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1)
EP.540 54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6)
540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6)
– 김묵성
그날 이후로 3년, 이제 슬슬 4년 차인가?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아리가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영상 통화는 몇 번 했잖냐.”
“에이~! 직접 보는 거랑은 다르지. 퍼스트는?”
“어제 갑자기 사라졌다. 참, 이젠 세컨드라고 부르라더라.”
“세컨드라…. 날 만나기 싫은가 보네.”
가볍게 차 한잔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논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더라. 무슨, 세계대전이라도 벌어질 듯하다.”
“국지적인 충돌은 있겠지만, 그 단계까진 가지 않을 거라고 봐.”
“그 전에 자기들끼리 죽이고 흡수하고 할 테니까?”
“그거지.”
잠시의 침묵.
곧, 아리가 다소 민감한 주제를 꺼냈다.
“지난 3년간 생각했어. 대체 가인이는 무슨 생각으로 본인을 쪼개서 이 사단을 벌였을까?”
“그거야말로 가장 큰 수수께끼지.”
“하나는 알 것 같아.”
아리가 말하려는 그 ‘하나’는 나도 알 것 같았다.
“…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말이지?”
“너도 짐작했구나.”
3년이라는 시간은 호텔 기준으론 제법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생각만 열심히 했지.
“내가 가인이라 치고 말해볼게. 최초의 깨달음은 ‘시간을 돌려도 소용없다’였을 거야.”
시간을 돌려도 소용없다.
어째서?
답을 알면 근거도 추측할 수 있다.
“아마 묵성이 네 회귀 시점은 이미 너무 늦었겠지.”
“후우….”
그 시점에서 바깥에서 우리가 세운 계획이 어그러졌다.
“외통수에 빠진 거야. 회귀를 믿고 진행했는데, 그게 무너졌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시간을 돌려서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돌리지 않고 현시점에서 풀어야 한다.
“첫째, 에이디아가 벌인 일을 무효로 돌려야지. 즉,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려야 해.”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린다.
“여기에 대한 근거도 떠올랐어. 과거, 얄다바오트의 손길이 닿은 개체들을 떠올려 봐.”
과거에 얄다바오트가 뒤튼 존재.
에이디아, 박승엽 혹은 포르투나, 김아리, 한가인 등을 말한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생각보다 다들 자유의지가 강해.”
결국 승엽으로 돌아와 수호자를 참살한 포르투나.
혐오감을 참으며 우리를 도왔던 아리.
최종 승리를 위해 자살했던 한가인의 분신.
다소 애매한 에이디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자신의 색깔이 뚜렷했다.
“이게 얄다바오트의 한계인지, 아니면 위대한 자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꼭두각시처럼 가만히 있진 않는다는 의미야.”
얄다바오트의 피조물은 의외로 다들 자유분방한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며칠 전, 주차장 외벽이 무너지길래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그래?”
“돈을 달라고 하더구나. 돈이 없으면 물건이라도 달라더라.”
“이기심이 돌아왔네. 여긴 미국이니까 세레나의 영향일까?”
“글쎄다. 날이면 날마다 시끄러운 뉴스 때문일 수도 있지.”
세상 전체에 흩어진 가인이의 34만 8천 파편들.
그 파편을 받아들인 자들이 승천을 위해 벌이는 엄청난 혈전.
마도서의 힘을 자각했든, 신성한 태양의 힘을 자각했든,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최소 수백에서 심하면 억 단위의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
이기심.
적대감.
거짓말.
위와 같은 인간의 ‘덕목’이 돌아오기 시작한 셈이다.
부정적인 변화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난 진목경을 돕고 있어. 그 녀석이 3일 전에 내게 이런 공문을 보여주더라.”
“… 혐오체 사냥 금지령?”
“참고로 여기서 ‘혐오체’란 -”
“인간을 말하겠지. 인간 사냥 금지령이구나. 비슷한 건 여기도 있다.”
테이블 한 편에 놓인 포스터 한 장을 아리에게 건넸다.
“유사 인류 격리 구역?”
“일종의 격리 구역을 만들어서 10%의 인간 생존자를 몰아넣고 있다. 이것도 이거대로 문제는 있지만…. 보이는 대로 혼돈체 밥으로 주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
90%의 10%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이라면 일말의 죄책감 없이 악마에게 밥으로 주었겠지.
이젠 슬슬 ‘유사 인류의 권리’를 고민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단계다.
여러 가지 정황이 의미하는 사실.
“성모가 낙원에서 지워버린 것들이 돌아오는구나.”
아리가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인간을 저능아로 만든 저주가 풀리는 셈인가….”
“저능아의 저주?”
“영국 왕자는 그렇게 표현하더라.”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니구나.”
한가인 표 해답의 1번은 ‘에이디아가 쓴 오답 지우기’였다.
현재까진 순조롭게 진행 중인 모양인데,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아리야. 여기까진 나도 떠올렸지만, 그다음을 도무지 모르겠구나.”
“뭐가 궁금한데?”
“애초에 에이디아가 왜 발악했겠냐? 그만큼 세상 꼬라지가 말이 아니라서지!”
“그건 맞아.”
“에이디아의 오답을 지워봐야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야. 그 원래 상태도 문제가 많고.”
“그렇지.”
“그러면 그 원래 상태도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야 207호 해결 판정이 뜰 것 같은데.”
1번은 에이디아의 오답 지우기라 치자.
오답을 지운다고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백지로 돌아갈 뿐이며 그것만 제출하면 0점이다.
그러므로 오답을 지운 후, 백지에 새로운 답을 써야 할 것 아닌가!
