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9)
EP.548 548화 – 호텔 딜라이트 (1)
548화 – 호텔 딜라이트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0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신길 아파트 203호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축복과 유산의 존재 여부다.
과거 아리와 할아버지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탈출 후 축복과 유산 중 무엇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탈출 방식에 따라 다르다는 가설이 있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직접 확인해야 한다.
축복의 경우, 다행히 시야 한구석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상태창을 발견했다.
흐릿하게?
“잘 안 보이는데? 그렇지 페로야?”
— 삐익!
잉크가 다 떨어져 가는 펜으로 글을 쓴 것처럼 흐릿하다.
다른 능력도 확인해봐야겠다 싶어서 거울을 보았다.
과연, ‘통찰’이 보여주는 내 가능성을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축복이 아예 사라진 것도 아니고, 100%도 아니고, 약해졌다는 점.
무슨 의미일까?
호텔 내라면 특유의 ‘밸런스 패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은 호텔이 아니다.
게임 운영자가 ‘게임 밖 세상’의 밸런스를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벌어진 일을 상기하니, 단순한 가능성이 한 가지 떠올랐다.
축복의 근원은 ‘후원자.’
물리적인 의미든, 초자연적인 의미든지 간에 지금 나는 후원자와 대단히 멀어진 상태다.
멀어지면서 축복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현실 어딘가에 있는 ‘호텔’을 찾아내서 가까워지면 회복한다?
조언을 썼다.
「조언 : 3 -> 1」
“아.”
질문이 두 개긴 했지만, 정말 두 개 까네. 야박하게시리!
첫 번째 질문, 축복이 약해진 건 현실의 호텔과 멀어져서가 맞습니까?
「절반은 맞췄다. 나머지 절반은 지금 알려줄 수 없다.」
두 번째 질문, 현실 어딘가의 호텔을 찾아내면 축복의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역시 절반은 맞췄다. 나머지 절반은 지금 알려줄 수 없다.」
“아니….”
뭐야? 답변이 둘 다 똑같잖아?
이러면서 굳이 조언 스택을 두 개 까먹어? 너무 야박한데?
“왜 이렇게 치사 – 이건 조언을 구하는 것 아닙니다.”
…
호텔을 찾는다?
두 가지 루트는 알고 있다.
첫째, 호텔 1층은 한국의 하늘 어딘가에 있다. 대략적인 위치는 기억한다.
둘째, 호텔 2층은 ‘김민영’이라는 소년의 집 내에 있는 스노 글로브 내부다.
“흐음….”
하늘 어딘가를 날아서 가는 건, ‘관리국’의 존재를 생각하면 다소 위험한 선택지.
반면, 스노 글로브로 침투하는 루트는 민영이가 어디 사는지만 알아내면 된다.
“…”
나로선 워낙 오래된 일이라 민영이의 외모 등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소년이 8 x 8을 88이라고 썼던 충격적인 기억만 떠올랐다.
“그래도 민영이가 건강하긴 했어. 건강하면 된 거야.”
적어도 지금쯤은 곱셈은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유산에는 축복처럼 직접적인 약화가 없었다.
화신의 서는 아무 문제 없는 데다가 207호 내에서 나름대로 기록했던 ‘세레나의 깨달음’까지 제대로 남아있었다.
‘오직, 나만이 진실임을 알라.’
“… 고맙다.”
유용한 기술이니 쓸 일이 있겠지.
신성한 태양의 경우, 힘이 1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207호 내부에서 비행과 에이디아의 충돌 등으로 소모한 분량도 제법 있고, 나 자신을 쪼개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소모한 분량도 많은 것 같다.
이것 역시 유산 자체의 약화는 아니다.
총은 멀쩡한 데 총알이 한 발 남은 상황일 뿐.
충전할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나?
이 부분은 차차 고민하자.
— 삑! 삐이익! 푸드득!
답답하다는 듯,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페로.
호텔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대단히 넓은 장소였지.
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페로에게 ‘서초3동 신길 아파트 203호’는 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물론, 내가 보기엔 남자 혼자 살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서초동이니까 가격도 상당할 테고.”
앵무새가 서초동 집값을 알 리는 없겠지만.
“같이 나갈래?”
— 삐익!
“보통 앵무새가 산책할 때는 하네스를 해야 해.”
‘하네스’라는 단어를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로.
“단단한 끈으로 네 몸을 꽁꽁 묶어서 – 으악! 물지 마! 물지 말라고!”
나가기 직전, 혹시나 해서 오랜만에 ‘시나리오 이해’를 확인했다.
“아예 반응도 없네.”
아예 반응하지 않는 건 축복의 약화와는 또 다른 문제 같다.
진행 중인 ‘시나리오’가 없어서가 아닐까?
상인이 첫 6개월은 그냥 마음 편히 쉬라고 했었지.
