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7)
EP.546 546화 – 한 장의 티켓, 열 명의 꿈, 그리고 열차의 종점 (2)
546화 – 한 장의 티켓, 열 명의 꿈, 그리고 열차의 종점 (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0일 차
현재 위치 : 관문 열차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말이지 ‘이상한 곳’이다.
아리와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짐작한 부분도 있었지만, 여기까진 몰랐다 싶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긴 설명이 끝난 후, 동료들은 자연스레 열차 여기저기 흩어져 상념에 빠졌다.
호텔이 으레 그렇듯, 관문 열차 또한 열차 칸이 끝없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점에 도착했으니 당장 내리라고 재촉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중요한 순간이니 각자의 결론을 내려보라는 것처럼.
*
창가에 앉아있던 중, 누군가 옆에 와서 앉았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이런저런 생각이요. 엘레나는?”
“비슷하죠. 오늘 들은 이야기는 살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신기해서.”
“…”
“세상이 반복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
“가인 씨랑 상현 씨는 나가본 적 있으니까….”
“어렴풋이 짐작은 했습니다.”
영화 등 창작물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 ‘루프 물’.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말함이었다.
세상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태어남과 죽음은 순환의 양 끝에 불과했다.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시나요? 현실이 몇 월 며칠이냐? 묻는데 다들 기억하는 날짜가 달랐죠.”
“기억하죠.”
각자 기억하는 현실의 날짜가 달랐던 이유.
단순히 몇 달, 혹은 몇 년 간격으로 잡혀 왔기 때문인 줄 알았었지.
실제로는 모두가 ‘다른 루프’에서 잡혀 왔기 때문이다.
“아리가 말했죠.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숨기는 건, 자신의 독단이 아니라 관리국의 방침이라고. 왜냐하면….”
“진실을 알면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쉬우니까.”
“… 그렇죠.”
부모님과 동생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또한, 가족을 잃은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가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리가…. 말했죠. 우리들의 가족은 더 이상 세상에 없을 거라고. 누가 죽여서가 아니고,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
“부모님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언니는 존재한 적이 없는데…. 돌아가면 ‘엘레나’라는 사람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겠네요.”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는 고통스러운 이야기.
어지간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호텔에 참여하는 관리국 요원들은 해당 사실을 참가자들에게 숨긴다.
“항상 호텔 밖을 그리워했는데…. 막상 나갈 때가 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배우를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이젠 잘 모르겠어요.”
다소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손으로 꽉 쥐고 있는 ‘꿈’을 가리켰다.
“되찾을 수 있는 수단이 우리 손에 들어왔죠.”
이 말은 제법 위로가 되었는지, 엘레나가 싱긋 웃었다.
자리를 떠나기 직전,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가인 씨.”
“네?”
“루프의 시작과 끝은 언제일까요?”
“…”
세상이 반복된다면, 그 반복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이에 대한 아리의 답은 간단했다.
「태초부터 우주는 이런 상태였을까?
관리국이 뒤늦게 파악했을 뿐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정확한 답을 몰라.
이 질문은 ‘창세 이전엔 무엇이 있었는가?’ 혹은 ‘종말 이후엔 무슨 일이 있을까?’와 유사해.
아무도 답할 수 없어.」
*
모두가 엘레나처럼 슬픔에 빠진 건 아니다.
도리어 희망찬 사람도 있었다.
“표정 좋아 보이네.”
“그럼요! 페로, 너도 좋지?”
— 삐이익!
삑삑거리는 페로의 부리에 고급 견과류, 마카다미아를 먹이는 송이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나가서 ‘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해봤어요.”
“…”
“한계가 있긴 하겠죠? 예를 들어, 날 지구 대통령으로 만들어줘! 이런 건 안 될 것 같은데.”
“글쎄.”
“사실 별생각도 없어요. 그냥, 부모님을 ‘덧칠’해야죠.”
“…”
“이제 두 분은 절 사랑하실 게 틀림없어요.”
송이는 경제적으로 유복하지만,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들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꿈’은 ‘더 완벽한 가족’을 얻기 위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오빠. 뭔가 해줄 말 없으세요?”
“있지.”
“예?”
“덧칠할 때 페로를 위해 커다란 새장을 꼭 만들어. 편식이 심해서 견과류만 먹으려고 하니까 캡사이신 발린 해바라기 씨 한 포대도 준비하고.”
— 삐이익!
“쿡! 근데 오빠, 새는 캡사이신 먹어도 매운지 몰라요.”
이건 몰랐네.
*
‘꿈’의 힘으로 세상에 ‘덧칠’한 가족이 진실한 가족인가?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고민이다.
송이처럼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 반대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었다.
진철 형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
“후우…. 돌아가신 거야. 그분이 보기엔, 어느 날 갑자기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실종됐겠지.”
“…”
“죄송스러울 뿐이다.”
“형 잘못은 아닙니다.”
