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32)
EP.532 532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8)
532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18)
– 한가인
…
…
…
— 파앗!
의식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다가온 감각은 ‘추락’이다.
“꺄아아악!”
“으아앗!”
비행기를 탄 채 허공에서 모래시계를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얏!”
“꺄아악!”
“미로, 귀 아프니까 조용히 좀 해!”
“꺄아아 – 으읍!”
윙 부츠를 신고 있던 아리가 재빨리 미로를 잡아챘다.
나 또한 즉시 신성한 태양을 소환한 후,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으읏! 고, 고맙다.”
“내려갑시다.”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텍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가려다가 추락한 상황인데, 다행히 바다는 아니었다.
“사방에 잔해가 떨어져 있구나. 비행기가 추락한 모양이다.”
“그러게요.”
모래시계는 나와 할아버지, 아리, 미로 이렇게 네 사람‘만’ 보호한다.
당연히 비행기 등은 모래시계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조금 더 비행하다가 추락하든지 했겠지.
“그러면 소피아는!”
“…”
미로의 질문에 모두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서, 설마!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죽은 거야?”
그새 소피아에게 약간의 정이라도 들었는지, 울먹거리려는 미로의 손을 아리가 붙잡았다.
“아니.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야.”
같은 생각이다.
거울의 힘을 빌려 기어이 포르투나를 쓰러트렸을 정도의 대마법사가 소피아다.
비행 능력까진 몰라도 느리게 떨어지는 정도의 능력은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소피아가 죽었을 가능성보다는….
“문제는 빛이야. 소피아는 종말을 부르는 빛과 마주쳤어.”
소피아가 뒤틀렸을 가능성이 더 문제다.
이쯤에서 확실히 할 필요를 느꼈다.
“다들 짐작은 하겠지만 -”
“뭔데? 뭔데?”
“… 미로야, 잠깐만 조용히 해줘. 에이디아의 계획이 뭔지 감 잡았지?”
아리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민할 시간이 많았으니까. 거울의 힘으로 인류 전체를 뒤튼 모양이지.”
“꺄아악!”
혼자 놀라는 미로를 뒤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더 대화를 이어갔다.
“계획은 알겠는데, 어떻게 가능하지? 에이디아가 가진 원본 거울에 이 정도 힘이 있었어?”
아리가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엄밀히 말해 거울은 통로야. 힘의 근원은 거울 너머의 아득한 존재, ‘수행자’ 혹은 ‘얄다바오트’.”
얄다바오트에게 지구 전체를 뒤흔들 힘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초에 저주의 방에서 만나왔던 죄수들 대부분에게 그 정도 힘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얄다바오트에게 무한한 힘이 있다고 한들 그 힘을 지구로 투사할 ‘통로’는 별개의 문제다.
“얄다바오트가 아니라 거울에 관해 묻는 거야. 에이디아가 거울로 이 정도 술수를 부릴 수 있었어?”
“글쎄…. 단언컨대 120년 전 나랑 붙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러면?”
“120년간 에이디아가 거울을 증폭할 방법을 찾은 모양이지.”
“…”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이미 일이 터졌는데, 어떻게 했냐는 아무래도 좋다. 고 계집애가 120년간 용을 쓴 모양이지. 중요한 건 정확히 무슨 일이 생겼냐는 거다.”
아리가 답했다.
“이제부터 도시로 가면 알게 되겠지.”
“바로 가자.”
“아니. 너희는 잠시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그 말에 나와 할아버지, 미로의 시선이 아리에게 향했다.
“왜?”
“… 혐오감.”
“뭐?”
“정확히 어떻게 변했는지는 봐야 알겠지만, 전 인류가 거울에 의해 뒤틀렸을 거야.”
“그렇지.”
“그 사람들이 너희를 보면 반쯤 미쳐 날뛸 거야.”
“왜?”
“격렬한 혐오감을 느낄 테니까.”
세 사람이 조용해졌고, 아리는 간단한 답과 함께 사라졌다.
“경험해봤는데, 옷과 마스크로 전신을 가리면 문제가 많이 사라져. 마침 날씨도 쌀쌀하네. 전신을 덮을 옷을 구해올게. 기다려.”
아리가 떠난 후, 미로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저기…. 가인아.”
