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1)
EP.551 551화 – 나 홀로 학교에 (1)
551화 – 나 홀로 학교에 (1)
– 박승엽
내가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엄청 많다.
친하지도 않은 애들과 한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싫고, 머리 아픈 공부를 강요받는 것도 싫어.
— 지익!
‘학교조차 없었으면 너 같은 애는 사람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가까웠을걸요?’
이게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틈 날 때마다 이렇게 독설을 퍼붓는 소피아도 싫어.
‘나도 당신이 싫어요.’
— 지익!
심지어 성격이 유치하기까지 해.
유미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고!
유미 제자라면서 뭘 배운 거야?
‘당신이 이자성에게 배운 만큼 배웠지.’
“쿨럭!”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얘는 스승님을 뵌 적도 없으면서 뭘 아는 체 하는 거야?
— 지익!
‘방금 마킹 실수한 것 같은데?’
“나한테 실수란 없어.”
실수처럼 보이는 건 모두 행운의 인도일 따름 –
“시험 시간엔 조용히 해라!”
유미와 소피아의 마법 능력엔 차이가 크다.
소피아에겐 유미처럼 신체 조작과 관련한 힘은 없었지만, 반대로 유미는 할 수 없던 ‘마음속 대화’ 따위를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은 내가 종종 실수하는 게 문제일 뿐.
‘17번 문제는 아무리 봐도 답 3번 같은데요.’
4번이야.
‘그냥 찍는 중이면서 왜 이렇게 확신이 강하죠?’
나는 나를 믿어.
‘아니, 그냥 찍는 중이잖아!’
나는 행운의 소년이야.
— 딩동!
“모두 시험지 내라!”
국사 시간의 쪽지 시험이 끝났다.
*
채점 결과는 70점이었다.
이에 대한 내 평가는 –
‘아니, 이렇게 쉬웠는데 70점? 교과서에서 그대로 낸 수준이었는데?’
살면서 본 국사 시험 점수 중 최고야.
‘너 혹시 중국인이니?’
“야!”
참지 못하고 고함지르자 주변 학생들이 놀라서 내 쪽을 보았다.
덕분에 어색하게 웃으며 교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역시 아직은 직접 입으로 말하는 쪽이 익숙해.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반 평균보다도 높은데.”
‘생각해보니 잘했네요. 다른 애들은 풀었지만, 당신은 찍었지. 오지선다를 찍어서 70점이 나왔다? 대단하긴 해!’
“그러니까 -”
‘그리고 넌 찍어서 70점 맞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 중이고.’
“그럼. 축복도 내 능력인걸?”
이 부분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본래 천하제일 고수는 범인(凡人)의 질투에 개의치 않는 법.
‘설마 시험문제를 잘 찍는 게 네 소원이었어?’
이 대목에서 살짝 당황했다.
찍기 능력은 꿈과 아무 상관 없고, 행운의 축복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이라면 이런 걸 헷갈리진 않겠지.
나와 소피아가 현실로 돌아온 지 열흘 정도 흐른 현재, 소피아는 아직 내 힘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이건 축복이야. 소원은 따로야.”
‘서, 설마! 방배중학교 서열 1위 -’
“그, 그건 진짜 아니야!”
소피아는 가끔 내가 무슨 저능아인 줄 알아!
미쳤어?
방배중학교 서열 1위 따위를 소원으로 빌게?
나는 크게 두 가지 소원을 빌었다.
첫째, 부모님의 부활.
이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둘째!
“후후…!”
새로이 얻은 내 능력을 생각하니 벌써 자랑스러웠다.
그 순간, 자그마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왜 스승님을 부활시키지 않았지? 내겐 스승님이지만, 네겐 사랑하는 정인(情人)이었을 텐데.’
“…”
*
점심시간 무렵, 3학년 5반으로 이동했다.
이미 나 말고도 까치발을 선 채 교실을 염탐 중인 남자애들이 꽤 많았는데, 이유는 짐작이 간다.
3학년 5반에 상당한 유명인이 있기 때문이다.
“야, 야 들었어?”
“걔, 곧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간대!”
“어? 배우 한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배우니, 아이돌 연습생이니 하는 소문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알기로 ‘걔’는 어디 가서 성실하게 춤 연습이나 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다.
