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29)
EP.529 52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5)
52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5)
– 한가인
개벽(開闢)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막아내야 하는 최후의 문제, 종말을 부르는 빛인 걸까?
종말을 부르는 빛은 비단 207호의 시련이 아니라 언젠가 맞이하게 될 현실의 끝이다.
또한, 아리와 할아버지 나아가서 관리국이 해결하고자 하는 가장 큰 문제다.
호텔에서 경험한 기나긴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
아닌 것 같다.
전에 디너파티에서 종말을 부르는 빛을 실제 한 번 보았는데, 저것과 전혀 달랐다.
당시엔 하늘이 열린다거나 하는 요란한 전조 현상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무슨 현상일까?
곧, 세상 전체가 내 의문에 답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쇠못으로 구성된 물방울이 떨어진다!
“으악!”
쇠못에 어깨를 꿰뚫린 첫 피해자가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건 뒤쪽에 있던 아리였다.
“하앗!”
그녀가 하늘로 손을 뻗자 순식간에 발생한 무형의 벽이 날카로운 물체를 막아내기 시작한 것.
— 다다닥! 퉁! 팅!
순식간에 허공에 쌓이는 대량의 못들!
곧, 공포에 질린 신도들이 정신없이 내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호, 호루스 님!”
“꺅!”
“사, 살려주세요!”
삽시간에 군중 사이의 질서가 무너지고, 이대로라면 쇠못 이전에 자기들끼리 압사하겠다 싶은 순간.
“내가 이 자리에 있나니, 그대들은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는가. 질서를 유지하라.”
태양이 발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감을 최대한 강렬히 내뿜으며 말하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다시금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난데없이 흙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자동차만 한 지네가 튀어나왔다!
벼락같이 열선을 뿜어 지네를 태워버리니, 이번엔 머리 셋 달린 매가 날아와 사람의 머리를 쪼기 시작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신도들, 그 못지않게 혼란에 빠진 동료들!
“가, 가인아! 어떡해? 괴, 괴물이 끝도 없이 나와!”
아리 옆에 찰싹 붙은 미로는 이미 시간대여기도 불러낸 상태였지만, 회중시계가 그녀의 두려움을 막아줄 순 없었다.
“…”
이미 땀을 뻘뻘 흘리는 아리.
하늘에서 내리는 쇠못을 막아내는 게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원 모어 찬스를 불러냈지만, 회귀 시점을 깨어난 직후로 잡았을 테니 의미가 없다.
깨어난 직후래 봐야 약 10분 전인데, 10분 전으로 돌아간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소피아, 그녀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를 뜨셔야 합니다!”
“… 소피아.”
“이 현상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요 주변 반경 30km 정도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
“자리를 뜨면 그만입니다. 아니면, 여기서 무한히 쏟아지는 괴물들과 소모전을 벌이실 건가요? 그런 짓을 하면 -”
신성한 태양의 힘은 소모성이다.
이 사실을 소피아 또한 알고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
하지만, 내 눈에는 소피아의 반대편에서 덜덜 떨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이 보였다.
이 사람들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겠다는 고상한 생각은 솔직히 아니다.
다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루스 인증사진’, ‘호루스 직캠’ 따위를 찍겠답시고 카메라를 가져와서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상황.
여기서 신이 신도들을 버리고 도망가면 무슨 일이 생기겠냐?
사실상 교단의 붕괴요, 신성한 태양 충전은 이제 포기해야지!
“결정을 내렸다.”
“당장 퇴각 명령을 내리겠 -”
공포에 떠는 8,000명의 신도를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지만, 신성한 태양의 힘을 빌렸으니 이 말은 모두의 귀에 들어가리라.
“태양의 서광이 미치는 이 땅 전체가 우리의 낙원이거늘, 어디로 떠난다는 말이냐? 신도들과 함께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겠노라. 이는 곧, 태초부터 예고된 위대한 운명일지니….”
도망칠 생각 없고 신도들과 남겠다는 말을 최대한 멋있게 해봤어.
어때 소피아, 멋있지?
원래 신은 ‘도망 안 침’ 네 글자로 끝날 말을 요란하게 늘릴 줄 알아야 하고, 그게 설교야.
호루스의 숭고한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소피아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아니, 호루스 – 야! 진짜 미쳤냐!”
“소피아, 법왕이 신에게 쓸 말투가 아니잖아.”
“돌았냐고! 이 자식아!”
이번엔 소피아만 들리게끔 살짝 속삭였다.