나로서는 ‘우리의 답’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
침묵하는 아리.
의문에 빠진 나.
곧, 아리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그 부분은 모르겠어.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의 생각을 전부 읽기란 어렵지.”
아리가 이런 식으로 ‘상대의 우위’를 솔직히 인정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이 정도 생각은 들었어.”
“이 정도?”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궁극의 답은 아닐 것이다. 호텔도 그 정도를 요구하진 않을 것 같다. 그냥, 어렴풋한 방향성 정도가 아닐까?”
“…”
궁극의 답은 아니지만,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는 ‘방향성의 제시’.
내가 생각해도 호텔이 바라는 건 그 정도일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방향성을 모르겠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생각을 읽는 건 어려우니까.
“가인이 이야기는 이쯤 하자. 그래, 너랑 미로는 어떻게 지낸 거냐?”
“미로 쪽은 정확히 몰라. 그날 이후 실종상태라. 영상 통화로 말했잖아.”
“실종상태라곤 했지만, 뭘 하려는지 짐작은 한다며?”
“짐작은 하지. 나랑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
미로는 실종되었다.
하지만, 미로는 ‘아리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넌 뭘 하고 있는데?”
아리가 슬쩍 웃으며 작은 가방을 가져왔다.
“파밍.”
“뭐?”
“나침반으로 몇 가지를 찾았지.”
“아니, 갑자기 뭔 흰소리를 -”
“묵성아. 207호의 정체는 호텔 밖 현실의 과거일 거야. 말하자면, ‘최신 세계 시나리오 각색본’ 정도.”
“… 그렇겠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봤어?”
207호가 호텔 밖 현실의 과거라는 것.
즉, 207호의 몇 가지 변수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거울은 현실에도 있을 것 같구나.”
“또?”
“… 렙틸리언의 침입도 고대 이집트 시절에 실제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우리의 개입이 없었으니 전혀 다르게 흘러갔겠지만.”
“또?”
“더 있나? 사람은 겹치지 않을 것 같다만.”
아리가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이, 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 인마. 난 이제 늙었어.”
“왜 한쪽만 떠올리는 거야?”
“한쪽 방향?”
“207호의 비밀 몇 개가 현실에 있다? 이것만 떠올리면 어떡해. 그 반대도 생각해야지.”
그 반대?
“현실의 비밀 중 몇 개가 207호에 있다는 의미잖아.”
“…!”
“사람의 개입과 관련된 것들은 없겠지. 우리가 고대 이집트 시점부터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다 바꿨을 테니.”
“사람과 무관한 것!”
나비효과와 무관한 요소라면, 현실에 있는 것이 207호에도 있다!
예컨대,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같은 요소를 말한다.
‘거울’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아리가 빙그레 웃으며 가방을 슬쩍 열었다.
그 안에는 ‘기적’이 있었다.
현실에서 오래전에 관리국이 잃어버린 태고의 보물이 있었다!
“이, 이걸 밖으로 가져갈 수 있냐? 그런 수단이 -”
— 탁!
곧, 작은 보온병이 탁자 위에 올라왔다.
“… 보온병에 들어갈 크기는 아닌데.”
“그 부분은 노력 중이야.”
모든 이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인이가 방의 해결을 위해 몸을 쪼개가며 분투 중이라면, 아리와 미로는 현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봐도 되겠지.
“참, 묵성아.”
“응?”
“진목경이 조만간 한국 침공한대.”
“쿨럭! 야, 야 인마! 그런 중요한 걸 왜 이제야 -”
“뭐 어때? 진짜 한국도 아닌데.”
“이 중공군 같으니라고!”
“나 진짜 중공군 소속이야.”
*
– 진목경
코를 찌를듯한 악취.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피를 흘렸음에도, 정작 피 냄새에는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이것은 나의 위선인가? 아니면 마지막 인간성인가?
모를 일이다.
다행히, 길었던 싸움도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굵직한 조각은 그대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사막 종교의 메시아를 흉내 내듯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는 남자.
서일도가 지친 표정을 지었다.
“이만 쉬고 싶어질 따름입니다.”
“쉬고 싶다? 날 죽이고 싶다거나 그동안의 게으름을 한탄할 생각은 없고?”
“글쎄, 난 나름대로 부지런히 살았습니다만.”
“하하! 그대, 고작해야 교회 하나 크게 열어 신도를 모으는 정도가 네 전부였다.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어리석습니까?”
“네 신도의 수가 몇이냐? 마지막 순간까지도 10만이 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내게 대적할 수 있겠나?”
“그러면 뭐, 나라 전체를 내 신도로 채우란 말입니까? 그렇게 해봐야 대륙의 정신 나간 신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대륙의 미친 신이란 곧 나를 말함이라.
가시가 돋친 말이긴 했지만, 불쾌하다기보다 우스웠다.
“그 말도 맞는구나. 서일도, 소국(小國)에서 태어난 네 팔자인 셈 치자.”
한 걸음 다가가는 순간, 서일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지?”
“물론입니다. 대국(大國)의 황제 폐하께 조언을 드리고 싶군요.”
“경청하마.”
“당신은 돼지입니다.”
“…”
“주인이 뿌려둔 사료를 정신없이 주워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돼지입니다. 마침, 살이 제법 통통하게 올랐군요.”
“…”
“퉁퉁한 뱃살을 보고 만족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명심하시길. 때가 되면 결국 도축 당하는 것이 돼지의 운명입니다.”
“명심하마.”
— 콰직!
이로서 한국의 가장 큰 파편 또한 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