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7)
EP.527 52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3)
52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3)
– 한가인
호루스 교단의 수장, 법왕 소피아.
그녀의 은신처로 향하며 아리는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다.
소피아는 중세 시대에 떨어졌던 은솔 누나의 딸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호텔이 부여한 역할에 불과하지만, 소피아는 누나를 친어머니라 믿고 있다.
과거, 은솔 누나는 소피아에게 ‘우리’에 대한 정보를 마치 미래를 본 것처럼 전달했고, 그녀는 그 예언을 믿고 우릴 기다려왔다고 한다.
“우리에 대한 소피아의 믿음은 정말 대단했어. 우리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죽은 은솔에 대한 믿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아주 극진했지. 심지어 내가 루카스, 소피아의 동문 형제를 죽였을 때도 탓하지 않았어. 물론, 이 점은 소피아 역시 루카스가 선을 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래를 위해 준비한 누나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 소피아가 약간은 동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리가 초반에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피아와 내 관계는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는 그런 건 또 아니었거든.’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었는데 중간에 꼬였지. 차차 설명해줄게.’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런 관계가 어쩌다 꼬인 거야?”
“… 1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
120년은 물론 강산이 여러 번 뒤바뀔 시간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무려 수백 년간 우릴 믿은 존재이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는 둘 사이의 균열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여러 일이 있었어. 한순간에 탁하고 꼬인 건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멀어졌지. 다만, 오해하지 마.”
“무슨 오해?”
“아예 적이 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서로 갈 길 가는 느낌이지.”
“…”
“이것도 예전 이야기야. 이젠 네가 돌아왔으니, 다시 한배를 탈 시점이지. 거의 다 왔네.”
*
소피아가 은신한 장소는 서울 외곽의 단독주택이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왜 한국에 숨어있냐 할 수도 있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교단 고위층에게 ‘대한민국’은 성역(聖域)이었을 테니까.
기독교로 치면, 언젠가 예수가 재림한다고 예고된 땅이나 다름없다.
거처 내부는 병원 비슷한 장소였다.
소수의 의사와 몇 명의 사용인이 상시 거주하는 듯했다.
은밀하면서도 보안이 철저했는지, 장소가 한국임을 무색하게 몇몇 사용인의 허리에 총까지 보였다.
다행히 모두가 아리를 알아봤기에 충돌은 없었다.
“법왕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깨어있어?”
“최근엔 거의 주무십니다.”
“깨워줘.”
“예.”
잠시 후,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침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처음으로 본 소피아에 대한 인상은 ‘와, 예쁘다!’정도.
연령대는 약 20대 초반, 전체적인 외모는 금발 파란 눈의 전형적인 서양 미녀.
외모만 보면, 은솔 누나의 딸이 아니라 ‘엘레나의 딸’ 쪽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좋은 설명은 여기까지다.
“…”
빼빼 마른 팔, 핏기 없는 얼굴, 가쁜 숨결.
누가 봐도 중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는 모습이라 다소 씁쓸했다.
이런 면은 생기 넘치는 엘레나와 전혀 달랐는데, 물론 소피아 역시 건강했을 때는 지금 같지는 않았으리라.
“저기….”
“깨어났답니다.”
곧,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리가 한 발자국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소피아. 요즘은 어때?”
“보다시피. 삶의 마지막 이정표로 나아가고 있지요.”
“… 기쁜 소식을 가져왔어.”
“옆에 계신 분 말씀이지요?”
“맞아. 이 사람은 -”
“잠깐. 여러분, 자리를 비워주시겠어요?”
소피아가 손짓하니 주변 경호원들은 물론, 의사까지 전부 저택 밖으로 나갔다.
곧 소피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호루스 님인가요?”
“맞아. 네가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이지. 가인아, 자.”
다소 어색함을 느끼며 다가가니 소피아가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분명 엘레나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다운 아가씨였지만, 엘레나처럼 두근거리기보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긴 세월 호루스 교단을 지탱하며 생겨난 관록의 힘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리가 그려준 모습과 조금 다르군요.”
