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0)
EP.520 52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6)
52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6)
– 한가인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2시.
나와 민아는 호루스 교회 인근의 한적한 카페에 도착했다.
그 후, 약 5분가량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서로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물론, 이 세상에 영원한 침묵이란 없는 법이다.
— 탁!
민아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뭐야?”
“주변이 좀 시끄러워서.”
한적한 카페를 찾아오긴 했지만, 우릴 제외한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음, 그러면 목소리 톤을 낮춰서 -”
“그럴 필요 없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민아는 그런 나에게 보란 듯이 핸드폰 화면을 툭 툭 건드렸는데, 곧 간단한 문장이 떴다.
「3급 보안 공간을 설정합니다.」
“3급 보안 공간?”
“잘 봐.”
「약 3분이 소요될 예정이니, 설정 완료할 때까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보안 공간은 약 15분 동안 유지됩니다.」
곧,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뒤편에 앉아있던 3인 조는 일찍 사무실로 돌아가자며 일어섰다.
오른쪽 세 번째 테이블에서 케이크를 먹던 남녀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듯, 먹던 케이크를 반 가까이 남기고 일어섰다.
키오스크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탁구나 치자며 자리를 비우고, 구석에 앉아있던 노부부는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것 같다며 황급히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무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가게 내에 우리가 있는데도 일말의 고민 없이 자리를 비웠다!
호텔에서 쌓아온 신비한 경험 덕에 직감적으로 알았다.
카페를 비운 사람들은 분명 자의로 나갔다고 생각하겠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케이크가 맛이 없어서, 탁구가 하고 싶어서,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것 같아서 –
본인들은 이것이 원인인 줄 착각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눈앞의 핸드폰이 만들어낸 이상 현상이다!
“이게 뭐야?”
“나, 승진했어. 더 이상 수습 아니야.”
“뭐?”
“정식 요원이 되면서 받은 도구야. 지금처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지.”
“대체 원리가 뭐지? 커피숍 내 사람들을 전부 세뇌한 건가?”
“풋! 그렇게 거창한 것 아니야.”
“…”
“이런 말 들어봤어? 사람은 합리화의 생물이다.”
“합리화?”
“어떤 결과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내곤 하지. 고대인이 벼락을 보고 천둥 신을 상상하고, 현대인은 운이 없어서 생기는 일에 비밀 조직의 음모를 떠올려.”
“…”
“그런 느낌으로 이해해. ‘카페에서 나가라’는 생각을 입력받았고, 거기에 맞는 이유는 각자 떠올렸을 뿐이다.”
미묘하게 섬뜩한 설명이다.
현실의 관리국도 이런 수단을 활용해가며 세상을 주무르고 있을까?
고요해진 카페, 민아가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보자. 지은이가 소환했던 이상한 책. 지금 네가 가지고 있지?”
이 정도로 다 알고 왔다면, 거짓말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
또, 정황상 민아는 날 ‘마법사’라 의심하면서도 교황청에 신고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대화 전에 하나만 묻자. 너랑 내가 대화하는 걸 교황청에서 의심할 확률은?”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쓸 것 없어.”
— 탁!
화신의 서를 소환해서 탁자 위에 올리자 민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열지 마.”
“열어서 내용을 보면? 죽어? 아니면 눈이 녹고 뇌가 흘러내린다?”
“…”
보통 사람은 그렇지만, 아리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
이 여자애는 어떨까?
“들어봐.”
곧, 민아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7년에서 8년쯤 전에 요원이 되었고, 그 전의 기억은 없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 교황청에 여러 번 문의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 반쯤 내려놓은 채 살아가던 중, 호텔고 사건이 벌어졌다.
“처음엔 몰랐지만, 그날의 일을 곱씹다가 깨달았어. 아하, 차은호 얘가 원흉이구나?”
이 부분은 아니었기에 재빨리 교정했다.
