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39)
EP.538 538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4)
538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4)
– ???
폭풍우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내 이름은 윌리엄 스미스, 32세의 –
“…”
아니다.
과거의 이름으로는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대체 누구지?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머리를 잠식하려는 순간, 위대한 자의 계시가 내려왔다.
「너는 천상에서 떨어진 파편이다.
너는 위대한 자의 일부다.
별이 쪼개지며 생겨난 34만 8천 잔해 중 하나다.
다른 조각을 모아라.
그리하여 천상에 도달하라.」
아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신으로 설 자다.
「네 번호는 234,822번이다.」
…
번호의 의미가 뭐지?
*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의 친절한 이웃, 아리아나였다.
“윌리엄! 부탁이 있어요!”
“… 무엇입니까?”
“남편의 차 상태가 좀 이상해요. 기름이 좀 새는 것 같은데…. 당신 차 좀 탈 수 있을까요?”
빌려줘야 한다.
아니지, 그냥 줘야 한다.
물건은 본래 필요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하는 법이니까.
나는 차가 3대나 있으니 한 대를 아리아나에게 줘도 문제 없 –
“…”
어제까지라면, 환히 웃으며 가져가라 했으리라.
이미 그런 식으로 나눠준 물건이 한둘이 아니고, 반대로 내가 가져온 물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젠 싫었다.
내 차잖아?
내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산 차 아니었어?
내가 아끼는 차를 왜 남에게 줘야 하는데?
주기 싫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하면 이상하게 여기겠지.
“아리아나, 미안합니다. 사실 그 차도 엔진 상태가 아주 이상해요. 수리를 맡겨야 할 겁니다.”
“어머!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빌려주기 싫어서, 주기 싫어서 급조한 거짓말.
싱글싱글 웃으며 떠나가는 여인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유토피아에 거짓말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나만 빼고.
…
나만 빼고!
“허억!”
숨이 가빠온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이 주어졌는지 깨달았다!
나는 모든 이가 서로를 사랑하며 거짓을 모르는 낙원에서 타인을 속일 권리를 얻었다!
*
그날 이후, 보잘것없는 음료 회사 직원이었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한 기적이 일어났다.
캘리포니아 해변의 그림 같은 단독주택.
아름다운 요트 세 척과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슈퍼카.
거기에 미술관에서나 볼법한 명화(名畫)들까지!
그야말로 굴지의 사업가나 누릴 법한 풍요가 내 것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얻는 과정은 너무나 쉬웠다.
이런저런 말을 적당히 지어내면 모두가 속았고, ‘필요하다’라고 간절한 목소리를 내면 다들 눈물까지 흘리며 내어주었으니까!
머저리들이다.
모두 저능아들이다!
나는, 원숭이만도 못한 놈들 사이의 유일한 인간이라고!
이런 행복의 완성을 위해선 뭐가 필요하겠는가?
당연히 눈이 번쩍 뜨이는 아름다운 아가씨지!
더없이 신비로운 분위기의 흑발 청안의 소녀와 마주했을 때, 운명을 깨달았다.
“저, 저는 윌리엄이라고 합니다. 아가씨의 성함을 -”
“보고 싶어요.”
“예? 예?”
“당신의 집에 아름다운 그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무, 물론입니다!”
*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꿈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소녀가 내 집을 거닐고 있다니!
쉼 없이 떠오르는 천박한 생각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저녁 무렵,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한 잔의 술잔을 나누며 미래에 대해 말하려던 순간.
“이쯤 하자. 혹시나 해서 긴장 중이었는데, 넌 진짜 별거 없구나.”
“예? 갑자기 무슨 -”
“너무 멍청해. 넌 심지어 내 이름도 모르잖니.”
“무, 무슨 말을 -”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는데, 분노라기보다 실망감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경멸감’으로 가득한 시선이 날 향한다.
이윽고 공포스러운 눈동자 수십 개가 소녀의 배후에 나타났다!
“계시를 듣지 못했어?”
“예?”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전신이 돌처럼 굳었다.
이해할 수 없는 힘이 내 몸의 통제권을 앗아간 것만 같았다.
