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19)
EP.519 51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5)
51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5)
– 한가인
호텔의 시련들은 우주 어딘가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각색한 것이라 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래들에게 괴롭힘당하던 소년이 정신병에 시달리며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병원 원장이 우주적인 힘을 자랑하는 악마였단다.
악마로부터 힘을 얻은 소년은 세상을 말아먹었다.
한 사업가가 아내와 동업자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인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신비로운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그는 기적처럼 재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조력자는 태어나기 전에 죽은 악신의 사제였단다.
결국 수많은 필멸자를 집어삼키고 부화한 우주 나방이 한방에 지구를 말아먹었다.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현실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세상이란 흡사 카드로 쌓은 성과 같아서, 우주 저편에서 웃음 짓는 광인들의 손짓 한 번이면 흔적도 없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이를 깨달았을 때, 나는 세상의 흔들림 없는 존속에 대한 믿음이 실로 유아적이었음을 받아들였다.
…
위와 같은 일은 207호에서도 벌어질 수 있었다.
207호에 진입하기 전, 나는 내 차례가 시작하기 전에 무대가 ‘망가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물론, 207호에는 ‘호텔’이라는 궁극의 관리자가 존재하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망은 있었겠지.
예컨대 지구 자체가 박살 나서 사라진다거나, 인간이 멸종한다거나 하는 수준의 맛이 간 전개는 호텔이 개입해서 막았으리라 본다.
뒤집어서 말하면 ‘적당히 맛이 가는’ 정도는 가능했다.
또한, 그간의 경험을 고려할 때 호텔이 생각하는 ‘적당함’과 우리가 생각하는 ‘적당함’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인류 전체가 달팽이 외계인의 노예가 된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런 미친 상황에서 시련을 어떻게 진행하냐고 욕하겠지만, 호텔은 ‘이제부터 인류를 구원하세요’라고 진지하게 권할 수 있다.
애초에 우리를 네 파티로 쪼개서 여러 시간대에 떨어트리는 것부터가 과거 파티의 행적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전제한 것 아니던가.
과거 파티가 크게 실수해서 207호를 종말로 몰아갔다면, 그것조차 너희가 무능한 탓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호텔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료들에게 일종의 기준선을 주고 싶었다.
말하자면, 종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지침 말이다.
*
— 타닥! 타닥!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정보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다음 목표, 호루스 교단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다.
“여기 맞겠지?”
쪽지에서 말하는 ‘교단’은 호루스 교단이 맞을까?
확고한 물증은 없지만, ‘진짜 현실’ 관련 기억과 비교해보면 의심스럽긴 하다.
기독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같은 것은 현실에도 있었지만 ‘호루스 교’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분명, 과거 시점의 동료들이 만든 역사적 변화의 여파겠지.
‘교단’인 만큼 정황상 신성한 태양이 있을 것 같은데….
“… 으음.”
예리한 바늘이 머리를 살짝 찌르는 듯한 두통.
며칠 전, 마도서를 회수하며 벌어진 일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은 학교 내 학생, 교사, 직원 등을 전부 모아 ‘3등급 기억 소거제’라는 것을 투여하며 최면요법까지 시행했다.
악마 관련 정보를 통제하는 동시에 ‘김민아 요원’에 관한 기억을 지우려는 것 같았다.
저항할까 생각했지만, 고심 끝에 그냥 받아들였다.
상황이 다 끝난 후의 조치였고,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투여하는 약과 요법이잖아?
강도가 약할 테니, 지금의 나라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예상대로 반나절 정도 흐르니 자연스레 잊었던 기억들이 돌아왔다.
약간의 두통 또한 보너스처럼 따라왔지만, 이런 건 승리의 훈장 정도로 생각하자.
벌컥!
얼음물 한잔 마시니까 좀 낫네.
— 타닥!
소위 4대 종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호루스 교 또한 나름대로 세계적인 규모였다.
호루스 교단의 구조는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의 그것에 가까웠다.
즉, 미국에 교단 총대교구가 있고 전 세계에 개별 교구가 있는 식이다.
교단의 수장, 가톨릭으로 치면 ‘교황’에 대응하는 존재도 있었는데, ‘소피아 법왕’이라고 한다.
“실종 상태라고?”
흥미롭게도 소피아 법왕은 약 7년 전 실종되었으며, 이는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시련과 관련이 있을까?
교단의 역사 부분이 조금 애매했다.
