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3)
EP.542 542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8)
542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8)
– ???
내가 미로를 발견한 것은 약 3개월 전.
이른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니 그 옆에서 다소곳하게 자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슨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았지.
그녀는 ‘자정의 미로’를 소환한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미로의 말에 따르면, 자정의 시간을 사용한 후 눈 한번 감았다 뜨니 내 옆에 있었단다.
5년 가까운 시간의 기억이 전혀 남지 않은 셈이다.
시간대여기에 남아있던 미로의 시간은 전부 사라졌다.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 일리가 없지!
바보야?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끝날 사람이 아니잖아!
어머니의 목적은 분명 성인 상태를 회복하는 것.
그 과정에서 대체 무슨 수를 쓸지 궁금했는데, 괴이한 방식으로 목적을 ‘절반쯤’ 이루었다.
어쨌든, 미로가 다시금 우리에게 합류했다.
다시 말해 ‘시간대여기’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날 노려보는 진목경과 세레나.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쯤 하자.”
“… 무슨 말이지?”
진목경은 나에 대한 오해가 많은 모양인데, 교활한 음모도 사악한 계략도 없다.
정말 저 네 글자가 내 목표의 전부다.
‘이쯤 하자.’
“미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간대여기가 작동할 때 나는 특유의 ‘철컹!’소리가 들려왔다.
곧 ‘정오의 가인’이 나타났다.
5년 만에 보는 그리운 녀석의 첫 말은 다음과 같았다.
“뭐야? 왜 지구야?”
저 소환체는 달로 출발하기 전에 담았었지?
의아해하는 가인과 달리, 진목경과 세레나의 반응은 격렬했다.
“이런 저주받을!”
삽시간에 눈을 부릅뜬 채 가인에게 달려드는 두 사람.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원본과 시간대여기의 소환체가 서로를 마주하면 적대감을 느낀다는 가설이 있다.
그 감정이 파편들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
나는 미로를 안은 채 하늘로 떠올랐다.
“으잇! 가, 가인이 도와줘야 하지 않아?”
“알아서 하겠지.”
“괘, 괜찮은 거야?”
진목경 옆에서 몇 년간 보아왔기에 잘 안다.
저 둘은 몇 년에 걸쳐 수만, 수십만 파편을 끌어모아 대단한 힘을 얻었지만….
여전히 화신의 서, 신성한 태양의 하위호환 수준에 불과하다.
그릇이 쪼개지며 나온 파편을 아무리 모은다 해도 원래 그릇과 비교할 수 없는 법.
“가인이가 그린 그림도 있을 테니, 가능하면 내버려 두려 했지만….”
“…”
“휴전이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을 뒤집어줘야 하는데.”
“아리야아…. 방금 말은 너무 마녀 같았어.”
“본인이 시작한 일을 본인 손으로 끝내는 것도 괜찮겠지.”
*
미로가 ‘쪼개지기 전의 가인’을 담은 시간대여기를 가지고 돌아온 시점에서 환란은 언제든 끝낼 수 있었다고 본다.
다만, 소환체 가인이에겐 시간제한이 있으니 파편을 한 자리에 모아야 했고, 가인이가 짠 판이니 내가 어설프게 손대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 뒀을 뿐이다.
자기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서 가인이를 대면한 시점에서 승부는 끝났다.
…
실시간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모스크바.
삽시간에 건물을 으깨고 지표를 갈아엎는 엄청난 충격파.
잠깐 사이에 모스크바 시민이 얼마나 죽었을지 생각하다가 고민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쓸 위인들이 아니다.
“더 올라가자.”
일격에 날 증발시킬듯한 열선과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쉼 없이 발생하니, 위험해도 너무 위험했다.
별수 없이 미로가 추위에 떨 정도로 높이 올라와야 했다.
생각보다 전투가 너무 격렬한데?
지상의 혈전은 내 눈으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진목경이 이렇게 가인이 상대로 잘 싸울 줄은 몰랐는데. 세레나가 선전하는 건가?”
“나 추워!”
“아닌가? 가인이 쪽에서 힘 빼고 상대하는 느낌도 있는데? 저거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 않아?”
“아리야…. 나 너무 추워.”
“조금만 참아. 곧 끝날 거야.”
— 드드드드!
격렬한 진동과 함께 피부를 짓누를 듯한 파동이 느껴졌을 때, 싸움이 끝났음을 알았다.
“내려가자.”
*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미로의 눈을 가렸다.
사방에 널린 모스크바 시민의 시체도 문제지만, 진목경의 상태가 자못 처참했기 때문이다.
토막이 난 팔다리는 물론, 뽑혀 나간 오른쪽 눈과 반쯤 으깨진 두개골까지.
저런 몰골로 살아있는 게 더 신기했다.
“이…. 도적놈!”
전 총서기, 진목경이 아직도 살아있는 원동력은 ‘증오’인 것 같다.
엄청난 통증에 시달릴 텐데도 격렬한 분노를 토해내는 모습을 보니, 어떤 의미에선 일말의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이 엄청난 감정의 원인은 뭘까?
자신들의 운명을 농락한 원흉에 대한 분노?
시간대여기의 소환체와 원본이 만났을 때 발생한다는 적대감?
단순하게 둘 모두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 수고 많았다.”
그 감정에 가인이는 영향받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은 씁쓸한 듯, 조금은 안타까운 듯한 미묘한 모습.
가인이는 NPC의 희생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편이고, 실제로 사방에 널린 모스크바 시민의 시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지만….
진목경은 가인이에게도 그런 무의미한 NPC는 아닐 터.
“악마! 대체, 무,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을 -!”
“미안하다. 이만 쉬게 해주마.”
