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5)
EP.525 52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1)
52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1)
– 한가인
“무슨 거울 조각처럼 생겼는데? 이게 무슨 -”
— 티이잉!
섬찟한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눈을 부릅뜨며 긴장했다.
“어라? 기습?”
그리고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분명,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야? 하다못해 무슨 악마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아무 일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뒤쪽을 살피니, 아직도 바닥에 쓰러진 채 힘들어하는 민아가 보였다.
홍고학이 몸을 빼앗기기 직전에 자폭하듯 사방에 뿜어낸 괴이한 마법에 휩쓸린 모양이다.
“민아 깨울게.”
슬슬 민아를 깨워서 –
“…”
처음으로 이질감을 느꼈다.
아까부터 내 목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기절한 민아나 몸을 빼앗긴 홍고학은 그렇다 쳐도 내 말을 받아줄 ‘또 다른 나’가 있는데도.
뒤늦게 불길함을 느끼고 다시 돌아섰을 때 –
불현듯, 벼락같은 깨달음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게 무슨…!”
마도서의 두 번째 문장을 얻으며 나는 ‘유일성’의 제약에서 벗어났다.
이 말이 나와 ‘그’가 진정으로 타인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1은 아니지만 2도 아닌 관계.
굳이 비유하자면, 느슨하게 연결된 좌뇌와 우뇌가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상황.
‘독립적 사고’도 중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느슨하게 연결된’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와 ‘나’ 사이의 연결이 끊어졌다.
“허억!”
찰나, 아득한 정보가 밀려왔다.
그와 나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그가 ‘단독으로’ 인지한 불가해한 경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 사이의 마지막 의식 공유다.
한없이 드높은 상계(上界).
그 중심에 앉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행에 빠진 자.
진리와 그사이에는 단 한 걸음의 격차가 있을 뿐.
그 앞에 선 또 다른 나.
이윽고 위대한 손길이 또 다른 나를 매만졌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거리를 두고 있던 ‘나’는 괜찮았지만, 거울을 직접 만진 ‘그’는 죄수 같은 초월자에게 잡혀갔다?
그 과정에서 나와의 연결이 완전히 사라졌다?
“…”
숨이 턱 막혔다.
느슨한 연결조차 사라졌다면, 저것과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다.
“설마하니 홍고학 자체가 함정이었을 줄이야.”
“너…!”
“상대는 처음부터 이걸 노렸다. 시련을 진행하다 보면, ‘내’가 호루스임은 결국 밝혀진다. 그때, 배교자는 내게 숙청당하는 게 두려워서라도 돌발 행동을 벌일 수밖에 없어.”
“…”
“당연히 홍고학은 내게 죽는다. 상대도 홍고학이 내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길 기대한 게 아니야. 다만, 홍고학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거울 조각이 변수를 만들기를 바란 거지. 지금처럼.”
상황 분석은 동의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미 끝장난 홍고학 따위가 아니다.
내 기억과 자아를 온전히 가진 채 연결만 끊어진 또 다른 내가 발생했다니?
끔찍한 변수다!
마도서를 다시 불러내려는 순간, 102호에서 화신의 서를 얻은 이래 처음 겪는 괴현상이 발생했다.
— 파지직!
마도서가 흡사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르르 떨더니 먼 허공에 나타났다.
마치,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라는 것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원, 음울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존재.
우리 사이의 중간 지역에 나타나 펄럭이는 마도서.
끓어오르는 긴장감 속에서 상대가 입을 열었다.
“네가 증오스럽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싫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어조.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진심이 전해졌다.
사실, 굳이 전할 필요도 없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야.”
“우리는 유일성을 극복했다. 그런데 나는 왜 너를 증오하는 걸까?”
“…”
두 번째 문장으로 유일성을 극복했음은 단순히 초능력 획득을 뜻하는 게 아니다.
유산, 화신의 서는 ‘우리’의 정신 자체를 개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라면, 정신이 복제되었다 해서 이렇게까지 서로를 증오할 이유가 없다.
“자연적인 증오가 아니다. 부처가 되지 못한 자가 우리에게 내린 천형(天刑)이다.”
