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6)
EP.545 545화 – 한 장의 티켓, 열 명의 꿈, 그리고 열차의 종점 (1)
545화 – 한 장의 티켓, 열 명의 꿈, 그리고 열차의 종점 (1)
– 미?
… 언젠가부터 의식이 흐릿하다.
… 언젠가부터 세상을 올바르게 인지할 수 없었다.
… 언젠가부터 내 존재의 연속성이 끊어졌다.
어느 순간, 받아들였다.
내가 마침내 괴물이 되었구나.
관리국의 어둠을 몰아내고 싶었는데, 이를 위해 호텔에 들어왔는데….
나부터 어둠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내려놓았다.
목적을 이루기 전에 죽거나 혹은 죽음보다 비참해질 수 있음은 진즉 알았으니까.
단지, 침묵하는 자들의 손에 놀아날 인류의 운명을 슬퍼했을 뿐.
…
갑자기 의식이 또렷해졌다.
설마 온전한 부활?
그럴 리가 없는데?
당황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곧, 이 장소가 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주….
드높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음 오는 장소도 아니다.
「정신이 들었느냐?」
끝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목소리.
‘수행자’다.
“…”
「마지막으로 널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느니라.」
날 보고 싶었다니.
위대한 자가 쓸법한 표현은 아니다.
하긴, 위대한 자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편견이겠지.
“…”
어렴풋한 생각, 과거의 기억.
유아적인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진실한 부활을 이루고자 했다.
거울이 자아내는 뒤틀림이 내 구원이라 믿었다.
승엽의 의식이 내면에 갇히고, 포르투나의 의식이 깨어났듯이….
유아적인 자아가 내면에 잠들고, 내가 주도권을 잡길 바랐다.
그래서 5년 전, 나는 아리가 열어준 길을 따라 거울과 접촉했다.
…
계획은 실패했고, 나는 괴물이 되었다.
「교묘한 아이야. 너는 제법 똑똑하다마는, 종종 자신을 과신하곤 하지. 그런 방식으로는 무간지옥에서 나갈 수 없느니라.」
“…”
정답을 알고 나면 문제가 쉬워 보이는 것처럼, 나갈 수 없다는 확언을 들으니, 그 이유 또한 즉시 깨달았다.
호텔은 뒤틀린 존재를 참가자와 다른 무언가로 보고 자격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르투나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행운의 소년은 거울을 마주한 후의 기억을 대부분 잃으리라.
아리 역시 미스카토닉 대학 이후의 기억은 대부분 잃겠지.
예외라면, 교묘한 수를 써서 ‘육체의 뒤틀림’을 막고 그 육체를 되찾아 참가자의 자격을 회복한 지혜로운 청년 정도?
그는 앞선 사례들을 보고 거울의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았기에 이런 묘수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분열했던 5년의 기억은 잃으리라 본다.
위와 같은 이치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거울의 힘으로 내가 유아적인 미로를 집어삼킬 수는 있지만, 그 시점부터 ‘순수한 미로’에게 주어진 참가자의 자격은 소멸한다.
밖으로 나가면, 남는 것은 순수한 소녀뿐이다.
그러므로 내 꿈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니로다. 내가 너를 새로이 조각하였으니, 너는 이 무간지옥을 벗어날 수 있으리다.」
“…”
사람은커녕, 어지간한 괴물들조차 당황할만한 존재가 지금의 나.
실체 자체가 뚜렷하지 않은 형체 없는 무언가.
이런 상태여야 나갈 수 있다?
호텔이 보기엔 ‘순수한 미로’가 207호에서 얻은 초능력 취급일지도 모르지.
“…”
변이한 이후 처음으로.
어쩌면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위대한 수행자시여, 저를 다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보았느니, 어둡고 탁한 운명을 보았노라.」
이 공간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웃었다.
“설령 죽더라도, 저 혼자 죽는 게 아니라면 충분합니다.”
「그리하면 되었다.」
내가 인간 비슷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것은 내 의문인 동시에, ‘현실’에서 수행자의 흔적을 찾아냈던 관리국이 품었던 의문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
곧, 아지랑이 같은 환영이 피어났다.
포르투나.
파멸을 받아들였음에도,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칼을 든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지혜로운 남자의 분신.
자신이 원본보다 강함을 알았음에도,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 자신의 존속조차 도구처럼 쓸 수 있었던 궁극의 자아.
마지막으로 보온병에 ‘기계와 살점이 섞인 무언가’를 분해해서 담고 있는 뒤틀린 아리까지.
이들은 박승엽이고, 한가인이고, 김아리였지만, 또한 셋 모두 아니기도 했다.
이들은 가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선 ‘원본을 초월한 가짜’다.
“… 아!”
