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4)
EP.543 543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9)
543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9)
– 세레나 K 와일드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해변가.
공허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거닐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하! 거기 계셨군요?”
뭐랄까, 그냥 보자마자 알았어.
파편이야.
그것도 매우 큰 파편인데?
이 시점에 이렇게 큰 파편이 남아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네.
“누구야?”
“퍼스트입니다.”
퍼스트?
이상한 이름이잖아?
“이것 참, 죄송하네요. 사실 저번 주까진 서드였거든요.”
“…”
“그런데 퍼스트가 죽고 그의 파편이 어쩌다 보니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다시 퍼스트가 됐죠.”
장난치는 듯한 말에 숨겨진 이야기.
그는 본래 세 번째로 큰 파편이었고, 죽은 진목경의 파편을 얻으며 가장 큰 파편이 되었다.
진목경의 비서였던 정체불명의 여자와 동료인 모양이네.
아무래도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인가 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좀 빠르네.
“놀라지 않으시네요? 조각을 많이 모으셔서 운명이라도 읽게 되신 겁니까?”
“…”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니군요. 거미줄에 매달린 벌레 같은 본인 신세를 한탄하다가 되는 대로 사시는 모양입니다.”
“말이 과해.”
일부러 긁는 듯한 말투네.
예전 같으면 화냈을 것 같은데, 이젠 뭐 그럭저럭이라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너 혼자 왔어?”
“예? 아하! 제가 아리 양의 동료라고 생각하시는군요?”
“…”
“혼자입니다. 근처에 없어요. 아직은요.”
“자신 있나 보네.”
쉽게 죽어주진 않겠어.
“그건 아닙니다. 제 능력은 전투와 거리가 멀거든요.”
“뭐?”
“세레나 양. 전 당신에게 죽어줄 생각으로 왔습니다.”
순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이게 제 역할이거든요. 조각들의 싸움이 끝날 때쯤 적절한 마침표를 찍는 일.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죽어주면 훌륭한 마침표일 것 같습니다.”
점점 더 황당해!
우리끼리의 싸움이 끝날 때 적절한 마침표를 찍는 역할?
이게 대체 뭔 소리래!
그때,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하!”
“… 뭐지?”
“가인 씨가 당신을 살려 보낸 이유. 알 것 같네요.”
“뭐?”
“지난 몇 달간 혼자 지내시며 한 걸음 더 나아가셨군요?”
“…”
“나를 삼키세요. 그리고, 당신이 고대하던 마지막 싸움에서 선전하시길 빕니다.”
파편을 회수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의 이마에 손이 닿기 직전, 상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 제 품에 편지가 한 장 있으니 읽어보시길.”
— 콰직!
마지막, 가장 거대한 파편이 내 손에 들어왔다.
*
유언이나 한번 들어주자는 생각으로 펼친 편지는 생각보다 길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침대에서 일어나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위대한 자의 도구가 되었음을.」
누구보다 거대한 파편을 얻었다.
덕분에 시작과 동시에 강력한 이능, ‘운명을 보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이 비참한 운명을 알려주었다.
「일부러 이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날 호칭할 필요는 있으니, 숫자를 정했을 뿐이죠.」
운명을 받아들인 후, 묵성이라는 노인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살아갔다.
처음엔 자신을 경계하며 정보를 흘리지 않던 노인이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거울’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원인이며, 위대한 자에겐 가장 큰 도전이었지요.」
위대한 자의 도전.
「할아버지는 위대한 자가 자신을 쪼갠 것을 ‘시련 해결을 위한 수단’이라 평했습니다. 아리 양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동료들은 한가인이 자신을 쪼갠 이유를 ‘시련 해결을 위해서’라고 보았다.
「제 생각엔 목적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성장이죠!」
한가인의 숨은 목적, 성장.
「이걸 위해선 거울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울은 크게 두 가지 현상, ‘변형’과 ‘분열’을 만든다.
‘변형’은 원본을 뒤틀고, 재조립한 끝에 더 강력한 무언가로 만든다.
‘분열’은 원본을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쪼개어 세상에 흩뿌린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힘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까워 보였다.
「설명을 위해 둘로 나누었을 뿐, 딱히 별도의 힘은 아닙니다. 애초에 우리에게 변형과 분열이 모두 일어났으니까요.」
한가인의 목적이 성장이라면, ‘분열’이라는 저주를 극복하여 ‘변형’이라는 강화를 얻는 거야?
이 지점에서 잠시 의문이 들었다.
변형하면 더 강력한 힘을 얻는다는데, 우리가 원본 이상의 힘을 얻었던가?
“그렇지.”
으아아?
다, 당황했어!
조용히 편지만 읽고 있었는데 이 대답은 누가 한 거야?
놀라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려는 순간.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저절로’ 움직인 눈동자가 편지의 다음 내용을 읽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리 양은 ‘분열’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파편이 쪼개져서 세계 곳곳에 흩어졌지요.」
“맞아. 아리가 나보다 먼저 분열했어.”
다시 들려오는 답변.
이제는 이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안다.
「아리 양의 파편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기억, 혹은 인격 일부를 얻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본인을 ‘김아리’라 칭할 정도였다고 하죠.」
두려웠다.
「왜 우리에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은 걸까요? 하하! 아니지, 아니지!」
어렴풋이 보이는 다음 문장, 읽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
너무나 무서웠다.
「지랄하지 마! 한가인 이 개새끼야, 이미 깨어났잖아! 이미 우리 뒤에서 조립을 끝냈으면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신 거죠? 즐거우셨나요?」
격렬한 분노와 천박한 욕설.
그러다가 갑자기 존댓말.
글쓴이의 폭풍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문장들.
— 탁!
편지를 접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조종해서.