“…”
“뒤틀린 존재는 인간을 혐오한다고 했잖아.”
“그렇지.”
“아리도 뒤틀렸다고 했잖아.”
“… 그렇지.”
“그, 그러면, 아리는 우리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있던 걸까?”
“…”
막연한 생각인데, 미로를 혐오하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와 할아버지에겐 혐오감을 느꼈겠지.
그런데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는 것.
이런 점에서 종종 아리가 전직 요원임을 깨닫곤 한다.
*
아리가 떠난 후에도 회의는 이어졌다.
“에이디아 고것이 지금 달에 있다고 했지?”
“네. 상상도 못 한 위치네요. 유럽이 아닐 수 있다 생각은 했지만, 지구가 아닐 줄이야.”
“우주로 가야 하는 건가? 이것 참 복잡한 문제 –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조심!”
— 고오오오!
하늘에서 나타난 눈을 보았다.
한 번의 시선으로 만상을 굽어보는 압도적인 시야를 보았다.
격이 낮은 존재는 단박에 으스러트릴 것만 같은 지고한 눈과 내 시선이 마주쳤을 때….
문득, 기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
초점이 어긋나있다?
나, 아니 ‘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곧, 눈동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라는 듯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
숨이 멎을듯한 정적의 시간.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가 정적을 깨트렸다.
“뭐, 뭐냐? 저거…. 저거, 왜 그냥 지나가? 느낌이 우릴 찢어 죽일 것 같았는데.”
“… 감지하지 못한 겁니다.”
“뭐?”
“우릴 보지 못한 거죠.”
“말이 되냐? 그냥 대놓고 보이는 위치였는데 -”
대답 대신 뒤늦게 발견한 쪽지 한 장을 모두에게 보였다.
「호루스, 하늘을 조심하세요. 너무 요란하게 행동하시면 들켜요.」
“누가 제 옷 틈에 끼워뒀더군요. 정신 차리면 발견하길 바란건데, 좀 늦게 발견했네요.”
“누가?”
“소피아는 아닙니다. 글씨체를 제가 알아요.”
“그러면 에이디아?”
“그렇죠.”
다시금 찾아온 고민의 시간.
곧, 미로가 중얼거렸다.
“에이디아가 뭔가 한 거야?”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우주에 가득한 혼돈체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움을 깨달은 에이디아.
그녀는 거울의 힘을 증폭해 세상의 판을 바꾸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확인해야겠지만, 저 눈 또한 ‘변화한 세상’의 일부다.
“…”
에이디아는 자신이 벌이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고 선택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
일주일 전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보험이 필요한 것 같네요.”
“보험?”
“제 보험은 여러분이랍니다. 배려도 있어요.”」
에이디아가 생각한 보험은 ‘우리’이며 배려도 있다.
“이게 배려군요.”
“… 저 눈이 우릴 감지하지 못하는 게?”
“네. 너무 요란하게 행동하면 들킨다고 하니, 조심합시다.”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만약 들킨다면…. 너, 저 눈 이길 자신 있냐?”
“싸워 보기 전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겠네요.”
“알겠다.”
— 다다닥!
“다들 별 일 없었지?”
“아리양!”
“이상한 눈이 지나가던데, 괜찮았어?”
“응.”
“그러면 다들 옷부터 입자.”
아리가 구해온 옷으로 몸은 물론, 얼굴까지 완전히 가렸다.
미로가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남극 탐험가가 된 것 같아!”
“도시에 가면, 이상한 일이 많을 거야.”
“뭐?”
“그냥, 한동안은 말하지 말고 지그시 관찰해. 당황하지도 말고.”
“어떻게 바뀌었는데?”
“… 직접 보면서 판단해.”
거울은 세상, 인류를 어떻게 바꾼 걸까?
*
현재 우리의 위치는 플로리다주였다.
텍사스에서 떠난 비행기가 미국 본토를 벗어나기 전에 일이 터졌던 것.
“…”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저건 -!”
손가락질하며 무언가 가리키던 미로가 아리의 눈짓에 그만둔다.
언제나 그렇듯 철없는 행동이지만, 조금 전엔 나도 손가락질할 뻔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도시 한복판에 시꺼먼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이 활보하는 게 맞아?
“…”
아무도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악마의 폭력성이 사라진 건 또 아니었다.