또한 이들은 작품이다.
호텔의 가장 위에서 만상을 궁구한다는 ‘부처’의 작품이 아니라, ‘수행자’의 작품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 입을 벌리는 순간, 깨달았다.
수행자가 ‘웃고 있음’을 알았다.
「어떠한가?」
감탄, 경이, 안타까움 – 그리고, 약간의 질투를 담아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또한 당신도….”
「아이야. 이 우주에 죽음이란 없느니라. 그저, 순환만 있을 뿐.」
— 우르릉!
기다렸다는 듯, 207호 내에 구현된 삼천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의 경계가 무너지며 멀리서 ‘한가인’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
수행자의 마지막 전언을 들었다.
「내 작품들은 하나같이 원본을 능가했도다. 너 또한 내 작품임을 잊지 말라.」
이것이 207호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박승엽
207호, 두 번째 관문의 방을 통과하며 모두가 깨어났다.
장소는 아직 열차였는데, 절차가 조금 남은 모양이다.
— 철컹! 철컹!
“이야~! 다들 얼마 만이냐! 우왓? 멧돼지 네 이놈, 얼굴도 까먹을 뻔했다!”
“아니…. 얼굴이고 뭐고 난 207호 관련 기억이 아예 없습니다만. 이게 뭐야?”
김묵성과 차진철의 투덕거리는 대화.
— 철컹! 철컹!
“으앗! 그, 그게, 내가 첫 시련에서 널 소환했다가 -”
“… 설마 거기서 내가 죽었냐?”
“응.”
“…”
“진철아, 화내지 마. 미로 잘못 아니야.”
“… 누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 -”
“아니야. 잘못한 사람도 있어.”
“뭐?”
“다 가인이 잘못이래.”
“쿨럭! 무, 무슨 소리를….”
“하하, 가인 군 나름의 계획이 있었겠지요. 결국 잘 풀린 것 아닙니까?”
어처구니없는 탈락에 대한 차진철의 불만을 한가인에게 돌리는 김아리의 장난과 슬며시 옹호하는 김상현.
“아하하! 진철 오빠는 바로 탈락했으니까 얻어가는 것 없겠네요!”
“유송이 너, 오빠 놀리냐? 인마! 넌 뭐 얻었어?”
“저는! 첫 번째 시련에서 열심히 했으니까 축복 강화 정도는 -”
“송이야, 잊은 모양인데 관문의 방에선 기여도가 쌓이지 않아.”
“으잇! 으, 은솔 언니가 뭔가 착각한 거 아니에요?”
“아니, 그 부분은 은솔이 기억이 맞다.”
진철 형을 놀리다가 의외의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실망한 유송이.
모두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기쁨을 나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다.
내게 ‘이런 동료가 있었지?’ 하는 어렴풋한 기억은 있지만 딱 그 정도.
열차에서 재회하기 전까진 얼굴도 잊었고, 목소리도 잊은 사람들.
심지어 몇몇 사람은 아직 이름도 헷갈린다.
덩치 큰 할아버지 이름이 김묵성 맞지? 박묵성인가?
“승엽아, 괜찮아? 아까부터 너무 조용해서.”
“괘, 괜찮아요. 아리 누나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
“… 나, 아리가 아니라 엘레나야. 아리는 저쪽에서 카드 게임 하는 사람.”
“예쁘다고 다 같은 사람 아니니까 헷갈리지 마~!”
동료의 이름을 헷갈렸다.
덕분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졌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툭 쳤다.
“괜찮아?”
“… 호루 – 아, 형.”
가인 형이라는 단어보다 ‘호루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많이 어색한가 보네.”
“아, 아니에요.”
“포르투나 쪽은 그다지 내색하지 않았는데, 되게 연기력이 뛰어난 녀석이었나?”
포르투나.
거울을 마주한 후에 나 대신 나타난 누군가라고 한다.
나는….
에이디아의 요청에 따라 거울을 마주한 후의 기억이 없다.
“괜찮아, 괜찮아. 곧 익숙해질 거야.”
“그런가요?”
“상현 형님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나중에 상담이라도 받아봐.”
“…”
이집트에서 보낸 기나긴 세월.
다른 동료에 대한 기억은 죄다 흐릿해졌지만, ‘이 남자’에 대한 기억만은 조금 더 또렷이 남아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조금은 무서운 사람.
“아까 설명 듣고 영혼의 함을 확인했어요.”
“어때? 소피아가 있었어?”
“형, 전 ‘소피아’라는 사람을 몰라요.”
“아, 그렇겠네. 실수했다. 더 말해봐.”
“소피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그리고….”
“…”
“유미가…. 없어요.”
담담한 눈동자가 날 향한다.
