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3)
EP.523 523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9)
523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9)
– 한가인
인생을 살다 보면, 견디기 힘들어도 꾹 참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대학 입시나 취직을 위한 공부가 대표적인 예시다.
아무리 괴로워도 영어 단어 외우고, 수학 문제 푸는 고통을 견뎌낼 수 있어야 보답이 있는 법이지.
꿈의 왕국을 회수하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한 후, 교회에 출석한 현 시점.
내게는 지금이 바로 꾹 참고 인내해야 하는 때였다.
“일찍이 호루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작고 어린 자여, 이웃을 사랑하고 베풂을 아끼지 말라. 오늘 네가 퍼트린 사랑이 곧 천상에서 널 지탱하는 반석이 되리라.”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우라는 말이니까 듣기 좋은 소리긴 한데….
누가 그런 말을 했다고?
설마 내가?
“소피아 서 8장 7절. 제방이 무너져 물이 새자 호루스께서 말씀하셨다. 위치에 따라 소임이 다르다. 낮은 위치에 선 자는 하루하루의 노동에 최선을 다하면 충분한 법이나, 타인을 다스리는 자는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진짜 내가 한 말 맞음?
“그러므로 충실한 성도분들 역시 본인의 직분에 맞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작은 사업체라도 운영하신다면, 눈앞의 이익에 목매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을 기르셔야 하며 -”
점점 부끄러워진다.
“미사야 교본 22장 7절. 질투심이야말로 불행의 가장 큰 씨앗이다. 모두가 가진 것이 다른데, 내게 없는 것을 하나하나 질투하기 시작하면 평생의 불행이니라. 본인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에 감사하라.”
‘호루스’는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렇게 온갖 소리를 다 하고 다녔냐?
아주 인생 한 30회차 살면서 세상 진리는 다 깨달은 줄 알겠다!
중간쯤부터는 그냥 헛웃음을 참기 힘들어서 실실 웃으면서 들었다.
가만 보니 뒷자리의 민아도 이미 반쯤 잠들어 있었다.
정황상 ‘호루스’는 미로가 소환했던 시간대여기 가인인 것 같은데, 생각해보자.
시간대여기 특성상 기껏해야 1시간 소환했을 테고 분명 긴급한 위기 상황이었겠지.
그런 ‘호루스’에게 이집트 및 유럽을 돌아다니며 현자 같은 소리를 할 시간이 있었겠어?
보나 마나 후대의 사제들이 본인 생각에 그럴듯한 말을 모아서 경전을 만들고 서두에 ‘호루스께서 말씀하시기를’ 만 붙인 거지.
어쨌든, 세상 좋은 말이란 좋은 말은 죄다 내가 했다고 하고 있으니 중간쯤부턴 그냥 실실 웃었다.
“은호 학생, 태도를 바로잡으세요.”
“… 죄송합니다.”
“너무 웃지 말래.”
“알았어.”
설교 시간에 혼자 킥킥거리는 모습이 옆 좌석에 앉은 신도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민아도 한마디 했다.
이제 난 뭐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신도에게 사과한 신?
진지한 생각이나 하자.
마도서에 이어 신성한 태양을 회수 중이긴 한데, 이런 건 결국 준비 과정에 불과하다.
네 번째 시련의 진짜 재해는 무엇이었는가?
하늘에서 내려와 단숨에 파멸을 불러오는 정체불명의 빛이다.
그 빛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지가 시련의 핵심 내용이다.
“으음….”
그 빛이 내려오는 시점이 일종의 타임어택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모래시계로 빛을 한 차례 버티고 할아버지의 원 모어 찬스로 회귀하는 식의 가능성도 있겠지만….
정작 그 모래시계를 찾지 못한 상태다.
“…”
아직 시간 여유는 있으리라 본다.
호텔에서 바로 진행할 생각이었다면, 유산과 축복을 빼앗지 않은 채 진행했을 테니까.
여유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남았을지는 미지수다.
일주일이면 매우 촉박하고, 한 달이면 급하긴 하지만 해볼 만하지.
6개월쯤 되면 호텔 기준으론 중간에 휴가 다녀와도 될 만큼 여유 있고.
신성한 태양 회수 문제로 돌아오면, 이게 어디 있는지부터가 1차 문제네.
호루스 교단이 소유한 ‘신비한 물건’은 대체로 미국에 있다던데, 그러면 미국까지 가야 하나?
이 부분을 조금 더 고민해봐야 –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스페인에서 아주 유명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스페인 참사, 들어보셨지요?”
음?
“아직도 참사의 정확한 원인은 불명입니다만, 그 사건으로 교황청이 큰 타격을 입었음은 확실합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던 교황청이 무려 50년 가까이 웅크렸으니까요.”
