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1)
EP.521 521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7)
521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7)
– 한가인
교황청이 호루스 교단을 감시하며 알아낸 바에 따르면, ‘꿈의 왕국’이 있는 장소는 한국 교구 내 성물 보관소라고 한다.
“성물이라곤 하지만, 내가 알기론 그냥 예술품 같은 것들이야. 진짜 기적이 깃든 신비한 물건들은 아마 미국 총 교구에 보관 중일 거야.”
민아는 여전히 ‘꿈의 왕국’이 정말 신비한 물건인지 의심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진짜 기적이 깃든 무언가라면 한국 교구에 있을 리 없다는 것.
호텔 산 도구는 호텔 파티에 속하지 않은 NPC들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호루스 교단은 꿈의 왕국을 ‘모나리자’나 ‘해바라기’ 같은 가치 있는 그림 정도로 여겼으리라.
곧, 민아는 교황청에서 지급한 ‘잠입 도구’들 몇 개를 나와 공유했다.
“이건 뭐야?”
“일종의 신분 위장 마스크라고 생각해. 써봐.”
가죽으로 된 마스크 같은 것을 쓰고 거울 앞에 서니 아예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내 진짜 정체인 ‘한가인’은 물론, 207호 내의 모습인 ‘차은호’와도 다른 30대 아저씨였다.
“대단한데?”
“너무 믿지는 마. 강력한 혼돈체라면 어렵지 않게 꿰뚫어 볼 수 있고, 총에 맞으면 바로 파손되니까. 그냥 일반인을 속이기 위한 용도야.”
“그래?”
“이제 잠입 계획을 설명할 테니 -”
“잠깐.”
마지막으로 내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뭐라고?”
“구할 수 없어?”
“아니…. 구하려면 구할 수야 있지만, 너무 뜬금없어서. 그리고 잠입할 때 방해가 될 것 같은데.”
“그 부분까지 고려한 거야.”
“… 좋아.”
*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을 가득 메운 이른 새벽.
이 세계는 달이 멀쩡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미묘하게 감동하며 출발했다.
성물 보관소가 있는 건물에 잠입하는 과정까진 어렵지 않았다.
호텔을 진행하며 이런 비밀 요원이나 할법한 일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교황청이 이미 많은 정보를 알아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6초 정지.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이동. 다시 전진.’
이런 느낌으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고요한 공간에 도착했다.
주변은 보물을 보관하는 창고라기보다 미술관에 가까웠는데, 여기저기 조각이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쩌면 사회 각계의 고위층을 초대해 전시회를 종종 여는 게 아닐까?
— 달그락!
들고 있던 가방에서 꿈틀거리는 소리가 나자 민아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내 쪽을 보았다.
표정만 봐도 민아가 하고 싶은 말이 들려왔다.
‘괴상한 요청할 때부터 이럴 줄 알았어! 잠입에 방해잖아.’
어쨌든 ‘이 녀석’ 때문에 바로 들키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적당한 위치에 가방을 내려놓은 후, 조심스레 내부를 탐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가 벽에 걸린 ‘꿈의 왕국’을 찾아냈다.
‘이거 맞지?’라고 묻는 듯한 눈짓에 끄덕거림으로 답하고 조심스레 액자를 살폈다.
액자 채로 들고 나가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무거운데, 그렇다고 액자를 부수거나 뜯어내면 소음이 날 것 같고 –
그 순간.
“…!”
코를 후벼파는듯한 강렬한 악취를 느꼈다.
2층에 오른 후 종종 발현되는 극도로 예민한 감각이다!
아리나 할아버지는 내 영혼의 격이 오르며 생겨난 힘 중 하나라 진단했었지.
중요한 점은 누군가 – 필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이런 장소에서 접근 중인 존재가 아군일 리 없다.
3초 정도 흐르니 민아도 표정을 굳히며 손을 품속에 넣었다.
총을 꺼내서 사격전이라도 할 셈인가?
주변에 귀중한 예술품이 많으니 상대도 가능하면 화력전은 피하고 싶겠지.
이 점을 고려하면, 출혈 없이 탈출할 수 있을지도 –
“…”
아니지.
애초에 이런 상황이 일어날 때를 위해 준비한 패가 있잖아?
“민아야. 옆에 무릎 꿇고 대기해.”
“…?”
“그냥 말해. 조용히 해서 뭐하게?”
이미 적이 침입을 감지했는데 조용히 할 필요가 없다.