그때, 신비한 현상이 벌어졌다.
갑자기 초점이 흐릿해지는 학생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좌우로 흩어진다.
‘관리국 스마트폰’에 담긴 신기한 기능, 인식 저해 결계의 힘이다.
기다렸다는 듯 교실 밖으로 나오는 소녀.
“하아암!”
“…”
“바보야! 식당이나 가지 여기서 뭐 해?”
방배중학교 서열 2위, 미로 –
‘그 서열 놀이, 본인에게 동의는 구했어?’
“으흠, 가자.”
학교 식당으로 가던 중, 다시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존재감 없이 살아가기에 미로의 외모는 너무 화려하다.
“아~ 귀찮네. 잘 봐. 이래서 나처럼 특별한 사람은 괴로운 거야.”
뜬금없는 공주병 멘트 뭔데?
이 말 나중에 가인 형에게 전해주고 싶네.
“다시 쫓아내야 -”
— 탁!
미로가 아리에게 받았다는 ‘관리국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 재빨리 폰을 빼앗았다.
“으앗! 뭐, 뭐야!”
“멍청아. 아리 누나가 자주 쓰지 말라고 했다며!”
“…”
“조금 전에 쓰고 또 쓸 셈이야?”
얘는 진짜 행동이 너무 자기 멋대로야.
머리가 나쁘다?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식 저해 결계를 너무 자주 쓰면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까….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성격이 나쁘다는 말이군요.’
소피아의 독설에는 종종 슬픈 진실이 담겨있다.
*
— 철컥!
“됐어. 이젠 아무나 들어오지 못할 거야.”
어떻게 했냐고 묻진 않았다.
소피아 특유의 마법일 텐데,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여하튼, 덕분에 비어있는 교실에서 세 사람이 자유를 얻었다.
“아아~! 나 학교 진짜 싫엉!”
“나도….”
미로와 나의 솔직한 마음.
그리고, 한숨 쉬는 옅은 금발 아가씨.
“미안한데, 너희는 사람 되려면 학교를 10년은 더 다녀야 해.”
“승엽아, 얘는 왜 맨날 기분 나쁜 소리만 해?”
“그 뭐지, 올챙이가 개구리 시절 모른다는 말 있잖아.”
“올챙이랑 개구리가 무슨 상관인데?”
“올챙이가 크면 개구리 되잖아.”
“아닌데?”
“맞는데?”
“승엽이 너, 올챙이 키워본 적 없지?”
“어….”
“바보야. 난 키워봤어. 올챙이는 물속에서 한 달 정도 꿈틀꿈틀하다가 다 죽어.”
“그, 그건 미로 네가 이상하게 키워서 다 죽은 것 아니야?”
“하! 올챙이 키워보지도 않은 게 -”
— 짝!
소피아가 손뼉 치며 대화를 멈췄다.
“제발! 둘 다 조용히 해줘.”
소피아의 표정이 거의 울 것 같았다.
“올챙이가 크면 개구리 되는 게 맞아. 승엽이가 하려던 말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겠죠. 아마 내가 학교 다닌 지 오래돼서 어릴 적 일을 모른다고 지적한 것 같은데.”
“하하! 그거지! 들었지, 미로 이 멍청이가 -”
“부탁이에요. 제발 닥쳐주세요.”
“…”
조용해진 교실.
소피아가 피곤한 표정을 짓는 시점, 미로가 툴툴거렸다.
“얘 성격 너무 이상해. 말투도 오락가락하고!”
“전 항상 여러분에게 공손히 대하려 한답니다. 가끔, 여러분이 제 마음을 꺾어서 문제지.”
“나, 가인이 보고 싶어.”
미로가 가인 형을 보고 싶어 할 때마다 조금 신기했다.
가인 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미로처럼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슬며시 눈살을 찌푸리는 소피아는 가인 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도 숭배의 대상?
아니면….
모를 일이다.
그보다, 오늘 우리가 만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리에게 받은 전달 사항이야!”
나와 소피아의 이목이 미로에게 집중되었다.
“첫째, 소피아의 요청에 대한 답.”
소피아의 요청.