여기까진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정보였다.
“자, 자! 신도 여러분, 여기부터는 보안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설교 내용이 다소 거칠어졌다.
신도들끼리 있는 자리니까 밖에 나가면 곤란한 말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
“아시다시피 교황청 그놈들이 좀 개새낍니까? 지들이 모시는 존재만 신이고, 다른 위대한 존재는 죄다 악마라고 지껄이는 머저리들 아니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손뼉 치며 호응하는 신도들.
신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교황청에 불만이 상당해 보였다.
입교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역시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신흥종교인 호루스 교회에 나온 시점에서 기성 종교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람 아닐까?
“그런데 그 개새끼들이 대참사, 아니죠. 업보를 돌려받았다고 해둡시다! 업보를 돌려받고 50년 잠잠해지니,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버티셨던 소피아 법왕님께 기회가 왔던 겁니다.”
소피아 법왕이라….
“그러다가 1960년대가 됐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겸손했던 교황청이 다시금 세를 뻗치기 시작했죠. 덕분에 유럽 쪽에서 중흥하던 신흥종교들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싹 밀렸습니다.”
유럽이 밀렸다면, 다음은 당연히 아시아권이다.
“때로는 정면에서, 때로는 암중에서! 교황청은 쉼 없이 교단의 몰락을 꾀했습니다. 고위 인사에 대한 테러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신앙심을 표시한 유명인 신도들을 매장하는 공작을 서슴지 않았지요.”
사제의 선명한 분노를 듣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지만, 어쨌든 호루스 교는 동료들이 만든 교단이니까.
나를 음, 대단한 존재로 따르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기어이 7년 전에는 소피아 법왕님이 실종되는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소피아는 120년 전 호루스 교단이 본격적으로 중흥한 이래 변함없는 교단의 지도자다.
이런 초자연적인 장생은 신도들이 보기엔 ‘신성함의 증거’였고, 교황청이 보기엔 ‘이단의 증거’였으리라.
교단 내에서 그녀의 위상은 호루스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그 압도적인 권위가 그녀가 사라진 후에는 도리어 문제가 되었다.
그 누구도 소피아를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법왕 자리는 7년째 공석이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제들은 소피아를 실종시킨 게 교황청이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으흠, 사제님도 참, 오늘따라 괜히 이런 이야기를….”
“그러게요.”
우울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일부 신도들이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신도들 사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 같기도 했고.
다만, 내게는 제법 도움 되는 정보라서 유용 –
“… 음?”
모두가 불편해하는데 나에게만 유용한 설교?
이런 설교가 하필 내가 출석할 때 딱 나온다고?
설마 날 위해 교단의 누군가가 개입했다거나 –
— 쿠르릉!
갑자기 하늘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모두가 창밖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워서 오전인데도 어두웠다.
“으어…. 방금 무슨 소립니까?”
“천둥이라도 친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일기예보에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하하, 박 여사님, 기상청 고것들이 어디 일 제대로 합니까? 보나 마나 -”
— 쿠르릉!
다시 한번, 모두의 안일함을 일깨우려는 듯 어마어마한 폭음이 온 세상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천둥소리만이 아니었다.
위이잉!
디디디디!
전화 왔어요~!
Let it go~!
사방에서 들려오는 핸드폰 벨 소리.
직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걸려 오는 전화가 평범한 통화일 리 없다고!
“무, 무슨 일이야? 교회에 있을 때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
— 탁!
옆자리의 중년 여인이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즉시 핸드폰을 쳐냈다.
“으앗! 하, 학생! 이게 무슨 -”
“받지 마!”
바로 일어나서 주변에 외쳤다.
“받지 마세요! 끊으세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는 사람들.
“여보, 뭐라고? 밖에 나오라고?”
“동식아, 뭔 전화를 이르케 많이 – 당장 나오라고?”
“오빠야~! 나 아침엔 교회 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 응? 나와서 하늘을 보라고?”
통화 내용이 하나같이 똑같다.
밖으로 나와라.
나와서 하늘을 봐라.
이게 정상이야?
딱 봐도 악마 재해 같은 상황이잖아!
— 드르륵!
뒤에 앉아있던 민아는 아예 의자 위로 올라가 미친 듯이 외쳤다.
“다들 핸드폰을 닫으세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나가면 안 됩니다!”
이번에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입교하는지 얼마 안 된 10대 소년 소녀의 말 따위에 무게감이 없기도 했고, 전화를 받은 시점에서 이미 약간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 쿵!
“비키지 못하겠어? 나가야 하는데!”
