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35)
EP.535 53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1)
535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1)
– 한가인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플로리다주의 명물, ‘케네디 우주센터’에 도착했다.
“… 해피해피 우주센터?”
‘케네디’가 아니네.
혹시 207호에선 케네디 대통령이 없었나?
그렇다고 해도 케네디 대신 집권한 미국 대통령 이름이 해피해피일 리는 없지 않나?
“뭐가 이상한데?”
‘해피해피’라는 이름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아리.
호텔 밖 현실에서도 이름이 ‘해피해피’나 그 비슷한 무언가인 모양이다.
“아니야. 빨리 움직이자.”
계획은 간단하다.
포르투나가 수호자의 이목을 끄는 사이, 나는 에이디아가 있는 월면기지로 이동한다.
이후, 꿈의 왕국을 통해 동료들이 합류하는 것.
간단한 계획이지만 장소가 지구가 아닌 달인 만큼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주 많았다.
예컨대, 동료들은 달에서 어떻게 생존한다는 말인가?
아리의 오래된 피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주센터에서 우주복을 포함한 다양한 장비를 얻어야 한다.
*
도착한 후, 사람들이 별로 없는 구석진 곳에 앉아서 때를 기다렸다.
포르투나와 수호자의 싸움이 시작한 후에 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우주센터에서 난동을 부린다면, 수호자가 우리 쪽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포르투나가 이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소피아를 통해 감시할 필요도 있고.
그러던 중, 우주센터 직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별문제는 없다.
나와 할아버지는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고, 아리가 가서 간단한 핑계를 대면 그만이다.
멀쩡한 세상이라면 전신을 싸맨 우리를 의심했겠지만, 공산 유토피아의 주민들은 서로를 의심하지 않 –
“거기! 누구냐! 끔찍한 흉물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분노 가득한 외침을 듣는 순간, 모두가 놀라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잠깐 사이에 마스크를 벗고 있는 미로가 보였다!
“…!”
“너…!”
“이, 이 생각 없는 -”
말문을 잃은 세 사람과 귀엽게 웃는 미로.
“너무 답답해서…. 데헷!”
고함까지 지르며 다가오는 직원을 본 아리는, 곧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흉물스러운’ 미로와 달리 ‘사랑스러운’ 아리를 본 직원이 잠시 표정을 폈다.
“어머, 좋은 아침이구나? 고등학생이니? 오늘 견학 일정이 있던가?”
“견학 아니에요.”
“얘야, 뒤쪽의 그 흉물은 뭐니?”
미로의 외모는 아리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도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내니, 직원은 주저없이 ‘흉물’이라 칭했다.
이 세계에서 선택받지 못한 10%의 인간의 취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한 아리의 대답은 간단했다.
“제 애완동물이랍니다. 자, 멍멍해봐!”
잠시, 주변에 침묵이 흘렀다.
“뭐하니? 멍멍 안하고?”
채근하는 아리.
이 흉물이 정말 애완동물인가? 하는 직원.
아무리 그래도 ‘멍멍’은 싫었는지, 말없이 고개 숙인 미로.
마지막으로 어깨를 툭 치는 나.
“빨리 해.”
“… 머, 멍멍!”
한 번 더 쳤다.
“더 크게!”
“멍! 멍!”
아리가 돌아서서 빙그레 웃었다.
“묘기도 부릴 수 있어요.”
“묘기?”
“바닥에 누워서 두 바퀴 굴러!”
다시 침묵하는 미로.
역시 뒤통수를 쥐어박는 나.
“빨리 구르지 못해?!”
“…”
더러운 바닥에 누워서 데구르르 구르는 미로.
“보세요. 제법 귀엽죠?”
“으음…. 얘야. 네 눈에 귀엽다면 다행이다. 제법 훈련이 잘 된 것 같긴 하다 마는, 그리 안전한 동물로 보이진 않는구나.”
직원의 눈에는 이 상황이 어떻게 보일까?
고등학생이 애완동물로 그물 무늬 비단뱀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
어찌 됐든, 위기가 한 차례 지나갔다.
