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4)
EP.514 514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6) Fin
514화 – 207호, 관문의 방 – 세 번째 시련 ‘미스카토닉 대학’ (16) Fin
– ???
호텔의 시련을 진행하다 보면, 현대 사회의 편리함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세탁기 – 하나하나 일일이 언급하다간 시간이 모자랄 정도야.
교통수단의 차이 또한 좋은 예시지.
21세기라면 미국에서 유럽까지 비행기 타고 넉넉잡아 하루면 충분해.
안타깝게도 지금은 1897년,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만들기도 전이네.
덕분에 나와 포르투나는 여객선을 열흘째 탑승 중이다.
…
조금 지루하긴 해도 나름의 소득은 있었다.
포르투나와 대화하며 몇 가지 의문의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볼까?
첫 번째 시련 종료 후에도 승엽이 긴 세월 살아남은 것, 그 덕에 이집트로 돌아온 에이디아와 재회한 것은 굉장한 우연이라고 본다.
즉, 포르투나의 존재 자체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의미인데, 어쩌다 두 번째 시련의 보스가 된 걸까?
“에이디아가 너 말고도 많은 사람을 거울에 노출했다고?”
“응.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자살해서 어느 시점부턴 그만뒀어.”
“… 자살?”
“아무래도 가족이 있던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했거든. 또, 보통은 딱히 초능력을 얻거나 하지도 않았고.”
“…”
거울은 에이디아나 나, 승엽이 같은 특별한 존재는 물론 평범한 인간도 뒤틀 수 있다.
또한, 거울은 태고 시절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접경지대 인근 지하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시련의 무대는 스페인이었다고 한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다.
어쩌면 두 번째 시련의 보스는 ‘포르투나’가 아니라 거울에 의해 뒤틀린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누군가’가 ‘박승엽’이 된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운명의 장난이리라.
“어젯밤에 꿈을 꿨어.”
“…”
“엄청 덩치 큰 형이랑, 반짝반짝 빛나는 엄청 예쁜 금발 누나,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돌아다니는 냉소적인 표정의 여자애….”
“더 없어?”
“누나도 있고, 누나랑 굉장히 닮은 하얀 여자애도 있었어. 아, 맨날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는 이상한 형도 있었고.”
“이상한 형이라니…. 하긴, 가인이가 좀 이상하긴 해.”
나 역시 ‘뒤틀린 자’였기에 포르투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오래된 피의 힘으로 매일 포르투나의 심혼을 건드리자 그는 서서히 ‘우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었다.
“… 누나, 어쩌면 나, 여자친구가 있었을지도 몰라.”
“이야~ 축하해야겠네. 이건 진심이야.”
“엄청, 엄청 예쁘고, 똑똑했어. 누나나 형들처럼 장난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아. 굳이 따지면 좀 냉소적이고 차가운 성격?”
“그런 것 같긴 해.”
“…”
“왜 그래?”
“다시 볼 수 있을까?”
승엽이가 유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유미는 호텔 기준 ‘참가자’가 아니며, 영혼의 함에 담긴 유산의 일부 취급이다.
현재, 영혼의 함에 담긴 건 유미가 아니라 승엽이 본인이다.
“…”
아무리 봐도 쉽지 않아 보였기에 말을 아꼈다.
호텔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길 바랄 뿐.
…
시간이 흐를수록 포르투나는 서서히 변해갔다.
트랜스 상태에 빠트리면 다시금 승엽이가 깨어나곤 했으니까.
그 상태의 소년은 어렴풋이 현실을 인지했고, 자신이 동료들은 물론 유미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했다.
이 부분 감성은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자책할 것 없어. 부처에 가까운 초월자가 널 뒤틀어서 벌어진 일이잖아? 이런 느낌으로 동료를 공격한 경험은 여러 사람에게 있어.”
“하지만 누나.”
“나도 203호에서 레이저 딸깍해서 엘레나 녹여버리고, 기타 등등도 여러 명 죽여봤거든?”