“제발, 여러분! 착석해주십시오! 이 상황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출구를 막은 사제.
나와 민아 말고도 제정신을 유지 중인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문제는, 멀쩡한 사람은 셋인데 미친 사람이 100명 이상이었다.
“아이, 참! 급한 일이 생겼다니까요!”
“비켜! 비키라고!”
“김명환 사제님, 좋게 좋게 말할 때 비키지 못하겠어요?”
“여러분…. 제발, 제발 정신 차려주세요! 이상한 전화가 틀림없을 -”
“이 새끼가 진짜!”
삽시간에 벌어진 대혼란 속에서 황급히 민아를 붙잡았다.
“뭔가 해봐! 그, 카페에서처럼! 핸드폰 딸깍해서 -”
“도로 자리에 앉게 할 힘은 없어. 보통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용도란 말이야! 네가 뭘 할 수는 없어?”
아무리 화신의 힘이라 해도 수백 명을 동시에 착석시키는 건 부담이 너무 심한데!
“…”
호루스 교단은 분명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곳이지만, 일반 신도 대부분은 평범한 인간이다.
밖에 나가면 필시 험한 일을 겪으리라.
보통은 호텔을 진행하며 NPC들의 안위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냉혹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오랜 세월 ‘호루스’를 믿고 의지해온 사람들이었으므로.
“민아야, 사제에게 가서 불 끄라고 해.”
“뭐?”
보아하니 아직은 그리 강한 최면이 아니다.
이 정도면 약간의 충격만으로 잠시 정신이 돌아올 수 있다.
— 딸깍!
넓은 예배실 전체의 조명이 꺼지자 흥분했던 신도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약간의 빛이 들어오긴 했지만, 바깥도 초자연적인 먹구름으로 인해 어둡긴 마찬가지다.
“어어? 뭐야? 전기가 나갔어?”
“아이참! 빨리 밖에 나가야 하는데.”
“사제님, 내가 못 본 줄 아시오? 갑자기 불을 끈다 해서 -”
— 끼익!
창문이 열리는 소리.
“너희들은 두려워 말라.”
다소 어색하며, 철판을 긁는 듯한 거북한 목소리.
말을 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 상황은 기괴했지만, 또한 신성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 자리에 왔으니, 마귀의 조악한 유혹에 흔들리지 말지어다.”
“이, 이건 대체….”
넋이 나간 신도들.
핸드폰이 만들어낸 약간의 최면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현혹하는 목소리를 멀리하라.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라. 내, 너희를 보호하고자 하니라.”
기다렸다는 듯, 사제가 간곡히 외쳤다.
“여러분, 핸드폰 전원을 끄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동안 나와 민아, 사제가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체하지 않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순순히 핸드폰을 껐다.
“자리에 앉아라. 기도하라. 타락한 자의 기세가 하늘을 메웠으나, 아무리 광포한 폭풍이라도 가라앉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니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합시다! 모두 기도합시다!”
“호루스시여, 오늘도 불민한 저와 제 가족을 보호합시옵고….”
간신히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 민아를 잡아끌었다.
“나가자!”
“어? 어? 우린 나가도 돼? 바깥 상황이 -”
“대충 봤어.”
“봤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민아가 곧 상황을 이해했다.
“아, 앵무새가 밖에서 들어왔지? 앵무새 눈으로 본 -”
“조용히 하고 나가자.”
마지막으로 문을 막고 있는 사제를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려는 찰나.
“…”
사제는 더없이 신실한 표정으로 양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뜻하시는바,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
“위대한 분께 경의를. 설령 제가 구원받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나이다.”
*
정신없이 교회 밖으로 달리며 민아에게 말했다.
“싸울 준비 해!”
“대체 바깥 상황이 어떻길래 -!”
“그냥, 괴물로 가득한 지옥 생각하면 돼! 총 준비 하고!”
마침내 정문에 도착해 교회 바깥 상황을 보았을 때 – 나와 민아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오전인데도 늦은 저녁처럼 어두워진 세상.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통 가득한 사람들의 통곡.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불가해(不可解)한 악의의 집합체들!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위이잉!
받지 않았는데, 받긴커녕 핸드폰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런 건 필요 없다는 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습니까?」
“… 당신.”
「구면이지요? 동상 옆에서 처음 뵀을 때가 생생합니다. 그때 알아보지 못한 점, 무릎 꿇고 사죄드립니다.」
“홍고학.”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감내해야 할 현실입니다. 교황청이 혼탁한 장막으로 가린 세상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네가 이런 짓을 벌인 거냐?”
「늦으셨습니다. 너무나 늦으셨습니다. 이미 모든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울의 파멸은 시작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