“차 있지? 우리끼리 빨리 튀자.”
“… 예?”
다시 공손해진 소피아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신도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남겠다더니, 조금 후엔 우리끼리 빨리 튀자고?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명령이다.
하지만 내겐 가능했다.
*
— 부우웅!
거대한 오프로더 SUV 한 대가 습기 가득한 진탕을 마치 단단한 도로처럼 나아간다.
1 시간 넘게 달렸을 때, 마침내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 탈출한 것 같네.”
“여긴 못으로 된 비가 내리지 않는다. 머리 셋 달린 새도, 인육을 뜯어먹는 원숭이도 보이지 않아.”
괴물과 저주, 참극으로 가득했던 저주받은 땅에서 모두가 탈출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모두’란 호텔 파티 생존자와 소피아를 포함한 극소수를 말한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로 가득한 숲에 수천 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고, 안전한 장소까진 차로 장기간 달려야 하는 상황.
무슨 수로 수천 명의 일반인을 다 탈출시키겠어?
신성한 태양의 힘을 ‘아낌없이’ 사용한다면 글쎄,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내 생각에 ‘더 좋은 해결책’은 따로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를 참지 못했는지, 미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가인아.”
“응?”
“그러니까…. 음, 네 ‘분신’은 어떤 상태야. 지금도 신도들을 지키고 있어?”
“곧, 모두가 나와 함께할 거야.”
“…”
미로가 왠지 모르게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아리 뒤로 숨었다.
아리가 담담한 투로 물었다.
“지금 넌 두 개의 몸을 동시에 운용 중인 거지? 진짜 몸은 차 타고 도망쳤고 -”
“도망이 아니라 전술적 판단이지.”
“… 전술적으로 퇴각했고, 신성한 태양을 사용하는 분신은 숲에 남아있고?”
“맞아.”
“그러면, 그쪽과 이쪽을 동시에 인식 중인 건가? 머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아?”
“괜찮아.”
“분신 쪽은 언제 회수할 생각?”
“이제 곧 – 어? 으앗! 차, 차 멈춰!”
— 끼익!
할아버지가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 쪽을 보았다.
동시에 아리와 미로는 물론, 말없이 듣고 있던 소피아까지 토끼 눈을 떴다.
“뭐, 뭐양?”
“…”
“호루스 님?”
“가인아?”
“인마! 운전하는데 놀랐잖아!”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지금 에이디아가 분신 앞에 나타났어.”
*
– 한가인
죄인이 사후에 떨어지는 지옥이 실존한다면, 이런 장소가 아닐까.
날 때부터 생명에 대한 증오를 품고 태어난 마귀로 가득한 숲.
그곳에서 나는 나약하고 가엾은 이들을 감싸 안았다.
생각건대, 이 자리의 모두가 내 신실한 신도는 아니다.
어떤 이는 유명인 한번 구경하겠다고 온 철없는 소년.
어떤 이는 ‘호루스와 직캠’ 이런 걸 찍어서 한몫 찾으려고 온 개인 방송 BJ.
어떤 이는 악마를 퇴치하겠답시고 온 목사.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파멸이 그들에게 닥쳤을 때, 이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아, 내 곁으로 오라. 너희를 위한 낙원을 준비했느니라.”
처음엔 내가 정말 악마처럼 느껴졌는지, 겁 먹은 체 뒤로 물러서던 이들이 많았지.
막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만들어낸 신성한 권역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지옥이다.
이들이 날 버리고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리 오거라. 나는 진실로 너희를 극락정토로 이끌고자 한다.”
“아아…!”
결국, 신실한 이들도 그렇지 않았던 이들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게 모여든다.
하나, 둘, 셋.
이윽고 8,000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단 하나의 그릇에 담긴다.
문득, ‘카메라’에 비춘 지금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출지 궁금해졌다.
신도들이 천국으로 향하는 광경처럼 보인다면 좋겠는데.
나는 이들을 악마의 손길에서 구원했다.
선한 일에는 보상이 따름이 세상의 이치인 법.
태양의 힘이 더욱 충만해진다.
바로 그때, 희뿌연 형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안타깝네요. 당신에게도 이런 답뿐인가요?”
분명 나로선 처음 만나는 존재인데도, 보는 순간 알았다.
성모 에이디아다!
“너는?”
“에이디아라고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
“장막을 걷어내며 내심 기대했습니다. 당신에겐 이 고통을 끝낼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였습니다. 차라리 끝없는 힘으로 악마들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구했다면, 힘 하나는 인정했을 텐데요.”