“미로.”
“…”
“한 번 더 멍청한 실수를 하면 이번엔 발가벗고 산책이야.”
“… 아리가 너무 무서워.”
“그쯤 해. 포르투나와 소피아가 잭슨빌 도심지에 도착했어. 시작할 모양이네.”
소피아의 눈을 빌려 상황을 관찰한다.
분신을 만든 후, 그 분신의 정신이 소피아에 깃들게 한 것.
말하자면, 마도서의 고급 활용법이라 나로서도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곧, 예상치 못한 대화가 시작됐다.
“…”
“왜 그래?”
미로가 꿈의 왕국에 대한 정보를 포르투나에게 흘렸구나.
이걸 아리에게 알리면, 미로는 알몸으로 우주센터를 산책하는 건가?
“별일 아니야.”
미로야, 한번 봐줬다.
“…”
의외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포르투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박승엽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정의했다.
내가 막고 싶던 상황이긴 한데….
결국, 그는 우릴 돕기로 했으니 아무래도 좋다.
포르투나의 마음가짐을 전달하자 동료들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미로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국 듀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그와 약속했어.”
“약속?”
“유미를 되살리기로.”
“…”
“호텔로 돌아가면 티켓이든 뭐든 수가 있겠지.”
“… 지킬 거야?”
“지키고 싶네. 여하튼, 수호자가 잭슨빌에 나타났으니 이제 시작하자.”
*
케네디 – 해피해피 우주센터를 점거하고 필요한 장비를 확보하기까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우주선을 타려는 게 아니니, 직원들에게 협조를 구할 필요도 없고.
나로선 이름도 모르는 이상한 장비들 몇 가지를 아리와 할아버지가 건드리는 사이, 미로가 의외의 성과를 냈다.
“이것 봐! 나 방호복 찾았어!”
하도 나타나지 않아서 존재 자체를 반쯤 잊고 있었는데, 방호복이 이런 곳에 있었다고?
할아버지가 어이없어했다.
“아니, 호텔 미친놈들이 방호복을 우주센터에 숨겨뒀다고? 어떻게 찾으라는 거냐?”
“결국 찾긴 했네요.”
“그건 결과론이지! 우리가 플로리다에 떨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봐라!”
“…”
텍사스에서 비행기 타고 스페인으로 가려다가 ‘종말을 부르는 빛’에 노출.
바로 모래시계로 버틴 후 추락, 정신 차리니 플로리다.
그야말로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끝에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호텔이 정말 이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고 방호복을 여기 배치한 걸까?
“처음으로 든 생각인데….”
“뭔데?”
“이 방호복, 조금 전에 여기 ‘생겨난’ 게 아닐까요?”
그냥 우리를 관찰하다가 방호복이 필요하다 싶은 타이밍에 집어넣은 것 아닐까?
모를 일이다.
“준비 다 했어. 가인이 넌 이제 출발 -”
바로 그 순간.
“아앗!”
“으아악!”
“하, 하늘이 무너진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좌중을 덮친다.
단박에 압도당한 사람들이 넋 나간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갈라진다.
드높은 세상에서 빛나는 별빛이 한 자루 검에 깃들더니, 마침내 지상과 우주의 경계를 허물었다.
더없이 신비롭다.
또한, 나도 모르게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 포르투나인 것 같았다.
비슷한 기분을 느낀 걸까?
미로가 갑자기 손을 모으더니, 우리에게 눈짓했다.
“빨리 해!”
“갑자기 왜 합장을 -”
“합장이 아니라 그, 포, 포….”
헛웃음을 터트리는 할아버지.
“포권? 인마, 그걸 하려면 한 손은 주먹을 쥐어야지.”
“요렇게?”
“맞다.”
자연스럽게 포권한 두 사람.
결국, 나와 아리도 옆에서 같이 포권했다.
“어…. 가인앙! 뭔가 멋있는 말 해봐! 빨리!”
“…”
잠깐의 침묵, 곧, 그럴듯한 문장이 떠올랐다.
