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30)
EP.530 53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6)
53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6)
– 한가인
분신을 회수한 후, 오랜만에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회의 주제는 앞으로의 계획이다.
“힘을 모을 만큼 모았으니, 이제 스페인에 가서 성모 고것을 쳐야지! 딱 봐도 최종 보스는 성모 아니겠냐?”
“할아버지 말이 일리 있네요.”
더 시간 끌지 말고 스페인으로 가자는 할아버지의 의견.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불안한데…. 가인이가 축복을 회복하지 못한 것도 불안하고, 찾지 못한 도구들도 있어.”
“아리 말도 일리 있네.”
좀 더 전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아리의 의견.
“으음. 성모가 정말 스페인에 있는 건 맞나요? 호루스 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근본적으로 성모가 스페인에 있는 건 맞냐고 묻는 소피아.
“소피아가 좋은 부분을 지적했네.”
교황청, 그중에서도 이단심문국 총본부가 스페인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까 확인했듯이 에이디아는 수백 수천 Km 너머로 분신을 보낼 수 있으니 스페인 밖에서도 교황청을 통제할 수 있다.
“거울 근처에 있을 것 같긴 해.”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인아, 그 거울이 바로 스페인 지하에 있었다.”
아리가 즉시 반박했다.
“120년 전까진 그랬지. 지금은 누가 알겠어?”
아무래도 스페인의 성모와 한 차례 붙어봐서 그런지, 아리 쪽이 더 조심스러웠다.
시간을 끌수록 성모가 괴이한 짓을 벌일 테니, 시간대여기와 원 모어 찬스의 주인들이 합류한 시점에서 바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
전력을 더 회복한 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
어느 쪽이든 일리는 있었다.
“방호복, 피로 충전하는 총, 아리 보온병, 내 펜, 모래시계 대충 이 정도가 못 찾은 보물인가?”
“가인아, 이 넓은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진 도구를 어떻게 다 찾겠냐? 몇 개는 포기해야지!”
“그 말이 맞네요.”
“가인아, 다른 도구는 몰라도 모래시계는 필요하다고 봐.”
“그 말도 맞네.”
이쯤에서 감자 칩만 까먹던 미로가 황당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가인이 지금 무슨 페로야? 앵무새처럼 다 맞다, 맞다는 소리만 하네.”
“무슨 소리야? 페로는 맞다 맞다가 아니라 이 악물고 물어뜯기만 하지.”
“…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이렇게 회의가 난항을 겪던 차.
잠시 눈을 찌푸리던 소피아가 중얼거렸다.
“혹시 모래시계라는 게…. 내부에 모래가 아닌 이상한 게 있는 건가요?”
모두의 시선이 소피아에게 집중된다.
“그, 모래가 아니라 무슨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이상한 공기 – 맞네. 부담스러우니 너무 쳐다보지 마세요.”
그 순간, 우리의 다음 일정이 결정되었다.
다른 도구는 몰라도 모래시계는 찾고 생각하자.
*
약 10여 년 전 신비한 모래시계가 경매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혼돈의 힘이 깃든 마도구가 경매에 나오는 일은 흔치 않으나 종종 일어난다.
진짜다 싶으면 보통 교황청이나 호루스 교단 같은 신비 세력의 손에 들어가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한 물건 같긴 한데, 용도를 알 수 없는 경우다.
“내부의 무언가가 신비로운 물질이라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전부였어요. 이리저리 뒤집어도 아무 일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런 물건에 200만 달러나 요구했으니….”
정말 신비로운 힘을 발현했다면, 소유자를 죽여서라도 교황청 같은 조직이 회수했겠지.
하지만, 모래시계는 호텔이 지급한 도구다.
시련 내 NPC가 보기엔 내부에 빛나는 기체가 담긴 2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25억짜리 모래시계일 뿐이다.
뜬금없이 모래시계의 행방을 알아낸 것까지는 좋은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장소가 텍사스였다.