나와 함께 현실에 도착한 후, 소피아는 ‘영혼의 함’에 담긴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요구했다.
‘날 영혼의 함에서 꺼내줄 수 있을까요?’
NPC에게 영혼의 함은 일종의 ‘차원을 넘는 배’에 가깝다.
참가자가 아닌 자에게 저주의 방에 들어가거나 저주의 방에서 현실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도구다.
이미 현실로 나왔는데 배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내심, 내게도 반가운 부탁이다.
소피아를 영혼의 함에 담아두는 건 내게도 너무 불편해.
무엇보다 이 자리는 소피아의 자리가 아니다.
“가능할 것 같대. 영혼의 함에 담기는 영혼은 교체할 수 있으니까, 네 영혼을 빼낼 수도 있지. 빼냈을 때 ‘특별한 도구’로 소피아의 영혼을 봉인했다가 관리국이 준비한 몸에 이식하면 된다고 하네.”
듣기만 해도 뭔가 엄청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섬뜩할 정도.
“다만, 관리국을 위해 ‘봉사’할 각오는 되었냐고 하네.”
“… 조금 더 생각해보죠.”
“다음 이야기! 이건 승엽이 네게 하는 말이야.”
“어?”
“행동을 조심하래. 나랑 아리는 시작하자마자 관리국에 ‘회수’당했고, 너는 그런 나랑 같은 학교에서 시작했잖아?”
“그렇지.”
“우리는 모두 관리국의 눈에 노출되어 있대.”
“…”
“그니까, 아직 노출당하지 않은 다른 동료들에게 섣불리 접근하지도 말래.”
“명심할게.”
미로와 아리는 시작하자마자 관리국의 감시하에 들어갔다.
나 역시 미로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이미 감시하에 들어갔겠지.
소피아의 존재 역시 들켰을 확률이 높다.
물론, 소피아는 관리국의 도움을 받아 ‘영혼의 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니까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우리는 ‘버린 몸’이다.
그러므로 아직 관리국에 노출되지 않은 동료들과 섣부른 만남은 삼가야 한다.
소피아가 담담한 투로 답했다.
“신기하네요.”
“응?”
“아리 양 말이죠. 시작하자마자 관리국에 합류한 걸 보면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한 듯싶다가도….”
“…”
“이런 대화를 보면, 관리국보다 여러분을 우선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리고 이건 할아버지의 질문.”
할아버지의 질문?
“에헴!”
곧, 미로가 장난치듯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승엽아, 왜 유미를 부활시키지 않은 게냐? 꿈으로 되살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
오늘만 두 번째 받은 질문이다.
다른 동료들도 날 만나면 이 부분을 궁금해하겠지.
내가 유미를 ‘꿈’으로 불러내지 않은 이유.
“… 일회성이니까.”
“뭐?”
“꿈을 통한 현실 덮어쓰기는 딱 한 번의 루프에서만 가능하다고 상인이 말했잖아.”
“…”
“그런 부활은 싫어. 언젠가 유미를 깨운다면, 더 이상 헤어지지 않는 영원한 재회였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으아아!
내,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같이 얼굴을 붉히는 미로와 달리, 소피아는 예리하게 질문했다.
“그런 것 치곤 부모님은 되돌렸잖아요? 부모님보다 스승님, 당신의 연인이 더 소중해서?”
“…”
“그럴 수 있죠. 원래 자식들은 머리 굵어지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고 하니까.”
이 와중에 독설이라니!
“그보다, 당신은 ‘다음 루프’로 넘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군요?”
“응?”
뭔 소리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그냥 느낌인가? 느낌이라면 굉장히 불길한 직감이네요.”
세 사람의 짤막한 회의는 이 정도로 끝났다.
*
다시, 7교시 수학 시간.
언제나 그렇듯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
상쾌한 기분으로 깨었다.
이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수업 시간의 꿀잠이라는 게 으레 그렇지만, 상쾌하게 깨는 일은 없어야 정상이다.
충분히 자기 전에 선생님이나 옆자리 친구가 깨우는 게 보통이니까.
상쾌했다.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 깨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이게 뭐야!”
방배중학교에 ‘박승엽’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사라졌다!