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0)
EP.539 53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5)
539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5)
– 조나단 스위프트
며칠 전부터 몇 번이고 끄적이던 종이를 다시 붙들었다.
「내 이름은 조나단 스위프트, 브리티시 타임즈의 7년 차 기자다.
지금부터 내가 적는 사실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4일 전, 암살당한 데이비드 총리는 -」
설령, 내가 죽더라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쓰는 편지이건만!
도무지 다음 문장을 쓸 수 없었다.
너무 해괴망측한 이야기라 남들이 믿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유명했던 총리조차 지리멸렬한 글만 남기지 않았는가!
내가 직접 겪은 괴이한 경험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총리의 유서를 믿지 못했으리라.
“도버 항구에 배가 준비됐다고 연락이 왔어. 조나단, 슬슬 출발할까?”
“아, 알겠어.”
출발 직후, 앞좌석의 토마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어제, 네 연락을 받고 달려오긴 했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갑자기 프랑스로 가겠다니? 이민 준비라도 하는 거야?”
“…”
“속 시원하게 말해줄 수는 없냐?”
토마스는 어린 시절, 맨체스터 뒷골목에서부터 함께해온 친구다.
난데없이 도버 항구에 밀항선을 준비해달라는 터무니없는 요청을 했는데도 들어주었을 정도니,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말해줄 수 없었다.
죽으려면 나 혼자 죽어야지, 이런 친절한 친구까지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미안하다.”
“하, 이것 참…. 내가 꽤 도와주고 있는데도 말해줄 수 없다 이거야?”
툴툴거리는 친구의 말을 듣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친구가 부탁하는데 그 반대급부로 비밀을 말할 것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불평하는 모습.
당연하지만, 한편 당연한 일이 아니다.
간절하게 부탁하면 ‘당연히’ 대가 없이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모께서 그런 이치를 퍼트리셨으니까!
“이런!”
— 철컥!
즉시 권총을 꺼내 토마스를 겨누는 순간,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조나단, 장난이라면 재미없으니까 -”
— 탕!
주저할 틈이 없다.
총리를 죽였으며, 이제는 날 위협하는 존재!
악마에게는 인간의 육신을 농락하는 힘이 있으니까.
내 부탁에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토마스는 악마에게 조종당한 것이 틀림없다!
*
늦은 시각.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토마스가 말한 밀항선을 향해 달려갔다.
곧, 덩치 셋이 나타났다.
“어이~! 기자 양반 맞소?”
“맞습니다. 지금 바로 -”
“토마스 씨는?”
“… 중간에 내렸습니다.”
“뭐여? 그건 말이 다르지! 우린 토마스 씨를 믿고 온 것인데 -”
“여러분. 저는, 정말, 반드시 도버 해협을 건너 유럽으로 가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니, 덩치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성모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모두 믿고 사랑해야 한다고!”
“으음….”
음지에서 살아가는 의심 많은 범죄자라 해도 성모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의 이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 우리가 오늘 처음 보는 기자 양반을 어떻게 믿지?”
또야!
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해야 할 세상인데, 이 자는 어찌 내게 ‘불신’을 말한단 말인가?
성모의 가르침을 부정한다는 것.
악마에게 감염당했다는 증거!
— 철컥!
권총을 꺼내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걸로 우릴 죽이면, 배는 직접 모실 생각인가?”
“…”
낭패다.
토마스를 죽여도 차는 내가 운전할 수 있었지만, 선원들을 죽이면 배는?
본토에 도착한 후의 밀항 절차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
당황하는 순간,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보냅시다. 돈은 받았으니.”
“… 그러지.”
*
배에 타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내 사랑하는 조국이었으나 이제는 악마가 들끓는 광기의 땅, 영국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독일, 아니지, 프랑스로 가자.
그쪽의 기자들과 만나 영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야 한다.
아니지, 직접 만날 필요도 없이 인터넷을 쓰면 된다.
영국 쪽은 인터넷조차 믿을 수 없는 지옥이 되었지만, 유럽 본토는 아직 괜찮을 거야.
그리하면, 분명 스페인의 교황청이 –
“… 허억!”
배가 출발하지 않고 있다.
출발은커녕, 출발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를 가두는 감옥에 불과하다.
아득한 절망을 느끼며 숨어있던 선실 밖으로 나오니, 갑판 위의 사람들이 고요한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발작적으로 총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다섯 선원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이리 오거라.”
그들의 눈은 모두 같았다.
— 끼익!
다섯 명의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까딱인다.
분명 서로 다른 몸일진대, 움직임이 완벽히 똑같다.
