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6)
EP.516 516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
516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
– 수습 요원, 김민아
나는 교황청 이단심문국 소속 악마재해처리반 수습 요원, 김민아다.
‘교황청’, ‘이단심문국’, ‘악마재해’, ‘요원’
단어만 봐도 웅장하지 않아?
정작 날 소개할 때 저 멋진 단어를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지.
과거엔 대체로 ‘나 혼자 독서실 알바생’, ‘해피해피 편의점 알바생’, ‘스타 카페 알바생’ 같은 신분만 내세우곤 했다.
세상의 이면에서 온갖 비밀스러운 일을 진행하는 직장이니, 신분을 숨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눈치가 빠른 사람은 내가 주로 맡는 역할이 ‘알바생 ’임을 깨달았을 텐데, 이유는 간단하다.
난 굉장히, 초자연적인 레벨의 동안이다.
교복을 입으면 다들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할 만큼!
“민아야, 좋은 아침!”
“좋은 아침!”
*
학창 시절이 행복했는지, 씁쓸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견해는 확고하다.
시험성적 따위를 신경 쓰지 않으면 고등학교는 꽤 재밌는 장소야.
올해로 호텔고 8년 차, 졸업식만 두 번 경험한 대한민국 최고의 고등학생 전문가의 의견이니 모두가 존중해야 해.
나는 어쩌다가 ‘호텔고’라는 괴상한 이름의 학교를 8년이나 다니는 신세가 된 걸까?
예전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숨만 쉬었지만, 이젠 어렴풋이 안다.
베테랑 요원들 사이에서 떠도는 은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교황청 수뇌부 중 ‘미래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예언자’는 아주 오랜 세월 살아왔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강해졌다고도 한다.
예언자가 미래를 본 것이다.
언젠가 이 학교에서 끔찍한 악마 재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음이 분명하다!
다만, 정확한 시기를 몰랐기에 무작정 수습 요원 하나를 박아뒀을 뿐.
…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뭔가, 내가 무의미한 시간 낭비를 하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위대한 봉사를 하는 것 같았거든.
자아~!
그럼, 오늘도 기운 좋게 끝없는 학창 생활을 즐겨볼까나?
“하아암~!”
— 따악!
“수업 시간에 누가 하품하래!”
“… 죄송합니다.”
“손 들고 있어!”
*
지루한 4교시 국사 시간이 끝날 무렵, 힘없이 주저앉으려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주변을 살폈다.
과연, 남학생들은 종이 울리자마자 뛰어나가기 위해 이미 다리를 반쯤 뺀 상태였다.
— 딩! 동! 댕! 동!
“와아아!”
어떻게 이놈의 고등학생들은 8년째 하는 짓이 똑같을까?
매일 먹는 급식인데 그렇게 맛있니?
물론, 나는 바보들처럼 허겁지겁 뛰어다닐 생각은 없다.
천천히 가도 반찬은 충분히 남아있 –
— 콰당!
“아앗!”
“어억! 미, 미안해!”
“…”
“미, 미안해. 네가 있는 줄 모, 몰랐어. 나는, 그러니까 -”
“괜찮으니까 먹으러 가.”
멍청한 남학생 한 명이 뒤에서 달려오는 바람에 부딪혔다.
얼굴을 보니 학기 초에 ‘범생이’로 분류한 녀석이잖아?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뜀박질이람!
한숨 한번 쉬고 여유롭게 식당에 도착할 때쯤, 첫 번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으아악! 앗 뜨거!”
“뜨, 뜨겁잖아요!”
“…”
식당 아주머니가 뜨거운 국을 국자로 담으시다가 실수하신 모양이다.
실수 치곤 꽤 많이 흘렸는지, 학생 한 명이 눈을 부릅뜨며 짜증 내고 있었다.
아, 쟤 누군지 기억났다.
학기 초에 ‘양아치’로 분류했던 학생이네.
뭐, 아주머니가 수천 수만 번 배식 하다 보면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
가볍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 아닐까?
학생 쪽이 양아치니까 조금 시끄러울지도?
“이….”
“아줌마, 마이 다 젖었-”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느그 어미가 그리 가르쳤냐?”
잠시, 식당에 적막이 흘렀다.