본인들은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는데, 외부에서 보기엔 사실상 20세기 무렵까지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1897년 말 혹은 1898년 초에 벌어진 세기의 대사건, 스페인 대참사 후에 미국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미국에서 나타났다라….”
그럴 수 있다 싶으면서도 뭔가 기묘하네.
이집트 전통 신앙을 뿌리로 삼았으면서 시작은 미국?
하긴, 기독교도 중동 지역 유대교를 뿌리로 삼지만, 실질적인 역사는 로마 제국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일지도.
교단의 한국 내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다.
규모도 크고, 자선활동도 많이 하는 데다가 이집트 신화 특유의 신비함? 신선함? 그런 느낌이 있어 보였다.
역사적인 공백기가 길다는 말은 관점을 바꿔보면 마녀사냥, 성전 같은 갈등의 역사가 없다는 면에선 장점이기도 했다.
“내일부터 다녀봐야겠네.”
더 자세한 정보는 결국 들어가 봐야 얻을 수 있겠지.
*
“어머, 학생! 못 보던 얼굴인데, 새로 왔어요?”
“네. 평소 음, 호루스 교에 가면.”
조금 철없이 말해볼까?
“예,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서!”
“호호! 너무 솔직히 말하는 것 아니니? 그래, 이름이?”
“차은호라고 합니다.”
“교원 명부에 적었단다. 적당히 자리에 앉으렴.”
호루스 신전은 제법 아름다웠다.
한국 사람들이 ‘고대 이집트’ 하면 떠올리는 요소들로 신전을 잘 꾸며두었기 때문이다.
벽 여기저기 음각된 스핑크스나 피라미드 조각 등을 보고 있으니, 무슨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들었다.
곧, 정말이지 고대 이집트에서나 입을 법한 기이한 옷을 입은 ‘사제’가 나타나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
김 뭐시기 사제님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설교는 솔직히 지루했다.
덕분에 호루스 교단 한국 교구에도 살짝 실망했다.
에헴!
내가 이래 봬도 한여름 밤의 꿈 당시 현실에서 익투스 교단을 홀라당 먹어봤다고?
‘종교 비즈니스’ 전문가인 내 견해에 따르면, 돈을 처발라서 아름답고 신비한 신전을 건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이다.
평생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의 재산을 주둥이 하나로 홀라당 집어삼키는 ‘재산 이동 전문가’ 몇 명을 섭외해야 –
“거기, 좀 비켜주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한 걸음 물러서니 몇몇 사람들이 주변 조각이나 그림들을 찰칵찰칵 찍기 시작했다.
교회라기보다 무슨 관광지 같은 분위기였는데, 사제들도 말리긴커녕 활짝 웃으며 동참하고 있다.
새롭게 세력을 떨치는 신흥 교단이니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대신, 관광지 같은 분위기로 호객행위 중인 건가?
이런 전략은 또 나름 괜찮아 보이네.
주변을 살피니, 아예 교회에서 사진 찍으라고 마련한 그럴듯한 ‘호루스 동상’과 ‘파라오 의자’ 따위가 있었다.
호루스 동상은 언뜻 상상했던 위엄 넘치는 모습보다는 미묘하게 귀여웠는데, 아무래도 머리 모양이 매에서 올빼미로 변했기 때문에 –
올빼미?
“어?”
분명 현실 역사 속 호루스의 상징은 매 아니었나? 그게 올빼미로 바뀌었다고?
“…”
호텔에서 올빼미는 내 후원자의 상징이다.
이 변화가 우연일 수 있을까?
슬며시 동상 아래로 시선을 옮기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였다.
「태양과 하늘의 화신, 호루스. 그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모두 보는 자요 또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다.」
호루스는 현재와 과거, 미래를 모두 볼 수 있으며 굉장히 지혜롭다고 한다.
“…”
가까이 다가가니, 올빼미를 닮은 호루스의 어깨에 살포시 앉아있는 앵무새가 보였다.
「호루스의 상징은 지혜로운 올빼미이다. 또한, 그분이 계시를 내리실 때 앵무새가 그 뜻을 전한다고 한다.」
“…”
야! 이건 너무 적나라하잖아!
고대 이집트에서 일어난 종교라면서 전령으로 열대지방 원산지인 앵무새가 말이 되냐?
그 시대 사람들은 앵무새가 뭔지도 몰랐을 텐데!
「언젠가 도래할 호루스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이라고 하며 -」
“으악!”