“시작할 때 들었잖아. 다른 조각을 모아 천상에 오르라고. 너 말고도 수많은 조각이 세상에 있다는 의미였는데.”
“으읍!”
“불쌍해. 네가 불쌍한 게 아니고, 이런 저능한 숙주와 합일한 ‘파편’이 불쌍해. 위대한 힘을 얻고 떠올린 생각이 이런 것뿐이야? 큰 집, 요트, 예쁜 여자?”
“끄윽!”
“욕심이 많아서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그 욕심을 감출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나쁘다는 말이지. 뭐, 네 팔자가 여기까지인 셈이지.”
섬뜩한 손이 내 머리를 향해 다가온다.
“몇 번이야?”
“끄르륵!”
“됐어. 이 정도면 번호의 의미도 모르겠구나. 앞번호일수록 더 큰 조각이거든. 네 수준이면 잘 쳐줘야 20만 번 대네.”
무서워.
죽기 싫어.
제발, 살려줘!
“죽는 거 아니야.”
“…”
“열등한 파편이 더 우수한 존재와 합쳐지는 것뿐.”
차가운 손이 내 머리를 파고들었을 때.
내 삶을 바꾸었던 빛나는 조각을 집어삼켰을 때.
‘윌리엄 스미스’의 자아가 거품처럼 흩어지며 마지막으로 깨달았다.
그녀의 이름은 세레나 K 와일드, 38번이라는 사실을.
“넌 진짜 날 좋아했구나? 궁금하네. 우리는 본디 하나였으니, 이건 나르시시즘의 일종이 아닐까?”
*
– ???
“일찍이 성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옆집 아이를 네 아이처럼 아껴라. 그리하면 -”
설교하던 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며시 고개를 들자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더벅머리 청년이 보였다.
경건한 분위기를 깨트려서 죄송하다는 듯, 청년이 고개를 숙이자 신도들이 다시금 내 쪽을 보았다.
“…”
설교에 집중하자.
“여러분, 사랑의 말씀은 많이 들어보셨지요? 가슴이 뭉클해지지요?”
더 없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신도들.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여러분! 이단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음을 아십니까?”
다시금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랑으로 가득한 낙원과 어울리지 않는 설교다.
그러나, 내 ‘설교’는 평범한 설교가 아니다.
이미 교화된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 철컹! 철컹!
창문이 닫히고 조명이 어두워진다.
당황하는 신도들이 적지 않았지만, 낙원의 주민들은 쉬이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다.
“보았습니다! 위대한 수호자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구름 같은 기세를 보았습니다. 성모께서 베푸신 낙원을 불사르는 마귀를 보았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종말의 4기사를 뜻하며 -”
점차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사랑을 배격하는 말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의심하는 법을 잊은 이들이기에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 모순 속에서 신도들의 정신이 서서히 길을 잃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의 곳간이 내 곳간이고, 여러분의 아이들이 내 아이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명심하시고, 집에서 찬찬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설교가 끝날 무렵, 마음의 길을 잃은 어린 양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예배실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
드넓은 예배실에 딱 한 명의 염소만 남았다.
“학생, 질문이 있나요?”
아까 전의 더벅머리 청년이다.
“하하, 질문은 됐습니다. 그냥 좀 웃겨서요.”
“무엇이 말입니까?”
“피차 서로가 누군지 알 테니 편하게 가자. 야, 목사야. 너 뭐 하는 거냐? 사람들을 홀려서 뭐, 군대라도 만들게?”
“…”
“바보 아니야? 일반인 군대 따위가 우리 사이의 전쟁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지금처럼 들키기나 하지!”
“…”
“됐다. 꼬라지 보니까 보나 마나 10만 번대 이상이네. 네 조각이 아까워.”
다음 순간, 무형의 힘이 내 몸을 돌처럼 굳혔다.
“… 두렵군요.”
“겁먹지 마. 잠깐 아프고 끝일걸? 그 후론 더 뛰어난 자의 일부가 되어서 -”
“그게 두려운 게 아닙니다.”
두렵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합일’의 순간이 매번 너무나 두려웠다.
“뭐?”