“누나도 죄책감 때문에 힘들었겠네요. 말해줘서 고맙 -”
“죄책감? 난 그런 감정 느끼지 않았는데?”
“예?”
“자의가 아닌데 왜 내가 미안해야 해? 이런 건 법으로 따져도 무죄야. 억울하면 너희가 레이저 잘 피하든가.”
멍하니 누워있던 승엽이가 뜨악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약간의 충격요법이 그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물론, 가감 없는 내 진심이기도 하고!
얘들아, 다음엔 알아서 레이저든 공간참이든 잘 피해. 알겠지?
…
부슬비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스페인에 도착했다.
*
207호의 교황청은 현실의 교황청과는 전혀 다르고, 차라리 관리국에 더 가까운 집단이다.
심지어 핵심 시설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스페인에 있었다.
아마도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거울이 스페인 지하에 있기 때문이겠지?
“현실에도 거울 비슷한 게 있다면, 그것도 스페인에 있을까?”
“응?”
“아니야.”
포르투나는 명실상부한 교황청 이인자였고, 덕분에 스페인에 도착하니 일사천리였다.
‘나’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은 교황청 사제들도 있었지만, 포르투나가 눈짓 한번 하면 다들 물러섰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 마침내 성모를 만났다.
첫인상은 ‘예쁘긴 한데, 이 요란한 패션은 뭐야?’ 정도.
로마 제국 시절에나 유행했을 것 같은 옷차림은 그렇다 치자.
성모는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니까, 로마 제국 시절 패션은 그녀 기준으론 최신 유행 패션일 수도 있어.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은 장신구는 좀 심하지 않아?
이 정도면 머리가 무겁겠다, 무겁겠어!
“…”
패션과 별개로, 보는 순간 나와 그녀는 동시에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뒤틀린 자다.
“어머나. 포르투나가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네요.”
“그래. 에이디아, 그녀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
“호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이쪽의 ‘거울’은 철저히 통제했는데.”
잠시 빙글빙글 돌던 소녀는, 곧 방긋 웃었다.
“아하! 미국에 조각이 남아있었군요? 신기하네. 지금까지 조각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지금까지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네가 유미를 죽일 때 유미의 거울을 파괴한 모양이지?”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셈이죠. 작은 조각 하나가 남은 모양이네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
분명, 대화 내용이나 돌아가는 상황은 서로를 적대해야 할 텐데….
쉽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부탁해.”
“네? 그게 뭔가요?”
실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처음 등장한 건 2차대전 이후였지?
“그냥 네가 마시는 걸로 줘.”
뜨거운 커피가 한잔 돈 후, 성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커피값인 셈 치고 제가 먼저 질문하죠. 남은 거울 조각은 당신이 가지고 있나요?”
나의 정체나 방문 목적을 묻기 전에 거울 조각의 행방부터 묻는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응.”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돌려받는다? 표현이 이상한데.”
“거울은 본래 제 것이랍니다.”
“그럴 리가! 거울은 본래 스페인 지하에 있었을 뿐이잖아?”
“그걸 어떻게 – 됐습니다. 어쨌든, 지하에 묻혀있던 걸 제가 발견했으니 소유권이 있죠.”
“발견하면 네 거야? 그렇게 치면, 나도 루카스의 시체에서 거울 조각을 발견했어.”
뒤에 있던 포르투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발견한 게 아니라 죽이고 시체를 뒤져서 -”
“시체를 뒤져서 발견했어.”
성모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더니 다시 질문했다.
“거울이 뭔 줄 알고 탐내는 건가요? 그냥 정체불명의 신과 닿아있는 신물?”
“…”
“강력한 마도구를 원하는 거라면, 교황청 보물 창고를 열어드릴 테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챙겨가세요. 거울보다 훨씬 안전하면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많답니다.”
“나도 하나만 묻자. 거울로 이루고자 하는 네 목표는 대체 뭐야?”
수천 년 전, 이베리아반도 지하에서 거울을 발견한 성모는 무엇을 깨달은 걸까?
