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8)
EP.518 518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4)
518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4)
– 수습 요원, 김민아
— 벌컥!
뒤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앞에서 험악한 소리가 들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못 참겠다! 박민승 이 씨발놈아, 니가 뭔데 나한테 -”
“놔! 놓, 놓으라고! 씨발, 미안하다고 했잖아!”
“미안하면 다냐? 다냐고 이 개새끼야! 이 좆같은 새끼가 -”
난데없이 반장 호진이가 아까 전의 시비를 이유로 양아치 민승이에게 달려들었다!
귀를 찌를 듯한 천박한 욕설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반장이 갑자기 양아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읍~! 으으읍! 끄르륵!”
반장이 양팔에 핏줄이 솟을 정도로 죽일 듯이 양아치의 목을 졸랐기에 애들이 놀라서 일어섰다.
하지만, 다들 엉거주춤 어쩔 줄 몰라 할 뿐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끝난 상황에 대한 폭발적인 분노, 반장의 평소 성격이라면 하지 않았을 험악한 욕설!
유사한 현상을 이미 여러 번 봤잖아?
악마 재해다!
“아, 악마다! 호진이에게 악마가 들렸어….”
겁먹은 아이들이 말리긴커녕 뒤로 물러섰다.
양아치가 죽기 전에 내가 나서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갑자기 반장이 멍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어? 어? 뭐, 뭐야?”
“켁~! 케엑!”
“뭐지? 민승아? 괜찮냐? 왜 니가 내 밑에 있지?”
반장이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린 경우는 한 번도 없었 –
— 벌컥!
다시금 뒤에서 들려온 소리, 그리고 깜짝 놀란 소년의 목소리.
“이, 이 책은 대체 뭐야?”
모두의 시선이 예배실 뒤로 향했다.
성경을 올려두는 예배실의 대형 책상 중 하나가 옆으로 움직여있었는데, 저래서 벌컥 하는 소리가 난 모양이다.
책상이 움직이자 그 밑에 있던 한 여학생의 무릎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시꺼먼 책’이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성경과 거리가 먼 심상치 않은 모양새!
“지은이잖아?”
“뭐야? 야 서지은! 그 책 뭐냐? 어디서 구했 -”
지은이가 당황하며 몸을 움츠리며 손을 휘젓는 순간, 책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채, 책이라니? 그런 것 없는데?”
헛웃음 나올 정도로 어리숙한 거짓말!
예배실에 있던 학생 열댓 명이 모두 책을 봤는데, 그걸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속겠어?
오히려 모두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을 뿐이다.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서 캑캑거리던 양아치가 언제 일어났는지 단호하게 외쳤다.
“쟤, 쟤다! 서, 서지은 손에 이상한 책 다들 봤지? 틀림없어! 야! 차은호! 저거 잡아!”
뒤늦게 정신 차린 반장 또한 상황을 눈치채고 지은이 근처에 있던 범생이에게 외쳤다.
“은호야! 지은이 잡아!”
“어, 어!”
여기저기서 잡으라고 하니 어울리지 않게 용기가 솟아났는지, 항상 움츠려 지내던 범생이가 서지은에게 다가갔을 때.
“… 호.”
지은이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뻗었다.
직후, 범생이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으, 으악!”
삽시간에 번져나가는 공포.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어졌는지, 서지은이 대놓고 웃으며 모두를 돌아봤다.
“너네 바보 아니야? 누구보고 날 잡으란 건데? 호진이 너야?”
지목당한 반장이 새파랗게 질린 채 벽에 붙었다.
“지, 지은아…. 살려줘! 나, 나는 너 괴롭힌 적 없잖아? 아, 알지? 펴, 평소에 널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
“좋아. 호진이는 봐줄게. 그러면…. 민승이 너야?”
곧바로 양아치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평소 누굴 괴롭히는 성격이 아닌 반장과 달리, 양아치는 이제 꼼짝없이 죽은 것 같았으니까!
곧, 양아치가 자기 손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끄으읍! 캑!”
“어머, 민승아. 하나님이 널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지?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에~!”