불평하던 양아치는 물론 옆에서 구경하며 낄낄거리던 학생들까지 입을 쩍 벌린 채 눈만 떼구르르 굴렸다.
“창자를 빼서 튀겨버릴 새끼! 호로 잡놈! 내, 느그 목구녕에 끓는 기름을 부어서 -”
말로는 부족했는지, 아주머니는 정말로 돈까스를 튀기던 튀김 솥에 국자를 넣었다!
“으아악!”
“가, 갑자기 왜 이래요!”
“미쳤어! 미쳤어!”
분노에 가득 차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주머니가 펄펄 끓는 기름을 담는 상황!
이 정도면 양아치가 아니라 현직 조폭이어도 일단은 뒤로 물러설 것 같다.
당연히 화들짝 놀란 학생들이 황급히 몸을 피했고, 근처에 있던 다른 식당 아주머니나 선생님들까지 놀라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어?
그냥 ‘미안해요. 학생, 내가 실수했네!’ 정도면 학생도 불평 조금 하다가 밥 먹으러 갔을 것 같은데….
다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점심시간이 끝났다.
*
착각일까?
단순히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했다기엔, 지나치게 전조 없는 폭주였던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라면….
*
5교시 영어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거친 남자애들이 ‘남자친구 있어요?’ 부터 시작해서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한 부끄러운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얘, 얘들아! 조용히 좀 해. 이 부분은 중간고사에 꼭 나온다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영어 선생님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꼰대 같은 말이긴 한데 – 솔직히 난 꼰대야 – 애들은 좀 패야 말을 듣지, 조곤조곤 말해서는 아무 의미 없어.
뭐? 중간고사에 나와?
이 멍청이들이 중간고사 따위를 신경을 쓰겠냐고~!
— 따각! 따각!
“야, 야! 상민아, 선생님 화나잖아!”
“으잌! 킥킥! 선생님, 죄송해용!”
“뭐야? 와~! 선생님, 때리시게요?”
“아동학대다 아동 학대!”
회초리를 쓸 수 없다면 기세로 제압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야.
체격 건장한 남자 선생님이나 관록이 쌓인 사람들에게나 가능하지, 예쁘장한 20대 중반의 선생님에겐 불가능하다.
영어 선생님은 여러 해 동안 제법 고생할 운명 –
— 푸욱!
어?
“으, 허 -”
“꺅!”
“미, 미친! 서, 선생님! 미쳤냐고 -”
— 푹! 푹! 푹! 푹! 푹! 푹!
“끄아아악!”
미쳤어?
지금 펜으로 학생 몸을 10번 넘게 찌른 거 아니야?
“끄, 끌어내!”
“옆 반 국어 쌤 불러!”
“으아악!”
“사, 상민이 양호실 데려가!”
간신히 학생들과 옆 반의 체격 좋은 국어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을 제압해서 끌어낼 무렵, 상민이는 입을 잘못 놀린 대가로 상반신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
경찰이 도착할 무렵, 영어 선생님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처럼.
“민아야…. 오늘 학교 너무 이상하지 않아? 나 조퇴할까?”
“… 할 수 있으면.”
“헤헤. 농담이야. 조퇴는 무슨 -”
“아니, 할 수 있으면 해.”
“어?”
처음 한 번은 의심이었다면, 두 번째는 확신이야.
이 학교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식당 아주머니의 전조 없는 급격한 분노.
영어 교사의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듯한 폭력성.
둘 다 스스로 벌인 짓이 아니다.
누군가 ‘마도서’를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마도서를 ‘되찾으세요’라는 말이 이런 의미일 줄이야!
*
학생들은 곧, 그날 벌어진 일이 불온한 사고였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잖아?
이 세상은 본래부터 개연성 없는 폭력으로 가득하다.
난데없이 지하철에서 칼부림을 벌인 미친놈을 붙잡아 이유를 캐물었더니, ‘오늘따라 인생이 좆같아서요.’같은 소리가 나오곤 한다.
이런 것에 비하면, 학생에게 욕먹는 식당 아주머니나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영어 교사 정도면 나름대로 명분 있는 분노였다고 볼 수 있지.
정규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몇 시간 전의 유혈사태를 완전히 잊은 듯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학습은 이런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 쿵!
“다들 앉아!”
