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5)
EP.515 51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
51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
– 한가인
…
고요한 가정집에서 깨어났다.
인기척이 없는 것이,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바깥을 보고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대는 새벽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시야 한 편에서 제목이 깜빡이다가 사라졌다.
“제목은 또 뭐야? 유치하잖아.”
몰락한 왕이라니, 듣기만 해도 무슨 게임 용어 같잖아.
열차에 있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상태창이 사라졌다.
호텔이 내 축복을 봉인한 걸까?
아리는 호텔에게 상도덕이 있다면, 207호 진입 직전에 얻은 힘은 207호에서 써볼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었지.
아리와 묵성 할아버지는 유산을 쓸 수 있고, 엘레나는 축복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어.
일리 있다 싶어서 나는 유산 봉인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축복 봉인이네.
뭐, 이제부터 마도서와 신성한 태양을 믿으면 그만 –
“뭐야?”
마도서와 신성한 태양, 양쪽 모두 반응이 없는데?
기다렸다는 듯, 알림이 떴다.
「당신의 축복과 유산이 봉인되었습니다! 탁자 위를 확인해주세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하나가 아니라 둘 다 봉인이라고?
분명히 하나만 봉인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
열차에서 상인이 한 정확한 말이 기억났다.
‘첫째, 축복과 유산 중 하나 이상이 봉인될 수 있다.’
하나가 아니라 하나 ‘이상’.
언제나 그렇듯, 호텔은 이번에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
뒤늦게 제목 ‘몰락한 왕’의 의미를 깨달았다.
분명 예전엔 호텔 파티의 최대 강점이 믿음과 소통이라고 생각했었지.
반대로, 미로가 지배했던 심해의 호텔 파티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믿음과 소통의 부재였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한가.
계획은 나 혼자 짜고, 정보는 어떻게든 숨기고, 동료들을 흡사 장기 말처럼 부리려 든다.
상현 형이 바랬던 민주적인 리더와 거리가 멀다.
내 나름의 이유는 있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과거의 미로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
정신 차려보니 비밀스러운 왕이 되었다.
이제 축복과 유산을 잃었으니, 그야말로 ‘몰락한 왕’이다.
제목은 이런 내 상황을 비꼰 게 아닐까?
“반성은 대충 이쯤 하자.”
무의미한 1초 반성을 끝내고 지시대로 탁자 위의 작은 쪽지를 살폈다.
*
당신의 힘을 스스로 되찾으세요.
지정 장소에서 유산과 축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1. 학교
2. 교단
3. 한가인
*
학교는 그렇다 치자.
교단은 대체 무슨 소리야?
교회? 절? 무슨 사교 집단인가?
게다가 마지막 ‘한가인’은 장소가 아니라 내 이름이잖아?
놀리는 것 같은 쪽지 내용에 헛웃음이 나왔다.
“…”
현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부터 모으자.
다행히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등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대략적인 상식은 파악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시련의 무대는 21세기 대한민국이며 이 세계의 관리국은 ‘교황청’이라 불린다.
중국은 남중국과 북중국으로 분열되어 있는데, 207호에선 국공내전이 휴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알래스카가 러시아 소유라던가 북한 세습 왕조의 성씨가 ‘박’으로 바뀌어있는 등의 차이는 있었다.
소위 4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이외에도 ‘호루스 교’의 교세가 상당하다는 특이사항도 있었다.
이런 부분이 시련에 영향이 있을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
통찰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어떤 의미에선 머리가 더 맑아졌다.
차근차근 들어오기 전에 세웠던 계획과 현 상황을 비교해봤다.
*
동료들은 ‘통찰’을 사실상 예지능력으로 받아들이곤 했지.
그렇게 생각해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겠지만, 호텔은 지혜, 예지, 행운을 구분한다.
셋 다 ‘올바른 선택을 위한 힘’이라는 점에선 유사하나,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혜는 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 올바른 답을 고르는 것.
예지는 근거를 무시하고 정답을 관측하는 것.
물론, 예지를 얻은 사람이 없으니 확실하진 않다.