“잘잘못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진철 형이 생각하기에, 형의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꿈으로 어머니를 덧칠한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모독일 뿐이지.”
“형, 혹시나 해서 말인데 -”
“송이에게 이런 말 할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바보냐?”
“다행이네요.”
“예전에는 격투기 선수가 꿈이었거든.”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가면, 글쎄, 관리국 일이나 해볼까?”
“어차피 관리국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것도 그렇다.”
잠시의 침묵.
곧, 형이 조심스레 물었다.
“가인이 너, 혹시 3층도 오를 생각이냐?”
“지금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순서상 현실에 나가는 게 먼저니까.”
“나는 좀 불안하다.”
“어떤 부분이요?”
“봐라. 우리 중 상당수는 이미 대단한 힘과 보물을 얻었어.”
“바깥에서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봐야죠.”
예컨대, 진철 형은 축복, 재생력을 잃으면 유산도 사실상 먹통이다.
엘레나의 불길한 상상 역시 명경지수가 없으면 자폭 도구에 불과하다.
과거의 나 역시 상태창 없이는 화신의 서를 정상적으로 쓰지 못했다.
내 경우, 언젠가부터 그 한계를 많이 극복했지만 다른 동료들은 아니다.
현실에서 축복을 쓸 수 있을까?
아리의 말에 따르면, 쓸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 말은 이거야. 호텔을 오르다 패배하기라도 하면 지옥 확정인데, 이렇게 위험천만한 곳에 왜 돌아오냐는 말이지.”
“그렇죠.”
보물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 호텔은 과장 없이 지옥이다.
실패 후의 운명이 얼마나 참혹한지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곳에 대체 왜 돌아오는가?
“그런데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위해 준비된 3층도 있어.”
“… 그렇네요.”
“그래서 불안하다. 현실이….”
호텔보다도 끔찍한 곳일 것 같아서.
돌아올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애초에 관리국 듀오가 말하지 않았는가.
‘종말을 부르는 빛’은 현실에도 있다.
*
은솔 누나처럼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도 있었다.
“웃기더라.”
“…”
“세계의 반복 같은 거창한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어. 너무 스케일이 크니까 도리어 멍한 느낌.”
“…”
“가족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훨씬 충격적으로 다가왔지.”
“그럴 수 있죠.”
“가인아, 그다음이 킬포인트야. 내가 무슨 감정이 들었을까?”
“…”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밖에 나가면 빌어먹을 오빠, 탐욕스러운 동생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는데….”
“…”
“어라? 내가 손 쓸 필요가 없네?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네? 이게 무슨 일이래!”
어렴풋한 101호의 기억.
재벌 집 딸, 은솔 누나는 가족과의 사이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소원한 정도가 아니라 원수 같았던 모양이다.
“이거 뭐야? 꿈? 소원을 이루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되돌리세요? 그런 것 없는데? 가인이 너 가질래?”
“누나, 진정하시죠.”
가족이 없어져서 다행이라는 식의 말을 내뱉은 누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관계가 소원했다고 해도 이런 말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는 없는 법.
“… 미안해. 말하다 보니 흥분했네.”
“괜찮습니다. 아까부터 다들 한 번씩 제게 오는 분위기니까. 상담사가 된 기분이네요.”
“풋!”
재밌다는 듯 웃은 누나가 간단히 답했다.
“이해해. 아무래도 너라면 괜찮은 조언을 해줄 것 같다. 이런 심리가 모두에게 있거든. 그래, 내게 뭔가 해줄 말은 없어?”
“꿈 말이죠, 꼭 사랑하는 사람만 덧칠하라는 법은 없죠.”
“…”
“가족을 되돌릴 생각이 없다면, 다른 데 쓰세요. 누나에게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나요?”
“…”
“도움이 되었다면 -”
“고마워. 어디에 써야 할지 알 것 같아.”
*
미로처럼 별생각 없는 사람도 있었다.
“잘 모르겠어어~!”
“그래?”
“세상의 순환이니 뭐니, 대단하긴 한데 너무 대단해서 잘 모르겠어.”
이 부분은 다른 동료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너무 스케일이 크니까, 도리어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순환이니 루프니 하는 것보다 ‘가족이 전부 사라졌다’라는 지점에서 충격받은 경우가 많다.
미로는 그 부분조차 해당 사항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리의 말을 듣기 전에도 자신이 최소 수십 년을 건너뛰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과 공포는 미로에게 있어서 ‘진작 경험한 일’이다.
그래서 미로는 다른 문제에 관심 가졌다.
“이거 봐. 손거울 보이지?”
“…”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어. 처음엔 화들짝 놀라서 아리를 부르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알았지!”
“…”
“내 목소리였어. 거울 속에,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있었어! 이게 너랑 아리가 말한 그….”
“괴담 미로.”
“괴담! 무서워! 가인아, 이거 없애줄 수 있어?”
