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4)
EP.524 524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0)
524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0)
– 한가인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을 점령한 파멸적인 기세에 순간 압도당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비명과 끝을 모를 정도로 많은 혼돈체들이 자아내는 음울한 노래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곳이 저주의 방이었다면, 이번 회차는 망했음을 인지하고 탈출을 고민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곳은 207호, 관문의 방.
탈출 같은 개념은 없으며 기회는 단 한번인 장소.
재시도와 유사한 효과를 주는 ‘원 모어 찬스’는 있지만, 그 유산의 소유자는 아직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다.
불가능한 선택지를 고민할 시간은 없다.
가능한 선택지 중 고를 뿐!
“민아야, 지금 통화 들었지?”
“바, 방금 그 목소리 홍고학 맞지? 핸드폰을 열지도 않았는데 -”
“교황청에 연락해서 위치 추적해달라고 해. 통화를 추적하든, 인공위성을 쓰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홍고학에게 가려고? 위, 위치를 알았다 해도 문제잖아! 사방에 괴물이 가득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교회엔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지만, 밖으로 나가면 -”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있어.”
“… 좋아.”
민아가 교황청에 연락하는 사이, 나도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 띠리링!
“바깥 상황 확인했지?”
「…」
“지금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장소는 어제 말한 교회 입구니까, 지도 어플을 쓰면 -”
「합류는?」
“아직은 아니야. 멀리서 우리 주변의 괴물만 처치해줘.”
「- 탈칵!」
통화를 마치고 민아 쪽을 확인하니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
“발견했어! 그, 너무 대놓고 있어서 추적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었어.”
“대놓고 있다?”
“여기서 여의도 쪽으로 가다 보면 공원이 하나 나오는데 -”
“네가 위치 알면 됐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야?”
“차 있어! 바로 출발해?”
“아니, 잠깐만.”
바깥의 괴물들은 교회 문만 열어도 들이닥칠 기세였다.
신도들을 밖으로 끌어내려 했던 것도 그렇고, 이 교회엔 적을 막아내는 모종의 힘이 있는 걸까?
그때, 민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야?”
“…”
“그 사람이 와서 우리 주변의 괴물을 처리해준다고? 동료야? 어제 설명하기로는 -”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곧 만나게 될 거야.”
“뭐?”
“곧 설명해줄게. 지금은 바쁘잖아? 출발하자.”
*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내내 민아는 토끼 눈을 한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뿌연 안개가 주변을 덮는다 싶더니, 우릴 노리려던 괴물들이 연거푸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매 순간이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본래는 이런 힘은 없지 않았나?
207호에 들어온 후 얻은 힘?
초장기간 진행 중인 시련이다 보니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차 키!”
“여기!”
한시가 급했기에 주저없이 액셀을 밟았다.
— 부우웅!
민아가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위치를 확인하며 –
— 쿵!
사방에 날뛰는 괴물을 요리조리 피하려다가 몇 놈은 치기도 하고 –
— 드르륵! 콰직!
눈앞에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시민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가 –
— 쿵! 사, 살려주세요!
이쯤에서 민아가 참지 못했다.
“야!”
“…”
“이게 무슨 범퍼카인 줄 알아? 무슨 하나하나 다 치면서 가는 거야!”
“최,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운전을 왜 이렇게 개같이 해? 산전수전 다 겪었다면서!”
억울하다.
호텔에서 별의별 지랄을 다 겪긴 했지만, 자동차 운전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원시시대에서 100년이든 200년이든 구른다 해서 운전 실력이 늘어나진 않는데 어떡함?
— 빵! 빵!
“경적을 왜 울려! 식인 피에로가 빵 소리 듣고 비킨대?”
“이, 이건 습관적으로!”
“자꾸 브레이크 대신 액셀 밟는 것도 습관이야?”
“…”
생각해보면 내가 운전석에 앉은 게 실수네.
하지만, 생각해봐.
머리 터지도록 온갖 계획 짜면서 차에 타는데 옆에 있는 애가 여고생이었다.
