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7)
EP.517 51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3)
51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3)
– 수습 요원, 김민아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차라리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면, 정체 모를 악마가 마법으로 요원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통신망조차 차단했나보다 하겠지.
전화가 걸렸으니 통신망은 멀쩡한데, 누군가 내 연락을 고의로 끊었다.
…
이단심문국이 모종의 루트로 호텔고에 악마 재해가 발생했음을 인지했구나!
문제는, 발생한 재해 유형이 인간의 정신을 뒤트는 종류였기에 수습 요원의 정신이 멀쩡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
악마가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나와의 언어적 소통은 피했다.
대신 ‘전화를 받았다 끊음’으로서 만일 ‘내 정신이 멀쩡하다면’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정보를 전달했다.
첫째, 교황청은 학교 내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둘째, 통신망 등이 멀쩡하니, 조만간 개입할 수 있다.
*
잠깐 사이에 학교는 난장판이 되었다.
급식 아주머니, 영어 선생님, 체육 선생님에 이어 학생 주임, 국어 선생님, 3반의 아무개, 5반의 아무개까지 –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날뛰며 모두를 공포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곧,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교황청 특제 핸드폰을 가진 나와 달리 다른 사람의 핸드폰은 정상적으로 전화가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이 되자 몇몇 아이들이 새하얗게 질린 채 ‘악마’라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악마 재해란 세계 뉴스에서나 종종 보는, 지구 어딘가에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볼 일 없는 그런 일이겠지.
요원인 나는 보다 잔혹한 진실을 안다.
악마 재해의 빈도수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수십 배 이상 많고, 교황청이 어떻게든 정보를 통제했기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뉴스에 나오는 것들은 교황청조차 정보 통제에 실패했거나, 이 정도는 풀어도 되겠다 싶어서 푼 정보다.
…
별개로, 난 고장 난 핸드폰을 보며 ‘악마’라고 중얼거리는 학생들과 전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악마가 아니라 이단심문국에서 호텔고 일대를 격리 중인 게 아닐까?
전염병 방지의 최우선 대응이 바로 감염자와 일반인의 격리 아니던가.
복도를 걷다 보니 반 친구들이 보였다.
“민아야! 도, 돌아온 거야?”
“지은아, 괜찮아?”
“으, 응! 어떻게 잘 됐어…. 다들 겁먹은 상태긴 하지만.”
나름 절친인 지은이의 횡설수설을 들으며 교실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했다.
학생들이 용기를 내서 의자와 책상을 방패 겸 무기처럼 사용해 체육 선생님을 밀어붙이며 탈출했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옆 반 선생님 등의 도움도 있었고.
아무리 전직 야구 선수라 해도 교실엔 혈기 왕성한 남학생만 열 명이 넘으니 제압 못할 것도 없다.
야구방망이로 책상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놀라운 건 힘보다는 용기다.
눈앞에서 체육 선생이 야구방망이로 애 하나를 때려죽였는데, 힘을 모아 맞설 용기를 내다니….
생명의 위기에 처하니, 험난한 대자연에서 살아남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용맹함 끓어오르기라도 한 거야?
그때, 반장 – 이름이 뭐더라? 이호진? – 이 내게 다가왔다.
“돌아왔구나? 재빨리 뛰어나가길래 밖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우린 이제부터 뭉쳐서 정문으로 갈 생각이야.”
반장은 침착한 태도로 대열을 정비하고, 학생들에게 나름대로 역할까지 분배했다.
너는 의자를 들고 누가 오면 막아라, 너는 대걸레를 들고 후려쳐라, 여자애들은 그냥 가운데에 있어라 등등.
선생님 말씀은 우습게 알던 양아치들이 신기하게 반장 말은 툴툴거리면서도 나름 따랐는데, 원래 이런 애들이 소위 ‘또래 사이의 서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민아야…. 왜 돌아왔어. 나간 김에 어, 어른들 모셔 오지.”
“지은아. 겁먹지 마.”
“으, 응.”
반장처럼 석기시대에 태어났으면 추장 했겠다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지은이는 먹이사슬로 치면 딱 토끼 위치였다.
“나가자!”
*
교실 밖으로 나와 걷던 중, 여기저기서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상한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나갈 수 없게 막아버렸다.
아니다, 정문으로 가면 나갈 수 있다.
아직 후문 쪽은 괜찮다던데?
후문도 막혔다니까!