그 순간, 섬뜩한 긴장감을 느꼈다.
유미를 잃은 내가 돌발 행동을 벌일까 봐 경계하는 건가?
운명을 읽는 힘으로 날 통제하거나, 마도서의 힘으로 –
“아니야.”
“…”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어렴풋이 보이는데, 아니야. 네가 걱정되어서 본 것뿐이야.”
“죄송합니다.”
곧, 한가인이 쓰게 웃었다.
“유미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라도 했어?”
“…”
“긴장 풀어. 명심해. 우린 단 한 번도 서로를 해친 적 없어. 그게 우리의 가장 큰 -”
“서로 많이 죽여봤다면서요? 유송이가 ‘어둠의 호텔 파티’ 리스트를 작성 중이라던데.”
“그, 그건 송이가 농담한 거야.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지.”
“…”
“날 믿어. 우릴 믿어. 유미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 분명, 관문의 방 보상으로 티켓이 나올 거야. 그걸 써서 -”
“… 그 부분은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어?”
다소 놀란 듯한 목소리.
그가 생각하기엔, 내가 유미를 ‘당장 부활시키는 일’에 목매달 줄 알았나 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감정적으로는 당장이라도 내 하나뿐인 사랑을 되살리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마음이 내게 경고했다.
호텔은 지옥이며,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고.
연인을 지옥에서 되살릴 생각이냐고.
“안전을 찾은 후에 유미를 부활시키고 싶어요.”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 부분까지 차차 이야기해보자.”
한가인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의문스러운 말을 던졌다.
“내 생각에, 열차에서 내릴 때 네게도 선택지가 주어질 것 같아.”
“예?”
“이젠 잊었을 것 같지만, 난 예전에 저주의 방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새 상태였지.”
“…”
“나갈 때 되니까 선택지를 주더라. 네게도 주어질 거야.”
“무슨 선택을 말하는 거죠?”
“보면 알 거야.”
“…”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단언컨대 우리 중 누구도 개입하지 않을 거야. 다만.”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네가 ‘우리와의 관계’도 고려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끝으로 한가인은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혼자 생각해보라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도는 실패했다.
“빰빠라 밤! 따다다 다다다 당! 휘루뚜 마뚜 -”
“아! 이게 무슨 개소리야! 상인 이 새끼!”
훨씬 더 요란한 방해꾼, 효과음을 입으로 내는 괴인이 카트를 몰며 열차 칸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하!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실 선물을 이렇게나 많이 가져왔습니다!”
그는 김묵성의 욕설에 개의치 않으며 카트 위의 물건을 모두에게 보였다.
“보이시지요?”
보였다.
카트 위에 한 장의 티켓과 열 개의….
이게 뭐지? 거품?
“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련된 미모의 아가씨, 이름이 헷갈리긴 하는데, 아마 ‘은솔’이었지?
“티켓은 아는데, 다른 건 뭐야? 숫자가 열 개인 것 보니 각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인가? 거품 같기도 한데.”
“‘꿈’입니다.”
“뭐?”
“신사 숙녀 여러분.”
마치,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듯한 분위기.
상인이 양팔을 벌리며 모두를 바라본다.
“우리는, 여러 루트를 통해 여러분에게 약속드렸습니다. 2층이 끝나면 여러분 모두가 안전하게 나갈 수 있다고.”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열차의 마지막 역은 탈출, 탈출 역입니다.”
넋이 나간 채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는 사람들.
“‘꿈’은 그런 여러분을 위한 선물입니다. 현실로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각자의 꿈을 현실에 덧칠하세요.”
현실로 돌아가라.
돌아가서, 각자의 꿈을 현실에 ‘덧칠’하라.
순간, 누군가 창백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설마! 이봐! 그 ‘덧칠’은 몇 번 할 수 있지? 마, 만약 이후의 순환 모두를 바꾼다면 -”
“그 정도는 아닙니다. 딱 한 번이죠.”
“…”
“하하! 과연, 비밀 조직 출신답게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아니면 그냥 감인가?”
“…”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군요. 종점에 도착할 때까진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그때까지 속 시원한 대화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 탁!
가볍게 손뼉치는 사람, 누군가 하고 보니 한가인이었다.
“질문이 남았나요?”
“호텔로 돌아오려면, 3층을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정도는 직접 찾아보시길.”
“무슨 -”
괴인은 더 이상 대화할 생각 없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 모두의 이목이 ‘김아리’와 ‘김묵성’에게 모였다.
“긴 대화가 될 것 같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것 같긴 했어.”
빙그레 웃는 아가씨, 이은솔.
“그래, 이제야 비밀 보따리를 열 셈이구나?”
“현실에 대한 것. 내가 아는 선에선 전부 이야기해줄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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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