이 상황에서 성인 남자 99.9%는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기 마련이라고!
민아 얘도 당연하다는 듯 조수석 앉았으면서 –
“비켜! 비키기나 해!”
“…”
— 쏴아아!
어느새 비바람이 몰아치는 서울.
흐느적거리는 인영으로 가득한 도로의 풍경은 흡사 악몽의 한 장면 같았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교황청 아가씨와 미래는 볼 수 있지만 액셀과 브레이크를 종종 헷갈리는 청년.
이 환장할 듀오를 태운 보안 차량이 음울한 도로를 가로질렀다.
*
황량한 공원에 도착할 무렵, 교황청이 전한 정보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홍고학은 자신의 위치를 전혀 감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가며 생각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이상해진 걸까?
“…”
맨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호루스 교단 수뇌부가 가지고 있을 신성한 태양을 강탈할 생각이었다.
교단에 들어온 후로는 이들이 섬기는 ‘호루스’가 나임을 알았고, 싸울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중간쯤에 단기 목표를 꿈의 왕국 확보로 수정한 건 그런 맥락이다.
정황상 호루스 교단은 동료들이 세웠을 테니, 그 동료들과 연락한다면 호루스 교단도 자연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교단을 손에 넣으면 신성한 태양은 볼 것도 없이 내 손에 돌아오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홍고학이 미친놈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
홍고학과 연결되었을 때, 어렴풋이 느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괴이한 뒤틀림이 있음을.
“교구장.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노인은 공손하게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
“서울의 참상을 보고 놀라셨다면, 저는 그저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라 답하겠습니다.”
“뭐라고?”
“교황청은 오랜 세월 조악한 장막으로 모두를 속여왔지요. 거짓말에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굳이 해석하자면, 모종의 이유로 서울은 이미 지옥이 된 상태고 교황청은 강력한 기적으로 그 참상을 가려온 모양이다.
홍고학은 단단한 댐에 손가락만 한 구멍을 내어 단박에 균형을 무너트린 게 아닐까?
“네 말이 다 진실이라 해도, 장막을 무너트린 건 너 같은데.”
“어차피 언젠가 무너질 허상입니다. 오늘이 시작일 뿐이지요.”
“무슨 -”
“교황청도 압니다. 당신 뒤에 있는 아둔한 졸자야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스페인에 웅크린 성모(聖母) 에이디아는 알고 있지요.”
잠시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교구장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5초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침묵.
갑자기 홍고학이 웃었다.
“하, 하하! 조금 전의 흉내는 어땠습니까?”
“… 흉내?”
“마치 제가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아는 것 같지 않았습니까? 제법 그럴듯한 젠체가 아니었느냔 말입니다.”
“…”
“호루스 님.”
마침내 그 이름이 나왔다.
나는, 나를 호루스라고 부르는 사제에게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저는 오랜 세월 소피아 법왕님을 모셨는데, 그분께는 괴상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
“누군가 질문하면 명확하게 답하는 법이 없으셨고, 선문답이나 돌려 말하기를 즐기셨죠.”
“…”
“덕분에 많은 이들은 소피아 님을 더욱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존재라 믿게 되었지만, 저는 조금 다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뭘 알았는데?”
“아하! 이 사람도 인간이구나!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건 본인도 정확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고, 선문답을 즐기는 건 그렇게 해야 상대가 제 꾀에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
“아닙니까?”
듣다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고,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아직 만나보진 못했지만, 소피아 법왕의 행동은 미묘하게 올빼미를 닮은 것 같았다.
“일리 있네. 본래 내 지식이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를 위압하려면, 약간의 허세는 필수니까.”
“그렇군요!”
“그래서 홍고학, 당신도 이제부터 소피아를 흉내 내보려고?”
“하하, 안됩니까?”
올빼미도 아닌 주제에 어설픈 정보를 가지고 선문답 놀이라도 하시겠다?
— 펄럭!
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도서가 나타났을 때, 노인은 아쉽다는 듯 웃었다
“역시, 신 흉내를 내려면 힘이 필요한 모양이군요.”