장대한 체격의 거한이 야구방망이를 교탁에 내리치며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학교 체육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되기 전에 야구 선수였다고 한다.
비록 2군에서 전전하다 은퇴해서 무명이긴 했지만, 전직 운동선수답게 체격이 범상치 않았다.
근데…. 야구방망이는 대체 뭐야?
순식간에 압도당한 학생들이 어어어 하며 의자에 철퍽 주저앉았다.
뒤늦게 이상함을 깨달은 ‘반장’이 손을 들었다.
“저…. 선생님, 방망이는 왜 가져 오셨나요?”
체육 선생이 대답하지 않자 반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기요! 방망이를 교실에 왜 -”
“이 썩어빠진 놈들! 당장 자리에 앉지 못해?”
“아니, 무슨 -”
“반장! 당장 자리에 앉지 않으면 대가리가 날아갈 줄 알아!”
반장은 애들 사이에선 나름 체격도 좋고, 기가 센 축에 든다.
그렇다고 한들 이런 정신 나간 압박감은 견디지 못했는지, 어어어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교실을 둘러보던 거한이 훈계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의 썩어빠진 행동 덕에 영어 선생님이 얼마나 상처받으셨을지 생각해본 적 있냐? 반장!”
“예, 예!”
“대답해라!”
그새 기운을 되찾았는지, 반장이 침착하게 답했다.
“우선, 죄송합니다. 장난이 심한 애들이 많아서 영어 선생님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음, 반장으로서 노력해서 이런 일 없도록 -”
“누군데?”
“예?”
“어떤 새끼가 장난쳤냐고 이 등신아!”
반장이 어물거리는 사이, 체육 선생은 듣지 않아도 안다는 듯 방망이를 들고 움직였다.
곧, 거한이 교실 뒤편의 책상 옆에 멈췄을 때 –
— 콰직!
“이 개새끼! 오늘 아주 그냥 피떡으로 만들어주마!”
벼락처럼 날아든 야구방망이가 노는 애 중 한 명의 머리를 후려쳤다!
다음의 장면은 흡사 B급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머리뼈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학생의 안구가 뽑혀 바닥을 구르고, 우수수 뽑힌 이빨이 사방으로 튀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때, 교실은 그야말로 혼돈으로 물들었다.
터무니없는 공포가 급속도로 전염되며 교실 전체가 비명으로 가득 찼으며, 몇몇 학생들은 아예 소변을 지리며 주저앉았다.
나는 바로 교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
괴상하고 잔혹하다.
운 좋게 마도서를 얻은 누군가가 그 힘으로 학생들을 해치려는 것 같은데, 목적을 모르겠다.
영어 선생님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복수?
그렇게 보기엔, 놈이 영어 선생님을 조종해 벌인 폭력 사태 덕에 선생님 인생은 반쯤 망한 것 같은데.
*
숨을 헐떡이며 복도를 달리는 사이, 학교는 본격적으로 맛이 가고 있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안내방송 내용부터가 미치광이의 그것이었으니까!
‘아 – 아! 마이크 테스트. 호텔고 학생 여러분, 오늘 외운 영어단어 하나하나가 훗날 만나게 될 배우자의 얼굴을 바꾼다.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사실, 뒷 문장이 생략되었다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바뀌는 건 배우자 얼굴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얼굴도 포함됩니다!’
‘끄아아악-!’
— 딸깍! 딸깍!
“왜 하필…. 어째서….”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나는 요원이다.
내겐 유사시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가 있다.
그 무기를 어떤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 훈련도 받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누가 적인지 알 수 없었다!
— 띠리링! 딸깍!
다행스럽게도 이단심문국 한국 지부가 전화를 받았다.
마법적 현상이 전화 통화를 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교황청이 만든 핸드폰!
“요원, 요원 김민아입니다. 호텔고에서 현재 -”
— 탈칵!
끊겼다.
전화가 걸리지 않은 게 아니라, 분명히 한국 지부의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끊었다.
마치, 나를 이 끔찍한 학교에 버린 패로 남겨둔 것처럼.
*
범인이 누구일까?
누가 호텔의 장난질 덕에 마도서를 얻어서 이런 잔혹한 일을 벌이고 있는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확 줄어들면 범인을 추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가지는 명확하다.
마도서의 빙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