“텍사스? 여, 여긴 매사추세츠잖아! 텍사스까지의 거리가, 그러니까 -”
“약 3,000km 정도랍니다.”
소피아의 답에 아리가 입을 반쯤 벌렸다.
“머, 멀어!”
“바로 비행기를 대절해서 -”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답하며 일어섰다.
“호루스 님?”
“비행기 타는 건 저번 한 번으로 됐어. 이번엔 더 좋은 방법이 있지.”
품속의 ‘그림’을 꺼내서 아리에게 건네자 아리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혼자 날아가게? 우린 꿈의 왕국으로 합류하고?”
“잘 아네.”
미국에 올 때는 힘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건데, 한번 타보고 알았다.
하늘에서 동료들을 지킨답시고 교황청 드론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그게 더 낭비다.
할아버지가 살짝 당황했다.
“너랑 우리는 그렇다 치고, 그, 이 아가씨는? 소피아 양은 꿈의 왕국을 – 어이쿠야.”
— 우르릉!
저녁 무렵, 텍사스에 도착했다.
*
“우웨엑! 으에엑!”
육지에 내려오자마자 소피아는 정신없이 토악질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살피니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이야…! 어째 교황청 드론이 공격하지 않더라니, 미국 전체가 난리네 난리!”
“으에엑! 쿨럭!”
“오우야? 북경을 덮친 크라켄은 또 뭐야? 어라? 한국에는 채찍을 휘두르는 붉은 악마가 나타났다는데?”
“꽤에엑!”
“오, 방금 소리는 좀 오리 같았어. 어쨌든, 세상이 본격적으로 맛이 가고 있는 건 확실 -”
“후우….”
“이제 괜찮아?”
“… 네.”
소피아는 크게 한숨 쉬더니, 나무에 기댄 채 중얼거렸다.
“교황청이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했군요.”
“장막을 걷어낸다. 예전부터 그 ‘장막’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었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야? 아리도 정확히 모르던데.”
장막을 걷어내면, 해당 지역이 악마가 들끓는 지옥으로 변한다는 정도는 안다.
“복합적인 개념이에요. 교황청이 세상을 보호하는 수단 전반을 말하죠.”
“아?”
“예컨대, 소문을 통해 힘을 얻는 도시 전설이 있다고 치죠. 이 도시 전설을 막으려면 여론을 통제해서 괴소문을 막아내야 해요. 이 경우, 여론 통제 역시 장막의 일부입니다.”
“이해했어.”
장막, 장막 하길래 교황청이 설치한 보호막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교황청이 세상을 지키는 수단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면, 지금 세상이 맛이 가기 시작한 건 교황청이 더 이상 보호하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죠.”
성모 에이디아는 ‘한 걸음을 나아가겠다’라고 했다.
전 세계를 뒤바꿀 어마어마한 계획일 테니, 그동안 세상을 지키기 위해 썼던 자원까지 끌어 써야겠지.
“시간이 없긴 없네. 모래시계를 찾는 즉시 스페인으로 이동해야겠어. 동료들은 그 후에 합류시킬까?”
“…”
“참, 200만 달러는 있지? 가능하면 빼앗기보다는 말로 해결하고 싶은데.”
“200만이 아니라 2,000만 달러를 달라고 해도 그냥 주죠.”
생각건대, 207호도 이제 극 후반이라 본다.
이 시점에서 돈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200만 달러는커녕 2달러도 필요하지 않았다.
운 좋게 모래시계를 얻은 텍사스 노부부의 소원은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
“부탁입니다! 호루스 님, 제발…. 우리의 소원은 하나뿐입니다!”
당황했다.
인생의 황혼기를 지내는 노부부가 날 알아본 것까지는 생각해보면 그럴 만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방심했지만, 나는 실시간으로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숲에서 8,000명의 신도를 빛으로 인도한 영상이 유튜브에서만 억 단위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악마의 유혹이라 외쳤지만, 누군가는 호루스가 신도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광경이라 믿었다.
노부부는 후자였다.
