조각가의 손에 들린 대리석이요, 찰흙이었다.
…
산산이 조각난 ‘나’를 바라본다.
그 조각들 사이에 아름답게 빛나는 자그마한 보석이 있었다.
아득한 조각가는 심유한 눈으로 보석을 살피더니,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내려놓았다.
마치, 이것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처럼.
…
슬픔을 느꼈다.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나를 ‘조각’하는 위대한 자의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넘을 수 없는 한계.
벗어날 수 없는 가짜의 운명.
가장 완전에 가까우나, 결국은 불완전한 존재.
…
‘그’는 감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한 존재였으나, 궁극에 도달한 존재는 아니었다.
궁극의 영역에 아주 살짝 못 미친 존재.
걸음걸이로 치면 기껏해야 단 한 발자국의 차이였지만, 어렴풋이 알았다.
어떤 격차는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결코 좁힐 수 없음을.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불완전한 조물주였으며, 또한 부처가 될 수 없는 자다.
또한, 불완전한 조각가는 결코 완전한 피조물을 만들 수 없다.
*
– ???
깨어났을 때, 소피아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선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뒤편에는 혼란스러워하는 묵성이 있었고, 그 뒤에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포르투나가 보였다.
거울 너머의 아득한 존재에게 체감상 수백 수천 시간은 고통받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고작해야 몇 초였던 걸까?
“아리야, 괜찮은 거냐? 갑자기 거울을 쥐고 눈을 감더니 -”
소피아에 이어서 묵성의 말을 듣고, 그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승엽이가 겪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구나.
…
묵성이 혐오스러웠다.
그의 목소리가, 숨결이, 얼굴이 – 모든 것이 혐오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킨 존재는 전혀 달랐다.
포르투나는 대단히 아름답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며, 무엇보다 ‘인간’처럼 느껴졌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소년이 넋 나간 표정으로 달려왔다.
놀란 묵성이 제지하려 했으나 격차가 너무 컸다.
“누, 누나? 누나야?”
“그럼. 정신세계에서 봤잖아?”
“아니, 내 정신에 침입한 건 혐오스러운 적이었는데 -”
“내가 혐오스럽니?”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럴 리가! 세상에 인간이 나와 에이디아 말고 또 있을 줄이야….”
“에이디아….”
거울에 의해 뒤틀린 자들끼리 느끼는 강력한 유대감, 이것이 에이디아가 포르투나를 통제할 수 있었던 원리일까?
“포르투나, 부탁할 테니 사람이 없는 장소로 가서 얌전히 있어 줄래?”
“…”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
대학 세력을 모두 죽이라는 에이디아의 부탁과 내 부탁이 모순이기 때문이리라.
조금 더 강하게 말했다.
“누나의 부탁을 무시할 셈이니?”
“… 아니야.”
뒤를 돌아보자 놀란 표정의 묵성과 소피아가 보였다.
“소피아, 부탁이 있 -”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토할 것 같다.
숨이 막혔고, 당장이라도 부등변다면체로 썰어버리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1분 내로 참지 못하고 묵성의 목을 뜯어버릴 것 같다.
의지력으로 참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유미를 사랑했고, 드높은 무공을 연마한 승엽이조차 진실한 자아를 무의식 속에 파묻은 채 포르투나로 변했잖아?
지금은 이성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있으나 잠깐이다.
곧, 내 이성은 묵성과 소피아 –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찾아내리라.
그 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리야?”
“불멸의 석관을 가져와 줘. 네가 보관하고 있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소녀.
“스, 스승님이!”
“유미가?”
“호루스가 오기 전에 석관을 열지 말라고 했는데.”
“완전히 열려는 게 아니야. 그냥, 딱 한 마디만 들으면 돼. 그 후로 다시 재울 거야.”
“듣는다고?”
“소피아, 부탁해. 네 어머니가 했던 말을 잊지 말아줘. 날 믿고, 내 뜻을 따라줘.”
결국 소피아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석관을 가지러 떠났다.
…
소피아가 떠난 후, 묵성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지금 네 상태, 정상이 아니군.”
“…”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표정 변화, 입가의 뒤틀림 등을 보아하니…. 나와 소피아를 볼 때마다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데, 맞냐?”
“…”
“대화하는 것도 힘든 게냐?”
“마지막 회의는 석관이 온 후에 하자.”
곧, 소피아가 석관을 가지고 돌아왔다.
석관 뚜껑에 손을 올린 채 생각했다.
이 안에 잠든 존재가 내가 예상한 그녀가 맞을까?
“묵성아.”
“음?”
“이 안에 잠든 사람이 미로가 아니면 바로 시간 돌려.”
“… 그러마.”
— 철컥!
석관이 열리자 그 안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같은 소녀가 있었다.
이것으로 원 모어 찬스를 더 사용할 필요는 없어졌다.
남은 기회는 아마도 ‘다음 시련’을 위함이리라.
“미로구나.”
“미로네.”
“우와! 아리랑 완전 닮았어!”
한 발자국 다가가 손을 뻗어 눈송이 같은 소녀의 머리를 쓸었다.
천천히, 매 순간을 음미하며 숨을 내쉰다.
…
폭풍처럼 끓어오르던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어찌 보면 유치한 말이지만, 증오의 가장 훌륭한 치료법은 사랑인 법.
불완전한 조물주조차 손댈 수 없었던 것.
내 내면을 구성하는 가장 단단한 조각.
미로에 대한 사랑.
“우으응…. 여긴 어디야?”
이윽고 졸린 눈을 비비며 미로가 깨어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미로.”
“음? 아리야! 뭐야? 벌써 세 번째 시련 -”
“말해줘.”
“어? 어?”
“네 입으로, 내게 직접 말해줘.”
“무슨 말을 -”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라고 말해줘. 또, 사랑한다고 말해줘.”
난데없으면서도 다소 부끄러운 부탁에 놀란 걸까?
토끼 눈을 뜬 소녀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몸을 일으켜 날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린애같이 왜 이래! 좋아. 잊지 마, 넌 아리야. 내 음, 딸이라고 하지만 자매라고 생각할래. 사랑해!”
*
묵성과의 마지막 회의가 끝난 후,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리 네 말대로면, 포르투나는 두 번째 시련의 보스다. 그러니까…. 시련이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루카스 외에 포르투나도 죽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네가 저 녀석을 통제할 수 있으니 된 거냐?”
“글쎄. 어느 쪽이든 곧 결판나겠지.”
“…”
“포르투나와 함께 스페인으로 갈게. 소피아, 표 부탁해.”
출발하기 직전, 열차에서 가인이가 말해준 내 세 가지 미래 혹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허름한 강의실 속의 나.
이건 미스카토닉 대학에서 강의 듣던 모습이네.
하얀 원피스를 입고 푸른 하늘 아래를 거니는 모습.
이건 개강 파티 같은데, 아마 맞을 거야.
마지막으로 운석이 떨어진 듯한 폐허 속의 나.
…
세 번째 시련의 결말이 다가옴을 느낀다.
나는 마지막으로 성모 에이디아를 만나볼 생각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거울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구원이, 내가 생각하는 ‘그 구원’과 같은 개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