“오해하는 것 같은데, 그날의 사고는 대부분 지은이가 직접 한 거야. 나는 -”
“그건 짐작하고 있어. 마지막 뒤처리만 네가 했겠지. 하지만 지은이가 이 책을 어디서 얻었을까?”
“…”
찰나, 상당한 긴장감을 느꼈다.
얘는 내가 지은인가 하는 여자애에게 마도서를 줘서 여러 사람이 죽게 했다고 말하는 건가?
이건 진짜 억울한데 –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
“…?”
“네가 아니라 이 책 스스로 인간의 목숨을 탐했을 수도 있지. 악마 개체는 본래 난폭하고 통제하기 어려우니까.”
“어 -”
“중요한 건, 내가 너에 대해 고민하면서 떠올린 기억이야.”
민아는 더 이상 호텔고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에 꺼낸 ‘과거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너에 대해 고민하니까 혼자서는 떠올릴 수 없던 과거의 기억이 연거푸 떠올랐어.”
기억 속의 그녀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5성 호텔 같은 장소에서 ‘날 닮은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기도 하고, 눈 내리는 벌판에서 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호텔에 관한 기억이다.
‘날 닮은 누군가’는 당연히 207호에서 외견이 살짝 바뀌기 전의 나야.
“이리저리 고민하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내 기억의 열쇠 같거든? 어떻게 생각해?”
“… 하나만 묻자.”
“말해봐.”
“왜 교황청에 신고하지 않았지?”
곧, 그녀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에서 자그마한 사진을 꺼냈다.
“봐.”
사진에는 지금과 별 차이 없는 모습으로 길을 걷는 민아가 있었는데, 주변 풍경이 요즘과 매우 달랐다.
“1980년대에 찍힌 사진이래.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 애쓰던 중, 우연히 찾아냈지.”
“…”
“교황청엔 알리지 않았어. 사진을 태우고 내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이 시점에서 상황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예상대로 이 여자애는 기억을 잃은 아리일 확률이 상당하다.
모종의 이유로 교황청에 잡혔고, 교황청은 주기적으로 민아의 기억을 지워가며 ‘요원’이라는 도구로 쓰고 있다.
민아 본인도 이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것.
교황청을 의심하던 중, 날 만나며 기억의 일부를 되찾았고 그 기억은 날 동료라 말하고 있기에 교황청 대신 날 믿겠다 마음먹고 찾아왔다.
교황청에 신고하지 않는다거나, 학교에서의 일을 더 따지지 않는 건 이런 맥락이다.
“아, 보고 있으니 또 생각났다. 너, 커피보다 제로 콜라를 좋아했지?”
“… 맞아.”
기묘했다.
민아는 나와 대화할수록 실시간으로 ‘아리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는 것 같다.
이미 내가 본인의 동료라고 확신하는 느낌이라 나쁘진 않았지만….
정작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거의’ 모든 정황은 민아의 정체는 기억을 잃은 아리라고 말하고 있다.
유사한 외모, 기억을 잃고 교황청에 이용당하는 상황, 회복 중인 아리의 기억까지.
딱 한 가지 요소 – 영혼이 문제였다.
“…”
다시금, 마도서의 힘을 끌어올리며 그녀를 살핀다.
어렴풋이 부유하는 새하얀 선이 민아의 영육을 어루만지며 이미 여러 차례 전달한 정보를 다시 한번 내게 전달했다.
‘이것’은 아리가 아니다.
“왜 그래?”
“… 아니야.”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민아는 아리가 아니며, 아리의 기억을 얻은 누군가다.
만약 진짜 아리가 교황청 손에 잡혀있는 상황이라면?
민아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교황청이 판 함정일 수도 있다!
둘째, 민아는 아리가 맞으며 영혼이 뒤틀린 상태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체 어떤 존재가 화신의 서가 ‘다른 사람’이라 판정할 정도로 영혼을 뒤틀었는가?
필시 인간으로선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드높은 존재이리라.
“혹시나 해서 말인데, 신비한 물건을 소환해본 적 없어?”
