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37)
EP.537 53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3)
537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3)
– 미로
이상한 공간에 떨어졌다!
농담 아니야.
진짜 무지무지 이상하다고!
벽면이 마치 살덩이처럼 꿈틀거리더니, 끈적한 팔이 튀어나와서 날 붙잡으려 했다니까?
방호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 어딘가 끌려갔을지도 몰라.
“꺄아아아악!”
이, 이번엔 천장에서 시꺼먼 손이 튀어나왔어!
“꺄아아 – 읍!”
“조용히 좀 해.”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아리가 한숨 한 번으로 괴물 두어 마리를 죽였다.
아리 등에 바짝 붙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답답하니까 떨어져 봐.”
“안돼!”
“이런다고 더 안전해지는 게 아니야. 게다가 엄청 무거워. 넌 지금 방호복을 입고 있다고.”
“…”
한 발자국 물러서니, 아리가 다시 말했다.
“시간대여기 시간, 얼마나 흘렀어.”
“20분 정도.”
“으음…. 내가 시간을 더 쓰면 곤란한데.”
“왜?”
아리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꿈틀거리는 벽을 만졌다.
“… 역시 그렇네.”
“혼자만 아는 말 하지 마.”
“이런 식으로 계속 움직여도 의미 없어. 공간이 뒤틀려있거든.”
“어?”
“계속 길을 따라가도 출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자세한 설명을 하려던 아리는 곧, 고개를 저었다.
“다음 이야기는 ‘현재의 나’에게 들어.”
“뭐라고?”
잠시, 아리는 말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하는가 싶더니 양손을 뻗어 벽에 붙였다!
— 쩌어억!
순식간에 갈라지는 살덩이의 벽.
당연하다는 듯, 살덩이 전체가 움찔거리며 다시 달라붙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갈라진 살덩이의 재결합을 막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리가 벽을 쪼개서 새로운 길을 만든 상황!
“달려.”
“뭐?”
“저 틈으로 달리라고!”
사방에서 꿈틀거리는 살덩이, 어둡고 탁한 공간을 뚫고 정신없이 달렸다.
그 끝에는 ‘현재의 아리’가 있었다.
*
– ???
꿈틀거리는 틈 너머에서 온 미로의 첫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아! 여, 여기도 아리가!”
“내가 진짜지. 저쪽은 이제 돌려보내.”
“어떻게 한 거야?”
“… 부등변다면체의 공명으로 서로를 찾아낸 후, 저쪽에서 입구를 열고 이쪽에서 출구를 지탱했다 정도로만 설명할게.”
더 자세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유산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감으로 쓰는 것이지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그러면! 그 방법으로 가인이에게 가자.”
“무리야.”
“뭐?”
“안전하게 가려면 입구와 출구에 둘 다 내가 있어야 해.”
“사실상 나랑 아리가 합류할 때만 가능한 방법이네.”
“가는 길은 내가 아니까 그냥 따라와.”
“어라? 소환 아리는 길이 없다고 했는데 -”
“길은 없지만, 길을 만들 수 있는 장소는 있어.”
사방에서 덮쳐오는 괴물들을 죽여가며 나아갔다.
동시에, 긴 세월 머리를 복잡하게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곧 드러날 ‘어머니’의 목적에 대하여.
…
자정의 미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료들이 의아해한 점이 있다.
205호, 절대고수 후반부에 등장했던 그녀는 다음과 같은 쪽지를 남겼다.
‘자정의 시간을 아껴라. 207호에서 30분 이상 필요.’
이런 글은 207호에 관한 정보가 있어야 쓸 수 있다.
어떻게 알아냈을까?
호텔에서 ‘천기누설’처럼 들어가지 않은 방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이벤트가 종종 발생하니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자정의 미로는 ‘심해의 호텔’에 참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천기누설을 일으켰다 해도 ‘심해의 호텔 207호’를 알아내야지, 무슨 수로 ‘미래의 호텔 207호’를 알아낸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은 207호에 있었다.
207호의 정체는 호텔 밖 현실을 시나리오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2층 종료와 함께 모두가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제법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고등학교 입시에 비유하자면, 마지막 모의고사를 친 후 수능을 치러 가는 느낌 아닌가!
“아리야? 무슨 생각 해?”
“아니야. 잠깐 숨 좀 돌리자.”
“응.”
‘어머니’가 ‘미래의 207호’에 대한 정보를 얻은 맥락은 이해했다.
천기누설 혹은 그와 유사한 이벤트에서 이런 정보를 얻었겠지.