“모르겠네.”
정말 모르겠다.
형체 없는 유령보다도 더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지금의 미로다.
“으, 은솔이에게 들었는데!”
“…”
“내게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덧씌워져 있다잖아! 나, 귀신 들린 것 아니야?”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꺄아악!”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저, 정말이야? 알고 하는 말이야? 아니면 순수한 날 속이는 거짓말?!”
“정말이야. 별일 없을 거야.”
이 말 또한 진실이다.
“너에겐 별일 없을 거야.”
“응?”
“미로, 현실로 돌아가면 아리 옆에 붙어 다녀.”
“지금도 그러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해.”
“풋! 다른 방법이 떠올랐어.”
음?
“가인이 옆에 붙어 다니면 안돼?”
미로는 종종 사람을 당황하게 하곤 한다.
*
깊은 고찰에 빠진 사람도 물론 있다.
상현 형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큰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습니다.”
“뭔가요?”
“마마 말이지요. 기억하십니까?”
상현 형은 다소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는데, 성장 과정에서 ‘마마’라는 마을의 대모 격 여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여름 밤의 꿈 당시, 상현 형은 나처럼 현실을 보고 돌아왔다.
‘마마’는 상현 형을 알아보았다.
단순히 형만 알아본 것이 아니라, 루프가 반복되며 사라진 형의 모교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렸다.
“마마에게 요원의 재능이 있을 줄이야….”
“정확히는 ‘어설픈 재능’이라고 했죠. 요원에게 10이 필요하다면, 그녀에겐 3~4정도 있는 것 같다고.”
관리국 요원이 되는 데 필요한 재능은 무엇인가?
명문대를 졸업할만한 높은 지능?
운동선수에 비견할만한 신체 능력?
아니면 손 한번 까딱해서 자동차를 던지는 초능력?
전부 아니다.
저런 건 관리국 ‘직원’이 되기 위한 능력이고, ‘요원’이 되기 위한 재능은 딱 하나였다.
‘루프의 인식.’
요원이란 곧, 세상의 반복 속에서도 자아를 지킬 수 있는 자.
“아리 양의 말에 따르면, 이제 우리에게도 요원 재능이 생길 거라 하더군요.”
“그렇다네요.”
“루프 후에도 자아의 연속성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그 뒤의 이야기는 더 괴이했습니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보다 어찌 보면 더 기괴한 것이 ‘요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관리국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다가, 끔찍한 혼돈체에 당해 죽는다.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다.”
“…”
“깨어나는 시점은 매번 달랐다. 1900년대일 때도 있고, 1980년대일 때도 있다. 2000년대일 때도 당연히 있다.”
“신기한 이야기죠.”
“신기한 건 둘째치고, 말이 됩니까?”
“…”
“‘나’라는 존재가 잉태되기 위해선 부모님의 유전자가 필요합니다. 그게 과학이죠. 부모님이 사라지면, 나는 태어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렇겠네요.”
“요원이라는 존재는 이런 자연스러운 이치에서 벗어난 겁니다. 부모님이 사라졌는데, 나는 다시 태어납니다. 똑같은 몸, 똑같은 정신으로!”
요원이란 곧, 끝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 속에서도 허물어지지 않는 단단한 유리를 말함이다.
“말이 안 됩니다.”
“형,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면 호텔부터가 말이 안 되죠.”
“그 말도 맞긴 하는데….”
잠시의 침묵과 마지막 질문.
“… 꿈을 얻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말해보세요.”
“아내를, 아들을 현실에 불러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애초에 그런 용도니까요.”
“… 꿈으로 불러낸 가족이 진실한 가족이라 생각합니까?”
“이런 문제에 답이 있을까요? 다만, 이 정도 생각은 드네요.”
“듣겠습니다.”
“동일성을 유전자의 동일성으로 따진다면, 꿈으로 불러낸 가족은 진실한 존재일 겁니다.”
“…”
호텔에 그 정도 능력은 있으리라.
더 해줄 말은 없었다.
남은 것은 본인의 선택일 뿐이므로.
*
이제 슬슬 ‘한가인 선생’의 상담 교실도 끝내야겠다 마음먹을 무렵,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났다.
“이야~ 가인이 오늘 수고 많네!”
“아직도 상담이 남았다니.”
“어머, 우리가 끝 아닌데?”
“뭐?”
“우리 다음은 승엽이일걸?”
상담 교실을 연장해야 할 모양이다.
“이러쿵저러쿵 잔말은 생략할게. 이거 보여?”
아리가 ‘보온병’을 꺼냈다.
“여기에 내가 담은 게 뭔지 알아?”
“기계와 살점이 섞인 괴상한 물건으로 보이네.”
“카메라야. ‘살아있는 카메라’지.”
“…”
“이걸로 널 찍고 싶어. 어때?”
오피러브
늑대훈련소
TXT viewer control
괴담 호텔 탈출기-54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