“그래. 좀 놀자.”
*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고가 터졌다.
— 지이잉!
“와! 씨발, 으악!”
– 삐이익!
“조심해! 피해! 아니 시발, 왜 이렇게 조준이 빨라!”
– 꽤엑!
“아오! 죄송합니다!”
— 쾅!
미쳤냐!
레이저 포탑이 페로를 태워죽이려고 할 줄이야!
결국 레이저 포탑을 걷어차서 반쯤 망가트려야 했다.
“아이고! 학생! 이게 무슨 짓이야!”
당연히 아파트 경비가 뛰쳐나왔다.
“죄송합니다. 이, 이게 제 앵무새를 공격하려고 해서….”
“앵무새를 기르고 있었어?”
“… 네.”
“조류원 같은 데서 분양받았나? 분양받을 때 설명 못 들었어?”
“…”
“애완조를 기를 때는 발목에 인식 발찌를 채워야 할 것 아니야!”
“…”
“이런 무식한!”
다행히 레이저 포탑이 완전히 망가지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한참 동안 경비에게 혼나야 할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냥 뛰었다.
“야! 학생! 어딜 가! 저, 저놈이!”
혼나는 게 싫어서 도망간다?
그래봐야 언젠가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돌아오면 경비가 있다.
이 무슨 초등학생 같은 행동이란 말인가!
나는 이래도 된다.
나는 ‘꿈’을 사용해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다.
※ 이상한 세상의 상식
포식성 비둘기를 요격하기 위한 보안 시스템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애완조’와 ‘포식성 비둘기’를 구분하지 못하므로, 애완조는 인식 발찌를 채워야 한다.
*
페로는 집보다 훨씬 좁은 종이상자에 들어간 채 바깥 공기를 쐬어야 했다.
레이저 포탑에 의해 한쪽 날개깃이 타버린 충격이 컸는지, 페로도 순순히 상자에 들어갔다.
새삼스럽긴 한데, 내 신분은 말 그대로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도 ‘한가인’이고 나이는 23살이다.
가족관계는 다소 씁쓸했다.
외동아들이며, 부모님은 사고로 사망.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상태.
“…”
나는 가족의 부활을 소망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소원을 빌었다.
괜찮다.
정말 괜찮았다.
간섭하는 사람 없이 많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배경이잖아?
놀고먹기 딱 좋네.
S급 백수 생활을 즐기면서 6개월을 보내면 그만이다.
길을 쭉 따라서 걸었다.
서초역을 지나쳐 대법원 일대를 걸어가니, 언제나 그렇듯 판사가 돈을 받았다는 둥 하며 시위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또한, 그 옆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하는 법원 직원들도 보였다.
1,000만의 인간이 모여있으나,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익숙한 도시 풍경이다.
“…”
대놓고 얼굴을 드러낸 채 몇 시간이고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신분 위장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날 알아보지 않았다.
호텔에서 벌어진 일을 일반인은 모를 테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한여름 밤의 꿈 당시, 일시적으로 현실에 나와 온갖 난리를 만들지 않았는가.
익투스와의 기묘한 만남.
‘자칭 신’ 아폴리온과의 충돌!
강림한다 해서 내 외모가 바뀌는 게 아니며, 관리국은 당시 내 외모를 알아냈다.
“…”
여전히 날 감시하는 시선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꿈’의 힘은 이토록 막강했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처럼, 동료들도 ‘꿈’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었겠지.
흥미롭게도 전원이 꿈을 사용한 건 아니었지만.
…
저녁 무렵,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동료들이 보고 싶었다.
「조언 : 1 -> 0」
‘동료들을 만나도 괜찮습니까?’
「관리국 쪽은 네가 먼저 접근하지 말라.」
아리와 할아버지에겐 내가 먼저 접근하지 말라는 답변.
뒤집으면, 다른 사람에겐 접근해도 된다는 의미네.
「동료 위치정보(*)」
다행히 이 기능은 그럭저럭 작동했다.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
호텔 딜라이트(Hotel Delight)는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호텔이라고 한다.
“신라 호텔 이런 건 아예 없나?”
소위 3대 호텔 리스트에 ‘신라 호텔’이 없어서 조금 충격받긴 했지만, 이런 소소한 변화에 놀랄 필요는 없겠지.
여하튼, 여의도 한복판에서 멋들어지게 솟아있는 호텔의 모습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로비, 푹신한 의자 하나를 잡고 기다렸다.
곧,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손을 들어 인사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녀’가 비서 한 명만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순간이동 문신’을 쓸 타이밍!
“흡!”
*
— 털썩!
엘리베이터 내부로 이동 성공!
오랜만에 쓰는 거라 ‘조준’을 실패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
“꺄아악!”
“아 -”
“꺄아악! 베, 베, 벨을 눌러서!”