은솔 누나가 아리와 할아버지의 외견을 그려준 것처럼, 아리는 내 모습을 그려줬던 모양이다.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네요. 뭐, 진짜 판정은 제가 하는 게 아니니까.”
“판정?”
그 순간, 갑자기 따스한 온기가 주변을 감쌌다.
“…!”
이글거리는 불꽃, 지상에 내려온 태양.
내가 가진, 아니,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위력과 범용성을 가진 유산!
‘신성한 태양’이 다시금 그 광휘를 드러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자 신성한 태양 또한 자연스레 호응했다.
오랜 세월 주인을 잃고 그 하수인을 위해 봉사했던 성물이 마침내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 두두두두…!
기쁨을 표하듯, 저택 전체에 가볍게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소피아가 답했다.
“호루스 님, 이 땅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신성한 태양이 돌아오는 순간,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신체 여기저기가 간질거린다 싶더니 외모가 변화한 것이다.
내 몸이 다시금 차인호에서 한가인으로 돌아간다.
이목구비는 물론, 미묘하게 달라졌던 체형과 순간이동을 위한 깃털 문신까지도.
흡사 봉인이 풀리는 것 같았고, 또한 호텔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초반에 교황청이 널 알아볼 수 없도록 베풀어진 배려는 끝났으니, 이제부터 전면전을 펼쳐라.
“으읏…!”
당황한 나와 달리 소피아와 아리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어?”
“왜 그래?”
“갑자기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돌아왔다기보다, 그 몸은 원래 가인이 네 몸이었어. 단순한 환영이 풀렸을 뿐이야.”
“…”
아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리는 물론이고 나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분신 가인’ 또한 이 몸을 ‘한가인’이라 인지했기 때문이다.
호텔이 일시적으로 눈속임했을 뿐, 육신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는 의미.
그렇다면, 아직 회수하지 못한 마지막 힘인 ‘지혜의 축복’이 ‘한가인’에 숨겨져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내심, 내 진짜 몸이 의식을 잃은 채 207호 어딘가 잠든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몸을 되찾으면 자연스레 축복도 되찾는 구조라 예측했는데.
이건 아니었네.
“신성한 태양 상황은 어때? 많이 채워져 있어?”
“응. 당장이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정도.”
소피아가 신성한 태양과 함께 ‘호루스 신앙’을 널리 퍼트렸기 때문에 태양의 힘은 이미 충분했다.
호루스 교단은 양지의 종교인 만큼 인신 공양 따위를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 대신 내가 206호에 세웠던 종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덕분에 질적인 부족함을 양으로 채운 모양이다.
곧, 소피아가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
“호루스 님,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다른 동료를 깨워야지. 가능하면 몇 가지 어, 보물도 회수해야 하고.”
묵성 할아버지와 미로를 깨워야 한다.
또한, 다른 건 몰라도 ‘모래시계’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아리가 답했다.
“묵성이랑 미로는 둘 다 미국에 있어. 마음 같아선 둘 다 한국에 보관하고 싶었지만 옮기기가 힘들어서.”
오면서 대충 들었다.
할아버지와 미로가 잠든 ‘석관’은 모두 유미가 만든 대규모 ‘동면 미궁’에 있다고 하니, 섣불리 옮길 수 없었겠지.
소피아가 답했다.
“그러면, 미국의 총교구에 잠깐 들르셔야겠군요?”
“맞아.”
“비행기를 준비하지요. 내일 오전까지 준비해주세요.”
“고마워.”
후다닥 미국에 다녀온 후, 마지막 무대는 분명….
“마지막은 유럽이겠지? 에이디아가 스페인에 있다며?”
“글쎄….”
“그동안도 다들 고생했겠지만, 이제부터는 다들 주의합시다!”
아리가 민아의 파편을 회수한 시점에서 교황청 또한 이변이 발생했음을 알아챘겠지.
마지막으로 계획을 가다듬으려는 때, 소피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호루스 님.”
“음?”