그야말로 혼탁한 정보들!
내 생각엔 ‘막혔다’ 쪽이 정답이다.
‘전염병’을 격리하기 위해 통신망을 끊었는데, 물리적인 탈출을 허용하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나갈 수 있다는 말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니, 얌전히 묻혀가던 범생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바, 반장!”
“… 뭐야? 말해 봐.”
“우리, 그, 예배실로 가지 않을래?”
“…”
“저, 정문이 막혔다고 하니까 -”
곧, 양아치 몇 명이 핀잔을 줬다.
“아~! 이 병신 새끼. 야, 여기서 정문까지 뛰면 5분이야! 뭔 교회는 교회 -”
의외로 범생이의 말에 혹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문 막혔다는 말 안 들리냐? 시, 십자가 아래로 가야 하나님이 우릴 보호해주실 거 아니야!”
뜬금없이 하나님이 우릴 보호해주신다?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생각해보자.
악마가 실존하고 교황청은 매일 하느님 아버지를 외치며 악마를 토벌하는 세상.
덕분에 인류의 7할, 한국인 중 8할이 기독교도인 시대.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는 몇몇 학생들의 태도는 일반인 기준으로 아주 상식적이었다.
물론, 정문으로 나가는 길이 뻔히 보이는데 탈출 대신 기도를 택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는 애들도 많았다.
결국, 그룹이 둘로 쪼개졌다.
…
나는 예배실 그룹에 속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이단심문국이 탈출하지 못하게 막을 테니까.
내 생각에, 살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단심문국에서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리기 전에 악마 혹은 마술사를 내가 찾아서 죽여야 한다.
*
애들에겐 미안하지만, 정문으로 가선 곤란하다.
정문이 막혔다면?
나갈 수도 없는 곳에 가는 건 시간 낭비다.
정문으로 탈출할 수 있다면?
학교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교황청이 모를 리가 없지.
탈출하자마자 교황청이 학생과 교사를 잡아갈 텐데, 그렇게 되면 마도서를 회수하기 곤란해진다.
요컨대, 탈출할 수 있든 없든 정문으로 가선 곤란하다.
따라서 범인 후보들은 학교에 남아있어야 한다.
내가 마도서를 되찾을 때까지.
*
예배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어디선가 귀신이 우는 듯한 괴이한 소음이 들려왔다.
평소 같으면 복도가 낡았다고 했겠지.
결국, 공포에 질린 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아 씨발 진짜! 야, 이호진! 내가 정문으로 가자 했잖아!”
“그러면 가든가. 너도 정문 막혔다는 말 들었잖아?”
“씨발 그럼 가서 한번 확인하고 오든가. 존나 이상한 방향으로 와서 -”
“야. 너 아까부터 왜 자꾸 욕하냐?”
다음 순간, 양아치가 눈을 희번덕 부릅떴다.
“이 좆 같은 새끼가 -”
찰나, 모두가 긴장하며 양아치를 살폈다.
이미 몇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짝 화내고 끝낼 상황에서 난데없이 사람을 죽이려 드는 게 여태까지 발생한 악마 재해의 양상이었으니까!
“… 어? 어? 뭐, 뭐냐? 아니야. 나 아니라고!”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양아치가 놀라서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주변 학생들이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던 중, 나는 다소 의아했다.
여태까지 상황 보면 지금이 딱 타이밍 아니었니?
혹시 악마, 마술사가 근처에 없는 건가?
정문으로 가서 탈출했거나 학교를 떠도는 다른 그룹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얘네들에겐 다행이네.
악마를 찾아야 하는 내겐 당혹스럽지만.
*
마도서의 ‘약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빙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
컨디션, 숙련도에 영향을 받으니 정확히 몇 미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대상이 내 눈에 명확히 보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자.
급식 아주머니, 영어 교사, 체육 교사.
셋 다 우리 반 학생들과 얽히며 폭주했다.
학생 주임, 국어 교사, 3반과 5반의 학생.
언뜻 생각하면 우리 반과 무관해 보이지만, 앞의 둘은 체육 교사의 폭주를 보고 말리러 왔던 사람들이며 3반과 5반의 학생은 우리 반의 소음을 듣고 구경하러 왔던 학생이다.
범인은 우리 반 학생이다.
…
두 번째 약점은 힘을 쓸 때 마도서 ‘실물’을 소환해야 한다는 것.