장난치는 듯한 목소리.
아이들은 죄다 공포에 질린 채 바닥에 엎드리거나 벽에 바짝 붙었고, 차마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
이 정도면 됐어.
— 철컥!
교복 속에 숨겨둔 권총을 쓸 시간이다.
“서지은, 지금 당장 책 내려놓고 -”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자애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 쿵!
“아니!”
놀라서 멍청이를 걷어차고 전방을 살피자 예배실 밖으로 다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사이에 서지은이 도망간 것이다!
처음으로 당황했다.
이 대응은 빨라도 너무 빨랐으니까!
마치, 내가 요원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
이럴 때가 아니지! 추격!
*
— 탕! 탕!
추격하며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지만, 한 발도 적중하지 못했다.
내 사격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총격을 의식해서 책장, 문 등 장애물을 끼고 도주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추격전의 끝은 머지않아 찾아왔다.
지은이의 체력이 그리 좋지 않기도 했고, 그걸 떠나서 운동장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멈춰!”
“…”
넋 나간 듯, 운동장 한복판에서 멈춰선 소녀.
이젠 지은이의 눈에도 보이겠지.
정문은 물론, 학교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포위한 시꺼먼 장갑차와 주변을 비행 중인 드론들이!
원칙대로라면 즉시 사살해야 한다.
탁 트인 운동장이라 지은이가 내 총을 피할 방법도 없다.
“서지은. 마지막 경고야. 책 내려놓고 항복해.”
“…”
“마지막이라고 했어! 지금이라면, 책을 파괴한다는 전제하에 이단심문국에서 널 살려줄 가능성도 -”
“… 니가.”
“어?”
“니가 뭘 알아! 뭘 아는데? 예쁘니까, 다들 떠받들어 주니까 아주 신났지? 진짜 무슨 공주님인 줄 알아? 잘난 체하지 마! 너 따위가 -”
어어?
살려주려는데 갑자기 급발진?
평소에 날 질투했다 뭐 이런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서 –
“내놔! 그 몸, 내놓으라고!”
시꺼먼 가죽 위에 흑요석 가루를 덧댄 듯한 불길한 책이 나타났을 때 –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
— 탕!
지은이의 가슴팍에서 피가 튀었고, 불길한 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먹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은이에게 다가갔다.
대단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내 나름대로 절친이라 생각했던 소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다.
“…”
우울한 기분으로 지은이의 손을 잡았을 때 – 귀를 간질이는 듯한 자그마한 목소리를 들었다.
*
호텔고에서 벌어진 악마 재해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사망자는 네 명입니다. 두 명은 그, 체육 선생? 그 사람 방망이에 맞아 죽었고 한 명은 도주하다가 압사당했습니다. 그리고 ‘마녀’는 현장에서 수습 요원이 사살했습니다.”
보고가 마무리될 무렵, 내가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단심문국 직원이 위로해줬다.
“민아 요원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겨우 네 명 죽고 마녀를 사살했으면 정말 싸게 막은 거라고요? 분명 요원님도 이제 수습 딱지 뗄 수 있을 -”
“으흠, 으흠. 요원님, 마녀와 꽤 친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머!”
“어, 음. 그러니까, 이런 부분은 차차 익숙해지셔야 -”
“괜찮아요.”
건성건성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불편한 자리를 벗어났다.
…
희생자 네 명이면 싸게 막았다는 직원의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마녀, 지은이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이단심문국은 호텔고 생존자를 다 죽여야 했을 테니까.
장소가 운동장이었던 것도 다행이다.
정신 침식형 악마 재해였기 때문에 이단심문국에서도 섣불리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았지만, 드론 등으로 현장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서지은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덕분에 이단심문국도 신속하게 사건 해결을 선언했다.
“김민아 요원.”
“네.”
“오늘 수고 많았네.”
“아닙니다.”
“괜찮은가?”
“네.”
“… 정신 클리닉은 -”
“괜찮습니다.”
“그러면 일주일 정도 쉬게. 다음 임무는 그때 가서 연락하지.”
“네.”
*
늦은 밤.