“이리 오라지 않느냐.”
“아, 아….”
두려움이, 공포가 내 정신을 잠식한다.
이성은 어떻게든 도망가야 한다고 외치는데, 몸은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홀린 듯 기어가기 시작했다.
“조나단, 이리 와서 내 눈을 보라.”
“누, 눈이 이렇게 많은데 무엇을 보란 말입니까!”
“쿡! 그 말이 맞구나.”
방금의 대화가 재밌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는 5인의 사람들.
천천히 다가오는 손길.
“나, 나는! 총리가 남긴 글을 보았소! 아, 악마가 있다고, 사특한 자가 사람의 몸을 조종하고 있다고 -”
“악마의 정체에 대해 적혀있었느냐?”
“…”
악마의 정체.
그것은 정녕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해리슨 왕자…!”
“왕자?”
기묘하게도 상대는 그 답에 조금 실망한 듯했다.
“그런 건 내 정체가 아니야. 그는 그저 자질이 뛰어난 소체일 뿐이지.”
“자질이 뛰어나다?”
“기자. 너나 총리가 제정신일 수 있는 이유를 아느냐?”
“…”
“간혹, 사특한 힘에 대한 저항력을 타고난 이들이 있다. 그런 인간은 자질이 부족한 소체의 힘으로는 쉬이 무릎 꿇릴 수 없더구나. 그러니 잘 드는 칼이 있어야 한다.”
— 따각!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
“허억!”
이해했다.
내가 운 좋게 타고난 ‘저항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잘 드는 칼’을 버틸 정도는 아닐 것임을!
이윽고 뒤편에서 ‘해리슨 왕자’가 나타났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았다.
“대체, 대체 너는 무엇이냐! 네 목적이 뭐란 말이냐!”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성모가 세상에 평화를 주었다면, 나는 칼을 주러 왔노라. 나는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가 서로를 원수로 여기게 하리라.”
이윽고 청년, ‘잘 드는 칼’의 손길이 내게 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모든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알았다.
…
“뭐야? 기자 기억이 이상한데? 토마스는 내가 손댄 적 없잖아?”
왕자가 물으니 선원이 답한다.
“그러게. 그 어떤 소체의 기억을 뒤져도 토마스를 손댄 기억이 없는데.”
물론, 이 대화의 본질은 자문자답에 불과하다.
“기자 녀석이 착각한 모양인데? 토마스는 손댄 적 없어. 다시 말해서….”
이윽고 영국 왕자가 환히 웃었다.
“대영제국의 신민들이 마침내 성모가 건 저능화의 저주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의미지! 그러므로 내가 곧 영국, 나아가서 세상을 구할 자다!”
*
– 진목경
“…”
탁자에 올라온 종이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나, 중화인민공화국 총서기 진목경의 가장 큰 위기라고!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적혀있었다.
「오성홍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중국 거룡이 세계에 광채를 발한다,
황하와 장강은 흐르고 또 흘러 만리강산을 흐른다.
가슴에 품은 민족 부흥의 중국몽, 모두 지도자를 따라 추구하자.」
“…”
여기까진 애국심 고취를 위한 흔한 가사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다음 파트는 좀….
「시집가려면 진목경 같은 남자를 만나라.
그분은 결단력이 넘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
파리든 호랑이든 어떤 요물이든 다 때려잡으신다.」
“아니, 이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시집가려면 진목경 같은 남자를 만나라.
그분은 호방하고 의지가 굳센 사나이.
영웅적이고 굽힐 줄 모르는 – 」
“진짜 좀! 당 선전부 이놈들 제정신인가?”
이런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걸 맨정신으로 들을 자신이 없다.
그랬기에 이 자리의 유일한 타인, 개인 호위에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
‘그녀’의 반응은 태연자약했다.
“재밌네.”
“이, 이게 재밌어?”
“시집가려면 너 같은 남자를 만나라잖아. 대륙 최고의 신랑감, 진목경 화이팅!”
“… 아리. 진지한 대답을 듣고 싶은데.”
“진지하게 답한 거야. 네가 하려는 일이 뭐지? 14억 인민의 신앙을 끌어모으려고 그 자리에 앉은 것 아니야?”
“신앙이라는 단어는 불쾌하군. 세상에 신은 없고, 강맹한 마귀가 있을 뿐이다. 나는 총서기이자 대륙의 수호자로서 -”
“알겠어, 알겠어. 오직 세상을 지키기 위한 마음 하나라 이거지?”
“…”
곧, 창가로 걸어간 그녀는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진목경. 이건 ‘투자자’로서 하는 충고니까, 잘 들어.”