내 질문을 듣는 순간, 성모는 일말의 주저 없이 단호하게 외쳤다.
“세상의 구원.”
“아?”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달라졌다.
“얘야. 너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단다.”
“…”
“넌 나를 광기에 찬 학살자라 여기겠지. 하지만, 이 세상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장소란다.”
“…”
“나는 악몽의 끝에서 튀어나온 악마와 싸웠다.
나는 현실에 나타난 지옥 너머의 광기를 보았다.
나는 시간의 흐름조차 뒤틀린 별천지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희생자들에게 안식을 주었다.
나는 바라보기만 해도 뇌가 녹아버리는 존재를 추방했다.
나는 숨만 쉬어도 폐가 썩어들어가는 독기를 내뿜는 마귀를 불태웠다.”
말문이 막혔다.
이 순간, 그녀는 우리를 위협하는 207호의 대적이라기보다 반만년 동안 인류사를 지탱해온 위대한 영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충분치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너무나 불합리했으니까!”
“불합리하다….”
“시험지 자체가 끔찍한데, 열심히 푸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답은 하나. 시험지 자체를 바꾸는 수밖에! 이 정도면, 내가 거울을 얻어야 할 이유는 다 말해준 것 같네. 장난은 이쯤 하자꾸나.”
여러 가지 반박이 떠올랐다.
나는 성모의 생각처럼 ‘운 좋게 거울을 얻은 마법 소녀’ 따위가 아니고, 베테랑 관리국 요원이다.
순식간에 유리처럼 깨질 수 있는 허약한 세상.
연약한 모형 정원을 고통 속에서 지탱하는 사람들.
나도 잘 아는 사실들이다.
하지만, 내 경력이 길다고 한들 작금의 에이디아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반박하는 대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성모님. 아니지, 선배님.”
“음?”
의자에서 일어나 머리를 꾸벅 숙였다.
“… 이게 무슨 장난 -”
“감사합니다. 이건, 후배로서 선배님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이 말 만큼은 일말의 거짓 없는 진심이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조금 전의 대화, 성모의 마지막 말.
‘시험지 자체를 바꾸는 수밖에!’
나 또한 결정을 내렸다.
“뭐?”
움켜쥔 손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 – 사전에 합의했던 ‘신호’를 외쳤다.
“승엽아!”
조금 전까지 충직한 포르투나를 ‘연기’하던 소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며 예리한 검기가 허공을 꿰뚫었다.
동시에, 부등변다면체의 힘이 성모를 덮쳤다!
“포르투나…!”
성모의 외침을 무시한 채 검을 뻗는 흑기사.
이 순간만큼은 성모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견뎌내며 힘을 축적한 존재.
성모의 몸을 뒤덮은 장신구들이 번쩍이는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우르릉!
…
…
…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혈전의 끝에서….
나는, 많은 것을 잃었으며 또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얻었다.
「미스카토닉 대학, Fin」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일 차
현재 위치 : 207호, 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덜컹! 덜컹!
세 번째 역을 지나친 지가 언제였더라?
슬슬 다음 역에 도착할 시간인 것 같은데.
— 덜컹! 덜컹!
생각. 생각. 생각.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네.
가혹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무슨 제갈공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미래를 조율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이었으니, 누군가는 지금의 나를 불가해한 존재라 여기겠지.
하나, 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 있다.
전지(全知), 전능(全能) – 나는 결코 이런 존재가 아니지.
내가 아는 한, 가장 전지전능에 가까운 호텔조차 때때로 본인들이 상정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음을 인정하곤 한다.
하물며 나 따위가 어찌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전부 설계할 수 있겠는가.
필시, 내 예측의 많은 부분이 틀렸으리라.
계획은 무너져 있을 것이며, 상황은 괴이하게 뒤틀려있겠지.
괜찮다.
이제부터 바로잡으면 그만이니.
— 끼익!
「네 번째 시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 한가인,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씨앗을 수확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