‘그’가 천천히 해변가를 거닐기 시작했다.
“재밌진 않았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기억이 모여들었으니까.”
그는 곧 바닷물에 발을 담그더니, 찰랑이는 물결에 자신을 비췄다.
잔잔한 물이 아니었기에 나 – ‘세레나 K 와일드’의 아름다운 얼굴 역시 환영처럼 이지러졌다.
마치, 실시간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그라드는 나처럼….
“본인의 얼굴 보고 아름답다니. 재밌는 성격이구나. 참, 네가 아까 했던 질문 말이야. 답을 들려주마.”
내가 했던 질문?
“너희가 나 이상의 힘을 얻은 적이 있냐고 물었지? 적어도 넌 얻었어. 진목경은 실패했지만.”
진목경은 실패했지만, 난 성공했다?
이상한 이야기다.
진목경이 나보다 훨씬 강했는데.
“그 녀석이 강했던 건 모은 파편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야. 마지막까지 벽을 넘지 못했지. 무협 소설처럼 표현하면, 내공이 많을 뿐 깨달음이 모자랐다고나 할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최후의 순간까지 본인이 나아가는 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무신론의 허상에 갇혔어. 아리가 여러 번 지적했는데,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텐데.”
…
“넌 다르구나. 분명 화신의 서와 유사한 힘을 얻었을 텐데, 나와 전혀 다른 활용법을 익혔어.”
세레나 K 와일드가 익힌 원본과 다른 사용법.
또 다른 가능성.
“빙의와 화신. 힘의 특성상 자아가 옅고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국 왕자가 그쪽의 극한이었거든. 너는 반대로 한 점에 모여들었어.”
…
“효력은 정신 공격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 육체 조작의 우선권? 이래서 영국 왕자가 네게 당했구나. 부작용은…. 빙의 능력의 상실. 이래서 이 여자애 몸에서 벗어나지 못했네.”
설명해준 적도 없고, 내 깨달음을 무슨 책에 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것처럼.
“‘태어나지 못한 자’가 화신의 서를 만든 목적은 저주받은 애벌레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 그 목적을 염두에 두면, 빙의 능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방향성이 산으로 갔어.”
내 깨달음은 마도서의 존재 목적에서 어긋나있다.
그래서 한가인이 혼자서는 얻지 못했던 깨달음이다.
“근데, 그 산이 굉장히 높네. 나쁘지 않아. 고맙다.”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상대가 직접 ‘네 깨달음이 나보다 나은 면이 있다’라고 인정했음에도, 나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해하렴. 나도 오랫동안 준비했거든.”
찰랑이는 바닷물에 비치는 나.
그가 나에게, 한가인이 세레나 K 와일드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니 얘야, 네가 깨달은 바를 내게도 알려주련?”
아득한 절망 속에서 – 마지막 반항이 흔적을 남겼다.
“나, 나는! 영원히 나야! 결코 네 일부가 될 수는 –”
거대한 손이 나를 움켜쥔다.
“이제 너는 나다.”
이것이 나 – 세레나 K 와일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사용자 : 한?인(?혜)
날짜 : 1,872일 차
현재 위치 :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치
가르침 : ∞」
– ?
“으아…! 놀랐네!”
꽤 위험했다.
세레나를 단박에 집어삼키기 위해 꽤 많은 사전 작업을 해놔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순간, 세레나의 순수 개인기 때문에 육체 통제권을 빼앗길 뻔했네.
다시 생각해도 재능이 상당히 뛰어난 소녀였다.
이 정도로 세레나에 대한 상념을 내려두기로 했다.
“세레나, 퍼스트. 둘 다 수고했다.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을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이제 내 일부이므로.
자신의 오른팔에 사과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 이제 끝났어?”
“끝났어.”
익숙한 목소리.
뒤로 돌아서니 휠체어를 ‘들고’ 오는 아리가 있었다.
“힘 한번 세다.”
“모래가 많아서 바퀴가 잘 안 움직여. 자, 서로 인사해. 가인이와 가인이의 역사적인 상봉이야.”
영혼도, 자아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기에 초점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존재.
‘한가인’.
“여기, 권총.”
“…”
아득했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리라 예상했음에도….
막상, 그 순간이 오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금 ‘상태창’을 본다.
「사용자 : 한?인(?혜)
날짜 : 1,872일 차
현재 위치 :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치
가르침 : ∞」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게 상태창이 보이는 게 이상하다.
축복은 육신을 기준으로 주어지므로 다른 몸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뒤틀린 축복이라는 의미다.
내용도 이상하다.
여기저기 물음표가 생긴 것은 물론이고, 날짜부터 현재 위치까지 원본과 전혀 다르다.
심지어 조언이 아니라 가르침이란다.
가르침 횟수는 무려 무한대다.
거울 너머의 얄다바오트는 올빼미보다 기운도 넘치고, 시간도 남아도는 모양이지?
이러한 변화.
이러한 뒤틀림.
지금의 내가 순수하지 않다는 확고한 증거.
일찍이 나의 분신은 이 상황에서 뒤틀린 자가 승리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리해야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저것’은 어떠한가.
거울에 의해 쪼개진 시점에서 저것 또한 거울을 보기 전과 완전히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육신만큼은 원래 그대로이니 지금의 나보다는 덜 뒤틀렸다.
내게 망설임을 느꼈는지, 아리가 한 마디를 더했다.
“… 이거, 퍼스트가 아침에 적은 쪽지야.”
“편지가 또 있어?”
자그마한 쪽지에 적힌 문구.
「당신은 동전 던지기에서 졌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 순간.
시야 한구석에서 반짝임을 보았다.
「가르침 : ∞!」
「가르침 : ∞!」
「가르침 : ∞!」
“하!”
“왜 그래?”
“마지막에 와서 지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