“듣고 있다.”
“진실을 받아들여.”
“…”
“넌 공산당 총서기로서 과격한 무신론을 퍼트렸고, 그걸 명분 삼아 약 40만 명의 성직자를 죽였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어쨌건! 그 과정에서 무려 7,824개의 파편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 파편 상당수가 성직자 행세 중이었으니까.”
“…”
“내가 아는 파편 중 네가 손꼽힐 만큼 강해. 그만큼 많은 조각을 모았어. 그런데도 넌 ‘마지막 한 걸음’을 넘지 못하고 있지.”
“마지막 한 걸음?”
“받아들여라. 너는 무신론을 경전으로 삼은 신의 유체다.”
불편한 주제였다.
그런 내 기분을 느꼈는지, ‘아리’ 또한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리. 넌 나 말고도 많은 파편을 알고 있지.”
“그래.”
“… 지금 가장 유력한 후보는 누구지?”
“뉴스나 인터넷 덕에 짐작하겠지만, 알려줄게. 미국의 방랑하는 마녀, 한국의 교활한 목사, 영국의 사악한 왕자, 중국의 매력적인 총서기. 이렇게 넷이 가장 앞서가고 있어.”
“넷이 전부인가?”
“더 있을 수도.”
미국의 방랑하는 마녀.
한국의 교활한 목사.
영국의 사악한 왕자.
중국의 매력적인 –
“매력은 무슨!”
“시집가려면 진목경 같은 남자를 만나라~!”
언제나 그렇듯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소녀.
처음 만났던 날, 그녀는 내게 속삭였다.
‘나는 네게 투자하겠어. 마지막 승자가 너일 때 가장 좋은 구도가 나올 것 같아서.’
“…”
아직도 그녀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승자가 나여야 가장 좋은 구도라는 게 무슨 말이지?
*
– 김묵성
속에 구렁이, 아니 이무기 다섯 마리는 품은 듯한 놈과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진 지도 약 3년 차.
언젠가부터 나는 저놈을 이렇게 부른다.
“퍼스트야.”
“예.”
‘퍼스트’라고.
그 외의 이름은 상대가 거부했다.
‘제게 이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게 생기면, 대업의 방해입니다.’
이름이 생기는 게 대업의 방해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종종 느끼는데, 이 녀석은 가인이와 확실히 다르다.
가인이가 이 녀석보다 ‘일반인 코스프레’를 훨씬 잘하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대화하는 정도로는 이상함을 느낄 수 없고, 유쾌하고 착실한 청년으로 느껴지는 게 가인이라면….
퍼스트 이놈은 대화 시작하고 딱 1분이면 학을 뗀다.
“요즘은 나도 뉴스 보니까 대충 보인다.”
“그럴 때가 됐죠.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여섯 명? 아니 일곱? 그 정도가 눈에 띄더라.”
“그렇습니까?”
“한국 사기꾼, 영국 악마, 중국 미친놈, 인도의 머저리, 미국의 이쁜이, 스페인의 이쁜이 2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라는 말은 삼켰다.
“사기꾼, 악마, 미친놈, 머저리라니요. 이쁜이 말고는 다 욕이군요. 어르신 말이 험하십니다. 제 형제들인데.”
“누가 이길 것 같냐?”
“글쎄요.”
“넌 어째 다 모른다고 하는구나.”
“모르는데 어떡합니까.”
“대충 보이지 않냐? 야, 마도서 쪽이든 신성한 태양 쪽이든 국력이 센 나라여야 유리하잖냐.”
“그런가요?”
“인구 빨, 국력 빨 무시 못 하지. 결국은 중국, 미국 둘 중 하나라 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겠지.
청년이 슬며시 웃었다.
“어르신, 한 가지 놓치셨군요.”
“뭘?”
“형제들의 싸움은 언뜻 보면 세력전이지만, 결국 마지막 싸움은 대체로 1-1 결투입니다.”
“그런 것 같더라.”
“싸움에는 언제나 변수가 많습니다. 스펙이 강한 쪽이 항상 이기는 게 아닙니다.”
“…”
“또 한 가지.”
“뭐냐?”
“형제들의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수단이며, 목적은 별개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근본적인 목적이라.
가인이는 무슨 생각으로 이 모든 난장판을 만들어내었는가?
머리가 아프다.
이럴 때마다 내가 더 똑똑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참, 제가 응원하는 후보는 있습니다.”
“누군데?”
“미국의 세레나 양이요.”
“왜?”
“귀엽잖아요.”
“미친 놈! 넌 감옥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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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3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