마지막으로 행운은 근거는 물론 정답도 모르는데 골라놓고 보니 ‘어? 이게 답이야?’하는 식이다.
통찰로 본 가능성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선, 그 가능성을 만들어낸 ‘근거’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예컨대, 나는 아리를 볼 때마다 쉴새 없이 변화하는 혼잡한 가능성을 봤다.
그나마 뚜렷한 세 가지 이미지를 알려주긴 했지만, 사실 그 셋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어째서 아리의 가능성만 이리 혼란스러울까?
내 해석에 따르면, 아리가 다른 동료들보다 장수하며 다양한 일을 겪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아리는 다른 동료와 달리 태생부터 불로불사의 존재이며 관리국 요원 경력까지 있다.
‘장수 가능성’이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높다는 의미다.
물론, 결국 확률의 문제다.
실제로는 고대 이집트에 떨어진 동료가 기존에 없던 힘을 얻어 수천 년을 버틸 수도 있다.
실제로는 중세 시대에 떨어진 동료가 기존에 없던 힘을 얻어 수백 년을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통찰은 물론이고 올빼미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일, 말 그대로 변수다.
반면 ‘아리가 장수하며 다양한 일을 겪을 가능성’은 확률이 상당히 높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아리는 현시점까지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
…
끊임없이 변화하는 아리의 가능성과 달리, 미로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룰 수 없던 야망.
참혹하게 실패한 계획.
때를 기다리는 시계 속의 미로를 기다리는 파멸.
자신보다 더 뛰어난 상대에게 삼켜진 가련한 소녀.
이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현재까지 두 번 만난 성인 미로와의 대화와 꿈의 왕국을 통해 확인한 미로의 내면이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 즉, 네 번째 시련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통찰이 ‘시계 속의 미로’의 존재를 예견했으니, 첫 번째 파티는 유산을 쓸 수 있었겠지.
그렇다면, 시간대여기 속의 내가 적절히 조율했으리라 믿는다.
…
결국 제일 중요 한 건 나에 대한 가능성이다.
산산이 조각나서 별 전체에 흩뿌려지는 미래!
놀랍게도 이 비참한 미래는 내가 본 모든 가능성을 통틀어 가장 확고부동했고, 반복적으로 통찰해도 변하지 않았다.
발생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의미다.
숫자로 표현하긴 뭐하지만, 99% 이상이라는 것.
다시 강조하지만, 통찰을 해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근거’다.
통찰은 어떤 근거로 내 끔찍하면서도 확고한 미래를 예견했을까?
두 가지를 중심으로 고민했다.
첫째, ‘누가’ 날 해치려 하는가. 즉, 적은 누구인가.
둘째, ‘무엇으로’ 날 해치려 하는가. 즉, 수단은 무엇인가.
…
첫 번째와 네 번째 시련의 시간적 배경을 살펴볼 때, 207호는 무려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된다.
당연히 변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정확히 어떻게 진행될지는 나는 물론이고 올빼미도 모른다.
변수가 이렇게 많은데, 내 비참한 미래는 확정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불확정한 존재는 원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컨대 국정원이나 중국 공산당은 적이라고 볼 수 없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패배했다면 국정원은커녕 대한민국이 없었을 수 있고,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승리했다면 공산당은 사라졌을 테니까.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207호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적은 ‘역사를 반복해도 항상 등장하는 집단’이다.
207호를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도 매번 등장하는 집단만이 내게 ‘확고한 파멸’을 약속할 수 있다.
놀랍게도 세상엔 정말 이런 집단이 있었다.
전혀 다른 배경, 전혀 다른 역사를 거쳐온 다양한 저주의 방에서 배경이 지구고 주요 종족이 인간이라면 매번 등장하는 집단이 있었다.
바로 관리국이다.
이름만 ‘관리국’, ‘교황청’, ‘이성의 결사’등으로 바뀌었을 뿐, 혼돈체를 억누르고 인류를 지키는 조직은 거의 항상 발생했다.
그러므로 207호에서 내 적의 유력 후보는 관리국이다.