“은호 너, 무슨 -”
“역시 안 되겠다. 액자가 너무 무거워. 필요한 건 그림뿐인데. 그리고 너, 무릎 꿇으라니까?”
— 벌컥!
성물 보관소 문이 열리며 21세기 한국이라는 배경을 무시하는 듯한 무장 경비들이 들이닥쳤을 때, 나는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했다.
— 쨍그랑!
액자를 벽에 후려쳐서 깨트린 것이다.
“이놈들!”
예술품이 상하지 않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는지, 맨 앞에 있던 ‘기괴한 악취’를 풍기는 경비가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예술이 뭔지도 모르냐!”
“총을 내리거라.”
최대한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
괜히 무게 잡는 듯한 분위기.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자연스레 허공에 뻗은 손, 그 위에 나타나는 마도서.
명백한 이적(異蹟)에 경비들이 놀라는 것도 잠시, 짐승 같은 악취를 풍기는 경비가 눈을 부릅떴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최대한 예술품이 상하지 않게 -”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패.
성물 보관소 구석에 슬며시 내려두었던 가방이 열리며 ‘그것’이 날아왔다.
— 푸드덕!
윤기 나는 흰 털.
사방에 은은히 뿌려지는 새하얀 파우더.
요정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앵무새 한 마리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일반인이라면 ‘뜬금없이 앵무새?’ 정도의 반응을 보였겠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앵무새를 신의 전령으로 여기는 교단의 비밀스러운 장소다.
그랬기에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당황하기 시작한 경비들.
개중 몇 사람의 눈에 ‘설마?’ 하는 생각이 깃든다.
속삭이듯 한 마디 얹었다.
“너희가 모시는 이, 신실한 자 홍고학이 말하지 않았더냐? 때가 왔느니라.”
홍고학 그 노인은 처음 만난 나한테도 호루스가 곧 돌아온다며 야단이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도 수십 번 말했겠지?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지, 경비 여럿이 눈알을 굴리며 악취를 풍기는 덩치 큰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부터 짐작했지만, 저 인간이 아닌 듯한 거한이 이들의 대장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놈을 누르면 나머지는 자연히 무릎 꿇으리라.
— 꾸르륵…!
신령한 새의 부리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소음.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경비를 바라보는 앵무새.
“어찌하여 아직도 흉한 기세를 드러내는가.”
앵무새가 본래 사람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다지만, 지금처럼 말을 거는 앵무새를 이들이 본 적 있을까?
기괴하다.
하지만, 또한 신령했다.
본래 이 세계에서 사악함과 신비함은 다르지 않으니, 기괴함은 곧 신의 상징이라.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거한이 조심스레 답했다.
“저, 저는 박성진이라 하는데, 한국 교구의 보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
“그런데?”
“도, 도둑이 들었다고 보, 보고받고 -”
“여기 어디에 도둑이 있는가.”
당황하는 경비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본래 이런 연기는 뭘 해도 당당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에는, 앵무새와 내가 대화를 나누듯 번갈아 가며 말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그분의 손 위에 있으니, 이 신전은 곧 존귀한 분의 것이니라.”
“나는 그분의 뜻을 받들어 내려왔노라.”
“그러니 성진아, 이곳에 내가 가지 못할 곳이 있느냐?”
이 시점에서 박성진은 이미 무릎 꿇은 상태였다.
물론, 뒤편의 다른 경비들도 엉거주춤 자세를 숙였다.
“없습니다!”
“그러면, 이곳에 내가 얻지 못할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다시금, 액자를 들고 벽에 내리쳤다.
— 쨍그랑!
당당하게 ‘꿈의 왕국’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액자에서 빼내는 데 막는 사람이 없었다.
“흐음….”
그림만 빼내니 나풀거리는 종이 한 장이라 무척 가벼웠다.
이왕 분위기 잡은 김에 ‘더 신비하게’ 행동하는 게 좋겠지?
그림을 돌돌 말아 노끈으로 감은 후, 앵무새의 다리에 붙였다.
“성진아, 어둡구나. 창을 열어라.”
“창이라 하시면…. 저쪽의 환풍구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창이든 환풍구든 뭐든지 간에.”
“아, 알겠습니다.”
곧, 환풍구를 통해 꿈의 왕국과 앵무새를 내보냈다.
“… 읏.”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상으로는 잠깐이었지만, 상태창 없이 화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역시나 부담이다.