“잠깐 둘이서 대화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정말로 오랜 세월 당신을 기다려왔답니다. 잠깐이라도 신령한 순간을 혼자 만끽하고 싶어요.”
더없이 순수하면서도 신실한 사제의 모습.
아리가 잠시 고개를 까딱이더니, 간단히 답했다.
“3분이면 돼?”
“네.”
“나가 있을게.”
곧, 병실에 나와 소피아만 남았다.
“… 아리 나갔네.”
“그렇네요.”
둘만 남으니 솔직히 어색했다. 게다가, 소피아가 조금 전에 보인 연기가 조금 티가 났다.
“연기가 어색했어.”
“… 그런가요? 남 앞에 보이는 모습을 꾸며내는 건 자신 있는 편인데.”
“나도 자신 있거든. 무엇보다 너는 나를….”
어쩌다 보니 팔자에도 없는 교주 행세를 여러 번 했지.
덕분에 진짜 신도와 아닌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독실한 신자가 아닌 것처럼, 날 진짜 ‘신’처럼 모시는 사람과 ‘강력한 마법사 혹은 군주’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차이가 있었다.
무려 종교단체 수장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소피아는 분명 후자다.
“신이라기보다 뛰어난 마법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
“…”
“2분 후에 아리가 들어올 거야.”
“괜찮아요. 10초면 할 수 있는 말이니까.”
소피아는 계속해서 말없이 날 바라본다.
“…”
“…”
어째, ‘신령한 순간을 혼자 만끽하고 싶다’라는 말도 꼭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호루스 님.”
“말해봐.”
“당신 앞이니 서로 티 내지 않았지만, 저와 아리의 관계가 꼭 편안하진 않았답니다.”
아리에게 이미 들은 이야기다.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을까?”
“아리는….”
“…”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뭐?”
“종종, 저는 아리가 이쪽 보다는 ‘저쪽’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답니다. 아예 경계를 넘어가 버린 포르투나처럼.”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모 에이디아는 호텔 파티의 편은 아니지만, 분명 인간의 편이다.
그렇다면, 이에 반대되는 존재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
그날 밤, 서울 참사로 가득한 뉴스 한구석에 ‘실종된 법왕 소피아가 발견되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
다음 날 오전.
짐을 챙겨서 정신없이 소피아가 언질 준 장소로 움직였다.
이미 비행을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난 상태.
소피아의 다급한 지시와 함께 자그마한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떴다.
이런 일이 ‘법적으로’ 가능한지, 이런 조그마한 비행기로 미국까지 갈 수 있는지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따지기도 우습네.
소피아가 알아서 잘했기를 믿어야지.
따지고 보면 나랑 아리는 여권부터 없잖아.
비행기가 출발한 후에야 아리가 질문했다.
“소피아, 어제 기사 뭐야?”
“응?”
“갑자기 네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뜨던데?”
“교황청이 불온한 기류를 감지했다는 의미죠. 그래서 이렇게 급히 출발하는 것 아니겠어요? 시간이 늦어질수록, 상대가 무슨 수를 쓸지 모르니까요.”
그 시점,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채 창밖을 보았다.
“호루스 님, 설마 비행기 처음 타세요?”
“얘가 원래 온갖 걸 다 아는 체하면서 은근히 허당이라 -”
“아리야….”
“응?”
“저것 봐.”
머나먼 상공.
시력이 아주 좋은 사람이 아니면 아직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먼 위치.
자그마한 점 몇 개가 보였다.
“아.”
교황청 드론들이다.
— 슈우웅!
미사일을 쏘는 드론들이다!
“어머나.”
아니 씨발, 여기 대한민국 하늘인데 미사일 쏴도 되는 거냐?
너무 놀라서 소피아에게 물었다!
“으아악! 이, 이거 뭐야? 대책 있는거지?”
과연, 호루스 교단의 수장답게 소피아에게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소피아!
교황청과 수십 수백 년을 싸웠다면서,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겠 –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한 아버지.”
“응?”
“당신이 제 대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