“…”
“지금 이건 뭐죠? 신도들의 영혼을 당신이 삼키는 건가요? 뭐, 악마들에 의해 찢겨 죽는 것보다야 조금 낫긴 한가?”
“…”
“잘 쳐주면 안락사 정도는 되겠네요. 딱 그 정도.”
틀린 말은 아니라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혼돈체에 의해 신도들이 죽는 일은 세계 전체에서 쉼 없이 벌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소모성인 신성한 태양을 마구 써버릴 수 없었으니, 나로서는 ‘안락사’ 정도 말고의 대안은 없었으니까.
겸사겸사 유산의 힘도 강화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이게 현명했다.
물론, 신성한 태양에 들어간 영혼들이 정말 ‘편안한’ 상태일지는 다소 의문스럽긴 한데….
“비꼬려고 왔나? 그렇다면 딱히 할 말은 없네. 네 말대로 지금의 내겐 이 정도가 한계니까.”
“지금? 그러면 나중에는요?”
다른 방법도 있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했던 생각.
지금 내게 지혜가 있었다면, 통찰을 통해 운명을 읽었다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지.
“‘지혜’를 회복한 후라면 다를지도.”
큰 의미 없이 한 답변이다.
어차피 호텔 파티가 아닌 에이디아가 ‘지혜’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리도 없으니까.
“지혜? 지금 당신은 미래를 보는 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인가요?”
다소 의아함을 느꼈다.
에이디아의 태도가 내 상황을 비꼬거나, 날 비웃으려고 온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쎄.”
“중요한 질문이니 답변해주세요.”
“…”
어떤 의미에선 공손하기까지 한 에이디아.
문득, 아리가 알려준 에이디아에 대한 유미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이상하구나.’
‘100명을 살리기 위해 다섯을 태우고, 스물을 물에 빠트리고, 서른을 장대에 매달았다.’
‘정신 차려보니 나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존재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 인류를 지탱했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손에 피를 묻혀온 존재.
내가 이 자리에서 ‘겨우’ 8,000명의 영혼을 삼켰다고 이러쿵저러쿵 따질 사람이 아니다.
‘정답은 어딜 가도 지옥인 갈림길 자체에서 벗어날 것. 아예 새로운 판을 짤 것.’
‘보아라! 이것이야말로 세상 모든 문제의 답이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에 닿았을 때, 마침내 에이디아가 날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너는 모종의 힘으로 세상의 판을 새로 짜려고 하는구나. 그것이 세상의 구원이라 믿으면서.”
에이디아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확신이 없어. 그래서 내게 물어보려고 온 거야. 미래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존재니까.”
“제 생각을 읽으셨다면, 답을 알려주세요.”
성모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결말을 안다.
207호와 현실의 끝에 기다리는 ‘종말을 부르는 빛’의 존재를 이미 확인했으니까!
“에이디아.”
“듣겠나이다.”
“네 선택의 끝에 기다리는 건 비극이다. ‘종말을 부르는 빛’이 너를 기다린다.”
“… 호루스 님.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을까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봤자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통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에이디아 또한 운명을 읽는 힘을 약간은 가지고 있으니까.
“모르겠구나.”
직후, 절망으로 가득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 걸음을 나아갈 겁니다. 설령 선택의 끝에 높은 확률로 파멸이 기다린다 해도! 왜냐하면, 왜냐하면 -”
보인다.
지금 에이디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껴졌다.
“가만히 있으면 이 세상은 100% 파멸이라 생각하는구나. 그러니, 네 계획의 실패 확률이 90% 이상이라 해도 해야 하는 거야.”
“…”
“내가, 호루스가 실패할 거라고 경고해도 소용없어. 왜냐하면 너는 ‘호루스’ 또한 완벽히 미래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가 읽지 못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지?”
성모는 내 말에 웃음으로 답했다.
서서히 이지러지는 환영 속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혜’를 회복하지 못하셨다면서요? 이미 당신은 지혜롭습니다.”
지옥과 같은 숲에 나 혼자 남았다.
꿈틀거리는 마물들 틈바구니에서 훤히 드러난 우주공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
수천 년 동안 207호의 인류사를 지탱해온 위대한 성모, 에이디아.
그녀가 찾아낸 ‘인류의 구원’은 대체 무엇일까?
거울과 관련 있다는 것까진 알겠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설령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 해도, 모든 시도의 끝에 ‘종말을 부르는 빛’이 도사린다 해도….
한번, 성모가 찾아낸 답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