“아 정말! 승아야, 멈춰!”
“이, 이사님!”
“멈추라고!”
“…”
약 5초의 난동이 있었다.
은솔 누나 옆에 있던 비서가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거의 기절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누나가 한숨 쉬며 ‘호접몽’을 써서 재워야 했다.
“… 비서가 담이 참 작네요.”
“승아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지! 로비에 가만히 있길래 회의 대충 끝내고 부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누나도 날 봤구나.
“조금은 즐거운 만남을 위해….”
어이없다는 듯 웃던 은솔 누나가 결국 쿡 웃었다.
“들고 있는 건 뭐야?”
“페로가 든 상자죠. 페로야, 인사!”
— 삑!
“이야~ 누나, 인터넷에서 유명하던데요?”
“…”
“세계적인 5성 호텔 딜라이트의 창업자, 2022년, xx 일보 선정 한국 사회를 이끄는 23인의 젊은 리더 중 1인 -”
“그, 그만.”
은솔 누나가 ‘꿈’으로 이룬 소망은 ‘호텔 딜라이트’의 주인이 되는 것.
이에 대해 가타부타 떠들 생각은 없었기에 딱 한 가지만 물었다.
“만족하세요?”
“… 그래.”
“저는, 음, 누나가 대양 그룹 자체를 되돌릴 줄 알았어요.”
“가능했을까? 쓰는 순간 깨달았겠지만, ‘꿈’은 생각보다 한계가 명확했어. 세계 굴지의 대재벌을 불러내는 건 너무나 엄청난 현실 조작을 요구하지.”
“규모를 줄여서라도 만들어줬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네.”
잠시의 침묵.
곧, 은솔 누나가 답했다.
“부모님의 부활을 바라지 않았어.”
“…”
“형제, 자매의 부활도 바라지 않았지. 그래. 나는 가족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았어.”
“… 이해합니다.”
과거, 101호를 진행할 때 살짝 나왔던 이야기다.
대양 그룹 회장 일가의 가족관계는 파탄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인정해. 대양 그룹은 내가 세우지 않았어. 할아버님이 세우셨고, 아버지가 키우셨지.”
“…”
“형제들끼리 비교해도 나보다는 오빠, 특히 큰오빠가 크게 기여했거든.”
능력이야 어찌 됐든, 은솔 누나보다 먼저 태어나 장성한 형제가 그룹에 기여한 바는 더 크다.
“가족은 싫어서 부활시키지 않겠다면서 가족이 일궈낸 ‘결과물’만 불러내서 독식한다…. 너무 싫었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심리다.
“그래서 호텔만 되돌린 거야. 호텔 딜라이트는 내가 주관한 사업이었거든. 내가 거의 키우기도 했고.”
대화하던 중, 누나의 ‘두 눈’이 모두 멀쩡함을 알았다.
“어? 누나, 눈이 -”
“이제 둘 다 평범한 사람의 눈이지?”
호텔이 대여한 단안거조의 눈은 호텔 밖에서 쓸 수 없다.
또한, 호텔 ‘내부에선’ 사람의 눈을 회복할 방법도 없다.
이곳은 호텔 내부가 아니다.
“어떻게 한 거죠?”
“이것도 꿈으로 빈 소원의 일부였어. 물론, 아리는 관리국에 찾아오면 눈 정도는 고쳐주겠다고 했지만….”
“했지만?”
“관리국보다 호텔 솜씨가 더 좋지 않겠어? 그리고 관리국에 신세 지기 싫었어.”
“…”
“껄끄럽지 않아? 아리랑 묵성 할아버님은 관리국에 복귀했겠지? 지금쯤 관리국은 우리의 복귀도 알았겠지?”
“아마도요.”
“껄끄러워. 걔네가 우리를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어. 그래서 신세 지고 싶지 않아.”
“이해합니다.”
“넌 어때? 관리국에 연락이라도 받았니? 그놈들이 가장 경계할만한 사람이라면 너일 텐데.”
“아마 저에 대해선 제대로 인지할 수 없을 겁니다.”
“뭐?”
“설령 아리와 할아버지가 저에 대해 보고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한가인’에 대한 서류가 사라지고 보고를 받은 사람도 보고를 잊을 겁니다.”
“…”
“그런 소원을 빌었거든요. ‘동료를 제외한 모두가 날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라고.”
추가적인 질문을 기다리며 지그시 눈을 감으려던 순간.
갑자기 누나가 내 팔을 잡았다.
“왜 그래요? 궁금한 게 있으면 -”
“24층!”
“네?”
“25층!”
무슨 말인가 해서 엘리베이터 상단을 보니, 25층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곧, 26층으로 바뀌었다.
“회의실이 되게 높은 곳에 있나 보-”
“아니야! 회의실은 7층이야!”
?
“그리고 이 호텔은 21층이 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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