‘207호 시나리오는 언제나 바깥 현실의 변주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으니 서로 다른 호텔의 207호들 역시 공통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시 최초의 의문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목적은 무엇인가?
…
알 것 같다.
“여기야.”
“응?”
“아까 말했지? 길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여기서 만들면 돼.”
“어?”
갸웃거리는 미로.
언제나 그렇듯, 이 애는 참 귀엽다.
“입구와 출구에 모두 아리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 출구에 아리가 없잖아.”
“그 앞에 단서가 있었지. ‘안전하게 가려면.’”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면, 한쪽에만 내가 있어도 된다.
그 말을 이해한 미로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때 보면 머리는 좋아.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충동적인 게 문제지.
“그러면?”
“자정의 시간을 써. 그 상태라면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알았어…!”
— 철컹!
회중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가리킨다.
다시금, ‘어머니’가 나타났다.
“…”
“…”
두 번째의 모녀 상봉은, 전에도 그랬지만, 조금은 어색하다.
곧 시원섭섭하다는 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
“네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단계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너는 정말이지, 내 가장 완벽한 작품이란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겠지.
“미로. 전에 만났을 때 내게 말했죠.”
과거, 한여름 밤의 꿈 당시 미로가 내게 전한 이야기.
“관리국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그걸 위해서 아주 큰 힘이 필요하다고.”
“그래.”
“수뇌부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인가요?”
“…”
찰나, 미로에게 아주 복잡한 표정이 스쳐 간다.
“그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전부는 아니란다.”
“… 내게도 모든 것을 말할 생각이 없군요.”
“비밀은 -”
“자격 있는 사람만 알아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기엔 본인만 자격이 있나요?”
“… 시간이 없구나. 알다시피, 내게 남은 시간은 정말 적어.”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다시금, 정신을 집중해 부등변다면체의 힘을 끌어냈다.
— 쩌어억!
쪼개지는 살덩이의 벽.
그 틈새로 비치는 우주의 광휘.
어머니의 목적은 호텔이 아니라 바깥, 현실에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207호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큰 힘’을 얻기 위한 장소.
207호를 위해 30분을 아껴두라는 건, 207호의 해결을 도와주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그녀가 무언가를 얻기 위한 포석이었을 뿐.
“가세요. 당신이 바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직후, 미로가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사랑해.”
“…”
“미안. 더 멋있는 작별 인사를 떠올리지 못했어.”
“저도….”
“…”
“사랑해요. 통로 유지하기 힘드니까 빨리 가세요.”
곧, 희뿌연 인영이 멀리 사라지고 꿈틀거리는 살덩이 틈에 나 혼자 남았다.
207호에서 모든 이는 ‘나름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 결말에 만족한 이는 더 나아갈 필요가 없다.
가인이와 어머니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결말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
나에게도 소망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결말, 해피엔딩이 있다.
그걸 위해 남겨둔 수 또한 있다.
승엽이가 포르투나로 변하며 행운을 비튼 괴이한 힘을 얻었듯이….
나 역시, ‘비밀’이 비틀리며 태어난 힘이 있었으므로.
「사용자 : 김?리(비밀?)」
「‘나침반’이 활성화됩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008,924일 차
현재 위치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 한가인
인류에 대한 성모의 사랑은 얄다바오트가 주입한 본능이었다.
성모는 그 본능을 받아들이고 수천 년간 인류의 수호자로서 살아왔다.
현재, 그 본능이 에이디아에게 속삭인다.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너는 9할의 인류를 괴물로 만들고 1할의 생존자들에게 지옥을 선사했을 뿐이라고.
본능을 받아들인다면, 인류를 구하고자 한 성모의 계획은 처절한 실패다.
본능을 부정하겠다면, 인류의 수호자로서 살아온 기나긴 삶 전체에 대한 부정이다.
빈틈없는 논리였다.
에이디아 또한 반박하지 않았다.
기실, 내가 지적하기 전에 그녀 스스로 자각했으리라.
이윽고 절망으로 가득한 호소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죠?”
“…”
“돌이킬 수 없어요! 이미, 이미 다 끝났는데….”
“아닐 수도 있지. 애초에 너 또한 우리에게 뭔가 기적 같은 수가 있다고 믿었잖아?”
그러니까 우리를 보험으로 남겼겠지.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쩔 셈이냐?”
과연, 에이디아는 놀라지 않았다.
“시간을 돌려서 ‘구원’을 무효로 한다….”
“그래.”
“… 어느 시점으로 돌릴 셈인가요?”
원 모어 찬스의 회귀 시점은 할아버지가 깨어난 직후다.