“…”
자연적인 감정이 아니다.
거울, 아니 거울 너머의 불가해한 존재가 내린 흉험한 저주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 파지직!
다시금 마도서가 경련한다.
누가 주인인지 결정할 수 없는 어리석은 책이 두 사람 모두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마치, 승리한 자가 자신의 진실한 주인이라는 것처럼!
*
– ???
이제는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기억.
1층 관문의 방에서 마녀, ‘아리마’와 정신세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다투었다.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두려웠다.
마녀는 최소 수십 년 이상 흑마법을 수련한 달인이었고, 나는 마도서를 얻은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입문자였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승자는 나였다.
유사한 일은 205호에서도 일어났다.
당시 상대는 ‘환마’였는데, 그는 위의 아리마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자였다.
수백 년간 이혼마공을 단련한 끝에 인간의 정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경지에 도달해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똑같았다.
아니지, 더 충격적이었다.
딱 한 차례 충돌한 후, 환마는 죽었다 깨어나도 날 당해낼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철저히 수그렸기 때문이다.
겸손하게 생각하면, 저 승리들은 나와 아리마, 환마의 차이라기보다 ‘화신의 서’와 흑마법, 이혼마공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대우주를 주름잡는 성운의 용의 장자, 태어나지 못한 자가 심력을 쏟아부어 만든 화신의 서!
그에 비하면, 고작 머리 좀 좋은 인간이 만든 마법이나 무공 따위는 잡기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구의 성능 차가 압도적이라면 사용자의 실력 차도 얼마든지 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쌍방이 같은 도구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더 뛰어난 사람이 이긴다!
— 파지직!
정신과 육체의 주도권을 강탈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혈전.
나는 다시금 ‘내 몸’을 되찾기 위해 힘을 투사했고, ‘내 몸에 남아있는 놈’은 무의미한 저항을 반복했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기오막측한 마력 대결이 이어진다.
첫 번째 충돌에서 상대의 선봉이 꺾였고, 두 번째 충돌에서 수세에 몰린 상대는 연거푸 물러섰다.
이윽고 세 번째 충돌이 벌어졌을 때, 상대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신음하기 시작했다.
“겨우 세 번이야? 실력 차가 너무 심한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이 거추장스러운 노인의 몸을 벗고 내 진짜 몸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네!
몸에 남아있는 녀석이 당황한 듯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왜? 실력 차가 너무 심해서?”
“…”
“받아들여. 네가 더 강했다면, 반대로 내가 사라졌겠지.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사라질 판이었잖아?”
“…”
허무한 표정을 짓는 상대에게 다가간다.
물론, 발악할 것을 대비해 언제든 대응할 준비를 –
— 지이잉!
시각도, 청각도 아닌 ‘이상한 감각’이 공간의 비틀림을 인지하는 순간, 즉시 뒤로 굴렀다.
직후,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 불가해한 참격이 날아왔다.
“…”
회피한 후, 내가 느낀 감정은 놀람이나 분노 보다는 ‘서운함’이었다.
‘그녀’는 내 동료일 텐데 왜 나를 공격하는 걸까?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홍고학의 몸에 깃들어 있으니, 그녀는 날 가짜라 판정한 것.
나는 가짜가 아니다.
‘한가인의 몸’에 남아있는 자 역시 가짜는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는 조금 전까지 하나였으며, 위대한 조각가의 손길이 내게 새로운 숨결을 부여했을 뿐이니까.
그러므로 내가 ‘한가인의 몸’을 되찾는다면, 그녀를 설득할 수 있다.
다시 한 걸음 다가갔을 때, ‘몸에 남아있던 자’가 포기한 듯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다행이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엄청나게 강해. 조금 전의 싸움에서도 느꼈고, 아리의 공간참을 피하는 걸 보면서도 느꼈어. 네가 날 집어삼키고, 이 방을 해결하는 게 맞을지도….”
나는 상대보다 강하다.
똑같은 인간의 정신이 둘로 쪼개졌으니, 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어야 함에도….