— 콰직!
대낮에, 길가에서.
악마가 대놓고 헐벗은 사람 한 명을 잡아채더니 다리를 붙잡는다.
곧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
더 충격적인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하하! 테네시, 아직도 이렇게 흘리는 거야?”
“얘도 참, 은근히 식사 예절이 안 좋다니깐!”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
그 광경을 보고 낄낄대며 웃는 사람들.
모두가 넋이 반쯤 나가려는 순간, 아리가 속삭였다.
“희생양이야.”
“뭐?”
“모든 인류가 변이한 게 아니야. 10% 정도는 남겼어.”
“무, 무슨 말이지?”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다.
이해는 했는데, 그 의미가 너무 잔혹해서 놀랐다!
“90%의 인간은 뒤틀렸어. 그들은 혼돈체에게 공격받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아가지. 그리고….”
이쯤에서 미로도 입을 쩍 벌렸다.
“10%의 인간은 그대로야. 그들은 나머지 90%에게 혐오의 대상이고, 희생양이지.”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니, 그 1할이 다 죽으면? 언젠가 다 뒤질 것 아니냐! 그러면 -”
“또 태어나겠지.”
“뭐?”
“이 세상에서 태어날 아기의 10%는 인간일 거야.”
“…”
“아직 놀라긴 일러. 세상의 변화는 이게 전부가 아니니까.”
*
“어머, 가족이 아프다고요?”
“네. 호텔 방 몇 개만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계산은 -”
“계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하하! 아리 양이라고 하셨지요? 축복받은 시대잖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았다고요?”
“…”
“오늘은 서비스, 무료입니다!”
“감사합니다.”
화려한 방에 짐을 풀며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거울이 새롭게 만들어낸 세상은 제법 살만했다.
“다들…. 착하네.”
“모두가 선량하고, 서로를 아끼지.”
“…”
“세상에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이곳이 바로 천국일지도.”
창문을 살짝 열어 바깥을 내다보니,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한 거리가 보였다.
모든 이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에서 배려심이 묻어난다.
그야말로 전 인류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
“아프다는데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의심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서로를 믿으니까.”
어린아이처럼 선하고 순수해진 사람들.
선택받은 9할의 시민들에게 이 세상은 진실로 낙원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니, 이것으로 인류사의 현자들이 고민했던 수많은 문제의 9할이 단박에 해결되었다.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혼돈체가 뒤틀린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
“… 송이의 ‘친화’를 전 인류가 얻었다?”
“비슷하지.”
미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러니까 음, 아리 네가 느끼는 감정이야?”
“맞아.”
악마, 유령, 외계인, 식인 괴물 – 혼돈체에 대한 공포 역시 사라졌다.
선택받은 이들은 더 이상 악마에게 살육당하지 않으며,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어리석은 이는 이렇게 질문하리라.
흉측한 혼돈체는 지금도 세상에 넘쳐나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인간의 고통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답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 끄아아악!
“…”
이 아름다운 낙원에는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의 선택 받지 못한 이들.
— 사, 살려주세요!
그들의 고통과 비명이 낙원을 지탱하는 연료가 되리라.
“돈을 받지 않았어….”
“너희가 입은 옷도 전부 무료였어.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냥 주더라.”
“아니, 다들 경제 관념이 사라졌냐?”
“경제?”
“사랑한답시고 물건을 공짜로 다 퍼주면, 돈을 어떻게 버냐?”
“돈이 왜 필요해? 달라고 하면 줄 텐데.”
“아, 아니…! 그러면 그 옷은 누가 만드는데? 대가를 줄 사람이 없으면 -”
“일하지.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니까, 서로를 위해서 일하겠지.”
“아.”
우리가 아는 세상의 상식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이기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흐릿해진 세계니까.
진실한 의미로 모든 이가 서로를 아낀다면, 자본주의라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
“아아…! 위대한 마르크스 선생님! 선생님이 꿈꿨던 공산 유토피아가 마침내 현실에 -”
“가인아. 개소리 그만하고 이제 어떻게 할지 말해보자.”
나는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 유토피아에서 깨어났다.
여기에 히틀러 향을 살짝 첨가하면, 비슷할 것 같다.
“한 가지가 궁금하네. 이런 흉악한 세상이 정말 성모의 의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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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