“학생, 이미 한국의 조각을 몇 개 모은 모양인데,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까? 조각을 모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바보 아니야? 설마 계시도 듣지 못했어? 조각을 모으면 천상의 신이 -”
“그 신이, ‘우리’는 맞습니까?”
“무슨 -”
— 빠각!
돌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다시금,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청년.
“파편 하나가 서울 시내에서 대놓고 목회 활동 중이니 놀랐습니까? 대놓고 죽여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까?”
“너 -!”
“멍청한 조각인 줄 알았군요. 다른 가능성, 자신감의 발로일 가능성도 생각하셔야지요.”
뜨거운 열기가 몸에 가득하다.
신도들의 신실한 마음이 내게 유형의 힘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쿠궁!
벼락같은 속도로 달려들어 청년의 몸을 움켜쥐니, 그는 고통스러워할 뿐 어찌할 바 몰랐다.
이미 수차 경험한 사실.
‘서’의 힘을 자각한 이들은 기기묘묘한 수가 무서울 뿐, 물리력은 보잘것없다.
“나 같은 힘을 처음 보나 보군요.”
“크읏!”
“조각을 모아 번호가 오르다 보면 신비로운 힘이 생겨나지요. 누군가는 당신처럼 타인의 몸을 농락하는 힘을 얻지만…. 누군가는, 나 같은 힘을 얻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보며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것도 모르는 걸 보니, 학생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 콰직!
붉은 핏방울이 맺힌 파편이 손에 들어왔다.
이것을 흡수하면, 나는 더 큰 힘을 얻으며 천상에 가까워진다.
이미 수차 경험한 일이다.
“…”
불운한 청년에게 말한 두렵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조각을 모아 더 높은 영역에 다가갈수록 끔찍한 가능성이 뇌리를 잠식해갔기 때문이다.
모든 조각이 모였을 때, 그 자리에 내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후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 강해지지 않으면, 더 강한 누군가가 날 집어삼킬 뿐이므로.
그러므로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신이 되거나, 신의 한 끼 식사가 되거나.
나는 16번이다.
나는 서일도다.
…
적어도 아직은 그러하다.
*
– 김묵성
약 2년 전.
가인이 녀석과 아리, 미로가 달로 떠났다.
나는 거대한 망원경 하나 붙잡고 달을 관측하며 ‘원 모어 찬스’를 사용할 타이밍을 쟀었지.
그러던 중, 달에서 화려한 빛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눈앞의 청년이 좋은 예시다.
“회귀 시점을 재지정했다.”
“그래요?”
그는 가인이와 전혀 다르게 생겼고, 애초에 백인 청년이었다.
물론, 가인이 고 녀석은 능력 특성상 육신을 갈아탈 수 있으니 인종적 분류는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내가 이 청년을 ‘한가인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외모와 별개의 문제다.
“정말 모른단 말이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네.”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청년.
“그,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라! 난 네 말을 믿고 회귀하지 않았단 말이다! 이젠 성모가 세상을 뒤틀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넌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제법 잘생긴 청년이 싱긋 웃었다.
“딱 세 가지는 압니다. 첫째, 시간을 돌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테니까요. 둘째, 뭘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랑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냥 유유자적 낚시나 하면 됩니다. 애초에 그런 역할이니까요.”
항상 들은 이야기다.
시간을 돌리지 말라.
자신은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뭔가 할 필요도 없다.
유유자적 낚시나 해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2년 전까지만 해도 겉으로는 평온했던 낙원이….
매일매일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넌 뉴스도 안 보냐? 어제 영국에서 총리가 백주대낮에 암살당했단다!”
“이야~! 그쪽 파편은 영국 총리라도 할 셈인가? 그것도 괜찮네.”
“중국에선 -”
“서기관 동무는 매일 유심히 관찰중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미국에선 -”
“미국은 결국 그 여자애가 다 먹을 것 같네요. 재능이 특출나서.”
“…”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아무리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도 놀라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쉼 없이 늘어놓는다.
새하얀 나무 의자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죄다 통찰하는 듯한 태도.
이런 모습만큼은 가인이와 미묘하게 닮아있었다.
“… 세 가지를 안다고 했지.”
“네.”
“둘은 말했고, 세 번째는 뭐냐?”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1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