물론, 마도서가 무슨 백과사전처럼 크거나 무겁진 않으며, 언제든 역 소환할 수 있으므로 약간의 엄폐물만 있으면 몰래 소환하는 건 쉽다.
식당이나 교실 같은 장소라면 탁자 밑에서 슬쩍 소환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다.
…
혹시나 해서 범인이 나설만한 상황을 만들어봤다.
엄폐물이 없는 복도니, 마도서를 소환하면 즉시 찾아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런 장소에서 마도서를 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다음 목적지, 예배실에서 승부를 보자.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텔이 이런 기묘한 이벤트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내게 ‘타인이 마도서를 얻었을 때,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해보라’는 의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물론,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이 으레 그렇듯 내 상상일 수도 있다.
*
아까의 신경전 덕에 그룹이 미묘하게 분열됐다.
굳이 표현하자면, 반장 중심 그룹과 양아치 중심 그룹?
얌전한 애들은 죄다 반장 주변에 모였고, 운동 좋아하는 거친 애들이 자기들끼리 모였다.
자기들끼리 안 들리게 – 사실 다 들려 – 속삭였지만 이와 별개로 두 그룹이 아예 멀어진 건 또 아니다.
따로 다니긴 무섭거든.
나는 어느 그룹에 속했을까?
어쩌다 보니까 양아치 그룹이네.
고등학교 8년 차, 학창 생활 초고수 김민아는 양아치야.
어, 어쩔 수 없어!
고등학교 생태계 구조상 나처럼 무지 예쁘고 공부 못하는 – 눈에 띄지 않게 일부러 틀릴 뿐이야 – 애들은 자동으로 양아치 그룹에 속한다고!
난 그냥 가만히 있는데, 노는 애들이 저절로 내 옆에 오는 걸 어떻게 해?
웃기는 건 교실 생태계 상 ‘토끼’ 혹은 ‘땃쥐’에 속하는 지은이가 양아치 그룹에 끼어있다 정도다.
물론, 양아치들이 지은이를 끼워준 건 아니고 지은이가 그냥 내 옆에 있었을 뿐이지만.
…
학교란 매일 치열한 서열 다툼이 벌어지는 정글과 같다.
사자와 늑대에겐 영광과 풍요가 함께 하며, 토끼는 하루하루 살아남기 버거운 장소.
허약한 토끼들에게도 나름의 생존 전략은 있다.
본인이 늑대나 사자가 될 수 없다면, 성격 좋아 보이는 늑대 옆에 붙어서 친한 체하는 것도 방법 아닐까?
“미, 민아야! 도착했어!”
“그래그래, 들어가자. 이제부턴 하나님이 모두를 지켜주실 거야.”
이 순간만큼은 모든 아이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존재감 없는 범생이는 물론, 눈만 마주치면 더러운 욕설을 뱉는 양아치까지도.
*
예배실에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그야말로 독실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뭐랄까, 솔직히 여러모로 웃겼다.
얘네 중에 평소에도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 양아치 쟤는 살면서 교회 한 번도 안 갔을 것처럼 생긴 놈이 –
“야, 야, 야고보서 4장 7절.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피할 것이니 -”
?
“시, 시편 23장 4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가장 공부라는 단어와 멀어보이는 애가 난데없이 성경 구절을 줄줄 읊으니 주변 학생들까지 놀라서 바라보았다.
곧,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장이 중얼거렸다.
“야, 박민승. 아깐 예배실 가지 말고 정문으로 가자며?”
“이, 이 새끼야! 하, 하나님은 우리가 꼭 예배실에 있어야 보호하시는 게 아니라, 우,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자비가 깃들 공간이 있다면, 어디서든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
어이가 없네.
어쨌든, 양아치도 저 정도니 다른 애들은 볼 필요도 없다.
곧, 모두가 무릎 꿇고 자기가 아는 기도문을 아무거나 주워섬기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악마의 사특한 손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옵고 -”
“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그리고 그들을 이겼나니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
“아멘아멘아멘아멘아멘 -”
“씨발 그게 기도냐?”
“아, 아멘 밖에 모른다고!”
이 시점,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여기 어딘가 악마 혹은 마술사가 있을까?
— 벌컥!
그 순간,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
찾았다.
너였구나?
이제 마도서를 회수할 시간이다.
…
학교 주변을 교황청이 포위한 것 같다.
마도서를 찾은 후 어떻게 탈출할지도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