“음? 학생, 왜 그래?”
“아닙니다.”
진짜 좀!
이걸 보는 호루스 입장도 생각해달라고!
그리고 페로가 대체 언제 내 뜻을 전달했냐?
“…”
206호에서도 교주 행세했었지?
그땐 지금처럼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신성한 태양이 내 정신을 반쯤 집어삼킨 시기라 그랬다.
진심으로 내가 반쯤 신이라 생각하던 시기라 괜찮았구나!
신성한 태양이 사라진 현재.
‘호루스’를 모시는 웅장한 교회와 조각상을 보고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힌다.
“… 힘들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누가 알아볼 리는 없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짜 쪽팔려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렇듯,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차.
“나, 사진 좀 찍어줘.”
“…”
“내 말 안 들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는 순간, 실수했음을 알았다.
며칠 전, 교황청은 학생들에게서 ‘김민아 요원’에 관한 기억을 모두 지웠다.
당연히 나도 김민아의 목소리를 기억할 수 없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놈의 ‘호루스 동상’ 때문이다.
“어, 음, 누구세요?”
“지랄 말고 사진이나 한 장 찍어줘.”
“… 네.”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치고는 되게 차가운 표정이네.
— 찰칵!
곧, 나와 그녀는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애는 아리 본인이든지, 아리와 관련이 있어.
외견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공통점도 많았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물론 신비롭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까지.
학교에서 만났을 때는 눈동자 색은 평범했는데, 렌즈를 꼈던 건가?
가슴이 좀 작아진 것 같긴 한데, 이건 매우 중요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은 아니고….
만일 아리라면, 왜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지금의 나도 외모가 달라져서?
설령 생김새가 다소 바뀌었다 해도 사람에겐 분위기라는 게 있다.
그러므로 내가 아리를 알아보았듯, 아리도 날 알아봐야 정상이다.
아리의 시작 시점은 약 100년에서 15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이 기간 동안 모종의 일로 기억을 잃었다?
이게 전부라고 보기엔, 마도서로 확인했던 ‘영혼의 변화’가 걸린다.
“으흠, 민아야. 우리, 커피라도 한잔할래?”
“… 좋아. 근처에 한적한 -”
이렇듯, 서로에 대한 궁금증 해결을 위해 약속을 잡으려는 시점.
난데없이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학생들, 데이트도 좋지만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하려무나.”
아, 여기 사진 찍기 좋은 위치였지?
민아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니 노인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그,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
“괜찮아, 괜찮아! 내가 너희 나이 때는 여자애들 얼굴만 봐도 설렜는데, 다 그럴 나이지!”
무어라 변명하려던 민아가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흠칫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어라? 교구장님?”
“음? 날 아느냐?”
“… TV에 맨날 나오시는걸요. 뉴스에서 봤어요.”
“아이고! 이래서 늙으면 안 된다. 내가 제법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지 뭐냐?”
이때쯤에는 나도 노인의 정체를 알아챘다.
민아 말대로 호루스 교단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 보면 자주 튀어나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호루스 교단 한국 교구장, 홍고학.
이것이 노인의 정체였다.
“두 사람 다 오늘부터 다니기로 한 게냐?”
“어, 음, 그렇습니다. 제 이름은 차은호고, 교원 명부에도 등록했습니다.”
“좋지! 그쪽 귀여운 여학생은?”
“저는 아직 -”
“김민아고요. 명부에 적으시면 됩니다.”
“그래? 김민아라고? 좋지!”
노인이 싱긋 웃으며 손짓하니, 명부를 관리하던 아주머니가 알았다는 듯 김민아의 이름을 적었다.
곧, 민아가 어이없다는 듯 날 보았다.
“나 앞으로 여기 교회 다닐 거라서.”
“…”
그녀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밖으로 떠났다.
나 또한 같이 나가려는 순간.
다시금,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이름이 차인호라고?”
“은호입니다.”
“인호 군, 아까 보니 호루스 님의 동상을 보고 있던데…. 무슨 생각이 들었나?”
“… 머, 멋있다? 잘생겼다?”
“올빼미 얼굴인데 잘생겼다고?”
“으흠, 그, 올빼미 상징으로 가릴 수 없는 위엄찬 풍모가 -”
“잘 기억해두게.”
“예?”
“조만간 돌아오실 분이니.”
“…”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홍고학에게서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괴이한 분위기를 느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