“한 열흘 전? 구원이 발생하기 전이니 여유가 있 -”
“하!”
한탄하는 목소리.
다음 말은 조금 더 가시가 돋쳐있었는데, 과도한 절망이 그녀의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한 것 같다.
“의미 없어! 겨우 그 정도로는 의미 없다고! 그 시점에서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니까!”
“…”
“혹시, ‘구원’을 내가 혼자서 시행하는 마법 정도로 생각한 거야? 거울이 일으키는 뒤틀림의 영역에 지구 전체를 넣는 터무니없는 대이적인데!”
“…”
“이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수 없는 -”
“됐다. 그쯤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았다.”
더 이상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상황은 이해했다.
말하자면, 회귀 시점에선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종말을 부르는 빛’ 혹은 ‘구원’을 위한 준비는 열흘 전 시점에선 인적 준비든 물적 준비든 전부 끝나있다.
그러니 100년 전이면 모를까, 고작 열흘 전으로 돌아가는 정도로는 막기 어렵다.
“내가 널 설득해도 막을 수 없나?”
“…”
복잡한 표정을 보니 저절로 이해가 갔다.
단순히 교황청을 공격하는 식으로는 막을 수 없지만, 열흘 전의 에이디아를 설득한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설득할까?
애초에 계획이 실패할 거라고 경고했는데도 시행한 사람이 에이디아다.
실패한 미래를 보고 시간을 돌려서 돌아왔다?
‘다시 한번 해볼 테니, 이번에도 실패하면 또 시간을 돌리세요.’
‘한 번 더 하면 이번엔 더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죠.’
따위의 말을 할 것 같다.
성모에게 있어 ‘구원’은 최소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의 고심 끝에 도달한 결론이다.
그 의지를 쉽게 꺾을 수 없다.
또한, 잠깐의 충돌 속에서 느꼈지만 에이디아에겐 빙의 등도 통하지 않았다.
…
외통수구나.
원 모어 찬스에 의존하지 말라던 포르투나의 말은 이런 이야기였을까?
시간을 돌리든 말든 의미 없다?
회귀 시점에선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
“…”
숨이 턱 막혔다.
1. ‘종말을 부르는 빛’을 모래시계로 한 차례 버틴다.
2. 이후 상황을 확인한 후, 원 모어 찬스로 시간을 돌린다.
3. 과거로 돌아와 막아내면 해결!
207호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획했던 해결법이었는데, 이게 막혔음을 깨달으니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위가 뚫려있는 거대한 홀이었기에, 고개를 드니 자연히 바깥의 우주공간이 보였다.
바깥에는 거울이 있었다.
“… 네 말이 맞았네. 저 거울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답이로구나.”
“뭐라고요?”
혼란으로 가득한 성모의 눈동자.
“시간을 돌려서 해결하는 게 아니었어. 그래봐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해결하는 거야.”
“무슨 말을 -”
선택했다.
207호의 보스는 ‘에이디아’가 아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대화할 가치도 없으리라.
— 쿵!
뚫려있는 천장, 월면기지 바깥으로 나오니 다시금 거대한 거울의 신비로운 자태가 드러났다.
오래전부터 날 옭아맸던 저주받은 환영이 다시금 뇌리를 스친다.
산산이 조각나서 별 전체에 흩어지는 미래!
두려웠다.
너무나 두려워서 몇 번이고 다시 통찰했는데, 이 미래만큼은 무슨 수를 써도 바꿀 수 없었다.
쉽게 변하지 않는 요소가 원인이라 여겼다.
207호의 시나리오 내에 있는 무언가가 원인이라 믿었다.
우주에서 떨어진 거울?
역사를 1,000번 반복해도 일말의 흔들림 없는 외계신?
아하.
내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구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져도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나’다.
…
거울을 본다.
거울을 직시한다.
이윽고 거대한 거울에 ‘나’라는 인간의 상이 맺히는 순간.
내 손끝에 빛이 깃들었다.
“아앗! 호, 호루스! 지금 상태에서 거울을 부수면 -”
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그래서 했다.
— 쨍그랑!
시퍼런 열선이 거울과 충돌하는 순간.
거울이 수백, 수천, 수만 – 헤아릴 수 없는 숫자로 쪼개진다.
그 파편 하나하나에 맺힌 ‘나’를 본다.
내가, 내 조각이, 내 파편이 지구를 향해 추락한다.
모든 이가 동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유토피아.
성모가 빚어낸 에덴동산.
그날, 34만 2,800명의 인간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악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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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