이 정도의 활용도 ‘두 번째 문장’을 받아들이며 가능해졌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
가볍게 손짓하니 과연, 이런 종류의 눈치는 있는 민아가 공손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당당하게 성물 보관소를 나간 후, 교황청 특제 신분 위장 마스크를 처분하면 완전 범죄 완성이다!
하하, 이럴 줄 알고 앵무새를 데려오길 잘했잖아?
최대한 신비하고 아름답게 생긴 앵무새를 찾아오라고 부탁한 보람이 있었어.
그 녀석, 뉴페로라고 이름 붙인 김에 앞으로도 종종 ‘도움’을 받아야겠다.
여차하면 한판 붙을 생각도 했는데, 평화로운 방향으로 쉽게 –
아니지.
‘생각보다 너무 쉽네’ 같은 소리 하면 꼭 이상한 일이 생기더라.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지 말자는 상념도 그만두자.
그만두자는 판단도 비우자.
비우자는 판단에 집착하지 말자.
집착하지 말자는 고민을 멈추자.
멈추자는 고민을 내려놓자.
내려놓자는 고민조차 잊자.
잊자는 부담을 덜어내서 –
— 삐이이이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
꼬리에 꼬리를 물던 무한한 생각의 흐름이 멈춘다.
찰나, 끝없이 비대해진 인지 영역 속에서 한 노인을 ‘느낀다.’
그는 흉측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뒤틀 수 있는 마법사였다.
그는 한국 교구 총책임자, 교구장 홍고학이었다.
나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나를 보았다.
물리적인 거리는 여전히 수 km 이상이니 서로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거리.
그러나, 노인은 지금의 불가해한 ‘소통’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기적의 실존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소리 없는 대화 속에서 사제는 나를 느꼈고, 나는 사제를 느꼈다.
나는 신실‘했던’ 자의 믿음 속에 깃든 뒤틀림을 느꼈다.
‘그대, 너무 늦으셨소이다.’
— 파지직!
“…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으읏! 뭐, 뭐라고?”
시선을 돌리니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민아가 보였다.
“머리 아파! 방금 뭐였어? 저거 봐, 경비들도 죄다 쓰러져서 -”
“일단 나가자.”
*
거처에 돌아오자마자 민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뭐, 뭐였어? 지은이랑 비교가 안 되잖아! 차원이 달랐어. 원래 네 것이라 그런가? 그,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
“호, 혹시나 해서 묻는 거야. 그, 정말 하느님이나 그 비슷한 존재 아니지? 그러니까 -”
“민아야. 나 지금 너무 힘들어서 잠깐만 쉴게.”
“어?”
머리가 아팠다.
이젠 정말 참기 힘들어서 아까부터 입에 고였던 피를 뱉었다.
“으악! 피 뭐야?”
“…”
두 번째 문장을 받아들이며 화신의 서 숙련도가 오르긴 했지만, 한계라는 게 있다.
상태창 보호 없이 호텔고에 이어서 이번에도 화신의 힘을 잔뜩 사용했으니 반동이 없을 수가 없다.
“… 좀 잘게.”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몸, 다급하게 묻는 민아.
“앵무새! 앵무새는 어디 있는데? 그림 찾아야 하잖아!”
“… 모르겠어. 잘 찾아봐. 새니까 나무 같은 데 앉아있을지도.”
“뭐?”
민아에겐 미안하지만, 홍고학과의 신경전 덕분에 뉴페로에 대한 통제를 잃었다.
진작 보통 앵무새로 돌아가서 어디선가 겁먹은 채 삑삑거리고 있겠지.
재수 없다면, 까마귀나 황조롱이에 의해 물려 죽었을지도….
뭐, 그림만 멀쩡하면 그만이지.
“그림 꼭 찾아줘. 이만 잘게.”
“야! 야! 대략적인 위치라도 -”
이렇게 의식을 잃었다.
*
…
…
…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깨어났을 때, 주변엔 나 뿐이었다.
민아는 아직도 뉴페로를 찾고 있는 건가?
“아.”
탁자 위에 ‘꿈의 왕국’이 있었다.
다행히 내가 기절한 사이 민아가 찾아낸 모양이다.
“…”
드디어 동료들을 찾아낼 수단을 얻어냈다.
또한, ‘민아의 정체’에 대해 가늠할 방법도!
— 펄럭!
꿈의 왕국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