— 삐이이이익!
다시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을 느낀다.
끝없이 순환하는 괴이한 상념이 뇌리를 집어삼켰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무슨 지랄이냐 대체!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 –
이건 무지하게 유명한 괴짜 시인의 작품이잖아!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積荷)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정신 나갈 것 같은 혼란스러운 문자열을 ‘내’가 견뎌내며 기다렸다.
다행히, 승부가 갈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두 번째 문장’이 있었으므로!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크읏! 이, 이게 무슨!”
어느새 홍고학의 뒤쪽에 나타난 신비로운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는 나이되, 내가 아닌 자였다.
“…”
순간 궁금해졌다.
처음 쪼갤 때는 한쪽에 ‘마도서의 광기’를 담고 다른 쪽에 ‘신성한 태양의 침식’을 담아 격리했었지만, 지금은 어떨까?
어쩌면 이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크으윽!”
전신을 꿈틀거리는 홍고학을 보며 솔직히 감탄했다.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긴 했지만, 또 다른 나의 빙의 시도에 이 정도로 저항할 수 있을 줄이야?
그래봐야 시간문제다.
홍고학은 정신을 뒤흔드는 마력의 소유자였지만, 마도서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의 격은 갖추지 못한 자였다.
마침내.
꿈틀거리는 노인이 갑자기 얌전해졌다.
“됐어?”
“됐다.”
이렇게 ‘나’와 대화할 때마다 기묘한 기분이 든다.
곧, 또 다른 내가 빙의를 통해 얻어낸 정보들이 당연하다는 듯 내게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
위기, 절망, 고통, 좌절, 그리고…. 배신!
“이거였구나.”
소피아가 사라지자 지도력의 부재로 위기에 빠진 호루스 교단.
날로 거세지는 교황청의 파상공세.
일반인에 가까운 평신도들은 차라리 나았지만, 교단의 고위직들은 사실상 파리목숨이었다.
“으아…. 인간이 아닌 놈들이 이렇게 많았어?”
심지어 호루스 교단 고위직 상당수는 늑대인간이나 예티 같은 인간이 아닌 지성체였으니, 빈말로라도 교황청이 자비를 베풀 리 없는 존재들.
“…”
기억 속의 홍고학은 매일매일 친지들을 잃었다.
어제는 20년지기 친우를 잃고, 오늘은 긴 세월 그를 모신 제자를 잃었다.
이 모든 절망 속에서….
호루스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 이런.”
신앙심이라는 촛불이 사그라드는 마지막 순간.
누군가가 홍고학에게 속삭였다.
‘어리석은 사제, 아직도 응답하지 않는 신을 찾고 있구나. 내, 너에게 진실한 구원을 주겠노라.’
“음, 그러니까 홍고학은 정체 모를 누군가의 끄나풀이 되었다?”
또 다른 내가 답했다.
“교황청의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교단을 배신했어. 문제는 그 다음이야. 신앙을 버렸는데 놀랍게도 신이 돌아왔거든.”
“… 조금 안타깝네.”
“신이 돌아왔으니 일반적인 사제라면, 아까 교회의 그 녀석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해야겠지만…. 홍고학에겐 아니었던 거야.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상태니까.”
“배교행위를 말하는 거라면, 나는 얘가 무릎 꿇으면 그냥 봐줬을 것 같은데.”
“그건 우리 생각이고, 이놈 생각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겠지. 그것까진 좋은데….”
그가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품속에 있어?”
“뭐?”
“그, ‘진실한 구원’이 품속에 있다는 데? 기다려봐. 내가 꺼낼게.”
곧, 품속을 뒤적거리던 또 다른 내가 무언가를 찾아냈다.
“누군가 교구장에게 이런 걸 건넨 거 같은데?”
보드라운 천으로 감싼 자그마한 물체.
“되게 작네.”
“그러게.”
천을 벗겼을 때, 나는 섬뜩하게 빛나는 자그마한 유리 조각을 보았다.
“무슨 거울 조각처럼 생겼는데? 이게 무슨 -”
— 티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