“뭐?”
“검붉게 빛나는 다면체.”
“모르겠는데.”
“아니면, 네 몸속의 피에 신비한 힘이 있다거나?”
“으음…. 재생력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긴 해. 운동신경도 좋아.”
“…”
아리가 아니니까 유산을 쓸 수 없다?
혹은, 아리가 맞지만 기억 상실로 유산 사용법을 잊었다?
점점 더 머리가 아파진다.
어찌 됐든, 이 고민만 하염없이 할 수는 없으니 결정을 내렸다.
“민아야, 내가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어쩌면, 그 과정에서 너도 의문을 풀 수 있을지도….”
“뭔데?”
*
민아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녀는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넌 날 찾으러 호루스 교회에 왔던 게 아니다?”
“단순히 임무 때문이었을 뿐이야. 널 만난 건 우연이고.”
교황청은 호루스 교단을 감시해왔고, 민아의 파견 역시 그 일환이었다.
교회에서 날 만난 것이 우연인지, 영문 모를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아의 의도는 아니었다.
“호루스 교단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1900년대 들어서야. 신흥종교치고는 오래됐지만, 기독교 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런데도 놀라운 속도로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어.”
“그 배경에 ‘기적’이 있다?”
“교황청에선 그렇게 생각해. 몇 가지 근거도 있고.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기적’이란 대체로 악마 혹은 마법과 동의어지.”
교황청은 호루스 교단의 교세 확장에 정체불명의 기적이 개입되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신성한 태양이 떠올랐다.
신성한 태양은 세력도 신분도 없던 광산 노동자 – 206호의 내가 도시를 뒤흔드는 교주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었지.
하물며 돈과 세력, 시간이 충분한 조직에 신성한 태양이 있다?
단기간에 지구 전체를 뒤흔드는 글로벌 종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호루스 교단의 기적에 대해 교황청이 몇 가지 근거를 얻었다고 했지?”
“내부에 잠입한 요원들이 몇 가지 사진과 증언을 얻었어.”
“혹시, 허공을 떠다니는 불덩이를 본 사람 없어?”
“불덩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니, 신성한 태양을 본 요원은 없는 모양이다.
분명 호루스 교단에 있을 것 같은데.
비밀스럽게 사용 중인 건가?
“불덩이는 모르겠고, 이런 건 봤지.”
민아는 곧 펜을 꺼내더니, 냅킨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보안상 직접 사진을 보여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림만으로 충분했다.
‘꿈의 왕국’을 발견했다!
“아…!”
“아는 거야? 한국 교구의 비밀스러운 방 외벽에 걸려있는 그림이라던데.”
보자마자 찬탄이 나왔다.
꿈의 왕국이 한국 교구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구나!
이 그림을 되찾으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을 동료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래? 갑자기 날 빤히 보네.”
이 여자애가 진짜 아리인지 아닌지를 꿈의 왕국이 판별해줄지도 모른다.
바로 단기 목표를 수정했다.
당장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신성한 태양보다 이미 위치를 확인한 꿈의 왕국부터 확보하자.
“이 그림이 필요해. 정확히 어디에 숨겨져 있지?”
“위치 자체는 알려줄 수 있어. 접근 방법도, 이미 해봤으니 대충 알고 있고. 다만.”
민아가 다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함과 호기심이 반반 뒤섞인 그런 느낌.
“들어가서 멀쩡히 나올 수 있냐의 문제지.”
“…”
“호루스 교단 수뇌부는 ‘이상한 존재’들이야.”
“이상하다? 초능력자야? 아니면 마법? 그게 그거긴 한데 -”
“아니, 능력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러면?”
“그놈들이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어.”
“… 어제 만난 노인, 이름이 홍고학이었나? 그 사람은?”
“글쎄.”
아무래도 날 신으로 모시는 정체불명의 교단은 정상적인 종교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수뇌부가 인간조차 아닌 모양이다.
다소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날, 민아와 함께 본격적으로 교단에 잠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