“포르투나,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 천하검(天下劍) 이자성에게 사사, 미몽 속에서 수천 년을 보낸 끝에 마침내 한계를 넘어 도약하다.”
다음 말은 아리가 받았다.
“…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
“풋!”
“웃지 마. 네 멘트도 비슷했어.”
솔직히 유치하다.
하지만, 송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유치함이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있는 순수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이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인사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최후의 무대로 출발할 시간이다.
— 우르릉!
*
달에 도착한 후, 잠시 눈을 감았다.
이 또한 신성한 태양이 내게 허락한 힘 중 하나.
‘원할 때 언제든 잠들 수 있는 능력’
이딴 게 무슨 초능력이냐고?
평범한 인간은 달에서 1초 만에 잠들 수 없으니 대단한 초능력이 맞다.
…
곧, 아리와 미로가 합류했다.
방호복은 미로가 입었고, 아리는 우주센터에서 구한 우주복을 입은 상황.
우주복이 정상 작동 중인지 궁금하긴 한데, 뭐 아리가 알아서 했겠지.
아리가 헬멧 비슷한 것을 내게 건넸다.
— 지지직!
“들려?”
“들려.”
이런 간단한 대화조차 별도의 장비 없이는 불가능한 장소, 우주.
“북쪽으로 400km 이동하면 월면기지가 있어. 에이디아는 아마 그 장소에 있을 거야.”
“GPS 같은 걸로 알아낸 거야?”
“전혀 다르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치자.”
“그래.”
“이거 봐!”
이 와중에 미로는 강하게 점프하더니, 둥실둥실 떠오르는 자신을 보며 감탄했다.
저 광경만 보고 있으면 에이디아와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달나라 여행을 온 기분이다.
아리는 순간,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쟤를 데려오는 게 맞을까…. 묵성이랑 같이 지구에 두고, 소피아를 데려오는 게 어땠을지.”
“자정의 미로를 생각해.”
둘을 데리고 월면기지로 이동하며 ‘포르투나’가 내게 해준 충고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세상에는 두 번 세 번의 시도로는 극복할 수 없고, 오직 처음 한 번만 넘을 수 있는 벽이 있다….”
“원 모어 찬스에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 같은데.”
“가인아, 마지막 순간의 포르투나는 분명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는 무공 고수야. 미래를 보는 현자가 아니고.”
“그렇지.”
“흥미롭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아무런 논리가 없어. 필사적으로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원 모어 찬스가 있는데 왜 그래야 하지?”
“…”
“애초에 207호에서 원 모어 찬스가 필요하다고 알려준 건 호텔이잖아?”
호텔은 206호의 유산과 ‘모래시계’가 현실을 구하기 위한 보물이라고 알려주었다.
207호가 아니고!
“207호에서 필요하다고 한 적 없어. ‘현실’에 필요하다고 했지.”
“무슨 -”
“생각해봐. 종말을 부르는 빛을 버티는 데 모래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 실제론 아니었어. 모래시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소피아도 멀쩡하잖아.”
“…”
“모래시계를 쓰지 않았어도 에이디아는 우릴 뒤틀지 않았을 거야.”
207호에서 모래시계는 필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원 모어 찬스도 필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리가 다른 논리를 꺼냈다.
“너와 내 목적은 은하제일고수로 각성해서 혼돈소멸참으로 악신을 멸하는 게 아니잖아.”
“혼돈소멸참! 나 그거 배우고 싶어!”
“미로, 조용히 해. 우린 207호를 해결하면 그만이야. 나아가서 밖의 현실까지도.”
“…”
생각건대, 어떤 말은 발화자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의 해석이 중요하다.
나는 포르투나의 충고를 듣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의 진짜 상대는 원 모어 찬스가 무의미할지도 모르지.”
“뭐?”
“보인다! 보여!”
이제야 긴장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호흡이 가빠지는 미로.
전방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월면기지.
그리고….
너무나 거대한, 한 번에 지구 전체를 비추고도 남을 것 같은 거울!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207호의 최종 해결은 대체 무엇일까?
에이디아의 죽음?
거울의 파괴?
그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