“저, 저와 제 아내가 호, 호루스 교회에 나가진 않았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않아도 -”
“우, 우리는 누구보다도 선량하게 살아왔다 자부합니다. 스, 스물다섯에 오스틴 공대를 졸업해서 -”
난데없이 본인과 아내의 삶을 줄줄 외는 노인.
그는, 자신들이 ‘천국에 가야 할 이유’를 설명하느라 바빴다.
“…”
아찔하다.
일반인이 내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천국에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상황이 올 줄이야!
진짜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소피아도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허어….”
일반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니, 어렴풋이 이해는 간다.
갑자기 세상 곳곳에 악마가 들끓기 시작한 상황.
이것이야말로 종말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한데,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니 평생 믿고 의지했던 교황청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예수님이나 하나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이단이라 생각했던 ‘호루스’가 나타나서 신도를 구제하는 상황.
생각이 여기에 닿았을 때, 텍사스 노인은 신속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기독교 신앙은 틀렸고, ‘진짜’ 신은 따로 있었다고!
“법왕님! 제가, 지, 지금이라도 세례를 받을 수 없겠습니까? 명령만 하신다면, 얼음물에 뛰어들어서라도 -”
“… 그건 정교회 쪽 세례에요. 우린 그런 절차 없어요.”
노부부는 더 없이 필사적이었다.
돈이고 지랄이고,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모래시계는 -”
“여기 있습니다! 제발, 저와 에이미를 버리지 마시옵고 -”
결국,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데이비드, 에이미.”
“예!”
“그대들은 교단의 성물을 찾아내었고, 대가 없이 내게 바침으로써 큰 공을 쌓았느니라.”
“…!”
“안심하라. 내, 그대들을 위한 극락정토를 준비했나니…. 남은 시간을 평안히 보내도록.”
“아아…. 신이시여!”
*
모래시계를 회수한 후, 동료들이 꿈의 왕국으로 합류할 수 있도록 내가 잠시 잠들만한 장소를 찾았다.
적당한 차 한 대를 구할 무렵, 한참 동안 침묵하던 소피아가 중얼거렸다.
“호루스 님.”
“응?”
“저는 이제 오래 살지 못한답니다.”
“…”
나와 아리가 소피아를 찾은 곳은 병원이었지.
지금 그녀가 멀쩡한 듯 움직이는 건 필시 마법의 힘이다.
오래 가지 못 하리라.
“괜찮아요. 살 만큼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아쉽진 않으니까. 다만, 궁금한 점이 있답니다.”
“… 물어봐.”
“호루스 님과 동료들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계획을 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호텔’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다들 흠칫하며 소피아를 보았지만, 소피아는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세상 밖에서 오신 것 같아요. 그렇지요?”
“…”
“천상의 영역인가요? 신들이 거하는 위대한 땅?”
“… 비슷해.”
천상의 영역, 신들이 거하는 위대한 땅.
의외로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니다.
종교단체 수장이라면 충분히 떠올릴만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호루스 님. 어머니도 그곳에 살아계시는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은솔 누나가 ‘천국’에 살아있냐 이런 질문을 하는 것 맞지?
“어, 어….”
“대답이 어려우신가요?”
“아니야. 은솔 누, 음, 은솔이도 물론 그곳에 살아있지.”
그러자 소피아가 정말이지 그림처럼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어머니가 괴물, 흑기사에게 당한 것이 평생의 슬픔이었는데…. 다행히 당신이 그분의 영혼을 구해냈군요.”
말문이 턱 턱 막혀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은솔 누나의 영혼을 구한 건 내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괴물 흑기사도 사실 은솔 누나의 동료다?
이렇듯, 소피아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질문으로 날 당황케 했다.
대화의 흐름 속에서 내가 불안함을 느꼈을 때.
그녀는 마침내 내가 가장 걱정했던 질문을 던졌다.
“호루스 님, 그렇다면, 저도 죽은 후에 당신의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에이디아 지금 뭐함?
소피아랑 둘이 있으니까 너무 부담스럽잖아!
빨리 세상 멸망시키든 뭐든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