물론, 이런 것과 무관하게 21세기 시점에서 우주에서 뚝 떨어진 악마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은 사전에 대처할 수 없으니 계획에선 배제했다.
…
수단이 무엇인지는 현시점에선 확신할 수 없으나, 한 가지는 추측할 수 있다.
적어도 ‘불굴의 이성’ 혹은 ‘영혼의 화로’처럼 관리국이 연구·개발한 물건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매번 다르기에 ‘확정 미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필시, 우주에서 뚝 떨어진 무언가다.
고대 이집트 시점에서 지구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을 확률이 높다.
이런 것은 발견만 하면 쓸 수 있다.
…
요컨대, 나는 통찰이 보여준 내 미래를 이렇게 해석했다.
207호에서 자연 발생하는 관리국 유사 조직이 지구 어딘가에 떨어진 끔찍한 혼돈체를 얻은 후, 그 힘으로 날 산산조각 내서 별 전체에 흩어버리는 것.
이 미래를 막고 207호를 돌파하는 것이 내 목표다.
이를 위한 상세한 계획은….
당장은 나도 모르지.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
— 따르릉! 따르릉! 7시입니다!
“알람 한번 크네! 벌써 7시야?”
*
현 시각은 오전 7시.
정상적인 고등학생이라면 모름지기 교복을 입고 학교로 출발할 시간이다.
“…”
지금 나는 ‘호텔 고등학교’ 재학생이다.
학교 이름이 웃긴 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고등학생이라니?
마음 같아선 학교고 뭐고 시련이나 진행하고 싶었지만, 탁자 위의 쪽지에 따르면 내 첫 번째 힘이 숨겨진 장소가 바로 ‘학교’란다.
등교는 해야 할 모양이네.
— 탈칵!
“어?”
교복에서 떨어진 ‘학생증’을 보고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이름은 물론, 외모까지 제법 바뀌어있던 것.
체격은 비슷했고, 새벽부터 침대에 앉아 생각하느라 바빠 거울을 보지 못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으음….”
이름도 이름인데, 얼굴 생김새가 많이 바뀌었다.
호텔이 내 신분을 세탁해준 셈인데, 이 사실을 깨닫자 자연히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적’이 내 진짜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구나!
시작하자마자 교황청이 내 집에 미사일을 날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런 배려를 해준 게 아닐까?
“…”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면, 능력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알고 있을 터.
주의해야 한다.
— 따르릉! 따르릉! 7시 30분입니다! 더 늦으면 지각! 지각!
“…”
슬슬 출발하자.
지금부터 나는 세상에 흩어진 마도서, 신성한 태양, 지혜의 축복을 회복한 후 최종 시련에 도전해야 한다.
새롭게 얻은 내 이름은….
***
신비로운 광휘로 가득한 기묘한 공간.
이 세계에서 ‘신비’란 곧 ‘혼돈’과 동의어였기에, 또한 탁한 혼돈으로 가득한 영역.
범속한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도 이해할 수 없을 괴이함 속에서 아름다운 이가 몸을 일으켰다.
“아하! 이제야 왔군요?”
정말이지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위한 영원한 준비였다.
그러나, 모든 기다림에는 끝이 있는 법.
자연스레 알았다.
누가 말해준 적도 없고, 부하들이 보고한 적도 없으나 그냥 알았다.
아마도 그녀 또한 운명의 영역에 살포시 한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리라.
마침내, 이 세계에 호루스가 돌아왔다.
“…”
헤아릴 수 없는 기나긴 삶 속에서 망각의 축복이 많은 기억을 집어삼켰음에도….
세상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라는 게 있었고, 그녀에겐 호루스에 대한 기억이 바로 그러했다.
“휴우.”
문득,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은 그를 만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
— 티이잉!
가볍게 손가락을 뻗어 ‘거울’을 튕기자 답을 알 수 있었다.
“이거군요.”
당연한 일이다.
성모가 생각건대, 거울은 곧 세상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었으니.
“거울은 항상 답을 알고 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