여자애 혼자 사는 집 거실치고는 지나치게 넓은 공간을 서성이며 상념에 빠졌다.
“…”
조금은 마음이 무겁고 씁쓸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괜찮다고 했는데, 실은 아니었던 걸까….
고등학생으로 위장한 시간이 무려 8년이다.
짧지 않은 학창 생활이었던 만큼, 친구 비슷한 애들도 많았지.
그중 지은이는 내게 조금은 특별했던 걸까?
꼭 친해서라기보다 내 손으로 죽였으니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할지도 몰라.
“…”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어렵네.
몇 달간 친하게 지내면서 지은이가 그리 심하게 질투한다고는 느낀 적 없었어.
나름대로 학교에 오래 다니면서 애들 마음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함이었나 봐.
물론, 지은이가 죽는 순간까지 날 질투하고 저주했던 건 또 아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더라?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뭐라고 했었는데.
‘민아야 미안…. 방금은 나 아니었-’
미안하다는 건 갑자기 욕한 걸 말하는 걸 테고, ‘방금은 나 아니었’은 무슨 –
“… 어라?”
찰나의 순간.
과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며 그간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마치, 한 줄기 벼락이 뒤통수를 후려친 것처럼!
첫 번째 장면.
예배실에서 빙의 당한 반장이 양아치의 목을 졸랐을 때, ‘벌컥!’하며 누군가 지은이가 소환한 검은 책을 찾아냈다?
아니야! 순서가 반대였다.
‘벌컥!’하는 소리가 먼저고 그다음에 반장이 양아치의 목을 졸랐다.
즉, 지은이가 마법을 쓰기 전에, 혹은 마법을 쓰기 위해 마도서를 소환한 시점에서 이미 누군가 예배실 책상을 밀치고 검은 책을 찾아냈다!
두 번째 장면.
‘누군가’가 지은이를 잡으려 하니, 지은이가 손짓 한 번으로 기절시켰다.
그 후, 마치 모두에게 보란 듯이 힘을 과시하며 양아치의 ‘의식을 남겨둔 채’ 손만 조종해 목을 졸랐다!
이런 힘은 이전에 학교를 뒤집으며 보인 적 없어.
무슨, 갑자기 마법 숙련도가 엄청나게 올라간 것 같잖아?
세 번째 장면.
예배실에서 총을 꺼내려는 순간, 정말 채 1초도 지나지 않아서 내 옆 남학생을 조종해 궤도를 틀어막았다.
다시 생각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요원임을 알고 있던 것처럼!
…
점심시간의 일이 떠올랐다.
직후에 벌어진 식당 아주머니의 난동 덕에 잊고 있었지만, 당시엔 꽤 당황스러웠던 일.
분명히 다른 애들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움직였는데, 기다렸다는 듯 뒤에서 온 ‘누군가’가 내게 부딪혔었지.
어쩌면 그때, 교복 속에 살포시 숨겨둔 권총을 확인한 게 아닐까?
“…”
‘누군가’는 매번 똑같은 사람이었다.
*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생존자 중 한 명이 범인인데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결정권자가 판사라면, 범인이 누군지 모르니까 증거 불충분으로 전원 무죄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벌하지 않는 것이 형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결정권자가 관리국이라면, 범인이 누군지 모르니까 모든 생존자가 죽어야 한다.
열 명의 무고한 자를 죽여서라도 단 한 명의 범인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대원칙이므로.
따라서, 내가 살기 위해선 범인이 ‘명확히’ 잡혀야 한다.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마도서를 회수한 채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그건 그렇고, 미묘하게 아리를 닮은 그 요원의 정체는 뭐지?
분명 틀림없는 아리라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교복을 입을 때 총을 숨기는 그 부드러운 위치까지 아리랑 똑같았다.
그런데, 미묘하게 행동이 허술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리가 둘러댔던 위장 신분인 ‘수습 요원’으로 돌아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영혼!
마도서를 회수하자마자 슬쩍 확인했는데, 영혼의 상태가 이상하다.
대체 이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회를 봐서 접근해야겠다.
다음 차례는 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