나는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
이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
– 한가인
패배를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끝난 싸움이지만, 다시 싸워도 절대 이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마도서를 사용하며 겨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농담 섞어 표현하면, 내가 호모 사피엔스라면 상대는 호모 갓피엔스 쯤 되는 느낌.
두뇌의 성능이 최소 30%는 차이 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리의 ‘공간참’을 피하기까지 했다.
부등변다면체의 공격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종종 발현되는 내 초감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명백히 새로운 감지 능력이다.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게 맞다.
상대는 뭐랄까, 한가인 Mk 2 정도 되는 존재니까.
…
조금 부끄럽지만, 마지막에 아리가 저것 대신 내 편을 들어줘서 내심 기뻤다.
자, 이제 멋들어진 유언이나 떠올려볼까?
남자가 말이야, 갈 땐 가더라도 멋있는 말 하나는 남겨야 하지 않겠어?
“후회 없는 인생 -”
“이게 상대의 노림수였어.”
“… 음?”
‘그’는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네 정신을 집어삼키고, 몸을 빼앗는 게 적의 그림이었다고!”
“무슨 소리를 -”
고개를 들었을 때, 크게 당황했다.
상대의 표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너보다 강하지?”
“뭐 -”
“어째서? 같은 사람을 쪼갰는데 내가 이렇게 강하지?”
“…”
“같지 않기 때문이야. 장막 너머의 괴물, 부처가 되지 못한 자가 날 강화했기 때문이야. 널 이기고, 네 위치를 강탈하길 바라고!”
숨이 막혔다.
“이긴 줄 알았어. 내가 그 몸을 되찾으면, 진짜가 되면 그게 곧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너….”
“이건 승리의 길이 아니야. 그 반대지. 너도 진짜고 나도 진짜다? 아니야! 이렇게 생각해선 이길 수 없어. 진짜는 하나여야 해.”
순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상대는 화신의 서를 통해 우리가 얻은 깨달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그는 다다닥 뛰어오더니, 내 어깨를 잡고 간곡히 말했다.
“명심해. 상대는 너를 변질시킬 수 있어. 유일성을 초월했다는 것, 이는 본디 네 가장 큰 힘이지만, 이 시련에선 약점이기도 해.”
그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분명 더 큰 거울이 있을 테고, 이번 일은 또 벌어질 거야. 너는 다시금 쪼개지고, 또 쪼개지겠지.”
내가, 그리고 ‘그’가 통찰로 봤던 미래.
“그때마다 매번 싸울 거야? 더 강한 놈이 이기라고? 똑같은 사람을 쪼갰더니 명백히 강한 쪽이 정상일까? 아니지! 그쪽이 뒤틀린 쪽에 불과해.”
쪼개졌을 때, 싸워서는 안 된다.
힘으로 겨루면 거울 너머의 존재로부터 ‘더 많은 힘’을 얻은 자가 이길 것이므로.
“내 말 잘 들어. 지금 나는 널 설득하는 동시에 ‘언젠가 태어날 또 다른 나’를 설득하는 거야.”
“… 말해.”
“거울이 빛을 발하면, 동전이 던져지는 거야. 운이 좋다면, 너는 한가인의 몸에 있을 거야. 다행이지.”
“…”
“운이 없다면, 이상한 사람의 몸에 있을 거야. 깨어나자마자 생각하겠지. 마도서의 두 번째 문장을 얻은 이상, 가짜 같은 건 없다. 나도 진짜고 저것도 진짜다. 한가인의 몸을 빼앗으면 그만이다.”
“…”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이길 수 없어. 승자는 언제나 ‘너’여야 해.”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논리를 상대가 받아들였음을 믿을 수 없었다!
곧, 그는 뒤쪽에서 헐떡이는 민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민아를 바라보더니, 그녀가 꼭 쥐고 있던 권총을 잡아 들고 다시 날 보았다.
“그러니까 가인아, 명심하자.”
“…”
“동전이 던져졌을 때, 진짜가 아닌 쪽은 자살하기.”
“너….”
“그래야 이길 수 있어. 이해했지?”
— 탕!
다시금, 207호에 단 한 명의 한가인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