단단한 손이 단숨에 진목경의 숨통을 끊었다.
세상의 1/3을 지배했던 총서기의 허망한 죽음.
곧, 가인이 그의 머리에서 ‘파편’을 꺼냈다.
“이거구나.”
상황이 정리된 시점.
가인이에게 다가가자 그가 날 바라보았다.
“간단한 설명 좀 듣자.”
달에 가기 전까지의 기억을 가진 소환체다 보니, 싸움의 승패와 별개로 현 상황이 다소 혼란스러운 기색이다.
지난 5년간의 일을 초 간단 요약해서 전했다.
갑자기 가인이 네가 쪼개져서 별 전체에 파편이 흩어졌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끝에 가장 강력한 파편 소수가 남았다 등.
약 2분 정도 설명하던 중, 나는 누군가의 부재를 깨달았다.
“세레나는?”
“…”
“놓쳤어? 아니면 놓아줬어?”
놓아줬다고 봐.
내가 아는 진목경의 강함, 잘 쳐줘야 비슷한 수준일 세레나의 강함을 고려하면 답이 나와.
둘 다 쪼개지기 전의 가인이 상대로 오래 버틸만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실제 싸움은 상상 이상으로 격렬했다.
강자 쪽에서 약자의 사정을 봐줬다는 의미.
“…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어.”
“음?”
“난 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다만, 달에서 결단을 내린 미래의 나 -”
“미래? 아, 네게는 미래겠네.”
“미래의 내가 생각한 결말이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분명, 미래의 내가 준비한 ‘게임 종료 이벤트’는 따로 있을 거야.”
설득력 있다.
가인이가 쪼개진 것은 약 5년 전.
미로가 내게 돌아온 것은 약 3개월 전.
즉, 미로의 귀환은 가인이의 안배와 무관하며, 소환체 가인이 게임을 끝내는 건 원본 가인의 의도가 아닐 확률이 높다.
대화가 끝날 무렵, 소환 가인이가 질문했다.
“소피아는?”
“영혼의 함에 담긴 것 같아. 밖에 있겠지.”
물론, 나가 봐야 안다.
“에이디아는?”
“몰라. 달에서 지상의 상황을 보고 있을지도.”
그리고 마지막 대화.
“… 미로 주변에 끔찍한 게 있군.”
“끔찍하다는 말은 자제해줘.”
“흉측한 게 있어.”
“더 심한 표현 쓰지 마. 내 어머니라고?”
“자정의 미로가 -”
“이제 그 표현은 틀렸어. 더 이상 시간대여기에 존속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이제부턴 ‘괴담 미로’라고 부르자. 저 괴물이 정말 네 어머니가 맞나?”
“글쎄.”
신비로 가득한 달.
그곳에서 ‘어머니’는 마침내 시간대여기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을 찾아냈다.
그 대가는 꽤나 가혹한 것이었다.
*
– 김묵성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이른 아침.
지난 5년간 함께해온 그가 내게 부탁했다.
“할아버지, 요전의 그 부야베스 다시 해주실 수 있습니까?”
“부야베스가 아니라 해물탕이다. 그보다 아침인데?”
“지금 먹고 싶습니다. 재료는 제가 다 준비해 뒀어요.”
“…”
해산물을 손질하고, 채소를 준비하는 1시간가량의 시간.
그 긴 시간 청년은 날 전혀 돕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싸가지없다, 젊은 놈이 게으르게 뭐 하냐고 타박했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요리를 완성했다.
신선한 문어와 새우는 물론, 굵직한 생선이 여럿 들어간 해물탕이었는데, 향만 맡아도 그럴듯했다.
아침에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서로 한 접시를 비울 때쯤, 청년이 물었다.
“참, 가족이 있으셨다고 했지요?”
“그래.”
“종종 듣긴 했습니다만, 불편한 이야기라 자세히 묻지 못했습니다.”
“그랬겠지.”
“오늘 들을 수 있을까요?”
“…”
사랑과 결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아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행복.
그리고….
참혹한 끝.
“흐으….”
“뭐야? 인마, 너 설마 우냐? 다 큰 남자 놈이 우는 거 아니다.”
“슬픈 이야기니까 울어야죠. 동료분들은 알고 있나요?”
“인마, 동료들도 이 이야기는 몰라. 아리만 알던 이야기고, 이젠 너 하나 추가된 거다.”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영광까지야….”
다소 우울한 분위기다.
아침 댓바람부터 술이라도 한잔할까 생각하던 차, 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쉬이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무, 무슨…. 작별 인사하는 것처럼 그러냐? 인마, 조금 달라진 채로 계속 보는 거야. 너 이러면 나중에 쪽팔린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
거짓말이다.
나는 이 녀석을 한 번도 가인이라 생각한 적 없다.
집 밖으로 나가던 중, 청년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여러 번 봤습니다.”
“뭐?”
“지금 이 이별의 순간 말입니다. 10번도 넘게 봤어요.”
“…”
“항상 생각했죠. 마지막 식사는 뭐가 좋을까? 참고로 전 햄버거를 제일 좋아합니다.”
“인마, 그럼 그거 사달라고 할 것이지 -”
“할아버지는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야베스로 했습니다. 전 그것도 좋아하거든요.”
“…”
“10번 넘게 봐서 실제 겪을 때는 별일 아닐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네요.”
“…”
“그동안 신세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너, 너는!”
“말씀하시죠.”
“너는 대체 뭐였냐? 가인이가 너를 왜 -”
“저는, 당신의 동료가 준비한 ‘결말’입니다.”
청년은 그 말과 함께 떠났다.
곧 플로리다의 적막한 저택에 나 혼자 남았다.
또한, 길었던 207호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분명 기쁨과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건만.
…
술에 취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